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76화 (476/1,000)

477화 깽판 (1)

“옛날 생각 나는구만.”

조디악 번디베일.

놈은 전장에 난입한 상태로 씩 웃었다.

혈혈단신이지만 절대적인 자신감이 엿보이는 태도.

그리고 나는 놈의 자신감이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 것인지 알고 있다.

처리 2반의 반장 남세나를 통해 들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멜른의 피리’

몬스터를 홀리게 만드는 A급 히든 피스.

조디악은 이것을 한계까지 강화하여 A+등급의 위력을 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리의 한계는 명확하지.’

나는 하멜른의 피리가 가진 단점에 대해서도 잘 안다.

피리를 부는 동안은 몬스터가 무언가에 홀린 듯 졸졸 따라오지만 숨을 쉬느라 잠시 연주가 중단되기라도 하면 몬스터는 바로 착란에서 깨어나 난동을 부린다.

그래서 여러 마리의 몬스터를 끌고 다니다 보면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몬스터들끼리 싸움이 일어나 개체수가 줄어들곤 한다.

아니면 피리를 다시 불기 전에 공격을 당하던가.

또한 피리 소리가 워낙 멀리까지 들리다 보니 적들이 미리 눈치 채고 대비를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몬스터 대군을 우르르 끌고 들어가면 티가 너무 나서 은밀한 공격은 아예 불가능하다.

…그러나 조디악은 이번 습격에서 이 모든 단점들을 전부 극복한 상태였다.

펄럭-

놈은 시커먼 망토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한 장의 주문서이다.

-<결정권자의 소환장> / 주문서 / S

말도 안 되게 강력한 몬스터를 그의 주인으로부터 잠시 넘겨받을 수 있는 권리가 적혀 있다.

물론 위조된 것이지만.

결정권자의 소환장.

일명 ‘아비터 리콜(arbiter recall)’이라 불리는 사기적인 아이템.

저 주문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다수의 몬스터를 자기가 원하는 장소로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위엄 있는 자의 피’, ‘부두술사의 교활한 혓바닥’, ‘고문기술자의 피부가죽’이라는 세 가지 레어 아이템을 조합하여 제작할 수 있다.

‘부두술사의 교활한 혓바닥’ 끝을 ‘위엄 있는 자의 피’에 찍어서 ‘고문기술자의 피부가죽’으로 만든 양피지 위에 대고 복잡하고 긴 주문을 적어 넣으면 아주 극악한 확률로 이 불길한 주문서가 탄생하는 것이다.

단 이 주문서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소환하려는 몬스터에게 ‘하수인’ 특성이 붙어 있을 것.

이것이 바로 조건이다.

아무래도 아이템의 설명 때문인지 이 주문서는 ‘하수인’ 특성이 없는 몬스터에게는 효과가 없다.

즉 소환할 수 있는 몬스터는 ‘메인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중간 보스 몬스터’에 한정된다는 뜻이다.

“푸스스스스! 중간 보스들을 소환하려고 메인 보스들 잡느라 죽는 줄 알았어. 내 선물을 받아 줘 칭챙총 친구들.”

조디악은 중간 보스들을 소환하기 위해 그들의 주인이 되는 메인 보스들을 죽이고 다녔던 모양이다.

이윽고.

주문서가 찢어지자 하늘이 검게 변하고 허공에 시뻘건 역오망성이 그려졌다.

동시에 마법진 안에서 거대한 괴수들이 쏟아져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미궁마수 미노타우로스 ‘아방가르드’> -등급: A+ / 특성: 야수, 어둠, 하수인, 돌격대, 싸움광, 천근추, 만근추, 백전노장, 고속재생, 격분

-서식지: 거인국, 전율미궁,

-크기: 28m.

-굵은 뿔, 우람한 근육, 초중량급 체중과 압도적인 근력으로 적이 가루가 될 때까지 박살낸다.

그 누가 이 성난 황소의 돌진을 막을 수 있겠는가!

<고대 거인 ‘요툰’> -등급: A+ / 특성: 거인, 어둠, 하수인, 백전노장, 싸움광, 1:1, 밤일낮장, 끓어오르는 피

-서식지: 거인국.

-크기: 36m.

-먼 옛날 용과 악마에 의해 이 땅에서 추방된 존재.

특유의 거대한 덩치와 강력한 힘은 가히 산을 뽑아 바다를 메울 정도라고 한다.

<기저의 뱀 ‘파이썬’> -등급: A+ / 특성: 야수, 어둠, 하수인, 백전노장, 과식, 독 면역, 마법 면역.

-서식지: 거인국.

-크기: 42m.

-무저갱 밑바닥을 기어 다니며 사는 거구의 뱀.

배가 고프면 지상으로 올라와 마을을 습격해 수많은 사람들을 집어삼킨 뒤 다시 심연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간다.

<사이클롭스> -등급: A+ / 특성: 거인, 악귀, 야수, 어둠, 하수인, 백전노장, 관음, 천리안, 싸움광, 길막기, 잡치기

-서식지: 거인국.

