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80화 (480/1,000)
  • 481화 깽판 (5)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마지막 경기영상은 그야말로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되었다.

    한국 팀의 마동왕이 단신으로 나서서 일본 팀 다섯 명을 연달아 격침!

    심지어 경기 끝 무렵에 갑자기 등장한 S급 몬스터 두 마리마저 한 주먹에 꺾어 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전 세계인을 단숨에 매료시켜 버리는 미친 플레이였다.

    덕분에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말도 안 될 정도의 트래픽에 의해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다.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서버조차도 터져 버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연일 몰려들어 댓글을 두들긴다.

    -현직 의사입니다. 마동왕의 경기를 보여 주자 환자의 암이 나았습니다.

    -당신이 마동왕의 경기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살아갈 이유 하나가 남아 있는 셈.

    -여친과의 결혼...고민하고 있었는데 엊그제 갑작스럽게 놀러가니 여친이 마동왕 경기 녹화한 것을 혼자 돌려보고 있는 것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나이 예순에 이런 감동이라니...부디 내 손자, 손녀들도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기를...충성충성

    -태평양의 1%정도는 마동왕의 경기를 보고 감동받아서 운 사람들의 눈물.

    -나 따위가 감히 평가하는 것초자 모독인, 그런 엄청난 경기였다...ㅠㅠㅠㅠㅠㅠㅠ

    -경기 보면서 멍하니 밥 먹다가 밥그릇까지 먹어버려따....내 인생 경기...

    -신은 마동왕을 제일 처음 만들었고 그 뒤에 그를 찬양하라고 온 세상을 만들었다

    .

    .

    이 사람들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홈페이지를 터트리고 난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바로 마동왕의 개인방송 채널이었다.

    조회수가 곧 돈이 되는 사이트, 마동왕의 모든 동영상 조회수가 역주행을 하며 전 차트를 석권한다.

    그리고 그때쯤 해서, 마동왕이 최신 영상을 올렸다.

    Play

    영상 화면에는 그저 마동왕이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의 우승 소감 및 비하인드 스토리.

    단지 그 몇 분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방송 업로드 1분 만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

    조회수는 실시간으로 미친 듯이 폭증하고 있었다.

    순간 화력으로만 따지면 어지간한 헐리웃 스타들을 압살하는 수준.

    그런 상황 속에서, 이야기는 담담하게 시작되었다.

    *       *       *

    나는 마동왕 전용 가면을 쓴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일본과의 경기 전, 한 알몸의 사내에게 제보를 받았습니다. 듣자하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망치고 싶어 하는 의문의 세력이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거짓말이다.

    고인물의 이미지를 살짝 좋게 해볼까 해서 친 양념.

    “아마도 경기 도중 습격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어떤 세력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죠. 뚜렷한 증거도 없었습니다.”

    나는 짐짓 괴롭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저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습니다. 혹시나 정보가 틀릴 수도 있고 이 때문에 대회가 미뤄진다거나 하면 괜히 팬 여러분들을 실망시켜드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댓글이 마구 달린다.

    시청자들은 나의 프로정신에 감동한 듯 연신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래서 습격자들의 예상보다 대회를 빨리 끝내기 위해 저 혼자 나가서 최대한 분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팀들을 사망 리타이어 시키지 않은 것은 그들이 나중에 벌어질 테러에서 한 몫을 톡톡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오만한 성격이었다면 테러도 혼자 막을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정말 마음대로 했겠죠.”

    이것은 내가 일본 팀을 기만했다는 공격에 대한 변론이었다.

    내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기도 했기에 시청자들은 매우 공감하는 듯한 흐름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일본 팀을 죽이지 않고 살려 뒀기에 조디악이 일으킨 몬스터 웨이브를 조기에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변론했다.

