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83화 (483/1,000)
  • 484화 이쪽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 (3)

    <2024年 마동왕이 ‘직접 쓰던’ 애장품 경매 ※업계 포상有>

    기묘한 문구가 적혀 있는 현수막이 걸린 카페.

    낙성대역 근처에 있는 이 파티룸 형식의 카페에는 오늘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

    전부 다 마교의 열혈회원들이다.

    마동왕의 생일파티 겸 신년회, 그와 동시에 한국 팀의 리틀리그 우승과 빅리그 진출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근황과 안부를 묻는다.

    나는 파티룸 제일 상석에 다소 뻘쭘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분위기 진짜 적응 안 된다.’

    한눈에 봐도 깔끔하고 멋지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 하하호호 웃는 자리.

    이런 ‘인싸’들의 파티는 내게 있어서 정말로 적응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 파티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이렇게 가만히 혼자 앉아 있는 것이다.

    뭐, 마교 사람들을 나를 나름 상징처럼 대우해 준답시고 함부로 말 붙이지 않는 것 같다만…….

    그때.

    “마왕님!”

    내 어깨를 툭 치는 손길이 있었다.

    바로 유다희다.

    나는 ‘낙성대학교 50학번’이라는 그녀의 타이틀이 떠올라 순간 차오르는 드립 욕구를 억눌러야 했다.

    한편, 유다희는 저번에 조디악과 마주쳤을 때의 일을 재잘재잘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놈을 숲에서 딱 마주친 게 아니겠어요? 세상에,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상대로 테러를 하는 놈일 줄 누가 알았겠냐구요 참. 예전에 악의 고성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미친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일단 죽이고 봤죠, 헤헤.”

    그녀는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유다희 덕분에 조디악을 죽일 수 있었고 지옥불 코어의 반쪽까지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미국행에 오를 시간을 번 것도 사실이다.

    여러모로 이번 테러 사건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내일 비행기로 미국에 간다는 사실을 전해 주었고 그 말을 들은 유다희는 상당히 놀라워했다.

    “와아! 뎀 본사로요!?”

    “……쉿. 아직은 비밀이야. 협회가 알면 또 어깃장을 놓을지 모르니 출발 직전까진 비밀로 해야지.”

    “대박이다. 진짜 진짜 대단한 기회네요 이건.”

    일반인이었다면 그냥 신기해하고 말 일이지만 눈치 빠른 유다희는 한국 협회도 초대받지 못한 곳에 내가 가게 되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때.

    “자! 이제부터 경매 진행하겠습니다! 모두 시선집중!”

    오늘 사회를 맡은 개그맨이 마이크를 톡톡 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회자의 옆으로 경매사가 올라와 무대 뒤편을 향해 손짓했다.

    이내 유다희와 내가 상의 하에 내놓은 나의 물건들이 단상 위로 올라온다.

    ‘……음, 정말 저런 것들이 팔릴까?’

    무대 위에 오른 잡동사니들은 전부 내가 쓰다가 내놓은 중고 물건들…… 유다희가 분명 팔릴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긴 했지만 당최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스러운 것들이다.

    이내 사회자가 유쾌한 어조로 외쳤다.

    “자, 오늘의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전부 다 이쪽 업계에서는 포상으로 통하는 것들이죠!”

    첫 번째는 코트였다.

    내 코트의 사이즈는 100~105정도.

    그냥 동네 매장에서 산 10만 원 상당의 평범한 브랜드이다.

    경매에 참여한 마교 열혈회원들의 90%가 여자인 만큼 이 코트를 필요로 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사이즈도 안 맞고 디자인도 유행이 한참 지난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30만 원!”

    “40만 원!”

    “65만 원!”

    “70만 원!”

    곳곳에서 엄청난 기세로 상회입찰 팻말이 올라오고 있었다.

    ‘???’

    나는 가면 속으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걸 사?

    바로 그때, 경매사가 코트 주머니 안을 뒤지더니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아! 이럴 수가! 주머니 안에 이런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경매사는 코트 주머니 안에서 나온 것들을 높게 들었다.

    그것은 근처 식당에서 나눠 주는 박하사탕의 포장지 돌돌 말린 것, 그리고 야식 시켜먹고 받은 영수증 구겨진 것, 실밥 붙은 백 원짜리 동전 몇 개였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 맞다. 주머니 속 청소한다는 걸 깜빡했다. 이거, 큰일났네.’

    내놓은 물건들이 성의 없어 보인다고 팬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150만 원!”

    “175만 원!”

    “200! 200!”

    “250! 저건 내가 무조건 산다!”

    “아아, 마왕님의 생활 냄새가 묻은 흔적들… 너무 갖고 싶어! 270!”

    갑자기 코트의 경매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결국 그 코트는 350만 원이라는 무시무시한 가격에 낙찰되었다.

    105사이즈의 이 코트를 손에 넣은 마교원은 키가 150센티미터를 겨우 넘는 작은 체구의 여성이었다.

    앳된 얼굴을 보아 여고생 정도일까?

    “추, 축하드려요.”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코트를 그녀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민망함을 참고 말했다.

    “어휴, 이거 드라이클리닝이라도 한번 해서 드려야 하는데…… 혹시 땀 냄새라도 나면 어떡……”

    그 순간, 코트를 받은 여자 팬의 안색이 굳는다.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하셔요!? 드라이라니!”

    “?”

    “그러다 땀 냄새가 사라지기라도 하면 저는 어떻게 하라구요!”

    “??”

    하긴 뭘 해? 이 코트로 뭘 할 생각이었길래?

    하지만 그런 내 의문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오히려 코트를 내가 한번 입어 보고 다시 벗어 주기를 원했다.

