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84화 (484/1,000)

485화 이쪽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 (4)

나는 오늘 행사가 끝난 뒤 카페 밖으로 나왔다.

모든 팬들이 다 돌아가고 난 뒤, 텅 빈 카페에는 나와 유다희만 남았다.

내가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검색하고 있을 때, 뒤로 유다희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마왕님. 태워다 드릴까요?”

얘는 아직도 나를 참 어려워한다.

“그럼 고맙지.”

나는 흔쾌히 유다희를 따라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8층에 있는 파티룸 카페에서 지하 2층까지.

엘리베이터에 타 있는 동안의 어색한 침묵.

먼저 입을 연 쪽은 나였다.

“……음. 이런 말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오해 없이 들어줘.”

“네?”

“어째, 정모 분위기가 있잖아. 음. 약간 고인물 걔네 쪽이랑 비슷해진 것 같지 않아?”

사실이다.

마교의 정모 분위기는 점점 덜렁교 쪽의 정모 분위기를 닮아 가고 있었다.

예전 마교와 덜렁교의 퀴즈배틀 대회 때부터 미묘하게 그런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유다희는 엘리베이터가 흔들릴 정도로 펄쩍 뛰었다.

“에이! 말도 안 돼요! 설마 저희가 그런 변태 집단 같으려구요!?”

……응, 같애.

그러나 굳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원래 본인의 변화는 본인만 모른다던가?

하지만 유다희는 부들부들 떨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고인물 놈의 팬클럽인 덜렁교는 팬클럽 명의 기원부터가 음탕하잖아요! 그놈들은 2022년 1월 3일부터 활동은 했지만 ‘고인물교’, ‘덜렁단’, ‘알몸교’ 등등으로 나뉘어 불리다가 2023년 3월 21일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팬덤명이 통일된 완전 신참 팬클럽일 뿐만 아니라 고인물의 스트리머 데뷔 초에는 활동도 거의 없었고, 기껏해야 팬사인회에 화환을 보내거나 예능 생방 녹화 때 서포트를 넣는 정도밖에 없었죠!”

“……어. ……그래?”

“네! 심지어 덜렁교는 공식 글로벌 팬클럽이라서 공식 홈과 공식 앱을 통해서 가입자를 무료로 받는다구요! 하하! 당연히 무료이니까 팬클럽 전용 혜택도 전혀 없죠! 이제야 뭐 유료 팬클럽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그래봤자 저희 마교가 제공받고 있는 17가지가 넘는 유료 팬클럽 혜택을 따라오기에는 아지이이이이이이이익~ 멀었죠! 땡! 완전 다름! 완전 차이 남!”

“……어. ……그래?”

“네! 그럼요!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사이가 두루두루 좋고 분위기도 자유로운 저희 마교와는 달리 덜렁교는 살색 타이즈라는 복장통일 규정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활동하는 것이 제한되어 화력이 약하고 또 은근히 개개인들의 수줍음들이 많아서 꼭 필요한 행사에만, 그것도 집단으로만 나오려 하는 경향이 있죠! 경쟁심이나 승부욕 있는 남자들이 모여 있는 남초 팬클럽이라서 그런가 북남미나 일본 덜렁교와는 협력보다 경쟁에 가까운 구도이며 문화에 보수적인 아랍권이나 유럽권에서는 알몸이라는 복장의 거부감 때문에 그 세력이 한층 더 약해진답니다아!”

“……어. ……그래?”

“네! 이런 엄청난 차이들이 있다구욧!”

유다희는 쉬지 않고 소리친 뒤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벽 구석에 바짝 쫄아 붙은 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가끔 보면 얘는 마동왕보다 고인물에 대해 오히려 더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누나는 그 누구보다 고인물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요?’

유창의 의심에 합리적인 신빙성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뭐 아무튼.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뭐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오히려 팬들의 사랑에 감사해야 하는 부분이 아니던가?

“……너는 오늘 경매에서 뭐 산 거 있어?”

내가 슬쩍 화제를 바꾸자 유다희는 바로 바뀐 화제에 눈을 빛냈다.

참 단순한 성격이다.

“그럼요. 저도 소박하게 하나 샀죠.”

말을 마친 유다희는 코트의 안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꺼냈다.

그것은 과학수사대들이나 쓸 법한 특수 지퍼백이었다.

안에는 내가 반쯤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 립밤 하나가 담겨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저게 오늘 최고가의 물건이었을 텐데?

“……이거 엄청 비싸게 책정되지 않았었나? 반쯤 썼다는 사실에 프리미엄 붙어서.”

“헤헤, 어차피 오늘 번 수익금은 100% 소아백혈병 환자들에게 기부되잖아요. 기부하려고 산 거지 절대 다른 사심이 있어서 산 것은 아니에요.”

지퍼백에 담은 시점에서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다희가 요즘 아이들을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저희 막내도 큰 병을 앓았었다가 기적적으로 치료되었잖아요. 그 기적을 다른 아이들에게도 나눠 주고 싶어요.”

말을 마친 유다희는 주먹을 꽉 쥔 채 콧김을 뿜어냈다.

그러더니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아아. 거, 거, 걱정 마세요. 립밤은 입술에 안 바를게요. 그냥 볼에만 살짝 바르려고…….”

…그런 걱정 안 했다.

아니, 애초에 그걸 또 쓸 생각이었단 말야?

‘입술이 아니라 볼에 바르는 것도 좀 이상한 것 같은데.’

