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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73화 (473/1,000)
  • 474화 한국vs일본 (3)

    죽음부름 전장.

    오늘 한국과 일본이 맞붙을 곳이다.

    이 바싹 마르고 황량한 대지는 동대륙 중턱에 위치한 고산지대에 넓게 펼쳐져 있다.

    귀를 기울이면 수백 년 전 참수당한 패잔병들의 단말마가 바람에 실려 오는 필드.

    위이이잉!

    일본 측 선수들이 먼저 전장에 소환되었다.

    아키사다 아야카. 그녀는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전장을 살폈다.

    드디어 아시아 최고의 강팀 중 하나인 한국과 붙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팀에는 그녀가 그토록 맞붙어 보고 싶어 했던 호적수가 존재한다.

    마동왕.

    그의 압도적인 플레이에 반해 게임 아이디를 만든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지금 이곳에서 그와 대등하게 싸울 위치와 자격을 얻었다는 것 때문에 아키사다 아야카는 몹시도 뿌듯해하고 있었다.

    한편.

    우에바라 아츠카네와 야마카미 시가쿠는 아키사다 아야카의 호감을 사기 위해 열심히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아야카쨩. 내가 먼저 나가서 기선을 제압할게.”

    야마카미는 우에바라가 오크라서 아야카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아야카는 고개를 저었다.

    “전략적으로 판단할 때입니다. 우에바라 씨가 선봉으로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야마카미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좋았어!”

    선택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에바라가 콧김을 쒹 뿜어내며 전장으로 나섰다.

    …쿵!

    한쪽 발을 높이 들었다가 지면에 내리꽂는 우에바라, 그러자 대지가 옅게 진동하며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마치 모래판에 나선 스모선수를 보는 듯한 위용!

    이윽고.

    위이이잉-

    한국 선수들이 건너편에 소환되었다.

    한데?

    “……!?”

    전장 건너편에 있던 다섯 명의 일본 선수들이 일제히 두 눈을 크게 떴다.

    놀랍게도, 한국 팀 다섯 중 네 명이 수면 모드로 접속한 것이다!

    윤솔, 드레이크, 유세희, 마태강.

    이 네 명은 대지에 누워 있는 자세로 미동이 없다.

    캐릭터의 외형이 깔끔한 걸로 보아 뇌파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모양새.

    …한 마디로 꿀잠 중이라는 것!

    선봉으로 나온 우에바라의 표정이 멍해졌다.

    “뭐, 뭐야? 잠을 자? 이게 무슨…….”

    ‘침대 축구’라는 용어가 있다.

    조금만 몸이 부딪쳐도 침대에 드러눕는 것처럼 누워버리는 플레이를 말한다.

    하지만 ‘침대 게임’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그것도 저렇게 대놓고 누워 자는 상대는 더더욱 처음!

    하지만, 그는 마냥 황당해할 수만은 없었다.

    터억-

    유일하게 깨어 있는 한국 선수.

    바로 내가 전장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       *       *

    “나 혼자면 충분해.”

    나는 일본 선수들을 쭉 훑어보며 말했다.

    한국 팀은 어제의 불미스러운 사고로 잠을 거의 자지 못해 컨디션이 꽤나 나쁘다.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육체의 아드레날린을 뽑아내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엄청나게 짧은 시간 안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E스포츠는 전날의 수면 상태에 따라 결과 기복이 특히나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침대 플레이 하겠다 이거야.’

    그 사정 따위는 아랑곳없이 대회를 졸속으로 진행시킨 한국, 중국, 일본 협회에게 보내는 무언의 항의 메시지가 바로 이 집단 수면 퍼포먼스다.

    한편. 아키사다 아야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나와 1:1로 붙어 보고 싶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듯하다.

    그러니 당연히 5:1의 다구리가 된 것이 달가울 리 없겠지.

    “그렇게 나오신다면 일본 측에서도 제가 제일 먼저……”

    그러나, 아키사다 아야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에바라가 버럭 소리 질렀다.

    “감히 일본을 얕봐!?”

    그는 선수교체를 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콧김을 쒹쒹 뿜어내며 앞으로 돌진했다.

