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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77화 (477/1,000)

478화 꺵판 (2)

발록. 그리고 데모고르곤.

두 마리의 초고위악마가 피의 역오망성을 찢어발기고 지상에 강림했다.

무려 S급 몬스터!

놈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하늘의 먹구름이 불길한 모양의 소용돌이를 그린다.

방금 전까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수많은 지휘관 급 몬스터들도 이제는 숨을 죽이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가-오오오오오!]

[그르르르르르…]

발록과 데모고르곤은 시뻘건 불덩어리를 몸에 두른 채 협곡의 길목으로 날아간다.

“저, 저게 뭐냐?”

“S급이라고? 나는 그런 거 들어본 적도 없어…….”

“세상에! 피해! 이쪽으로 온다!”

길목을 지키고 있던 중국 대표팀 제왕세기와 일본 대표팀 쥬신구라의 멤버들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한, 중, 일 랭커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뒤로 몰려들고 있던 용기백배한 군중들 역시 한 순간에 공포에 질려 버렸다.

“도망가!”

한 랭커가 사색이 된 채 외쳤다.

하지만.

…콰콰콰콰쾅!

발록은 눈앞의 먹잇감들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놈은 날아오는 자세 그대로 길목에 쌓여 있던 바위와 토사들을 꿰뚫어 날려버렸다.

동시에 뱀처럼 타오르는 화염 줄기들을 사방팔방으로 방사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륵!

아비규환으로 죽어나가는 랭커들.

한, 중, 일 어디에도 발록에게 대적할 만한 자는 없었다.

“포격! 포격하세요!”

일본 내 마법사 길드의 수뇌부이기도 한 아키사다 아야카가 마법사들을 규합했다.

그녀의 오더를 받은 마법사 수십 명이 한 자리로 몰려들어 대단위 마법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오-오오오오!]

발록의 뒤를 이어 데모고르곤이 협곡 밖으로 머리를 드러낸다.

피잇!

데모고르곤이 두 개의 머리를 교차해 가며 눈빛을 뿜어내자 이내 수많은 마법사들의 입술에 붉은 실이 돋아났다.

“우웁!”

“웁! 뜨그우…!”

불타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작은 실은 모든 마법사들의 입술을 꿰매어 익혀 버렸다.

데모고르곤의 가장 악랄한 특성 중 하나인 ‘침묵’이 마법사들의 주문 영창을 완전히 봉인해버린 것이다.

프로게이머들이 쩔쩔매고 있는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스트리머 군단이 도달했다.

“아, 시청자 여러분! 지금 저는 S급 몬스터 레이드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예? 발록에게 한 칼이라도 먹이면 별조각 1만 개 쏘신다고요? 당장 갑니다!”

“제가 누굽니까? 겜방 경력만 10년입니다! 프로게이머 분들과 함께하는 레이드! 기대해 주세요!”

“아챔 테러당했다고 해서 급하게 왔습니다! 지금부터 S급 몬스터 제가 다 잡을 겁니다. 여러분, 잠시 광고 타임~”

수많은 이들이 개인방송을 하며 발록과 데모고르곤에게 접근한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게임에서 한가락 한다고 자부하는 실력자들이다.

구독자 수가 수십만이나 되거나, 어지간한 프로게이머보다 실력이 뛰어나거나, 나름대로 비장의 무기 하나쯤은 갖추고 있는 준프로들.

그런 자들이 수천 단위로 모여들었으니 분명 승산이 있을 것이리라.

…하지만, S급 몬스터의 벽은 높았다.

[가-아아아악!]

[그-오오오오!]

발록과 데모고르곤이 서로 등을 맞대고 주변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발록의 손에 들린 불의 채찍은 협곡 전체를 마구 난자했고 데모고르곤의 손에 쥐여 있는 두 자루의 불타는 검은 귀신같이 플레이어만을 찔러 죽인다.

프로게이머, 랭커, 스트리머, 일반인 등등… 협곡 안에 몰려든 모든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게 강한 S급 몬스터의 위용에 경악해야 했다.

“어? 어? 어? 뭐야? 이거 생각보다 훨씬…….”

“끄아악! 왜 이렇게 쎄!? 이런 걸 어떻게 잡으라고!?”

“시, 시청자님들 미션 실패입니다! 죄송… 커헉!”

순식간에 썰려 나가는 탱커들, 변변찮은 데미지를 넣지 못하는 딜러들, 팀원들이 워낙 순식간에 죽어나가는 통에 회복을 시켜 줄 타이밍을 잡을 수 없는 힐러들.

거기에 A+급 몬스터들까지 발록과 데모고르곤의 마기에 복종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대검을 휘두르는 암흑기사,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흡혈귀, 가스를 뿜어내는 소라고둥, 거대한 뿔을 가진 도마뱀, 외눈박이 거인, 땅굴을 파고 다니는 거대 두더지…….

