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92화 (492/1,000)
  • 493화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6)

    나를 바라보던 유다희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방수 시설이라니?”

    이 근방에 물이라고는 딱히 없다.

    호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내 계획을 설명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헤라클레스는 아우게이아스의 축사를 청소하라는 퀘스트를 받았었지.”

    아우게이아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왕 중의 하나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가축을 기르고 있었다.

    그 많은 수의 가축들이 싼 배설물들은 30년 동안 축사에 그대로 쌓여 있었는데 이 막대한 양의 오물 때문에 인근의 토지가 모두 오염되어 못 쓰게 될 정도였다.

    아우게이아스는 헤라클레스를 똥투성이로 만들어 모욕을 줄 생각으로 이 축사를 청소하라고 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축사의 벽에 구멍을 뚫은 뒤 알페이오스 강과 페네이오스 강의 강물을 끌어들여 축사를 하루아침에 청소해 버렸다고 전해진다.

    유다희는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지. 알지. 그 전설.”

    “똑똑하군. 역시 낙성대학교 50학번은 뭔가 달라.”

    “대, 대학교가 무슨 상관이야!”

    주먹을 들어 보인 유다희는 슬쩍 뒤로 돌아 인터넷 창을 띄워 놓고 열심히 헤라클레스 전설을 검색한다.

    “……야, 헤라클레스한테 퀘스트를 준 사람은 아우게이아스가 아니라 에우리스테우스라는데?”

    “자, 그런 디테일은 중요한 게 아냐. 핵심은 ‘방법론’이다.”

    나는 헤라클레스가 했던 방법을 써서 눈앞에 있는 저 거대한 마약 공장을 한 방에 소탕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다희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는 듯했다.

    “아니, 근처에 강이나 저수지가 없는데 뭘 어쩌려고? 산사태를 일으킬 만한 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나마 숲지대라서 산불을 일으켜 본 건데 그것도 안 먹혔고…….”

    나는 손바닥을 들어 유다희의 말을 막았다.

    “강이나 저수지는 없지만 댐은 있지.”

    나는 손가락을 뻗어 마약공장 위쪽에 있는 커다란 건축물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과연 커다란 댐이 보인다.

    무언가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높은 벽.

    그 댐을 본 유다희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저건……정화조잖아?”

    그렇다.

    내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 것은 바로 그레이 시티의 옆에 붙어 있는 커다란 정화조였다.

    산비탈에 위치한 그레이 시티에서 발생한 오물들은 모두 하수도를 타고 졸졸졸 흘러 이 정화조에 고여 든다.

    아무데나 오물을 버리는 주민들, 도랑마다 흐르는 더러운 구정물, 그리고 오물과 쓰레기에 섞여 흘러드는 시체들까지.

    그레이 시티의 정화조는 그야말로 온갖 천태만상의 더럽고 역겨운 것들만 가득 차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다.

    유다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저 정화조를 터트리자고?”

    “응. 저 안의 오물들로 저걸로 마약 공장을 청소할 거야.”

    “미쳤냐? 뭘로 뭐를 청소한다는 거야! 저 오물들이 얼마나 더러운데 그걸로 무슨 청소가 되겠냐고! 오히려 어지럽히는 거지 그건!”

    “쓰레기나 오물이 아무리 더러워 봤자 마약보다 더럽겠어?”

    마약을 똥이나 쓰레기에 비유하면 똥과 쓰레기에게 실례다.

    똥도 쓰레기도 언젠가 한때는 사람을 이롭게 했던 것들.

    또한 지금 처해 있는 처지가 더럽고 추하다고 해도 사람을 파멸로 이끌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약은 아니다.

    그것은 똥이나 쓰레기보다도 더욱 더 더럽고 위험한 것.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따지고 보면 강물도 더러워.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더러운 똥을 그보다 덜 더러운 강물로 씻어냈지. 나는 더러운 마약을 그보다 덜 더러운 똥으로 씻어내는 것뿐이야.”

    정화조가 터진다고 해서 그레이 시티가 딱히 파멸로 이르지는 않는다.

    다만 한동안 악취에 고생할 뿐.