    “오-오오오! 제 75대 요코즈나를 꿈꾸고 있는 내 밀어내기를 받아봐라!”

    우에바라 아츠카네.

    그는 일본 내에서 가장 무겁고 단단한 탱커로 손꼽히는 사내다.

    오크 특유의 강골과 우람한 근육, 거기에 현실 세계에서도 뛰어난 스모의 기량.

    우에바라는 여기에 아무런 아이템도 착용하지 않았을 시 엄청난 근력 상승 보너스를 얻게 되는 특성과 무한대에 가까운 넉백 특성을 패시브로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 내 그 누구도 들어 올릴 수 없다는 무지막지한 몸무게는 덤이다.

    “저 몸무게와 힘, 그리고 밀어내기 능력이라. ……확실히 힘들겠군.”

    나는 짧게 중얼거렸다.

    동시에.

    …쿠우욱!

    나의 왼팔과 오른팔에 힘이 콱 들어간다.

    -<데스웜의 생매장 건틀릿> / 한손무기 / S

    데스웜의 거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증유의 거력이 깃들어 있다.

    -물리 공격력 +9,900

    -특성 ‘와류’ 사용 가능 (특수)

    -<악마성좌 마몬의 대지진 건틀릿> / 한손무기 / S+

    마몬이 쓰던 거대한 망치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산을 두들겨 평지로 만들고, 평지를 두들겨 무저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의 일부가 담겨있다.

    -물리 공격력 +20,000

    -특성 ‘대지진’ 사용 가능 (특수)

    공격력만 해도 3만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수치.

    내가 데스웜의 기운이 실린 왼손을 뻗자 물소처럼 돌진해 오던 우에바라의 몸이 허공에 뚝 멎었다.

    “……어?”

    우에바라는 지금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다.

    그는 계속해서 대지를 박차며 두 손바닥으로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단 1mm도 밀려나지 않았다.

    “……힘 조절을 하는 게 참 힘들겠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쾅!

    딱 한 번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내 오른 주먹이 우에바라의 가슴팍에 닿는 순간 몇 겹으로 중첩된 충격파가 대지 위에 있던 마른 흙을 싹 걷어내 골짜기 밖까지 날려버렸다.

    하늘에 있던 구름들이 모조리 시야 밖으로 날아가 버렸고 시퍼런 하늘빛이 훤히 드러났다.

    동시에.

    우-지지지지지지직!

    우에바라는 그 자리에서 뒤로 튕겨져 날아간다.

    텅- 텅- 텅- …퍼엉!

    그는 물수제비가 날아가는 것처럼 대지 위로 열세 번이나 튕겨졌고 종국에는 높게 솟아있던 암석바위에 구멍을 뚫고 깊게 틀어박혔다.

    쉬이이이……

    바위에 뚫린 시커먼 구멍과 일자 모양의 크레이터만이 길게 그어졌다.

    일격(一擊).

    일동 침묵.

    …….

    게임도 현실도, 모두 조용해진다.

    일본 내 그 누구도 들거나 밀어낼 수 없다고 알려진 우에바라의 몸무게와 힘.

    중국 팀의 에이스 장마오 쉰까지 목 졸라 죽였던 엄청난 피지컬의 그가 지금 눈 깜짝할 사이에 리타이어 되었다.

    “……죽진 않았을 거야.”

    나는 우에바라를 날려 보낸 쪽으로 턱짓했다.

    전투는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나중에 포션을 먹거나 신관의 치료를 받으면 사망 패널티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일본 팀에서 동요가 일었다.

    아키사다 아야카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한 표정.

    그때.

    “다음은 나다.”

    내 앞으로 걸어 나오는 사무라이가 하나 있었다.

    야마카미 시가쿠.

    그는 빈사상태의 우에바라가 구멍 안에서 겨우겨우 기어 나오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 알겠다. 근접전에서 너를 이기는 것은 어차피 힘들 것 같군.”

    나는 대답 대신 싱긋 웃어 주었다. 어차피 가면 때문에 보이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 내 모습에 야마카미는 뭔가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그는 뒤에 있는 본진을 돌아보며 아키사다 아야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야카쨩. 내 모습을 기억해 줘.”

