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화 이쪽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 (1)
며칠 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수많은 환영인파가 몰려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자 몸은 녹초 신세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유창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녀석 덕분에 과격한 리자드맨, 오크 훌리건들의 테러에서도 몇 번이나 무사할 수 있었기에 고마운 일이다.
나는 캔맥주 두 개를 따 유창에게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로비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기록적인 성과를 낸 한국은…….]
공중파 메인 3사의 9시 뉴스에 나의 얼굴이 나온다.
곧이어 잔뜩 흥분한 듯한 엄재영 감독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보내 주신 성원에……힘입어……더욱 열심히……노력하는……닳고닳은 뉴비가……되겠습니다.]
아나운서들은 다른 소식도 전한다.
[이번 한국 팀의 기록적인 성과 뒤에는 어두운 면모도 있었습……한국의 뎀 협회는 사실 훌륭한 성과를 낸 대표팀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팬들의 원성이……정부는 협회에게 지원하던 재정비를 몰수……재무구조를 전면 수사하기로……]
한편.
나를 본 유창은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캬, 형님 이제 정말 출세하셨습니다.”
“아직 멀었지. 고작 리틀리그 우승인걸.”
“오오오! 벌써부터 빅리그까지 보시는 겁니까?”
“아니. 아시아 말고. 세계리그 전체를 봐야지.”
내 말에 유창은 입을 딱 벌린 채 나를 바라본다.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한 모양.
‘뭐, 그 전에 일단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부터 확실하게 다져 놔야 하겠지만.’
내가 곧 있을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때.
[네. 다음 뉴스입니다.]
TV 화면이 바뀌었다.
두터운 털옷을 입은 기자가 마이크를 쥔 채 화면 중앙에 서 있다.
뒤에 잡히는 배경은 천사의 집.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쉼터이다.
기자는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연초를 맞아 따스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솔선수범 나눔의 손을 뻗고 있는데요. 그 가슴 뭉클한 현장에서……]
그때.
나는 TV 화면 구석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유다희.
그녀가 뉴스 화면 구석에 작게 잡혀있었다.
우르르 몰려드는 아이들을 열심히 쫓아가거나 때로 쫓기기도 하는 둥 열정적으로 놀아 주는 모습.
“……저거 너네 누나 아니냐?”
내가 묻자 유창이 맥주를 마시다가 두 눈을 크게 뜬다.
“어? 쟤 저기서 뭐 하지? 아, 예전부터 봉사활동 다닌다더니, 그게 저거였네 보네요.”
말을 마친 유창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작게 흐르는 신호음.
그러자 뉴스 화면 귀퉁이에서 아이들과 뛰어다니던 유다희가 주머니를 부시럭거리더니 전화를 받는다.
[어, 왜.]
“어 누나. 뭐해?”
[왜 임마.]
누나의 뚱한 목소리를 들은 유창이 피식 웃었다.
“아니, 또 어디서 착한 일을 하고 있나 궁금해서지~”
[뭐, 뭐래 미친놈이! 아니거든? 클럽 왔거든?]
“아, 클럽이야?”
[…어? 어, 오늘 연초라서 물 좋다. 끊는다.]
“물 좋다고? 예쁜 애들 많아?”
[뭐야 왜, 너도 오게?]
말을 마친 유다희, TV 화면 귀퉁이에 잡힌 그녀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향한다.
주위에 바글바글 몰려든 아이들.
[……예쁜 애들 많지, 그럼.]
핸드폰 너머에서 유다희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창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 그래? 다음엔 나도 좀 데려가라.”
[꺼져, 남매끼리 낯간지럽게 무슨. 끊어.]
막 전화를 끊으려던 유다희, 순간 그녀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핸드폰을 잡는다.
이때부터는 뉴스 화면이 바뀌어서 그녀의 모습을 관찰할 수는 없었다.
유다희는 유창에게 말했다.
[아참! 그러고 보니 마동왕 님에게 그거 말씀드리는 거 까먹었네.]
“뭐 말야?”
[신년도 됐고 해서 내가 기획하고 있는 이벤트가 있는데…….]
그러자 유창은 바로 전화를 나에게 바꿔 주었다.
“형님. 바로 들으시면 될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통화소리가 다 들리던 참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은 채 잠자코 유다희의 말을 들어보았다.
[그러니까……경매 같은 건데……마동왕 님의 애장품을……경매로 해서……수익금은 불우이웃에게 기부하는 식으로……]
요컨대 내가 직접 쓰던 애장품들을 신년맞이 팬클럽 행사에서 경매에 부치고 싶다는 것이다.
뭐 이익을 위한 경매도 아니고 수익금 전달이 불우이웃들에게 간다면 나 역시도 환영이다.
내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유창이 다시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어, 안 그래도 내가 말씀드렸었어.”
[그래? 뭐라고 하셔?]
“해도 된다고 하시네.”
[꺄악! 만세!]
그러자 주변에서 아이들이 다 함께 ‘만세’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유창은 통화를 마무리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때.
전화를 끊은 줄 알았던 유다희가 갑자기 다시 핸드폰에 대고 입을 연다.
[야, 창아. 근데 물어볼 게 하나 더 있다.]
“……뭐야? 뭔데?”
