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71화 (471/1,000)

472화 한국vs일본 (1)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병원 의자에 앉아 있다.

내 눈앞에는 병원 침대에 누워 색색 숨을 쉬는 유다희가 보인다.

지난밤 의문의 사고로 인해 쓰러진 유다희,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건강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다만 독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당분간 입원해서 요양을 하기로 했다.

내 옆에는 유창이 침중한 안색으로 서 있었다.

“병원 보안은 꼼꼼하게 체크했습니다 형님.”

“고생했어. 네가 제일 힘들 텐데.”

나는 그런 유창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옆에는 유세희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유다희의 손을 잡고 있었다.

“너희들은 당분간 여기에 있어. 다희 깨어나면 연락 주고.”

나는 유창과 유세희를 돌아본 뒤 그대로 병실 문을 열고 나갔다.

사실 나 역시 화가 나서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이 힘들 정도다.

CCTV를 돌려보니 유다희를 습격한 이의 정체는 바로 나왔다.

‘……조디악.’

아마 놈은 야시장에서부터 나를 추적했을 것이다.

결국 나 때문에 벌어진 인재(人災).

‘이 빌어먹을 자식이 왜 호텔까지 들어왔을까?’

그 클로즈 베타인지 지랄인지에 대해 더 얘기할 게 남아서?

아니면 게임에서 죽은 복수를 하기 위해?

만약 전자가 이유라면 이놈은 미친놈이고 후자가 이유라면 더욱더 미친놈일 것이다.

그 외에 풀리지 않은 의문점은 더 있었다.

조디악은 왜 유다희를 죽이지 않은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조디악은 미국에서만 수십 명을 살해한 사이코 연쇄살인범이다.

유다희가 쓰러졌을 때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을 텐데도 CCTV 속 조디악은 그저 유유히 사라질 뿐.

물론 천만다행인 일이지만 말이다.

‘보안에 더더욱 신경 써야겠어.’

나는 당장 유다희의 병실 주변에만 수십 명의 경호원을 배치했다.

또한 내가 머물던 호텔 또한 옮기기로 결정했다.

호텔을 옮기며 전에 머물던 곳을 조사한 결과 상당히 많은 몰래카메라와 도청장치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공안의 힘까지 빌려 싹 훝은 결과 객실과 로비에만 십 수 개의 초소형 장치들이 발견되었다.

전부 다 조디악이 1층부터 올라오며 설치한 장비들이었다.

“…카메라는 그렇다 쳐도, 도청장치들 수준이 아주 미쳤군.”

음향인식에 따라 키워드별로 대화를 수집하고 녹음, 전송하는 장치.

그 안에 입력되어 있는 키워드를 분석하니 다음과 같다.

#마동왕 #고인물 #아챔 #맵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일본 팀 #중국 팀 #매드독 #조디악 #김정은 #뎀 #데우스 엑스……

세밀한 키워드들이 쭉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니 소름이 돋는다.

까딱 잘못했으면 우리끼리 주고받는 모든 중요 대화들이 수집되어 저쪽에 전달될 뻔했다.

이 최악의 참사를 막아준 것이 바로 유다희다. 나는 그녀에게 엄청난 빚을 진 것이 되어 버렸다.

“……마음이 무겁네.”

나는 유다희가 있는 병실을 한번 돌아보았다.

그녀는 지금 감기몸살 기운 때문에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그나저나, 둔기에 머리를 맞고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는데 다친 곳이 거의 없다니. 기적일까, 아니면 원래 몸이 튼튼한 걸까.”

미안한 가운데도 약간 황당하다.

어떻게 보면 참 악운에 강하다고 해야 하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다희가 큰 탈 없어 준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병원 밖으로 나갔다.

휘이잉…

눈발이 섞인 찬바람이 불어 내 얼굴을 때린다.

정원 쪽에 서 있던 엄재영 감독이 나를 발견하곤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어, 마왕아. 다희 씨는 좀 어떻대?”

“건강에는 이상 없대요.”

“휴우, 다행이다. 바로 퇴원?”

“그래도 많이 놀란 것 같으니 이삼 일간은 입원해 있어야죠. 애초에 독감도 심했고.”

유다희는 마교 팬클럽의 회장이니만큼 구단 차원에서도 VVIP 게스트이다.

엄재영 감독이 이토록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손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중국 팬클럽 측에서도 매우 유감스러워 하는 것 같아. 공안의 힘까지 빌려서 호텔 싹 훝었고 장비 밀반입이나 신분 위장을 도와준 업체 관계자들 전부 소환 조사 받는 중이야. 최고 무기징역까지 구형될 것 같다.”

“……멤버들은요?”

나는 유다희 다음으로 걱정되는 사람들을 물어보았다.

엄재영 감독은 한숨을 쉬었다.

“호텔 뒤집고 또 믿을 만한 숙소 알아보고 이동하느라 부산스럽지. 애들 어제부터 잠 한숨 못 잤다. 컨디션이 말이 아니겠어. 하필 경기 하루 전에…….”

나는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세상에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이다니.

조디악 이놈 하나가 참 내 일을 왕창 망쳐 놓는다 싶다.

‘……처음에 발견하는 즉시 손을 썼어야 하는데.’

역시 조디악은 보는 족족 죽이든가 해야 한다.

찜찜함을 참고 미뤄 놓으면 바로 화가 되어 돌아오는 존재.

“그래. 이번에는 내가 한 방 먹었다. 다음에는 배로 돌려줄게.”