    하지만 마약 공장은 두고두고 그레이 시티를 병들게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폐인이 되겠지. 물론 그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런가?”

    결국 유다희는 내 말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보다 마약이 더 더럽다고? 그러면 쓰레기 같은 고인물보다는 마약 같은 고인물이라고 부르는 게 더……아니, 그러면 뭔가 어감이 이상해지는데……”

    묘하게 기분 나쁜 말을 혼자 중얼중얼거리면서.

    *       *       *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숲을 빠져나가 그레이 시티 하단부에 붙어있는 정화조 댐으로 향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정화조 최후의 벽인 ‘갓댐’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이한 것은 레게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댐 경비원 NPC인 ‘홀리쉿’이었다.

    [갓댐! 뭐야! 침입자다! 자경단을 불러야 해!]

    그는 재빨리 봉화를 올려 자경단에 연락하려고 했지만.

    “내가 자경단장이다.”

    유다희의 신분증명으로 인해 일은 조금 쉽게 풀릴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갓댐의 경비병들은 은근히 레벨이 높아서 처리하기 골치였는데 다행이네.’

    그레이 시티의 자경단장이라는 호칭 덕에 귀찮은 노가다를 안 해도 좋게 되었다.

    나와 유다희는 이내 거대한 오물통 앞에 서게 되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구역은 B구역으로 저 밑 삼림 아래에 숨겨져 있는 마약공장을 직통으로 향하는 방향이다.

    “요컨대 이 부분만 부수면 된다 이거지?”

    유다희는 도끼를 들어 단단한 둑 아래를 툭툭 내리쳤다.

    나 역시 노역이 끝났을 때 채석장에서 몰래 슬쩍해 온 곡괭이를 들었다.

    마동왕 모드였다면 주먹질 한 방 감이었겠지만, 메인 스토리 진행은 늘상 고인물 모드로 했으니 딱히 아쉬운 점은 없었다.

    둑을 터트리는 것은 꽤나 노가다성이 짙었지만 난이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저 곡괭이로 벽을 깨 파고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따악! …펑!

    물론 곡괭이를 한번 내리찍을 때마다 툭툭 터지듯 튀어오르는 오물 줄기 때문에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욱!”

    나는 악취로 인한 구역질을 참으며 계속해서 곡괭이질을 했다.

    몸에 똥물이 튈 때마다 눈부신 반사신경으로 피해 가면서.

    그때.

    나는 문득 옆에서 도끼질을 하고 있는 유다희를 쳐다보았다.

    …쿵! …쿵! …쿵!

    유다희는 열심히 도끼질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똥물이 튀어 이마에서부터 볼까지 줄줄 흐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굴을 판다.

    ‘되게 열심히 하네.’

    츄츄를 비롯한 그레이 시티의 아이들을 돕고 싶은 걸까?

    유다희는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더러운 노가다를 계속하고 있었다.

    더 이상 유다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자 일이 한결 더 수월해졌다.

    “빰 빰빰 빰 빰 빠라빰 빰 빰 빰빰 빰 빰빠라밤 뚱♫”

    지금은 추억이 되어 버린 ‘건물 부수기 게임’의 BGM.

    나는 곡괭이를 종횡무진 휘두르며 눈앞의 댐에 구멍을 뚫고 나아간다.

    순식간에 유다희를 앞지른 것은 물론이다.

    그때.

    나는 문득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유다희가 멍한 표정으로 서서 내 등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왜 저래?

    “왜 자꾸 남의 등짝을 보고 그래? 뚫어질라.”

    “헉!? 내, 내가 언제!”

    “봤잖아. 아까부터 계속.”

    그러자 유다희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도끼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똥투성이가 된 얼굴로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뭐, 낯익은 노래가 들려서 좀 봤다! 뭐 불만 있냐!”

    “뭔 노래?”

    “방금 너가 흥얼거린 노래! 던전 오브젝트 부술 때 너가 맨날 흥얼거리는 노래잖아.”

    ……? 내가 이 노래를 맨날 흥얼거렸다고?

    나는 이 노래를 개인방송 할 때밖에 안 흥얼거리는데? 그것도 최근 방송에서만 몇 번.