애초에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던전에 가면 바로 터주대감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초엘리트 몬스터들이다.

협곡 내부의 서열이 정리되자 그만큼 움직임도 깔끔해졌다.

…콰콰쾅! …우직! …쿠르르륵!

곳곳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비명 소리.

프로게이머든 일반인이든 랭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S급 몬스터 두 마리를 위시한 A+급 몬스터 웨이브에 한, 중, 일 플레이어 연합은 속수무책으로 썰리고 있었다.

심지어.

“푸스스스스. 야, 너네들 중에 클로즈 베타 출신 없냐? 있으면 손!”

조디악, 그가 전장을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통에 플레이어 측의 피해는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꾸드득! …우드드득!

조디악의 손에서 뻗어 나온 검은 아우라가 지면을 휩쓸 때마다 발록과 데모고르곤에게 죽은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몸을 일으킨다.

좀비와 해골병들이 한 랭크 다운 된 육체로 소생해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이들의 목을 물어뜯는다.

S급 몬스터 두 마리와 A+급 몬스터 웨이브.

그리고 수많은 언데드 군단까지.

조디악의 옆으로 날아온 김정은이 깔깔 웃는다.

“어때 내가 그린 그림이? 예전에 너 혼자 한국 프로리그 시상식 습격했을 때보다 훨씬 더 낫지?”

“푸스스스. 하긴. 테러를 하는 데는 네년 따라갈 수 있는 사이코가 없지. 그 뭐냐, 방씨 브라더즈는 어디 갔어?”

“걔네는 처리반이 오나 안 오나 경계를 서러 갔어. 아마 곧 연락이 오겠지.”

“처리반이라. 올 거면 좀 빨리 오지. 푸스스스스……. 한, 중, 일 중에 어느 쪽 처리반이 제일 빨리 오려나?”

“한국 쪽에서는 이미 냄새를 맡은 것 같던데. 뭐, 그쪽은 협회가 협조를 안 해 줘서 개입이 쉽지 않겠지만 말야. 호호호호.”

판을 이 지경으로 벌려 놨으니 아마 곧 GM의 개입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디악은 어째서인지 GM의 개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멋진 장면이야.”

조디악은 화광에 젖은 얼굴로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서는 한창 발록과 데모고르곤이 프로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콰-지지지직!

용암으로 만들어진 채찍이 날아 탱커 라인을 후려친다.

방패와 갑옷들이 우수수 부서지며 근육질의 오크들이 뒤로 나가 떨어졌다.

퍼퍼퍼퍼펑!

마법사들이 마법을 난사했지만 그것은 데모고르곤의 쌍검에 전부 틀어 막혔다.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중국 대표팀 제왕세기와 일본 대표팀 쥬신구라의 분전 덕분에 어찌어찌 버티고 있었다.

중국 팀의 팅위안이 대포를 들고 발록을 향해 마구 쏴 갈기기 시작했다.

일본 팀의 히데사토 유키에 또한 거대한 콘크리트 골렘을 소환해 발록에게 맞섰다.

그러나.

콰콰콰쾅! 우지직!

발록은 채찍을 휘둘러 팅위안이 쏘아 보낸 수많은 대포알들을 전부 반으로 쪼개 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맨주먹으로 히데사토 유키에의 콘크리트 골렘을 두들겨 박살내기까지 했다.

중국 팀의 탕쯔이가 몬스터들의 입을 봉하기 위해 힘을 썼지만 그보다 데모고르곤의 봉인력과 구속력이 훨씬 더 강했다.

탕쯔이는 변변찮은 공격도 해 보지 못한 채 모든 특성이 봉인 당했고 그녀를 보좌하던 장마오 쉰과 커제, 구리 또한 데모고르곤의 쌍검난무에 전신이 난자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

아키사다 아야카.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았던 그녀조차 무너져 내렸다.

그만큼이나 발록과 데모고르곤의 위용은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콰콰쾅!

발록의 채찍과 데모고르곤의 쌍검이 프로의 방어선, 준프로의 방어선, 아마추어의 방어선, 그리고 일반인들의 방어선까지 모두 뚫어 버렸다.

여기까지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 남짓!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학살, 대학살뿐!

곳곳에서 공포에 질린 관중들의 비명과 절규가 이어진다.

“GM! GM은 언제 오는 거야!”

“안 돼! 여기서 죽으면 아이템 떨군단 말야!”

“나 곧 휴가인데 접속불가 받으면 안 돼!”

“조금만 있으면 레벨업인데! 여기서 죽으면 경험치 보상도 안 해 줄 거 아냐!?”