나는 이를 갈았다.

드레이크에게 배웠던 교훈을 떠올릴 차례다.

‘은혜는 두 배로, 복수는 네 배로.’

나는 예전에 처리 2반의 반장 남세나에게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지금 조디악이 게임 속에서 준비하고 있을 빅 이벤트.

그것이 뭔지 제대로 조사해서 알아내야겠다.

‘뭐 얼추 짐작은 간다만…….’

하지만 일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정보가 더 필요했다.

나는 지난번에 받았던 남세나의 연락처를 핸드폰에 입력하고 전화를 걸었다.

필요한 정보는 조디악이 ‘살인자들의 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대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정도.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테지.

‘당시 남세나는 조디악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었지?’

일 잘하기로 소문난 처리 2반의 반장이다.

뭔가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뚜르르르……

긴 신호음.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시차가 1시간 밖에 나지 않으니 딱히 잘 시간도 아닌데.

나는 남세나에게 대략의 사정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내 놓았다.

최대한 빨리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며.

한편, 내 통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엄재영 감독은 영 답답한 표정이었다.

아마 일이 뜻대로 잘 안 풀린 모양.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며 물었다.

“……경기 미뤄 준대요?”

엄재영 감독은 방금 전까지 중국과 일본 게임협회 관계자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다.

한국 선수들이 사정이 있어 대회 직전에 잠을 설쳤는데 혹시 대회 일정을 조금만 미뤄 줄 수 있느냐는 것이 용건이었다.

‘뭐, 미뤄 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사실.’

나도 눈치가 있는데 분위기를 모를까. 그냥 답답해서 한번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엄재영 감독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안 미뤄 준대. 미뤄 줄 생각 없대. 돌아가래.”

“……쩝. 사정 좀 봐주지.”

“일본 협회 꼰대들의 항의가 엄청 거세더라. 왜 개인사정으로 대회를 연기해주냐고. 팬들을 생각한다고는 하는데… 지들이 언제부터 팬들 그렇게 챙겼어? 그냥 한국 팀 텐션 떨어진다 싶으니 옳거니 하는 거지.”

“중국 측에서는 뭐래요?”

“대회 일정을 미루면 한국 팀이 처한 사실이 아시아 전체에 알려질 거고 그러면 공안이 무능하다고 욕먹는 것 아니냐고 안 된대. 사정 좀 봐 달라고 애걸복걸하더라. 부시장까지 나와서 무릎 꿇고 애원하는데 별 수 없어 보여.”

“음. 그럼 한국 측에서는?”

사실 나도 물어보면서 아무런 기대도 안 했다.

내가 묻자 엄재영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협회는 ‘이 모든 사태는 우연이며 한국의 귀책사유가 맞다’라고 판단했단다.”

“역시. 도와주기는커녕 발목만 잡네요.”

“차규엽 그 새끼가 또 뒤에서 손을 쓴 것 같은데. 후…….”

엄재영 감독은 속이 타는 듯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쭉 들이켰다.

밖에서 얼마나 오래 고민한 것인지 뜨거웠던 커피에는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내가 그 모습이 안타까워 무어라 입을 열려 할 때.

-띠링!

핸드폰이 울리며 문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남세나에게 온 것인가 싶어 재빨리 확인했지만 아니었다.

아키사다 아야카, 일본 팀의 에이스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안녕하세요 마동왕 님. 별 일 없으신가요? (◞‿◟;;)>

내가 답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안녕하세요 마동왕 님. 별 일 없으신가요? (◞‿◟;;)>

<안녕하세요 마동왕 님. 별 일 없으신가요? (◞‿◟;;)>

같은 내용의 문자가 두 번이나 연달아 더 왔다.

그리고는.

<죄송합니다. 문자 보내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ㅠㅅㅠ)...>

<어제부터 일본 협회 관계자들이 묘하게 기뻐하는 눈치인 것이 신경 쓰여서 여쭤보았습니다. 같은 나라 동료들이기는 하지만 별로 성격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3 •́)>

<혹시 한국 팀에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해서요. 만약 대회 일정을 연기하고 싶으시다면 연락 주셔요. (˙ ꒳ ˙)>

.

.

나는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덮었다.

“일본 협회가 기뻐하고 있다라. 흐음. 자기네들이 유리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묘하게 신경이 거슬린다.

내 성격이 꼬여서 그런가? 어딘가 고도의 심리전을 걸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 모두가 나를 꺾으려 하는 듯한 압박감과 중압감. 그리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까지.

세계리그에 나오니 의심만 깊어졌다.

나는 피식 웃고는 옆에 있던 엄재영 감독에게 말했다.

“형.”

“응?”

“그냥 진행하죠, 경기.”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그래. 사실 별 수 없기는 해. 세희는 언니 옆에 붙어있느라 잠을 거의 못 잤으니 맨 뒤에 배치하고, 드레이크와 태강이를 앞으로 좀 뺀 다음에 솔이를……”

하지만 나는 엄재영 감독의 팔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배치 계획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뭐? 그러면?”

맨 처음에는 드레이크와 윤솔의 기량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픽과 조합을 최대한 나 없이 짜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제가 제일 먼저 나갑니다.”

그 말에 엄재영 감독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 설마?”

그렇다. 그 설마가 맞다.

1빠, 그리고 깽판.

멤버들의 기량은 나중에 빅리그에서 보여 줘도 상관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이 확 뚫리는 사이다.

통쾌한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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