    애초에 내가 던전에서 오브젝트를 부술 때 이 노래를 맨날 흥얼거린다는 걸 얘가 어떻게 알지?

    “너 내 방송 챙겨 보냐?”

    내가 묻자 유다희의 얼굴이 순간 굴속에서도 보일 정도로 확 붉어졌다.

    “무, 무, 무, 무슨! 아니거든!? 마동왕 님 방송 챙겨 보기에도 바쁘거든?”

    “그러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곡괭이질을 계속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노동요를 흥얼거렸다.

    “빰 빰빰 빰 빰 빠라빰 빰 빰 빰빰 빰 빰빠라밤 뚱♫”

    “…….”

    “빰 빰빰 빰 빰 빠라빰 빰 빰 빰빰 빰 빰빠라밤 뚱♫”

    “…….”

    “빰 빰빰 빰 빰 빠라빰 빰 빰 빰빰 빰 빰빠라밤……”

    나는 일부러 이 중독성 있는 BGM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부르지 않고 입을 다물어 보았다.

    시간이 흐르자.

    “……뚱♫”

    유다희가 저도 모르게 내가 부르던 노래를 주워 조그맣게 흥얼거린다.

    그리고는 스스로도 놀랐는지 잠깐 흠칫하고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내 방송 보는 거 맞네.”

    “아, 아니라니까 진짜! 본다 해도 진짜 어쩌다 본 거야! 자꾸 팝업에 뜨길래 실수로 누른 거라고! 그리고 본다 해도 연구용이야 연구용!”

    본다는 거야, 안 본다는 거야 이거?

    나는 피식 웃으며 곡괭이에 힘을 주었다.

    이제 슬슬 거의 다 뚫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그때.

    “……야.”

    유다희가 나를 부른다.

    나는 위로 치켜든 곡괭이를 잠시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똥투성이가 된 유다희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녀의 큰 눈에는 역시나 똥투성이가 된 내 얼굴이 비치고 있다.

    문득, 유다희의 입이 열렸다.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 없는데?

    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끔뻑거리자 유다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크흠, 큼. 그, 다름이 아니라. 그때 있잖냐. 그, 거기에서. 상하이에서. 그 호텔에서……”

    “할 말은 네가 있는 것 같은데. 있으면 해 봐.”

    그러자 유다희는 답지 않게 더욱 더 우물쭈물하는 기색이다.

    이윽고. 달싹거리기만 하던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아니, 아닌 건 아는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때 혹시 호텔 비상구에서 날 구해 준 게……”

    하지만. 그녀는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유다희가 입을 닫기도 전에.

    …펑!

    내가 뚫던 굴의 끝에서 폭발과 함께 댐 안의 내용물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       *       *

    콸콸콸콸콸……

    거대한 똥의 쓰나미.

    범람하는 오물이 크고 아름다운 황금빛 와류를 이루며 마약 공장을 집어삼킨다.

    하얗고 고운 마약 가루들은 똥물에 젖어 순식간에 풀어져 버렸고 그 안의 장비들은 전부 다 걸쭉한 물결 아래 깊숙이 잠겨 버렸다.

    “그래. 차라리 저게 깨끗해진 거지.”

    나는 온통 똥범벅이 된 마약공장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러운 마약이 조금 덜 더러운 똥으로 닦였으니 정화 완료인 셈이다.

    한편.

    “…웩! …웨에엑!”

    유다희는 아까부터 내 뒤에서 토하고 있었다.

    하필 똥이 터져 나올 때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벌렸던 참이라 이런 것 저런 것들이 입 안으로 다 들어간 것이다.

    “힘내. 구충제 꼭 먹고.”

    나는 유다희의 등을 두드려 주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빽 소리쳤다.

    “너 이 쉑…! 일부러 그때 맞춰서 터트렸지!?”

    “그럴 리가. 순전히 우연이었어.”

    “그런 표정으로 그딴 말을 하면 믿겠냐!?”

    유다희는 진동 울리는 핸드폰처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때.

    -띠링!

    우리 둘의 귓가에 동시에 울리는 알림음이 하나.

    <세계 최초로 히든 퀘스트 ‘그레이 시티의 마약 공장 토벌’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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