    나는 얼떨떨한 태도로 코트를 돌려받아 한번 입어 주었다.

    그 뒤로 그녀의 요청에 따라 몇 번 격하게 움직여 땀을 조금 낸 뒤에야 코트를 다시 벗어 돌려줄 수 있었다.

    “와아, 행복해. 침대에 두고 폭 안겨서 잘 거여요.”

    여자 팬은 내가 준 코트를 꼭 안고 종종걸음으로 좌석을 향해 돌아간다.

    “???”

    졸지에 나만 어리둥절행이다.

    이후 경매가 재개되었다.

    “자, 다음은 마동왕 님이 쓰시던 헤드셋입니다! 항상 그분의 귓가에 소리를 전해 주던 파트너! 귀 뒤의 체취가 약간쯤은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체취가 진하게 나는 부위라죠? 발음 때문에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귀 뒤입니다, 귀 뒤! 괜히 주문 폭주할까 봐 무서워서 그렇습니다~”

    “자 그 다음은 텀블러입니다! 마동왕 님의 입술이 모든 면에 한번쯤은 닿았겠죠!? 지구는 둥글고 텀블러도 둥그니까 앞으로 앞으로 자꾸 걸어 나가면 분명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입술과 입술이요!”

    “이번에는 베개입니다! 참고로 세탁을 하지 않은 제품입니다! 뭐, 말이 필요한가요?”

    “지금 소개해드릴 상품은 무려 마동왕 님이 쓰시던 카메라! 앗!? 미처 지우는 걸 잊으신 미공개 사진들도 있군요! 자는 모습, 목욕하는 모습, 게임하는 모습 등 일상의 풍경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쉽게도 모두 가면을 쓰신 채이지만요!”

    내가 쓰던 헤드셋, 텀블러, 베개, 무릎담요, 시계, 구두, 의자, 카메라…… 심지어 숟가락 젓가락 세트까지.

    모든 물건이 경매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초고가로!

    ‘……세상에.’

    애장품 경매라는 것은 내 생각보다 더 엄청난 것이었구나.

    금액을 떠나서 이 엄청난 열기에 놀랐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사회자는 눈을 빛내며 마이크를 바짝 쥐었다.

    “자! 다음은 마왕님께서 선뜻 촬영을 허락하신 초 레어 사진집! 바로 누드집 차례입니다!”

    ……?

    내가 그런 허락을 했었나?

    누드집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친다.

    ‘아니 무슨 누드집이여! 애초에 그런 거 찍은 적이 없는데!?’

    그러나 좌중들의 반응은 더욱 더 기묘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빠각!

    곳곳에서 상회입찰 팻말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세게 움켜쥐어서 금이 가는 것이다.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무대를 노려본다.

    벌써부터 팻말을 재빨리 치켜들기 위해 팔을 푸는 이들도 보였다.

    이윽고.

    차라라라락-

    내 누드사진들이 대중들에게 쭉 공개되었다.

    그것도 거의 몇 백 장에 달하는 엄청난 수량이!

    “헉!?”

    “이럴 수가!”

    “꺄아악! 너무, 너무 야해!”

    “마왕님이 다 벗었어! 완전 홀딱이야!”

    “어머! 미쳤어, 미쳤어! 저건, 저건 꼭 사야 해!”

    곳곳에서 얼굴을 붉히는 여자들.

    손으로 눈을 가렸지만 손가락 사이로 볼 건 다 본다.

    몇몇은 터져 나오는 코피도 모른 채 사진을 바라본다.

    한편.

    “…….”

    나는 기가 막혀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대 위에 있는 누드사진은 분명 내 것이 맞다.

    홀딱 벗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것은 내가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찍었던 엑스레이 사진이었다!

    사회자는 싱글싱글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자! 우선 두개골 사진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마왕님의 전신 파츠를 다 모아 가시는 분은 누구!?”

    저요오오-!!

    마교 팬덤의 우렁찬 함성 소리가 카페를 뒤흔든다.

    이내 곳곳에서 입찰을 알리는 팻말들이 우후죽순처럼 솟구치기 시작했다.

    “꺄아악! 드디어 3번 경추랑 7번 흉추 구했다! 경추, 흉추 시리즈 다 모았어!”

    “머리! 머리를 찾아야 해!”

    “나는 다리! 다리가 필요해! 다리우스~!”

    “4번 요추 사진 250만 원에 삽니다! 웃돈 드려요!”

    “왜 골반은 안 파시나요!?”

    “골반은 아까 일본인 팬 분이 딱 두 장 있는 거 사 가셨어요! 진짜 미싱링크는 5번 엉치뼈인데!”

    “혹시 마왕님 충치 사진 있으신 분? 제 두피 사진이랑 바꾸지 않으실래요!?”

    “저, 아까 상회입찰 타이밍을 놓쳐서 그러는데 혹시 대장내시경 매물은 없나요?”

    내 몸이 조각조각나서 흩뿌려지는 기분이다.

    ‘뭐야… 돌려줘요….’

    나는 내 머리, 목, 가슴, 배, 팔, 다리, 골반, 엉덩이, 심지어 내장 사진까지 가져가는 팬들을 보며 오스스 몸을 떨어야 했다.

    문득, 지난번 덜렁교와의 퀴즈배틀 때 들었던 팬들의 대화가 떠오른다.

    ‘너희는 정말 마동왕을 사랑하는구나.’

    ‘너희가 고인물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대단해.’

    ‘왠지…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고인물과 마동왕… 의외로 닮은 구석이 있으니까.’

    ……어째 정모 분위기가 점점 ‘그쪽’을 닮아 가고 있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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