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72화 (472/1,000)
  • 473화 한국vs일본 (2)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한국 대표팀이 겪은 수난에도 불구하고 결전의 날은 밝았다.

    한일전!

    한국 대 일본의 경기는 언제나 양국에 있어 뜨거운 화제이다.

    심지어 이번 한일전은 중국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더욱 더 화젯거리였다.

    중국은 정작 개최국인 자신들이 리틀리그에서 바로 떨어진 것에 씁쓸해했고 일본은 한국을 향해 지금껏 갈아 왔던 송곳니를 드러냈다.

    상당수의 중국 관람객들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청난 인파가 상하이 E스포츠 홀로 모여들었다.

    그 수는 거의 15만에 육박한다.

    어마어마한 시선과 함성 속.

    이내 한국과 일본 측 선수들이 무대에 오른다.

    일본 측 선수들이 팬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야마카미 시가쿠, 우에바라 아츠카네, 히데사토 유키에, 스즈키 히카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키사다 아야카가 등장했다.

    “…아야카! …아야카! …아야카!”

    일본 팬들에게 있어 아키사다 아야카의 인기는 단연코 최고였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아키사다 아야카 하나 때문에 응원대상을 바꾼 중국 팬들 또한 상당수 존재했다.

    어린애 같은 얼굴과 그와 상반되는 볼륨감 확실한 몸매, 나긋나긋하면서도 강한 성정과 의외의 곳에서 묻어나는 귀여움.

    거기에 전투에만 돌입하면 혼자서 말도 안 되는 화력을 뿜어내는 반전 매력까지.

    세상 혼자 사는 것 같은 주인공 포스를 여실히 뿜어내고 있는 모습.

    이내 주최 측 MC가 일본 선수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오늘의 소감을 묻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마이크가 간 사람은 스즈키 히카리, 일본 팀에서 가장 순간 화력과 결정력이 강한 화염계열 마법사였다.

    “일본의 뜨거움을 보여 주겠습니다. 한국, 각오하세요.”

    그 뒤는 콘크리트 골렘을 부리는 마법사 히데사토 유키에였다.

    “단아함 뒤의 단단함이 일본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라는 이름의 지진은 절대로 저를 부술 수 없습니다.”

    MC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선수로 마이크를 넘겼다.

    여기서부터는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오크 전사 우에바라 아츠카네가 마이크에 대고 당당하게 신년 포부를 밝힌 것이다.

    “이 경기에서 이겨서 꼭 아야카쨩에게 제 강인한 모습을 각인시키고 싶습니다. 올해의 소원입니다.”

    여기서 약간 일본 응원단의 분위기가 미묘해진다.

    모두의 아이돌로 통하는 아키사다 아야카이기에 우에바라에게 야유를 보내야 하는 게 맞지만… 여기는 일단 국제대회의 관객석이다.

    자칫하면 일본의 이미지가 나쁘게 비칠 수도 있었다.

    가뜩이나 세계의 시선을 부쩍 신경 쓰고 있는 일본이기에 관객석은 야유도, 환호도 나오지 않은 채 분위기만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거기에 더 최악인 것은 다음으로 마이크를 넘겨받은 야마카미 시가쿠 역시도 비슷한 소감을 밝혔다는 것이다.

    “아야카쨩이 저를 직장 동료 이상으로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일본 파이팅!”

    그러자 우에바라와 야마카미의 시선이 허공에서 사납게 맞부딪친다.

    국가를 대표해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원받아가며 나온 자리에서 꼴값도 이런 꼴값이 없다.

    일본 팬들이 있는 관중석 쪽에서는 야유도 환호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지켜보고 있던 한국과 중국 팬들만 영문을 모른 채, 그저 매너 있게 환호와 박수를 보낼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키사다 아야카, 본의 아니게 논란의 주인공이 된 그녀가 마이크를 받았다.

    “……휴.”

    숨길 수 없이 새어나오는 한숨이 지금 그녀의 심경을 잘 나타내준다.

    “그저 열심히 할 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짧은 소감을 전하는 아키사다였다.

    그 뒤는 한국 팀의 소개가 이어졌다.

    협회 측에서 파견된 한국 MC는 정말로 기본적인 역할만을 했다.