유창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이내 유다희가 약간의 침묵 끝에 진지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때, 나 비상구에 자빠져 있을 때. 나 구해 줬던 사람이 누구냐?]
나와 유창이 동시에 뜨끔한다.
유창은 약간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 소리야. 그거 마동왕 형님이잖아.”
[……그래? 역시 그렇지?]
핸드폰 너머에서는 그 말 이후로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 춥다. 그래 알았어. 끊는다.]
유다희는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휴. 깜짝 놀랐습니다, 형님.”
유창이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나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상구에서 유다희를 발견했을 때는 깜짝 놀라서 일단 들쳐 업긴 했었다.
가면이고 뭐고 쓸 겨를도 없었고.
‘이상하다? 그때는 분명 의식이 없었는데.’
하기야, 유다희 본인도 확신이 없으니 저렇게 물어보는 것이겠지.
나는 맥주를 쭉 들이켜고는 몸을 일으켰다.
‘지금 중요한 건 다른 일이지.’
사실 유다희 일 말고도 생각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다.
게임에서의 큰 일 하나를 처리했으니 이제 현실의 일들도 처리할 차례.
광고료, 후원금 등의 수익과 세금 장부 등등을 정리하고 그동안 읽지 않은 새로운 광고, 협찬, 방송 문의들에 대답해야 한다.
이거 한동안은 정신없이 바쁘게 생겼다.
* * *
유다희.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지독시리도 차갑고 어두운 공간.
그녀는 홀로 외롭게 떨고 있었다.
시야가 점점 어그러진다.
“……! ……! ……!”
목소리를 내 꺼내 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빛 한 점 없는 곳.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 어둠.
유다희가 막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둠에 몸을 맡기려는 순간.
팟!
어디선가 빛 한 줄기가 나타났다.
그것은 작았지만 실로 압도적인 따스함을 가지고 있었다.
유다희는 고개를 들었다.
빛은 점점 그녀에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빛 속으로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그 얼굴은…….
“…헉!?”
유다희는 이불을 박차고 고개를 들었다.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지 않았다.
늘상 꾸던 악몽인데 오늘은 다르다.
몸이 축축 처지지도 않고 이불을 땀으로 적시지도 않았다.
오히려 푹 자다 깬 것처럼 몸이 가볍고 편안한 느낌.
……하지만 기분은 아니었다.
“으아아아! 왜 자꾸 이런 꿈을 꾸는 거야!”
유다희는 주먹으로 베개를 후려쳤다.
귀국 후 밀린 방송도 하고 봉사활동도 가고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깨어 있을 때는 나름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였지만…… 잠만 잤다 하면 여전히 중국 병원에 며칠 입원했을 때의 기억이 악몽(?)처럼 떠오른다.
…뭐, 그 전에 꾸던 악몽에 비하면 훨씬 더 양호한 축이었지만.
조디악에게 호되게 당했을 때, 그녀는 죽음을 직감했었다.
사람은 이렇게 어이없게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문제는…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의 얼굴이다.
‘그때 왜 고인물, 그 망할 새끼의 얼굴이 떠올랐을까?’
순간 유다희의 얼굴이 확 뜨거워진다.
“아오 뭐야 진짜! 기분 더럽네!”
이것도 나름 악몽이라면 악몽이다.
더 이상 춥고 어두운 감옥에서 떨지 않아도 되는 것은 고맙지만… 그렇다고 고인물 놈의 그 밉살스러운 얼굴을 꿈에서까지 보게 되다니!
그녀가 복도에 누워 눈을 감을 때,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환영 속에서 본 것은 분명 고인물의 얼굴이었다.
“도대체 왜 그딴 환각을 본 거지? 게임에서 얽히는 것도 짜증나는데 꿈에까지 나오고.”
아무래도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꿈에 나오는 모양이다.
유다희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근데 등은 참 넓었지. 은근 따듯했고.’
유다희는 고인물의 등에 업혔을 때를 생각하며 잠시 고민했다.
…그렇게 한동안 생각하다가.
‘아차! 고인물이 아니라 마동왕 씨잖아! 나를 구해 준 사람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자기 뺨을 세게 때렸다.
왜 고인물에게 도움을 받은 걸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마동왕의 등을 자꾸 고인물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바야, 오바야, 개오바야. 그건 아니지. 응, 그건 아냐.”
비상구에 쓰러져 있던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가 준 사람은 마동왕이다.
그건 동생인 유창도 증명하는 사실.
심지어 고인물 놈은 호텔로 가는 동안 양말에 비상금을 숨긴 채 자신을 옆에서 기만한 밉살꾼이 아니던가!
그때 감기만 안 걸렸어도 조디악에게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고마운 사람에게 받은 은혜를 밉살맞은 놈에게 받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매우 곤란하다.
…짜악!
유다희는 두 손으로 뺨을 세차게 때렸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두 번 다시 하지 않기로 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 이럴 때일수록 덕질에 열중해야 해.”
마음이 흔들릴 때는 덕질만큼 좋은 게 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유다희였다.
그녀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난 뒤 재빨리 경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방 한구석에 곱게 접혀 있는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2024年 마동왕이 ‘직접 쓰던’ 애장품 경매 ※업계 포상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