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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82화 (482/1,000)
  • 483화 이쪽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 (2)

    ※업계 포상

    남들이 보기에는 괴롭거나 불쾌할 만한 행동이나 물건이지만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매우 선호할 만한 거리가 되는 경우를 뜻한다.

    *       *       *

    윤솔.

    그녀는 지금 인생 최대의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진이 선물로 뭘 주면 좋을까?”

    이번에 신년도 됐고 또 곧 어진의 생일도 얼마 안 남았으니 뭔가 그럴 듯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자기를 방송계로 이끌어 줬고 또 인생 게임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까지 소개시켜 줬으니 이만한 은혜가 또 어디 있으랴?

    덕분에 아픈 어머니도 쾌차할 수 있었고 평생 벌어도 모으기 힘든 거금을 모았으며 사회적으로 매우 유명해질 수 있었다.

    물론 윤솔 개인의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이기도 했지만… 세상 일이 어디 노력만으로 잘 되는 것이던가?

    따라서 오늘, 윤솔은 닳고 닳은 뉴비 구단의 신년맞이 행사에 가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역시 이게 좋겠어!’

    윤솔은 몇 가지 후보 중에서 하나를 골라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후보들을 모두 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혼자서만 선물을 한 아름 들고 가게 생겼으니 원…….

    예쁘게 포장된 선물상자를 든 윤솔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캡슐방 1층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바로 그때.

    “잠깐만요오오오오! 스탑!”

    문이 닫히기 직전,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윤솔은 재빨리 열림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를 세웠다.

    그러나 캐리어를 끌고 있는 정장 차림의 여자 하나가 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푸하! 죽는 줄 알았다. 잡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여자.

    이내 윤솔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 영화 언니?”

    “…엥? 어! 솔동생!”

    엘리베이터로 뛰어온 여자는 바로 홍영화였다.

    LGB 방송국 홍영화 대리.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1대 뎀걸이자 해설사로 참여했던 그녀도 오늘 닳고닳은 뉴비의 신년회에 초대받은 것이다!

    “꺄악! 이번에 승진하신 홍대리님 오셨네요!”

    “꺄하하하! 우리 인기 스트리머님도 계셨네!”

    두 여자는 서로 손을 맞잡고 꺄르르 웃는다.

    덕분에 둘뿐인 엘리베이터가 한번 출렁거렸다.

    그때, 홍영화가 윤솔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솔이 선물 가져왔어?”

    “네. 곧 우리 대장님 생신이셔서요.”

    “나아도, 그거 때문에 선물 사 왔는데.”

    홍영화는 들고 있던 캐리어 가방을 들어 보였다.

    곧 마동왕의 생일이 있었기에 둘 다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후후, 마치 호랑님의 생신파티에 가는 숲속 동물들 같네요.”

    “조심해. 호랑님은 선물 마음에 안 들면 잡아먹는다더라.”

    “언니는 선물 뭐 사셨어요?”

    “나? 나는 고오급 방송장비 세트. 흐흐흐, 최신형이야. 넌?”

    “저는 화장품이요! 남성용. 헤헤.”

    윤솔과 홍영화는 웃으며 파티룸이 있는 중층까지 이동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들과 눈이 마주치는 이들이 있었다.

    닳고닳은 뉴비 홍보모델 니아.

    박보연과 배수지, 김소담, 윤두나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 또한 신년파티에 초대받아서 여기에 왔다.

    윤솔과 홍영화는 당연히 탑급 걸그룹인 니아를 알기에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와아, 안녕하세요! 니아 분들이구나. 이번에 새로 나오시는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니아 멤버들 역시도 밝게 웃었다.

    “앗! 뷰티 스트리머 윤솔 님! 메이크업 방송 저희 멤버들이 다 꼭꼭 챙겨 봐요!”

    “오오! 뎀걸 홍영화 님이다! 이번 아챔 해설 잘 들었어요! 엄청 잘하시던데요!?”

    그녀들 또한 품에 선물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마동왕과는 어색한 사이지만 그래도 나름 성의껏 준비한 선물들을.

    이윽고, 파티룸 안에 구단 관계자들 모두가 모였다.

    마동왕, 윤솔, 드레이크, 유세희, 마태강, 니아 멤버들, 임우람 매니저, 홍영화, 엄재영 감독, 유창, 그리고 그 외 스텝 등등…….

    마동왕을 맨 앞에 둔 모두가 커다란 케이크를 둘러싸고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때.

    “대장님! 생일 축하드려요!”

    모두가 마동왕의 앞으로 생일 선물이 담긴 상자들을 내민다.

    윤솔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물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엄재영 감독이 짓궂은 멘트를 날렸다.

    “오! 그럼 우리 블라인드로 해서 뭐가 제일 좋은 선물인지 뽑아 볼까?”

    베스트 선물 뽑기.

    다들 재미있겠다는 말과 함께 가져온 선물상자를 섞었다.

    이윽고, 마동왕이 선물을 고르기 시작했다.

    윤솔은 내심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다.

    ‘헤헤, 이 중에 어진이가 마동왕인 걸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엄재영 감독과 마태강, 드레이크, 유창을 제외하면 여자는 자신뿐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남자들은 선물을 사 왔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둬야 할 정도로 조악한 포장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반면 윤솔의 선물은 고르고 골라서 준비한 화장품, 포장부터가 남들과 다르다.

    ‘내꺼 뽑아, 어진아!’

    어진은 요즘 피부가 많이 당긴다고 했었는데 마동왕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동왕과 어진이 동일인물임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그가 피부당김 때문에 고생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고로 어진은 얼굴 당김 느낌을 잡아 주는 화장품을 골라줄 것이다.

