496화 살인자들의 탑 (3)
<#3. U Break>
살인자들의 탑 3층을 디자인한 장본인 ‘Pangaeapanga’의 역작이다.
그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는 제작자로 괴랄한 난이도의 맵 디자인을 자랑한다.
“판게아판가, 오랜만이군.”
나는 과거 그가 제작한 맵에 몇 번이고 도전했고 실제로 몇 개인가의 맵은 클리어했다.
하지만 지금 마주친 것은 판게아판가의 역작이라 불리는 ‘U Break’, 원래라면 벌써 등장할 맵이 아닌데 아무래도 대격변 때문인가 등장이 조금 빨리진 모양이다.
참고로 이 맵을 클리어하려면 39시간을 실수 한번 없이 극한의 집중력으로 움직여야 한다.
괜히 성공률이 0.007636%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회귀 전의 나였다면 감히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겠지만…….
‘지금의 나라면 가능하지.’
나는 굳은 표정으로 눈앞의 맵을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정글의 외형을 하고 있는 맵.
하지만 중간중간에 솟구친 톱날들과 절벽가에 서 있는 무수한 수의 대포들, 그리고 구덩이 아래 화산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과 발을 들이는 순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바윗덩어리들은 누가 봐도 생지옥 그 자체이다.
“……아니. 미쳤냐고. 이런 데를 어떻게 지나가? 이 맵을 만든 사람은 여기를 지나갔다는 거야 그럼?”
유다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이윽고, 나는 출발지 끝에 섰다.
“나만 잘 따라와. 여기서부터는 발목 잡으면 못 도와줘. 버리고 갈 거다.”
“참 나. 누가 발목을 잡았다고요~ 전에 빙판길도 제가 아이템 써서 뚫었고 큐브 때도 고전영화 모티프인 거 알아낸 게 누구…….”
“자, 그럼 간다.”
나는 유다희의 말을 씹고 재빨리 내달렸다.
먼저 절벽, 나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절벽으로 뛰어들었고 건너편 절벽의 벽을 밟고 다시 원래 절벽으로 점프, 또다시 건너편 절벽으로 점프를 반복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파캉! …파캉! …파캉!
내가 밟은 곳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시가 튀어나온다.
그것도 모자라 가시의 건너편에서는 화살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우습게 피해 냈다.
내 뒤를 따라오는 유다희는 볼과 귓바퀴, 팔뚝과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화살에 경기를 일으켜야 했다.
“히이익!? 뭐, 뭐야! 너는 어떻게 피하는 거야 이거!?”
“이쯤이야. 이 맵은 함정의 사출구만 봐도 그 유형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고.”
나는 바닥에 튀어나온 가시를 피해 사뿐히 착지하며 말했다.
“저쪽 사출구의 안쪽을 자세히 보면 강선이 보이지? 그렇다면 저건 화살이 회전하며 나오는 구멍일 거고, 사출구를 따라 벽으로 시선을 이동하면 뿌리 쪽에 가시를 조종하는 회전기어가 살짝 보이는 걸 알 수 있지.”
“……뭐, 뭐라고?”
“반원을 그리며 날아오는 화살이 1패턴, 화살 뒤에 회전기어가 움직여 가시를 뿜어내는 것이 2패턴, 다른 사출구에는 렌즈 비스무리한 것이 부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정통적인 빔 무기일 테니 그것이 움직이는 것이 3패턴. 이런 식으로 미리 관찰하면 어느 정도 패턴에 대응할 수 있다.”
“……세상에.”
“아주 약간의 집중력만 있으면 누구나 간파할 수 있는 사실이야.”
나는 말뚝처럼 우뚝 솟아 있는 징검다리들을 훌쩍훌쩍 뛰어 강물을 건넜다.
그리고 곧바로 등장하는 것은 폭포.
나는 폭포 위의 넝쿨을 잡았다.
“이걸 타고 폭포를 건너는 건가? 좋았어.”
유다희 역시 나를 따라 넝쿨을 잡는다.
하지만.
“이런 지형이라면 약간의 꼼수를 쓸 수 있겠군.”
나는 넝쿨에 바로 매달리지 않았다.
다만.
끈적-
숨을 참고 점액을 방출해 넝쿨에 대고 흘려보냈을 뿐이다.
내 체온에 의해 따듯함을 유지하고 있는 점액, 누군가에게 포상일 그것은 넝쿨을 타고 스르르 흘러내려 가 폭포 중앙 부근에서 길게 늘어진다.
그러자.
…퍼펑! …퍼퍼퍼퍼펑! …푸슈슈슉! …키이이이잉! …쾅! …콰쾅!
폭포 안쪽에서 갑자기 톱날과 포탄, 화살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다희는 폭포가 흘러내리는 절벽들이 순식간에 파괴되어 붕괴되는 것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나는 낄낄 웃었다.
“역시 여기에는 열 감지 센서가 설치되어 있었나 보군. 아까 전 단계의 함정들을 보고 대강 눈치챘지만 말이야.”