    원래라면 자국의 성과를 은근히 드러내는 식으로 선수들의 PR을 유도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일절 없다.

    ‘너희들은 국가대표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는 듯 성의 없는 소개말.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오버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둔 것이나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숙소 침입자 트러블, 이로 인한 핸디캡 등을 언급할 만한데도 그냥저냥 선수의 이름과 소감, 각오 정도만을 전하는 태도.

    나는 그저 혀만 찰 뿐이다.

    ‘쯧쯧, 그따위로 해 봐야 너희만 욕먹지.’

    닳고닳은 뉴비 구단이 해외에서 빛을 발하면 발할수록 협회의 태도는 훗날 더욱 더 논란이 될 것이다.

    납작 엎드려서 협조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어깃장이라니.

    ‘아마 우리가 빅리그로 진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하긴 뭐, 차규엽은 우리가 떨어질 때를 대비해 미리 악플 부대를 고용해 놓기까지 했다잖은가?

    생각은 자유니 굳이 입 아프게 설득할 필요는 없겠다.

    뭐니뭐니해도 우리는 협회에 단 1원의 수수료나 기부금도 내지 않으니 협회에서 아무리 시비를 놓고 딴죽을 걸어도 무시할 수 있었다.

    결국 세상은 실력과 성적이 다인 법이다.

    인맥, 혈연, 학연, 지연 빨로 굴러가는 협회 따윈 엿이나 먹으라지.

    내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드레이크, 마태강, 윤솔, 유세희의 차례가 모두 끝나고 내게 마이크가 넘어왔다.

    아무리 대충대충 넘어가던 MC 역시도 내 앞에서만은 눈치를 보며 은근 띄워 주는 말을 했다.

    “한국 팀의 리더로서 아무래도 책임감이 무거우실 텐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제 주먹이 더 무거울 겁니다.”

    MC가 당황할 정도로 짧은 대답이었다.

    이내 한, 중, 일 모둔 관중석으로부터 엄청난 환호와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 무대 끝으로 향하려 하는데…….

    …꾸벅

    건너편에 있던 아키사다 아야카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인다.

    ‘부담스럽게 왜 저래?’

    나는 그녀의 인사를 씹었다.

    곧 피떡으로 만들어 버릴 상대에게 인사를 받아서 좋을 게 뭔가? 괜히 미안함만 생기지.

    “…….”

    인사를 씹고 돌아서는 내 뒷모습을 아키사다 아야카는 가만히 바라본다.

    돌아섰는데 어떻게 아냐고? 후면 스크린에 뜬다.

    되게 부담스럽네 거.

    나는 한국 측 무대 상수로 되돌아가 엄재영 감독에게 향했다.

    “그럼 엔트리 새로 짠 대로 갑니다?”

    “어. 힘내고!”

    엄재영 감독은 답지않게 긴장한 눈초리로 내 등을 팡 쳤다.

    이번 결전은 정말로 중요하다.

    빅리그로 향하는 티켓은 한국과 일본 중 한 나라에게만 주어질 테니까.

    “야 마왕아, 너 이번에는 진짜 좀 잘해야 해. 응? 자신 있지? 응 임마? 가면 쓰고 있어서 뭐 표정을 알 수가 있어야지 거.”

    “언제는 못한 적 있어요? 이번이 아니라 늘 잘해 왔으니 걱정 좀…!”

    “진짜. 이번에 잘하면 진짜 내가 뽀뽀해 준다, 진짜.”

    “와, 업계포상. 진짜 잘해야겠는데요 이거? 의욕 너무 생긴다.”

    엄재영 감독의 호들갑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그것도 한일전. 온 국민의 기대가 무섭다.

    특히나 일본과의 싸움에서는 뭐 하나 지는 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현 국민들의 정서.

    심지어 코를 파서 나온 코딱지 크기조차도 지면 안 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나는 캡슐 커버가 열리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소파에 완전히 드러누워 버렸다.

    바로 그때.

    위이이잉…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동왕 명의의 2번 폰.

    ‘뭐야? 또 아키사다는 아니겠지?’

    내가 혹시나 해서 핸드폰 화면을 켰을 때.

    “……!”