    동시에.

    “이야아아아아앗!”

    야마카미는 온 힘을 다해 나를 향해 돌진했다.

    요도 무라마사가 불길한 핏빛을 뿌리며 나를 향해 쏘아져왔다.

    “…흐음.”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야마카미의 손에 들려있는 ‘묘호 무라마사’는 현 시점에서 꽤나 좋은 아이템이다.

    -<묘호 무라마사(妙法村正)> / 양손무기 / A+

    저주받은 명검.

    주인의 피를 머금었을 때 비로소 진가가 드러난다.

    -공격력 +4,440

    -특성 ‘할복’ 사용 가능 (특수)

    저 ‘할복’ 특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효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를 향해 겁 없이 돌격해 오는 야마카미의 기세를 볼 때 놈은 이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동료인 우에바라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서도 용맹하게 달려드는 야마카미.

    이내 그의 비장의 무기 ‘할복’ 특성이 빛을 발했다.

    …빙글!

    야마카미는 칼을 들고 달려드는 자세 그대로 내 앞에서 뒤로 빙글 돌았다.

    그리고.

    푸욱!

    야마카미는 자신의 칼 무라마사를 거꾸로 꼬나 쥔 채 자신의 배를 향해 깊게 찔러 넣는다.

    그렇다.

    할복 특성은 자신에게 자해 데미지를 입혔을 경우에만 발동되는 것!

    무라마사는 주인의 몸을 관통해 나온 부분의 물리공격력이 300% 폭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야마카미의 배를 뚫고 등으로 튀어나온 무라마사의 칼날은 공격력이 거의 1만 3천에 육박하게 된다는 뜻!

    “…죽어라 마동왕!”

    야마카미는 자신의 배에 칼을 더욱 깊게 쑤셔 박으며 고함쳤다.

    하지만.

    “…어?”

    그는 자신의 배에 꽂힌 칼을 바라보며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배를 뚫고 들어간 칼이 등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꾸우우욱!

    그 이유는 내가 양 손으로 야마카미의 양 옆구리를 꽉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손의 압력에 의해 짓눌러진 야마카미의 몸은 안에 낀 칼날을 꽉 잡게 되어 말 그대로 ‘칼날잡기’의 모양새가 된 것이다.

    “크학!?”

    결국 고통 때문에 칼을 놓친 야마카미는 관통상까지는 입지 않은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물론 내 악력 때문에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야마카미의 목을 잡고 저 멀리 내던져 버렸다.

    쿵!

    야마카미 역시 커다란 바위 하나를 부수고는 나가 떨어졌다.

    우에바라와 마찬가지로 HP가 거의 한계에 이르기는 했지만 사망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로서 아키사다 아야카에게 환심을 사고자 나섰던 두 명의 선봉장이 무참하게 꺾이고 말았다.

    그것도 단 1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이는 국내 선발전 당시에도 볼 수 없었던 최단 신기록!

    한편.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아키사다 아야카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군요. 다른 멤버 넷을 수면모드로 출전시킨 것은 확실히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어요.”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향해 결연한 눈빛을 보낸다.

    “5:1의 싸움을 거만 혹은 조롱의 의미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희는 철저히 전략적으로 당신의 방식에 응해드리죠.”

    굴욕감.

    당장이라도 전장에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는 기색이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나와 일기토를 벌이고 싶겠지만… 지금 이곳은 국제대회이고 그녀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수장이다.

    아키사다 아야카는 사적인 감정을 거둔 뒤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두 명의 선수를 자신보다 먼저 내보내는 전략을 택했다.

    “좋은 판단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누가 먼저 나오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뒤에 누워 잠을 자고 있지만 이 침대 플레이 역시도 나중을 위한 포석.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사전 준비인 셈이다.

    ‘……물론 일본 팀이 그것을 알 리가 없지만.’

    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곧 알게 될 일.

    내 역할은 그 전까지 최대한 분전하는 것이다.

    나는 남아 있는 세 명의 마법사를 향해 손짓했다.

    “덤벼 봐.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 줄 테니까.”

    이것이 바로 불살(不殺) 메타.

    Be폭력 武저항 운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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