하지만 이번에도 생각한 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윽고, 나는 유다희의 차에 타 내 건물로 향했다.

“내일 밤 비행기로 미국 가시겠네요?”

유다희는 물었다.

뎀 유니버스의 본사로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에 제대로 한 방 먹이는 거지. 아챔 때 일도 복수할 겸.”

“크크크, 생각만 해도 통쾌하네요.”

“이번에 레드문도 압수수색 당한다며? 게임 팬들의 항의민원이 엄청난가 보더라. 차규엽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질 거야.”

결국 협회는 우수수 털리고 외부인사들의 부정 청탁이나 압력 등등이 전부 드러날 것이다.

물론 우량기업인 레드문이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책임자인 차규엽 하나는 박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나는 유다희가 약간 쓸쓸한 표정으로 웃는 것을 보았다.

“왜 그래?”

“네?”

“아니, 왠지 표정이 조금 슬퍼 보여서.”

내가 묻자 유다희는 약간 고민하다가 이내 멋쩍게 웃었다.

“…아뇨. 마왕님이 성공가도를 달리시는 것 같아서 너무 기쁘죠. 그런데 어딘가, 마왕님이 조금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

“아휴! 제가 무슨 소리를. 신경쓰지 마세요!”

유다희는 화다닥 손사래를 쳤다.

그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우리는 목적지에 당도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기 전 물었다.

“너는 이제 뭐 할 거야?”

그러자 유다희는 어깨를 으쓱한다.

“간만에 레이드 돌아야죠. 못 다한 퀘스트 좀 깨고. 게임 안의 제 나와바리도 좀 돌아보고요.”

“……나와바리?”

“넵! 저 나름 NPC들에게 인정받아서 요즘 자경단장 역할도 하고 있고 뭐 그럽니다. 퀘스트지만요.”

나는 어딘지 물어보려고 했다가 관두었다.

시간도 늦었고 또 바쁘기 때문이다.

“즐겁게 플레이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차 문을 닫았다.

아니, 닫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놈의 습관이 뭔지, 나는 차 문을 닫기 전 버릇처럼 손을 뻗어 차의 재떨이를 열어 보았다.

……한데?

K22

놀랍게도, 유다희의 재떨이 안은 깨끗했다.

오히려 안에 사탕이나 초콜릿 등이 들어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유다희는 멋쩍게 웃는다.

“……아니, 담배는 끊은 지 꽤 됐는데.”

나는 입을 반쯤 벌렸다.

내가 아는 유다희는 실로 엄청난 골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해지던.

그러던 그녀가 담배를 끊었다고?

유다희는 민망하다는 듯 시선을 슬쩍 아래로 떨궜다.

“뭐. 몸에도 안 좋고…… 나중에 아기에게 안 좋다고도 하고…….”

“…….”

“아니!? 아기가 뭐 그런 아기가 아니라! 제가 요즘 아기들을 돌볼 일이 좀 많아서! 아, 물론 당연히 제 애는 아니구요! 아니, 아니, 그냥 담배는 애고 성인이고 다 안 좋으니까…!”

갑자기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차 문을 닫는다.

“…본사 잘 다녀오세요오!”

차창 안에서 유다희가 외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손만 흔들어 준 뒤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미국행이라.’

아마 그리 길지 않은 여행이 될 것이다.

조디악을 잡아 족치는 것이 급하니만큼, 방문 자체에만 의의가 있는 뎀 본사는 후딱 찍고 오면 된다.

‘아마 하루 당일치기? 아니면 1박 2일짜리 여행이 되겠군.’

나는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절대로 방심하지 않고, 빈틈없이, 철저하게.

*       *       *

한편.

유다희는 차에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미국에 가신다고.”

뎀 유니버스의 본사로의 초청.

알고는 있었지만 마동왕은 정말로 굉장한 게이머다.

그것을 새삼 다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마동왕이 미국으로 간다는 말을 듣자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 들었다.

“그래. 역시 한국에만 계실 분은 아니지. 당연하잖아.”

한국을 넘어 아시아, 아시아를 넘어 세계.

그녀가 익히 아는 마동왕의 실력이라면 그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영문 모를 기묘한 아쉬움과 허전함, 섭섭함이 그녀의 마음속에 맴돈다.

어딘가 텅 비어 버린 듯한 가슴.

자신이 데뷔 때부터 응원하던 인디밴드가 메이져 밴드가 되었을 때를 지켜보는 열성팬의 마음이 이럴까?

“……이게 뭐야. 무슨 홍대병도 아니고.”

유다희는 피식 웃었다.

좋아하던 대상이 메이져가 되었다고 해서 섭섭해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팬심을 공감해 주고 함께 응원해줄 수 있으니 좋아하는 것이 맞는 일.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고 일반적인 대중과 자신을 구분해서 더 우월함을 느낀다거나 하는 짓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 거지 뭐.’

그러니 유다희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다.

사탕과 초콜릿으로 꽉 찬 재떨이만 괜히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그때.

-띠링!

갑자기 그녀의 핸드폰이 한번 울린다.

“어라? 마왕님이네?”

유다희는 불빛 반짝이는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보통 거의 SNS를 하지 않는 마동왕이 웬일인지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그것도 먼저.

유다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이내 짤막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네가 나 여기까지 올려 줘 놓고 멀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섭하지.>

순간.

“…….”

유다희의 시야가 약간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