    “한국 팀을 수면모드로 출전시킨 것도 그 이유에서였습니다. 제 동료들은 대회 전에 있었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24시간이 넘게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뇌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상 현실 게이머에게 있어 수면부족은 큰 문제입니다. 또한 곧 이어질지도 모르는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잠을 자 두는 것이 필요했죠. 그래서 대회 중에 잠을 자는, 다소 무리수가 섞인 도박수를 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감이 과해서 나온 퍼포먼스처럼 보였나 봅니다. 일본 팀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번 리틀리그에서 한 조가 되어 싸웠던 중국, 일본 선수들을 향한 인사로 방송을 마무리했다.

    “결국 한국, 중국, 일본이 힘을 합쳤기에 이번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피해는 더욱 컸겠죠.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지켜낸 것은 우리 모두입니다. 등수를 떠나 이번 화합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값진 추억이 될 것입니다.”

    나는 카메라를 끄고 댓글 반응을 쭉 살폈다.

    -우리 마동왕 님ㅠㅠㅠㅠ인성도 좋으셔...

    -이번 테러 진압 때 보니까 윤솔 선수랑 드레이크 선수도 실력 쩔더라...

    -님들! 방금 중국 팀이랑 일본 팀도 공식 의견 떴어요!

    -캬! 중국이랑 일본 팀도 시원하게 패배 인정했네~ 마동왕이라면 납득이란다~

    -그런데 아챔 테러한 조디악 이 새끼는 대체 머하는 새끼일까?

    .

    .

    댓글 반응은 전체적으로 우호적이다.

    계속해서 아시아 쪽에 테러를 가하는 조디악에 대한 추측들이 분분하고 중국 팀이나 일본 팀을 멋지다고 평가하는 의견들도 꽤 많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나다.

    ‘마동왕’이라는 이름이 갖는 브랜드 가치는 이제 어지간한 월드스타 급으로 올라섰다.

    덧붙여.

    [기사] “등수 중요치 않아. 한, 중, 일 협력에 더 의의를 둬” 닳고닳은 뉴비의 마동왕, 그래서 더 빛났다.

    [사진] 마동왕 승리의 포즈

    [사진] 윤솔, 드레이크, 유세희, 마태강 대회 전의 합동 파이팅 “목표는 우승!” 결국 해냈어요~

    [기사] “한국이라면 인정, 빅리그에 가서도 잘 할 것.” 중국 팀 리더 장마오 쉰, 한국 팀 빅리그 진출에 응원 메시지 보내.

    [사진] 중국 팀의 리더 장마오 쉰이 마동왕 인터뷰 영상을 보며 시원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기사] 일본 대표팀 리더이자 국민여동생 ‘아키사다 아야카’ 마동왕에게 호감 표시? “오해 풀린 것이 결정적”, 원래 팬이었는데 더욱 더 팬심 깊어져” 발언 화제.

    [사진] 아키사다의 무결점 외모, ‘쌩얼’로도 빛나요~

    [사진] 일본 팀 인터뷰에서 만난 충격적인 비주얼, 아키사다를 만나다~

    .

    .

    내가 영상을 올린 지 3분도 되지 않아 기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아키사다 호감 표시? 뭐야 이건.”

    내가 막 뉴스 기사를 클릭하려던 순간.

    -위이이이잉!

    전화기가 맹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마동왕 명의의 핸드폰.

    화면에는 남세나의 번호가 떠 있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 남세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터뷰 봤네요. 제보는 내가 했는데 엄한 사람이 칭찬받겠네.]

    그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말투가 상당히 다르다.

    “이번에 처리반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심지어 한국 쪽에서는 아예 오지도 않았던데.”

    [한국리그라면 몰라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쪽에는 개입이 힘들죠. 그리고 조디악 정보도 나 혼자 움직여서 겨우 알아낸 거고요. 위에 보고해도 인원 안 빼 주고~ 지원도 없고~ 한국 일처리 개같다 이거에요~]

    남세나는 나를 붙잡고 한동안 회사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 주다가 전화를 끊었다.

    “흐음. 어쨌든 한국의 빅리그 진출은 확정되었고.”