    윤솔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와중에, 마동왕은 한 곳에 모인 선물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나는 이게 제일 좋은데?”

    마동왕이 집어든 것은 말랑말랑한 엉덩이 모양의 쿠션이었다.

    아무래도 게임을 할 때 캡슐 밑에 까는 용도 같다.

    “후훗. 역시 내 선물이군.”

    모두의 부러움을 받으며 코 밑을 쓱쓱 문지르는 이는 바로 드레이크였다.

    그는 으쓱거리며 말했다.

    “캡슐에 장시간 누워 있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엉덩이 피부가 당겨져서 고생하지. 이 쿠션은 캡슐의 엉덩이 피부 당김 현상을 완벽하게 잡아주는, 게이머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그 말을 듣는 순간 윤솔은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손으로 얼굴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짙은 패배감에 몸을 떨면서.

    *       *       *

    이후, 파티가 시작되었다.

    나는 샴페인 잔을 든 채 삼단 케이크 앞의 조명 쪽으로 다가갔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가운데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인다.

    송승우 팀장.

    유튜뷰 게임 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전담 기획자.

    그는 나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마동왕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게요. 이번에 승진하셨다면서요?”

    “다 마동왕 님 덕분이죠.”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확실히 송승우 팀장이 계 탄 것은 맞다.

    내 스트리머 생활 첫 데뷔 때부터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으니까.

    송승우 팀장으로서는 그때 나를 믿고 밀어 줬던 것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다.

    “이번에 아챔 건 때문에 시청자들 반응 장난 아니던데요. 축하드립니다.”

    “후후. 우리 송 팀장님 더 승진시켜드리려면 열심히 해야죠.”

    “어휴, 말만 들어도 설레네요. 그렇게 남자 꼬시시나요?”

    껄껄 웃던 송승우 팀장은 이내 누가 들을 새라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마동왕 님. 제가 좋은 선물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뭔데요?”

    “……사실.”

    송승우 팀장은 내게 귀뜸했다.

    “얼마 전에 뎀 본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나는 귀를 쫑긋했다.

    뎀 코리아가 아니라 뎀 유니버스 본사?

    내가 관심을 보이자 송승우 팀장은 매우 신나 보인다.

    이내, 그는 은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뎀 본사에서 마동왕 씨를 초대하려는 것 같습니다.”

    갓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전 세계 20억 명이 즐기는 이 게임을 만든 초국적기업의 본사에서 나를?

    “……확실한 건가요? 그걸 어떻게 알죠?”

    “그쪽에서 저희 유튜뷰 쪽에 먼저 연락을 해 왔으니까요. 마동왕 씨와 접촉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냐고 담당인 저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말을 마친 송승우 팀장은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친애하는 유튜뷰 코리아의 게임미래전략실 직원들에게’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시종일관 정중한 어조로 ‘닳고닳은 뉴비’와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느냐는 의견을 묻고 있다.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에서의 활약을 잘 보았다는 소감이 그 뒤를 잇는다.

    최종적으로는 ‘이 모든 것은 뎀 유니버스의 회장이자 최고 책임자인 ‘윌리엄 윌슨’의 의사’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어디보자.’

    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당장 조디악을 잡아 족치러 갈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천하의 앙신 조디악을 뒤로 잠시 미뤄 둘 정도로 뎀 유니버스 본사 방문은 엄청난 일이다.

    ‘어차피 조디악은 유다희가 죽였 댔지? 부관참시 특성을 먹여두었으니 사망 패널티도 두 배일 것이고. 그렇다면 아직 조금은 여유가 있지.’

    만약 그때 조디악을 놓쳤다면 눈물을 머금고 미국행을 포기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찌 보면 유다희가 만들어 준 기회인 것이다!

    뎀 유니버스의 본사 방문 기회.

    이것은 단순히 팬으로서 뜻깊은 일 뿐만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엄청나게 중요한 빅 이벤트.

    심지어 나라에서 직접 나서서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사절단을 꾸려 붙여줘야 할 정도로 중차대한 일이다.

    ‘……한국 협회도 못 간 곳을 내가 간다는 점에서 더더욱 의의가 있지.’

    회귀하기 전 세상에서 한국 협회는 15년간 단 한 번도 뎀 본사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런 곳에 내가 간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도 못 만나 안달인 존재가 바로 뎀의 총수인 ‘윌리엄 링트 윌슨’이니까.’

    어쩌면 장차 한국의 ‘가상현실게임협회’보다 ‘닳고닳은 뉴비’ 구단이 더욱 더 대표성을 인정받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가능성만 놓고 본다면 아주 글러먹은 상상은 아닌 것이다.

    ‘만약, 여기에 나의 미래 지식까지 더해진다면…….’

    한국은 안과 밖, 인풋과 아웃풋, 협회에게도 선수들에게도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이것은 미래적으로 아주 중요한 발판인 셈!

    나는 가면 속으로 눈동자를 빛냈다.

    ‘어차피 한국의 게임계를 한번 갈아엎으려고 하기는 했었지. 판을 조금 더 크게, 빨리 벌릴 수도 있겠어.’

    한때 E스포츠 강국이었던 한국을 E스포츠 후진국으로 추락시켜버린 윗대가리들, 팬들의 마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각종 협회들.

    그 모든 것들을 뒤집어 엎어버리려면 더욱 더 강한 힘과 영향력이 필요하다.

    뎀 유니버스 본사는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힘이 생기는 성지(聖地)!

    충분히 순례를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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