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74화 (474/1,000)
  • 475화 한국vs일본 (4)

    히데사토 유키에.

    전 일본 랭킹 6위에 빛나는 천상계 랭커.

    그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안에 현존하는 모든 종류, 모든 재질의 골렘을 다룰 수 있기로 유명한 마법사이다.

    히데사토가 만들어낼 수 있는 골렘 중 가장 강력한 골렘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오키노도리시마’라는 이름의 골렘으로 키 25미터, 몸무게 400톤의 위엄을 자랑한다.

    무려 섬 크기에 필적할 정도로 거대한 모습.

    이런 크기의 골렘이 한번 날뛰기 시작하면 당해 낼 도리가 없다.

    원거리에서 강한 화력을 쏟아 붓지 않는 한 히데사토 유키에의 골렘 진격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전무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애초에 이런 괴물 같은 골렘을 상대로 접근전을 시도하는 바보는 아무도 없겠지만 말이다.

    근접 딜러를 상대로 206전 198승 8패, 승률 96%라는 놀라운 전적은 이를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었다.

    한데?

    “…컥!?”

    히데사토 유키에는 목구멍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눈알이 자꾸만 위로 돌아가 버리려 한다.

    그것을 힘겹게 밑으로 당기자 이내 아래의 광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동왕!

    그가 어느새 히데사토 유키에의 목을 잡고 위로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히데사토는 당최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얼마 전의 일을 회상해 보았다.

    필드에 출전하자마자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이 보였다.

    그래서 늘 그랬듯, 범접불가 최강의 콘크리트 골렘을 소환해 전방을 향해 진격시켰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 다음의 기억이 없다.

    인생에서 그 몇 초만을 지우개로 지워 버린 것처럼.

    ‘…마지막으로 뭘 봤더라?’

    히데사토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문득 떠올랐다.

    이제 생각났다.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은 주먹이었다!

    시야를 완전히 메꿔 버릴 정도로 커다란 주먹!

    …콰콰콰쾅!

    천지가 통째로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거대한 콘크리트 골렘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골렘의 몸을 꿰뚫은 주먹은 곧장 자신의 얼굴을 향해 확 덮쳐 왔다.

    그 위압감에 고스란히 노출된 히데사토는 선 채로 잠시간 기절한 것이다.

    …그리고 정신이 들자 상황은 이렇게 절망적이다.

    “…커헉! …히익!?”

    히데사토 유키에는 공포에 질려 버둥거렸다.

    지금껏 근접 딜러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본 역사가 없다.

    전적에 포함되어 있는 8패는 마나를 다 소진해서 더 이상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깔끔하게 기권했던 것이기에 지금 이런 상황은 더더욱 낯선 것이었다.

    맞는다.

    …아니, 죽는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힘이 담긴 주먹에 맞아 죽는다면 트라우마가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그때.

    마동왕은 히데사토의 목을 조르던 손을 살짝 느슨하게 풀었다.

    툭-

    그는 거의 다 잡았던 히데사토를 맨땅에 툭 던져 놓았다.

    “켁! …케엑!?”

    히데사토는 숨을 몰아쉬며 바닥을 기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왜 풀어 줬는지 몰라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히데사토에게 마동왕은 그저 무심하게 한마디 했을 뿐이다.

    “가서 네 언니들 불러와라.”

    *       *       *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본진으로 돌아가는 히데사토 유키에를 보며 생각했다.

    ‘히데사토 유키에의 HP는 딱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고일 만큼만 남았겠군. 골렘이 강제로 파괴된 탓에 마나도 오링났을 테니 사실상 전투불가능이라고 봐야지.’

    그녀의 수준은 내가 잘 안다.

    회귀 전의 기억도 있고 최근 스펙을 분석한 자료도 많기에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다음 선수가 필드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잘도 유키에쨩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네?”

    스즈키 히카리.

    그녀는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꽤나 성격이 화끈한 그녀는 그 성격에 어울릴 정도로 뜨거운 불길을 주로 다룬다.

    아키사다 아야카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 일본 랭킹 3위, 마법사 랭킹 1위를 지키고 있었던 천상계 랭커가 바로 스즈키 히카리.

    물론 지금도 전 일본 랭킹 4위, 마법사 랭킹 2위의 상당한 실력자이다.

    “우리를 무시하는 당신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주겠어!”

    스즈키는 나를 향해 바로 대단위 캐스팅을 시전했다.

    “코타츠(こたつ) 소환!”

    스즈키가 마도서와 지팡이를 휘젓자 허공에 커다란 열돔이 생겨난다.

    마치 광활하고 반투명한 이불이 필드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는 모양새.

    동시에 주변의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스즈키는 나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내가 만들어 낸 코타츠 안에서 화염 속성 기술들의 위력은 두 배로 증가하지. 각오하라고!”

    그렇다. 스즈키가 만들어 낸 이 광대한 열돔은 주변 대기를 점점 뜨겁게 덥히고 있었다.

    마치 일본의 온열기구인 코타츠 안에 들어온 것처럼.

    거기에.

    “간다! 원전 3호! ‘멜트다운’!”

    멜트 다운(Melt down)!

    스즈키 히카리가 사용하는 강력한 화염마법으로 무시무시한 불길이 대지를 녹여 아래로 꺼지게 만드는 자연재해 급 특성.

    이 마법의 최대 온도는 약 2800도에 이르며 두께 16센티미터의 강철 벽조차 녹여 뚫어 버릴 정도다.

    하지만.

    “따듯하네.”

    나는 휘몰아쳐오는 불길을 손으로 후려쳐 모두 걷어 버릴 뿐이다.