    나는 자리에서 용수철 튕기듯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GM 처리 2반의 반장 남세나.

    그녀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온 것이다!

    <아 문자 지금 봄ㅡㅡ>

    기묘한 채팅체로 시작하는 문자 메시지는 꽤나 길었다.

    <1. 조디악이 노리는 것은 그레이 시티의 히든 퀘스트 중……>

    <2. 조디악의 최근 행보는 ‘만마전 외성’ 진입 후 레이드 실패 및 도주……>

    <3. 조디악이 근래에 습득한 히든 피스는……아이템 성능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번 아챔에서 하려는 짓은 아마……>

    <4. 정보료는 후불로 청구할 것임! ※개비쌈>

    나는 남세나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아니, 이것들을 왜 지금 말해 주는 거야!?’

    하나하나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특급 정보다.

    조디악, 그동안 몇 번 죽였기에 무의식중에 방심하고 있었나 보다.

    놈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몇 시간, 아니 몇 분만 늦게 알았으면 정말로 큰일 날 뻔했네.”

    식은땀 한 방울이 내 등에 패인 골짜기를 차갑게 흘러내린다.

    나는 재빨리 우리 구단 멤버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았다.

    경기를 앞두고 조금씩 긴장하고 있던 드레이크, 마태강, 유세희, 윤솔이 내게로 다가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멤버들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너희들도 전투를 하게 될 거야.”

    내 말을 들은 모두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원래 맨 처음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1. 원거리 딜러인 드레이크가 첫 주자로 나가 견제구를 던진다.

    2. 팔팔한 상태의 근접딜러 마태강이 그 뒤를 이어 교체한다.

    3. 힐러인 윤솔이 마태강과 태그하며 힐을 걸어준다.

    4. 체력이 가장 약한 유세희가 나와 번갈아가며 출전한다.

    그리고 그 계획은 나의 퍼포먼스를 위해 수정되었다.

    1. 내가 나가 다 때려 부순다.

    내가 첫 주자로 나가 모든 일본 선수들을 올킬하는 쪽으로.

    일단 시작부터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 줘서 한국 팬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나아가 협회의 코를 납작하게 짓눌러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어차피 마태강의 실력이야 이미 증명된 것이고 윤솔과 드레이크, 유세희의 실력은 후에 빅리그에서 여과 없이 뽐내도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윤솔과 드레이크, 마태강, 유세희는 어쩌면, 아니 높은 확률로 리틀리그 2차에서 아예 활약이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마당에 내가 갑자기 전투 전 ‘너희들도 싸워야 한다’는 말을 하자 불안감이 들 수밖에.

    그것은 내가 일본 선수들을 혼자 다 잡을 자신이 없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나는 우선 멤버들의 불안을 잠재웠다.

    “걱정 마. 일본 선수들 다섯 명이 아니라 오십 명이 덤벼들어도 이길 수 있으니까. 문제는…….”

    나는 멤버들을 모아놓고 속삭였다.

    이윽고.

    내 말을 들은 윤솔, 드레이크, 마태강, 유세희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유세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살짝 물었다.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까요?”

    하지만 윤솔과 드레이크, 마태강은 내 말에 단 한 조각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후다닥-

    나를 제외한 전 멤버들은 모두 소파에 반듯한 자세로 드러누웠다.

    전쟁을 앞두고 다섯 명 중 네 명이 잠드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뭐 수면모드로도 접속은 가능하니 상관없지.’

    나는 엄재영 감독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신신당부한 뒤 무대로 올라섰다.

    이윽고, 나는 엄재영 감독에게 짧게 말했다.

    “계획이 바뀌었어요.”

    “…뭐?”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이 무슨 소리냐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나는 캡슐의 뚜껑을 닫기 전, 그에게 한마디 던졌다.

    “아무래도 침대 축구… 아니, 침대 게임을 해야겠습니다.”

    ……?

    엄재영 감독은 당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내가 무대에 올라가 캡슐에 눕자마자 전용진 캐스터의 정겨운 오프닝 멘트가 들려온다.

    [경기! 시작합니드아아아아아!]

    이역만리 타국에서 은근히 힘이 되는 저 목소리.

    한국 VS 일본

    아시아 최대의 빅 쇼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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