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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70화 (470/1,000)
  • 471화 의심 (2)

    조디악.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씩 웃어 보인다.

    “역시 나는 흰 가운이 잘 어울려. 크, 옛날 생각나는군.”

    청소업체 직원으로 위장한 조디악은 콧노래를 부르며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락스와 빗자루, 그리고 기타 잡다한 것들이 든 플라스틱 통을 카트에 옮긴 뒤 밀기 시작한다.

    호텔 직원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라기 보다는 무관심하게) 옆을 스쳐 지나갔다.

    조디악은 마스크를 몇 번 고쳐 쓴 뒤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귀에서는 그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지령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정은의 목소리였다.

    [최상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보안이 철저하니까 거기서부터는 계단으로 가. 6번 계단은 업체 직원들만 다녀서 보안이 좀 허술할 거야.]

    “푸스스스… 걷는 건 피곤한데.”

    [어쩔 수 없잖아. 마동왕 감시 안 할 거야?]

    “그냥 엘리베이터 가드들한테 칼침 몇 방 놔 주면 안 되려나?”

    [안 되지, 오늘은 평화적으로 도청기랑 몰카만 설치하러 온 건데. 그리고 도깨비들 말고는 사람 안 죽인다며?]

    “내가 언제 일반인 죽이겠대? 누굴 살인마로 아네. 그냥 콕 한 번씩만 찔러 주자는 거지.”

    그때.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조디악은 투덜투덜거리며 비상구로 향했다.

    중간에 한번 신분 확인을 해야 하는 검문소가 있었지만 무인이었고 또 목에 걸고 있는 청소업체 출입 카드는 진짜이기에 별 상관없었다.

    조디악은 센서에 바코드를 들이밀며 중얼거렸다.

    “아니,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데. 고인물 그놈도 이 호텔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했지?”

    [분명해. 철우가 봤댔어.]

    “그 바보 놈 말이 정확하려나 모르겠네. 아니, 그보다 이 호텔은 마동왕 소유의 호텔이라며?”

    [그렇지. 그건 철해가 확인했고.]

    “이쯤 되면 마동왕이랑 고인물이 동일인물 아니냐? 고르딕사 때도 그렇고, 천공섬 때도 그렇고. 같이 다니는 멤버가 겹치잖아? 그 활잽이 놈하고 네가 싫어하는 예쁜이도 그렇고.”

    그러자 김정은의 한심해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왜 안 되는데?”

    [체격 차이가 심하잖아. 마동왕 키가 훨씬 더 크다고. 골격도 그렇고.]

    “그거야 최신 깔창으로 커버할 수 있지. 어깨 뽕이랑.”

    [걔가 뭐하러 그런 짓을 꾸미겠냐.]

    “모르지. 무슨 음흉한 속셈이 있는지는. 그리고 같이 다니는 멤버가 겹치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러자 김정은은 조디악의 의문을 일축했다.

    [넷이 친하대.]

    “…활잽이랑 예쁜이는 몰라도 가면 놈이랑 변태는 서로 친할 성질머리들이 아닌데?”

    [사진도 있어.]

    동시에 조디악의 핸드폰이 한번 울렸다.

    구식 폴더폰.

    그것을 열자 안에 문자로 전송된 사진이 보인다.

    덜렁교와 마교의 퀴즈배틀 당시 마동왕과 고인물이 키스를 하는 사진이었다.

    “……진짜 많이 친한가 보네.”

    조디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혹을 접기로 했다.

    애초에 자기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음흉한 김정은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뭐.

    “근데 넌 그 사진을 왜 가지고 있냐?”

    [흐흐흐, 그냥. 개인 취향이야.]

    김정은의 말에 조디악은 그냥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래 뭐, 나중에 몰카랑 도청기 회수해서 조사해 보면 확실해지겠지.”

    [쓸데없는 의심할 에너지로 일이나 열심히 해.]

    “자꾸 명령하지 마라 망할 년아.”

    그때.