내 체온 수준의 점액들을 흘려보내는 것으로 모든 함정들을 헛되이 발동시켜 버렸으니 이제 남은 것은 안전하게 지나가는 일뿐이다.
나와 유다희는 그대로 넝쿨을 타고 폭포를 넘어갔다.
고지는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온다.
최단 클리어가 39시간으로 알려져 있는 극악 난이도의 맵.
‘잘 하면 1시간도 안 걸려서 주파할 수 있겠군.’
나는 눈을 빛내며 마지막 절벽을 눈에 담았다.
“이제 여기서부터가 중요해.”
나는 유다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말을 마친 나는 바닥을 돌며 갓이 넓은 버섯들을 따 모았다.
…토옹!
버섯의 갓은 위에 닿은 물체를 위로 튕겨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잘 봐. 이렇게 하는 거야.”
나는 버섯 갓 두 개를 양손에 든 채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제일 높이 뛰어올랐을 때 버섯의 갓을 재빨리 내 다리 밑에 깔았다.
…토옹!
나는 그 자리에서 더욱 높이 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높이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토옹!
또 한 번 버섯의 갓을 발아래 가져다 대 점프할 수 있었다.
총 3단 점프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건너편 절벽까지 갈 거야. 오케이?”
나는 손에 든 수십 개의 버섯 갓을 보며 유다희에게 물었다.
그러자 유다희는 자신 없는 기색으로 머뭇거린다.
“이, 이걸 어떻게…….”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의문을 담아 물었다.
“이봐, 어렸을 때 방방 안 타 봤어?”
“……방방?”
“뭐, 붕붕이라든가.”
“……붕붕?”
“아니면 콩콩?”
“……콩콩, 대체 그게 뭔데?”
“흠…봉봉? 덤블링? 트램펄린?”
“덤블리…아아! 퐁퐁 말하는 거구나.”
마침내 손을 탁 치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낸 그녀.
나는 피식 웃었다.
“인천 사람이구만.”
나의 의도치 않은 추리에 유다희는 화들짝 놀랐다.
“와, 왓! 이 쉑…이 스토커!”
“놉. 그저 지역별 트램펄린 명칭을 외워 놨을 뿐.”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퐁퐁이랑 타는 느낌이 비슷해서 한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라. 일단 연습이나 한번 해 봐. 버섯 갓은 많으니까.”
내가 자리에 앉아 권하자 유다희는 못 이기는 척 버섯 갓 하나를 따 들었다.
그리고.
…토옹!
유다희는 버섯 갓을 밟자마자 허공에서 180도 회전해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오? 그래도 제법 양호하네. 나는 처음엔 아예 이상한 곳으로 튕겨 나갔는데.’
유다희는 나름대로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머리와 다리가 반대로 돌아가서 그렇지.
한편.
유다희는 계속해서 버섯 갓을 밟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오 씨! 진짜 거지 같네, 이 버섯!”
공감한다. 처음 이 버섯의 갓을 밟을 때에는 누구라도 욕을 할 수밖에 없지.
나는 고생하던 시절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유다희가 하는 말을 통역하기로 했다.
“아오! 더러워서 못 써먹겠네, 이 버섯!”
“=난이도가 내 수준에 맞지 않게 높다.”
“거지 같은 놈의 게임!”
“=내 능력의 모자람을 실감하고 있다.”
“나 안 해!”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
“게임이 뭐 이따구야!”
“=내가 아직 적응을 못했다”
대체로 한국의 모든 게이머들이 보이는 비슷한 반응이다.
나 역시도 초보 시절에는 그랬고.
“지 꼴리는 대로만 만들어 놨네!”
“=내 예측범위 밖의 난이도다.”
“아 제대로 밟았다고!”
“=못 밟았다.”
“아 진짜 타이밍 잘 맞췄는데!”
“=못 맞췄다.”
“근데 왜 점프가 안 되냐!?”
“=못 뛰었다.”
“야!”
“=한 마디만 하면 목을 졸라 버리…헙.”
나는 목을 잔뜩 움츠리며 유다희의 야차 같은 눈빛을 피했다.
결국, 어쩔 수 없게 되었다.
“넌 그냥 업히는 게 낫겠다.”
나는 유다희를 등지고 돌아섰다.
나는 가볍고 근력 스탯도 상당하니 유다희 하나쯤이야 업으나 안 업으나 큰 차이도 없을 것이다.
……한데?
내가 등을 내밀자 유다희는 갑자기 눈에 띄게 머뭇거린다.
나는 답지 않게 한참 동안이나 망설이는 그녀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도중에 안 떨굴 테니까 빨리 타. 시간 없어.”
그제야 유다희는 밍기적 밍기적 다가와 내 등에 업혔다.
손은 사무적이게도 딱 내 양어깨에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이 기묘한 침묵은 또 뭐람?
뭐 유다희의 표정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녀의 상태가 지금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격투 센스도 센스인 만큼 등 뒤에서 다리와 팔로 몸을 조르는 백 마운트를 시도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그럴 때는 주짓수 기술인 암 오버로 빠져나가면 된다.