-크기: 32m.

-포악한 성질을 가진 인간형태의 거대 괴수.

손에 닿은 것은 무엇이든 때려 부수며 머리에 달려 있는 외눈은 아무리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

.

몬스터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다.

하나하나가 A+등급의 강력한 몬스터들로 하급 난이도의 던전이었다면 충분히 메인 보스가 될 수 있는 피지컬의 괴물들.

조디악은 이 초엘리트 중간 보스들을 한데 모아 이곳에 떨궈 버린 것이다.

그것도 무려 스무 마리씩이나!

[오-오오오오오!]

필드로 떨어져 내린 미노타우로스가 두 발을 교차해 가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놈의 쌍뿔 끝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바로 아키사다 아야카가 있는 쪽이었다!

“아아아앗!?”

마나가 없는 아야카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눈을 감았다.

곧 저 거대한 소 괴물에게 짓이겨질 자신을 상상하면서.

하지만.

“…안 되지.”

나는 그녀의 앞으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리고.

턱!

손을 가볍게 뻗는 것으로 미노타우로스의 돌격을 막아냈다.

…우지지지직!

나와 미노타우로스는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내 두 팔에 잡힌 굵고 거대한 뿔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더니.

뚝!

이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부러져 버렸다.

[무우우우우우!?]

미노타우로스는 자신의 뿔이 부러진 사실에 경악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그 뒤로 육중한 뱀, 외눈박이 거인, 늙은 도마뱀, 거대한 거미 등 다른 괴수들이 다가온다.

개체값, 특성치, 뭐 하나 꿀리는 것이 없는 정예 몬스터들이다.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관중들이 경악하여 물러나고 있었다.

“아악! 테러다! 아챔 경기장에 테러가 발생했어!”

“구경 왔다가 죽게 생겼네! 빨리 처리 좀 해 봐!”

“로그아웃 해도 몸은 당분간 여기 남잖아! 도망칠 수밖에 없어!”

“저 거대 괴물들한테서 어떻게 튀어!”

게임 속에서 경기를 직관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나는 그 끔찍한 혼란을 등지고 아키사다 아야카를 돌아보았다.

“일어나. 나 혼자는 못 막아.”

그러자 멍한 표정의 아야카는 입을 몇 번 뻐끔거리다가 대답했다.

“다, 당신.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던 건가요?”

그러자.

“당연하지.”

대답은 그녀의 뒤에서 들려온다.

깜짝 놀란 아키사다 아야카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네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한국 팀.

윤솔, 드레이크, 마태강, 유세희.

그들이 어느새 수면모드에서 깨어나 내 앞에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드레이크가 쇠뇌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잠을 못 자서 피곤했는데 지금은 좀 낫군. 짧지만 푹 잤다.”

말을 마친 그는 잽싸게 몸을 날려 전장 중앙으로 향한다.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스가 관중들을 향해 달려가는 길목이었다.

“쪽잠이라도 자서 피로가 풀렸습니다. 저는 저쪽을 맡죠.”

마태강 역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거대 뱀이 기어가는 방향이다.

“마동왕 님, 저도 가 볼게요!”

“다녀오겠습니다, 사부!”

윤솔과 유세희 역시 각각 드레이크와 마태강을 따라 산개했다.

나는 아직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키사다 아야카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살려 둔 이유도 알겠지?”

그렇다.

죽으면 사망 패널티 때문에 최소 몇 시간에서 최대 며칠까지 접속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다급한 순간에 접속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것은 그들에게 설욕의 기회, 자국민 유저들을 보호할 기회를 준 것과도 같다.

“……!”

내 말을 들은 아키사다 아야카의 표정이 바뀌었다.

체력도 마나도 없지만 그것은 포션을 마시면 될 일이다.

비록 대회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타이밍이 아니니.

나는 뒤에 있는 일본 팀 전원을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의 힘을 무시한 게 아니라 인정했기에 살려 뒀던 거야.”

내 말을 들은 모두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표정 변화가 큰 이는 바로 아키사다 아야카였다.

*       *       *

한편.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황은 점점 유저들 측에 불리하게 기울고 있었다.

중국 팀 ‘제왕세기’와 일본 팀 ‘쥬신구라’는 다급하게 회의를 시작했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A+등급 몬스터들. 한 눈에 봐도 십 수 마리는 되어 보인다.

자욱한 포연 속이나 지하에서 날뛰고 있는 놈들까지 카운팅하면 아마 수가 더 늘어나겠지.

현재 한국 팀이 막고는 있었지만 워낙에 고등급 몬스터 웨이브인지라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우리도 다른 중국 랭커들을 불러오지.”

“안 그래도 이 자리에 일본 랭커들이 많아. 다들 간발의 차로 아깝게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이들이다.”

“…그리고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않은가.”

말을 마친 중국, 일본 랭커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전장 한 구석을 바라보았다.

마동왕.

한국 팀의 리더이자 오늘을 시작으로 자타공인 아시아 넘버원이 된 사내.

그는 전장에서 자그마치 세 마리의 A+등급 몬스터를 막아서고 있었다.