“제발 살려 줘! 이 아이템을 어떻게 구했는데!”

눈앞에 강림한 저 두 재앙을 막을 길이 없음을 깨달은 모든 이들은 절망에 빠진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 중, 일, 프로, 아마추어, 일반인…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몇 있었다.

아키사다 아야카 역시 그중 하나였다.

쿠오오오오!

협곡을 꽉 채우는 것을 넘어 하늘까지 치솟아 오르는 발록과 데모고르곤의 마기.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길 수 없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키사다 아야카는 도망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일본의 국가대표였기에.

자기가 도망가면 일본이 도망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내가 도망가면 뒤에 있는 팬들이 죽는다. 여기서 빠질 수는 없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몇몇 이들이 더 있었다.

“이봐. 너 꽤나 기백이 있군 그래.”

중국 팀의 홍일점 탕쯔이.

그녀가 아키사다 아야카의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대표팀 멤버 전원, 일본 대표팀 멤버 전원이 이 둘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들은 눈앞으로 범람하는 몬스터 웨이브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전에 한국 팀을 공격하지 말 걸 그랬어.”

“누가 알았나? 그때는 그게 최선인 줄 알았지 뭐.”

“그래도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큰 전력이 되었을 텐데.”

“설마. 어차피 못 막았을 거야. 뭐, 그래도 염치없긴 하네. 나중에 사과해야…….”

하지만.

그들의 중얼거림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오-오오오오오오!]

발록, 이 흉폭한 광전사가 이쪽을 향해 채찍을 후려갈겼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 온다!”

누가 지른 비명인지도 모르겠다.

콰콰쾅!

그 한 방에 모든 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아키사다 아야카는 뒤로 나가 떨어져 바닥을 세차게 굴렀다.

“커헉!?”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온다.

주문을 외우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쿠구구구구…

흙먼지 너머로 붉은 눈알 두 개가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발록의 거대한 주먹이 이쪽을 향해 운석처럼 떨어져 내린다.

“…끝인가.”

아키사다 아야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끝이다.

그녀는 눈을 감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동그란 눈에 힘을 주고 위를 쏘아보았다.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인다.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발록의 주먹, 느리게 날아다니는 불씨, 귓가에서 뭉개지는 비명 소리…….

아키사다 아야카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 죽음은 현실 세계에서도 꽤나 오랫동안 자신을 충격에 빠트릴 것이라는 사실도.

…바로 그때.

느리게 움직이던 모든 것이 원래 속도로 되돌아왔다.

퍼-펑!

묵직한 굉음.

하지만 아키사다 아야카는 두 눈을 크게 떠야만 했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그녀를 아직 살아 있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흰 가면을 쓴 남자.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그는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몸으로 발록의 주먹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것도 한 손으로, 너무나도 쉽게!

“마, 마동왕!?”

경악성을 내지른 것은 뒤에 있던 중국 팀과 일본 팀 멤버들이었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조금 일렀다.

…퍼펑!

작은 폭음과 함께, 붕괴해 내린 협곡의 잔해가 조금 들썩였다.

커다란 바위가 옆으로 밀렸고 그 안에서 한 명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콜록! 콜록! 어우, 먼지. 그래도 밖으로 나왔어요, 드레이크 씨!”

“음, 갑자기 절벽이 무너져서 놀랐다.”

윤솔, 그녀가 가녀린 팔로 거대한 바위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드레이크가 기어 나왔다.

…쩌억!

동시에, 그 옆에서는 육중한 흙무더기가 반으로 쪼개졌다.

“힝, 나는 단둘이 있어서 좋았는데.”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고. 빨리 나가자.”

그 안에서 대낫을 든 유세희와 마태강이 걸어 나온다.

한국 팀 완전부활!

…아니 그 전에 애초부터 피해가 전무했던 듯싶었지만 말이다.

*       *       *

“……당신.”

아키사다 아야카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나는 조금 바빠서 그녀와 아이컨택을 계속해 줄 여유가 없다.

나는 오른팔로 발록의 주먹을 확 밀어 버렸다.

그러자 발록은 당황하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옆에 있던 데모고르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전장에서 미쳐 날뛰던 두 마리의 S급 몬스터.

놈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나의 오른 주먹이다.

-<악마성좌 마몬의 대지진 건틀릿> / 한손무기 / S+

마몬이 쓰던 거대한 망치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산을 두들겨 평지로 만들고, 평지를 두들겨 무저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의 일부가 담겨 있다.

-물리 공격력 +20,000

-특성 ‘대지진’ 사용 가능 (특수)

나는 피식 웃으며 오른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그리고는 한마디 했다.

“…이게 뭔지 알지?”

순간.

발록과 데모고르곤의 낯빛이 바뀌어 간다.

선명한 공포의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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