뭐, 애초에 지금은 한 배를 탄 운명이니 그녀가 내 뒤통수를 치지는 못하겠지만.
“자, 간다.”
나는 재빨리 앞으로 내달렸다.
파팟!
절벽으로 뛰어내린 나는 최대한 멀리 왔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버섯의 갓을 발밑에 뿌렸다.
…토옹!
버섯의 갓은 내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준다.
나는 손에 든 버섯의 갓을 계속해서 앞으로 뿌리며 허공을 딛고 돌진했다.
…토옹! …토옹! …토옹! …토옹! …토옹! …토옹! …토옹!
눈 깜짝할 사이 나는 건너편 절벽가에 근접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도약!
……그때.
“어엇!?”
나는 도착지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자동쇠뇌 하나를 보고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것은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함정.
그렇다. 나비효과로 인해 미래가 달라지며 맵의 디자인 또한 극히 일부 변경이 있었던 것이다!
…핑!
화살 한 대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우습게 피했을 화살이지만 지금 허공에 떠 있는 상태의 나에게는 버거운 재난이다.
더군다나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변수로 인해 일그러졌을 때 오는 심리적 동요까지!
내가 패닉에 빠지려는 그 찰나의 순간.
“……너 뭐 하냐?”
귓가에 의아해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다희.
그녀는 내 등에 업힌 상태로 손을 뻗어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 냈다.
푹!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런가, 화살은 유다희의 손바닥에 그대로 꽂혀 버렸다.
하지만 유다희는 화살촉이 나에게까지 오지 않게 구멍이 난 손을 꽉 움켜쥐어 화살을 끝까지 막아 냈다.
…콰쾅!
결국 나는 마지막 버섯 갓을 딛고 도착지에 착지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자동쇠뇌를 부숴 버렸음은 물론이다.
“야, 너 손 괜찮아?”
내가 묻자 유다희는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손에서 화살을 빼낸 뒤 포션에 적신 천으로 상처를 둘둘 휘감았다.
다소 터프한 응급조치.
육체와의 싱크로율이 높아서 아플 텐데도 유다희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아니, 다 클리어 해 놓고 왜 마지막에 멍 때리는 거야? 쉽게 피할 줄 알고 가만히 있었더니만.”
“아니, 마지막 건 좀 뜻밖이라서.”
“……뭐가 뜻밖이야. 그거보다 더 복잡한 함정들 다 뚫어 놓고. 참 나, 이해가 안 되네.”
유다희는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굳이 그녀의 의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두 번 다시는 방심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쇠뇌의 파편을 눈에 각인할 뿐이다.
* * *
한편.
-띠링!
<살인자들의 탑 3층 ‘U Break’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맵의 소유권을 이양 받거나 상위 층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고인물은 주저 없이 상위 층으로의 도전을 선택했고 즉시 포탈을 타넘어 위로 올라갔다.
위이잉-
유다희의 앞에도 포탈이 생겨났다.
그 포탈을 넘어 위층으로 가기 전.
“……아우으으! 손 아파 죽겠네!”
유다희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화살에 맞았던 손을 감싸 쥐고 팔짝팔짝 뛰었다.
그녀는 눈물이 핑 도는 시선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씨, 그냥 그 자식이 화살 맞게 둘 걸 그랬나. 뭐 때문에 괜히 손을 뻗어가지고…….”
위기의 순간, 유다희는 화살에 맞은 고인물의 등을 밟고 충분히 반대쪽 절벽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애초에 슈X마리오에서 탈것을 버리고 도약해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패턴은 흔하니까.
……하지만 유다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진짜 왜 그랬지?”
유다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인물의 등에 업힌 순간 이상하게 몸이 굳고 심박수가 빨라졌었다.
획획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도 무서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진짜 대체 왜 그랬을까?
“아오, 그 자식 앞이라서 아픈 티도 못 내고. 진짜 열 받네.”
손의 상처가 아문 것을 확인하며 팔짝팔짝 뛰던 유다희는 문득 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잠깐, 내가 그 자식 앞에서 아픈 티를 왜 못 내? 아프면 아픈 거지?”
자기 혼자 의아해하며 약간 씩씩거린 유다희는 이내 손의 붕대를 팍 풀어 내 버렸다.
“좋아. 이참에 생색은 확실히 낸다. 아까 화살 막아 준 걸로 업힌 건 퉁치자고 해야지.”
문득 아까 업혔을 때를 생각하니 또다시 얼굴이 뜨거워진다.
왜 자꾸만 상하이 호텔에서의 일이 떠오른단 말인가?
“미쳤어 진짜. 뭔 생각하는 거야. 그 변태가 뭐라고.”
유다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앞의 포탈에 발을 걸쳤다.
그 순간.
그녀는 문득 고개를 돌려 지금껏 건너온 수많은 절벽과 함정들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는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린다.
“그래도 뭐.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역시 실력 하나는 깔 수가 없다니까. 사람을 등에 업고도 그런 플레이라니…….”
점점 작아져 끝 무렵에는 거의 웅얼거림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