거대 거인과 성난 황소, 늙은 도마뱀이 천지를 무너트릴 기세로 날뛰는 것을 침착하게 제압하고 있는 마동왕.

마침 그가 있는 쪽은 A+등급의 몬스터들이 협곡을 빠져나가 관중들을 습격하기 딱 좋은 길목이었다.

중국 팀의 리더 장마오 쉰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협곡 사이의 진입로를 무너트려야 해. 집중포격만이 답이다.”

언어는 달랐지만 뜻은 땅에 쓴 글자로 금방 번역되었다.

아키사다 아야카가 항의했다.

“잠깐! 저기로 포격을 하겠다고요? 저기엔 한국 팀, 아니 마동왕 선수가 있잖아요!”

“하지만 방법이 없어. 일단 저 길목을 차단해야 다른 랭커들이 여기까지 달려올 시간을 벌 수 있다.”

장마오 쉰의 말에 중국 선수들은 다들 씁쓸한 표정으로 땅만 쳐다본다.

암묵적인 동의.

그러자 일본 선수들 역시도 착잡한 심경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별 수 없어. 한시가 시급하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수밖에.”

“어차피 리그의 우승팀은 한국 팀이잖아.”

“마동왕, 그는 아시아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중국 팀과 일본 팀은 무거운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다.

반대하는 아키사다 아야카를 제외한 아홉 명의 리틀리그 참가자가 힘을 모아 협곡 사이를 향해 집중 포격을 날렸다.

버스터 딜!

엄청난 충격파가 일어나 협곡 상층부를 무너트려 길목을 뒤덮는다.

콰콰콰콰쾅!

제아무리 A+등급 몬스터라고 해도 이 산사태에 깔리고 멀쩡할 수는 없었다.

[우-오오오오오!]

수많은 몬스터들이 자연재해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리고 한국 팀도.

[카악! 카아아악!]

[그르르륵…….]

[쉬익! 쉬이익!]

막대한 양의 토사를 견디고 살아남은 A+등급 몬스터들도 대부분 힘이 빠져 비틀거린다.

그때, 중국과 일본 팀 랭커들 50명가량이 막 협곡에 도착했다.

“도우러 왔다!”

“아시아는 하나!”

“이제는 걱정 마, 짐은 나눠서 지자고!”

모두들 간발의 차이로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지만 실력만은 어디에 내놓아도 꿇리지 않는 초고수들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시아 최고의 실력자들이 속속들이 증원을 오고 있다.

방송을 지켜보던 스트리머, 의협심 넘치는 관객, 실력을 드러내지 않은 은거고수 등등.

그뿐만이 아니라 도망치던 관중들 역시 돌아서서 무기를 꼬나 쥔다.

“우리도 할 수 있어!”

“도망가지만 말고 싸워 보자!”

“아시아 최고 랭커들이 함께 싸우는데 뭐가 무서워!”

“우리 수가 훨씬 많다!”

“오늘 아니면 저런 고렙 몬스터 사냥해 볼 기회가 어디 있겠어!”

수많은 프로게이머, 혹은 아마추어 랭커, 유명 스트리머, 그 외 게임 좀 한다 하는 고수들이라면 모조리 되돌아왔다.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이 세 나라의 시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모든 이들.

A+등급 몬스터들의 웨이브는 한국 팀의 희생과 수많은 자원참전용사들의 용기로 이렇게 끝이 났다.

……아니, 끝이 나는 듯 보였다.

“푸스스스스. 예상대로 되돌아오는군.”

음흉하게 꿈꾸는 조디악, 이 사이코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이윽고.

…번쩍!

아직 덜 찢어진 주문서가 조디악의 손에서 최후의 핏빛을 내뿜었다.

찌이이익!

주문서가 완전히 찢어짐에 따라 밤하늘에 난 균열도 완전히 갈라져 열린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마지막 ‘중간 보스’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데모고르곤> -등급: S / 특성: 어둠, 야수, 하수인, 싸움광, 1:1, 맹독, 마나 번, 침묵

-서식지: 만마전(萬魔殿).

-크기: 9m.

-빛과 어둠이 갈라질 때 발생한 어둠의 부스러기에서 파생된 존재. 원시시대 때부터 명계와 관계가 있었던 위대한 악마이다.

시선을 마주치거나 그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금기시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악마이며 7대 악마성좌인 마몬조차 ‘그 무서운 데모고르곤!’이라 평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다.

<발록 ‘가이악사’> -등급: S / 특성: 어둠, 야수, 하수인, 싸움광, 1:1, 유폭, 광폭, 자폭, 불의 씨앗

-서식지: 만마전(萬魔殿).

-크기: 9m.

-오로지 싸우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고대의 악마로 한때에는 정령왕이었던 적도 있는 듯하다.

크고 작은 10만여 번의 전장에서 모두 살아 돌아온 바 있으며 자신보다 강한 존재의 말이 아니면 전혀 듣지 않는다.

데모고르곤과 발록.

S급 몬스터의 참전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