    나는 눈을 감고 머리를 굴려 보았다.

    상황은 지금 한국의 리틀리그 우승을 제외하고는 전부 미래 지식대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조에서는 한국이 우승.

    우즈베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조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이 우승.

    러시아, 몽골, 투르크메니스탄 조에서는 러시아가 우승.

    대만, 필리핀, 베트남 조에서는 대만이 우승했다.

    한국의 우승이야 사실 상당히 의외인 결과라지만 다른 조의 대표국들 역시 상당히 의외성이 짙다.

    우선 우즈베키스탄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치열한 접전에서 어부지리로 우승한 것이 크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실제로도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였기에 승부가 지나치게 과열되었던 것이 주 요인.

    러시아, 몽골, 투르크메니스탄은 구소련 패밀리, 대만, 필리핀, 베트남은 모두 중국과 사이가 별로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무튼.

    한국, 러시아, 우즈벡, 대만은 이제 최후의 리그인 ‘빅리그’에서 서로 토너먼트로 붙게 되었다.

    “빅리그라고 해서 뭐 다를 건 없지.”

    원래라면 빅리그에 진출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그런 일본 대표팀 전원이 나 하나에게 발리는 실정인데 빅리그에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가.

    애초에 이 시대의 게이머들은 내 적수가 안 된다.

    내 힘과 지식은 재능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영역까지 도달해 있으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창문을 열었다.

    카메라와 도청장치를 싹 제거한 내 호텔은 아주 쾌적하다.

    더 이상 협회를 믿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정부가 직접 나서서 중국 정부에게 항의, 더 이상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외교문제라고 단단히 으름장을 놓은 탓에 이제부터는 보안상의 문제는 전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뎀 협회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일을 못한다는 인식이 완전히 박혔기 때문이다.

    차규엽 입장에서는 협회의 중심부로 스물스물 뻗던 손목을 통째로 잘린 기분이겠지.

    “으음. 유일하게 찜찜한 것이 하나 남았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조디악. 이놈이 약간 찝찝하다.

    물론 구불넝쿨 숲에서 빠져나가는 즉시 유다희에 의해 죽긴 했지만.

    아마 내가 걸어놓은 ‘부관참시’ 특성 탓에 사망 패널티도 두 배로 들어갔을 것이다.

    더군다나, 유다희는 조디악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놈의 아이템을 빼앗는 쾌거까지 이루어 냈다.

    -<지옥불 코어 반쪽> / 재료 / S

    반으로 쪼개진 빨간 구슬 조각.

    너무나도 뜨거워 악마조차도 열상(熱傷)을 입고 만다는 지옥 동쪽의 불길이 담겨 있다.

    발록과 데모고르곤이 떨구었던 반쪽짜리 구슬.

    조디악은 죽는 동시에 반쪽짜리 구슬을 드랍했다.

    놈이 훔쳐간 두 개의 아이템 중 하나가 되돌아온 것이다.

    ‘안 돼! 으아아아아! 안 돼애~!’

    그 당시, 조디악은 죽어가며 미친 듯이 절규했다고 했다.

    그것을 생각하자 어딘가 통쾌하면서도 씁쓸하다.

    “아마 놈도 고정 S+급 몬스터를 노리고 있겠지.”

    하지만 내가 코어의 반쪽을 다시 빼앗았으니 쉽지 않을 것이리라.

    거기에 두 배의 사망 패널티까지 먹었으니…….

    “아무래도 조만간 살인자들의 탑을 한번 정리해야겠어.”

    조디악의 사망 패널티는 꽤 길 것이니 나 역시도 꽤나 시간을 벌었다고 할 수 있겠다.

    대회 직후이니 조금 쉬며 몸 상태를 재정비한 뒤 바로 조디악 사냥에 돌입해야겠다.

    바로 그때.

    -띠링!

    핸드폰에 알림 하나가 떴다.

    유다희가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마왕님!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지옥불 코어도 돌려드릴 겸 해서 한번 뵐 수 있을까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