    “야.”

    그를 붙잡아 세우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

    조디악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녹색 불빛이 어스름한 비상구 난간 및, 한 여자가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순간 조디악의 입꼬리가 비죽 말려 올라갔다.

    ‘아는 얼굴이네?’

    어둠 대왕을 잡기 위해 들어갔던 고성에서 처음 봤던 여자.

    그 이후 고인물이라는 녀석을 만나러 갔을 때 한 번 더 봤었다.

    자기를 두 번이나 죽인 상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유다이(YOUdie)였던가? 닉네임이.”

    “현실에서 게임 닉 부르지 마라, 사이코야.”

    유다희는 엊그제 고인물에게 들었던 일침을 그대로 써먹으며 약간 뿌듯해했다.

    하지만 조디악은 그저 음산하게 웃을 뿐이다.

    “그래. 너도 한번 꼭 만나고 싶었어.”

    말을 마친 그는 앞에 있던 청소용구함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유다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디악이 꺼내든 것은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 뾰족한 쇠붙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빛나지 않게 검은 칠을 해둔 송곳이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미친 새끼. 뭐 그런 걸 들고 다녀?”

    “푸스스스스. 오? 안 도망가나? 보기보다 배짱이…….”

    하지만, 조디악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유다희가 냅다 로우킥을 날려 조디악의 무릎을 꺾어 놨기 때문이다.

    “어?”

    조디악은 선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

    유다희는 그런 조디악을 향해 씩 웃었다.

    “뭐 때문에 여기까지 기어 들어 왔는진 모르겠는데, 넌 그냥……?”

    문득, 유다희는 말을 중간에 멈췄다.

    조디악의 허리춤에 있는 카메라 선과 도청기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쓰레기 새끼네.”

    유다희의 눈에 경멸이 가득 찼다.

    한편, 조디악은 다리를 툭툭 털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눈앞에 있는 유다희를 보며 낄낄 웃었다.

    “이거 아주 또라이 년일세.”

    조디악은 손에 말아쥔 송곳을 한층 더 단단하게 쥐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유다희의 얼굴에 순간 놀람이 스친다.

    ‘어? 어떻게 일어나지? 무지 아플 텐데?’

    유다희는 약간 당황한 채로 한 번 더 발을 휘둘렀다.

    퍽!

    이번에는 묵직한 미들킥이 조디악의 옆구리에 꽂혔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유창도 쩔쩔매는 유다희의 킥이다.

    하지만 그것을 맞았음에도 조디악은 그저 실실 웃을 뿐이었다.

    부웅!

    조디악은 측면을 향해 송곳을 내리긋듯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 유다희는 고민했다.

    ‘빠질까? 들어갈까?’

    빠지기에는 거리가 애매하다.

    고개를 뒤로 빼도 얼굴에 큰 흉터가 남을 것 같았다.

    결국 유다희는 오히려 머리를 안으로 들이밀기로 했다.

    …빡!

    조디악이 휘두른 송곳 옆면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았다.

    찔리거나 베이지는 않았지만 삼단봉 같은 것에 매섭게 얻어맞은 충격과 고통.

    하지만 그 순간에도 유다희는 주먹을 날려 조디악의 턱을 후려갈겼다.

    “억!?”

    조디악은 턱뼈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며 물러섰다.

    무통증 증후군 탓에 고통은 느끼지 않았지만 뇌진탕만은 확실하게 그의 몸을 흔들어 놓았다.

    “푸스스스스. 아니, 무슨 여자가…….”

    조디악은 눈을 감싸 쥔 채 뒤로 비틀비틀 물러났다.

    동시에.

    와르르르르르-

    유다희는 쓰러지는 동시에 청소용구함을 잡아 엎어 버렸다.

    그 안에서 카메라나 도청기 등 각종 도구들이 죄다 쏟아져 계단과 계단 사이의 틈으로 떨어져 버렸다.

    “하하, 뒈져라. 몰카충 짜식아.”