    마몬의 건틀릿, 불을 찢고 쇠를 두드리던 대장장이의 오른팔은 모든 불 데미지에 면역을 가진다.

    그러자 스즈키 히카리의 얼굴이 오기로 일그러졌다.

    “흥! 역시나 이 정도로는 안 되는군. 하지만 이것이 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녀는 또다시 마도서를 휘둘러 더욱 더 강력한 마법을 끄집어냈다.

    “받아라! ‘멜트스루’!”

    멜트 스루(Melt through)!

    아까의 멜트 다운보다 더욱 더 강력한 상위마법으로 뜨거운 불길이 구덩이만 녹여 꺼지게 만들 뿐 아니라 주변까지 흘러나오게 만드는 특성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나는 꺾이지 않는다.

    강력한 화염폭풍이 몰아쳤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힘으로 잡아 찢어버렸다.

    그러자 스즈키 히카리가 입술을 콱 깨물었다.

    “……이 정도로도 안 된단 말이지?”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모든 마력을 한계까지 쥐어짜 닥닥 긁어모았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강 최악의 자연재해를 이 세상에 구현해 내기 시작했다.

    “먹어라! ‘멜트아웃’!”

    멜트 아웃(Melt out)!

    스즈키의 멜트 시리즈 중 최강 최악의 초자연재해.

    지금까지 만들어 낸 모든 초고온의 불길을 구덩이 밖으로 끄집어내 사방팔방으로 흩뿌리는 마법으로 시전자가 즉사하지 않을 정도의 체력과 마나만을 남기고 모든 것을 소진하는 것이 특징.

    사실상 자폭에 가까운 특성이다.

    이 마법의 위력을 바지에 설사를 싼 상태로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맨 처음의 마법인 멜트다운이 팬티 안에 설사가 고여 축축하게 젖은 상태.

    그 다음 마법인 멜트스루는 설사가 팬티를 완전히 적시고 밖으로 천천히 흘러내리는 상태.

    그리고 최후의 마법 멜트아웃은 설사가 팬티고 뭐고 완전히 적신 뒤 바지까지 죄다 적시고 그 밖으로 마구 흘러나오고 있는 상태.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코타츠 안이라서 참혹함이 더욱 배가된다.

    “…쓰러져라! 제발!”

    스즈키 히카리는 모든 마력을 쥐어짜 나에게 쏟아 부었다.

    그러나.

    쿠르륵!

    나 역시도 불길이라면 꽤나 일가견이 있는 몸이다.

    내가 발을 구르자 간쇼마루의 발가죽이 오랜만에 제 역할을 뽐낸다.

    시뻘건 불길이 일어 바닥 전체를 통째로 달궜다.

    “나는 코타츠보다는 온돌이 좋더라고.”

    나는 스즈키 히카리가 달구고 있는 영역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을 불길로 지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가 쏟아 붓는 모든 화염 마법을 마몬의 오른팔로 잡아 찢어 버렸다.

    최강의 악마, 최고의 대장장이가 남긴 유품.

    마몬의 망치 건틀릿은 이런 미적지근한 불로는 달아오르지조차 않는다.

    나는 스즈키 히카리가 만들어 낸 화염폭풍을 뚫고 그녀의 멱살을 잡아챘다.

    확!

    내가 스즈키 히카리의 목을 잡고 확 끌어당기자 그녀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비명을 지른다.

    “꺄아아아악!”

    그러나 나는 그녀의 안면에 주먹을 날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까닥-

    다만 주먹만 높이 든 채 턱짓했을 뿐이다.

    “……?”

    스즈키 히카리는 감았던 눈을 조금 뜬 채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뭐 어떡하라구요.”

    거, 답답하긴. 밥을 어디까지 떠먹여 줘야 하나?

    나는 스즈키를 완전히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저 뒤에 있는 일본 본진을 향해 턱짓했다.

    스즈키 히카리는 그제야 내 뜻을 알아듣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살려 줄 테니 빨리 돌아가서 선수교체나 하라는 것이다.

    *       *       *

    고개를 푹 숙인 스즈키 히카리가 본진으로 돌아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되게 야단맞아 본 모범생처럼 풀 죽은 발걸음.

    세상에 전 일본 랭킹 4위의 초고수가 어디 가서 이런 압도적인 굴욕을 겪어 보겠는가!

    심지어 그녀가 향한 곳에는 마찬가지로 축 쳐져 있는 일본 팀 전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맨 처음으로 나섰다가 호되게 당한 우에바라 아츠카네, 그 다음으로 박살이 난 야마카미 시가쿠, 그 다음은 히데사토 유키에, 그리고 이제는 기대주였던 스즈키 히카리까지…….

    “……설마 멜트아웃까지 쓰고도 당할 줄은 몰랐어.”

    스즈키의 시무룩한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내 오시따오시(おしたおし)를 우습게 튕겨낼 줄이야.”

    “…할복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나는 아직도 골렘이 파괴될 때의 기억이 없어.”

    네 선수 모두 완전히 기가 꺾인 모양새.

    그것도 그럴 것이, 이 네 명이 죄다 꺾이기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 모르죠.”

    아직 이렇게 말하는 선수 한 명이 남았다.

    전 일본 랭킹 1위.

    초신성처럼 나타나 부동의 넘버원이 된 존재.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숨겨진 실력을 모두 드러내고 범접불가의 재능을 입증한 천재.

    쿼드라 캐스팅(Quadra casting), 아니 이제 ‘옥타 캐스팅(Octa casting)’의 괴물 마법사.

    아키사다 아야카.

    그녀가 남아 있는 한 일본은 아직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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