    유다희는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훔치며 비틀거린다.

    조디악은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반쯤 벌렸다.

    “진짜 상또라이구만 이거.”

    보통 여자는, 아니 보통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저 살려달라고 빌 뿐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속이 악과 깡으로만 이루어져 있는지 마지막 순간에도 일을 방해하고 있었다.

    조디악은 땅에 닿아 망가진 장비들을 내려다보았다.

    민감한 전자장비들이 몇 훼손되었다.

    물이나 열에는 강해도 물리적인 충격에는 한없이 약한 기계들.

    심지어 나사나 양면테이프, 스위치 등의 자질구레하면서도 막상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비들 역시 난간 사이의 틈으로 죄다 굴러 떨어져 버렸다.

    [세상에, 일이 실패하려면 이렇게 어이없이 실패할 수도 있구나.]

    귓가에서 김정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디악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년 하나 때문에 별 황당한 일을 다 겪네, 진짜.”

    말을 마친 조디악은 유다희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컥!”

    유다희는 비틀거리던 상태로 뒤로 쓰러져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야 했다.

    송곳 옆면에 머리를 세차게 얻어맞은 상태로 배를 맞은데다가 계단에서 구르기까지 했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이내, 바닥에 쓰러진 유다희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고이기 시작했다.

    조디악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시하고 그냥 계단을 오를 심산이었다.

    그 순간.

    “그 밑에 누구야?”

    계단 위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조디악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송곳을 말아 쥐었다.

    그때.

    [어쩔 수 없지. 일단 빠지자. 사람들 오면 일 커져.]

    김정은의 철수 오더가 내려졌다.

    애초에 오늘은 카메라와 도청기만 설치하러 온 것이었으니 일을 크게 벌릴 것 없다는 것이다.

    조디악은 이를 뿌득 갈았다.

    “사람은 안 죽이려 했는데, 참 안 도와주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유다희를 힐끔 내려다보고는 바로 계단 밑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

    유다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다.

    그 전에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 때문인지 열이 나고 머리가 핑핑 돌고 있었다.

    시야가 점점 어그러진다.

    “…….”

    목소리를 내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겨울이라 이대로 비상구 복도에 방치되었다간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 있다.

    심지어 이렇게 피가 펑펑 나오고 있는 마당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차가운 벽 너머에는 동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도저히 부를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

    유다희는 손을 뻗어 바닥을 짚었다.

    하지만 몸이 그 이상 움직여지지는 않았다.

    눈앞에 있는 비상구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다.

    춥고 어두운 복도, 있는 불빛이라고는 희미하게 점멸하는 녹색 비상등 하나가 전부다.

    설마 여기서 인생이 끝나는 걸까?

    상상 이상으로 보잘것없고 초라한 최후라서 유다희는 피식 웃고 말았다.

    ‘빛 한 점 없던 인생이라 그런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씁쓸하게 웃던 유다희.

    하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주 빛이 없던 인생은 아니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찾아온 환한 빛 하나가 그녀를 수렁에서 건져주었으니까.

    마동왕.

    마지막 순간 그의 얼굴이 환상처럼 떠오른다.

    …….

    ……아니.

    정말로 마지막 순간 떠오른 얼굴은 마동왕의 것이 아니었다.

    사실 마동왕의 얼굴 하면 흰 가면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얗게 빛나는 흰 가면.

    그 환상 속의 가면이 스르르 걷히며 안에서 사람의 얼굴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 얼굴은…….

    ‘이어진?’

    유다희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일그러지는 시야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동왕의 얼굴과 겹쳐지며 나타난 것은 분명 ‘그 새끼’의 얼굴이었다.

    “야, 너 여기서 뭐해!?”

    환상치고는 꽤나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답지 않게 잔뜩 동요한 어조.

    ‘……마지막 순간 보이는 게 왜 이딴 얼굴이람?’

    유다희는 이것을 주마등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 순간 이딴 쌍판때기를 보여 준 신을 원망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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