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화 의심 (1)
유다희.
그녀는 지금 마동왕 호텔 중층부에 머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다희가 로비를 가로지르며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 근방을 서성이던 몇몇 남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아, 다희 씨 오셨군요.”
“아침부터 기다렸습니다. 점심을 대접해드리고 싶어서요.”
“중국 오시면 꼭 저랑 식사 한번 하시기로 했잖아요.”
그들은 유다희의 열성팬이자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이들이다.
연예인도 있었고 유명 스포츠 선수도 있었고 성공한 사업가도 있다.
하지만 유다희는 그저 단아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일부러 찾아와 주신 것은 감사드리지만 저도 나름 중국 일정이 있어서 당장 식사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음부터는 먼저 말씀 주시면 제가 무조건 시간 빼 놓을게요.”
그러자 남자들은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아앗, 이거 실례했습니다. 저도 뭐 당장 식사하자고 온 것은 아니구요. 다희 씨 시간 괜찮으실 때 언제든 불러 달라고 온 거였습니다.”
“저는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상관없으니 언제나 연락 주세요.”
“하하하, 다희 씨 얼굴 보려고 아침 비행기로 날아왔는데. 이렇게라도 직접 뵈니까 좋네요.”
그들은 유다희에게 꾸벅 인사해 보이고는 헤헤 웃으며 로비를 빠져나갔다.
“…….”
유다희는 생긋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그들을 배웅했다.
이윽고, 배웅이 모두 끝나고 자기 방으로 돌아온 유다희.
그녀의 표정이 한순간 심드렁하게 바뀌었다.
“아니, 저것들은 왜 맨날 찾아와서 저 난리들이여.”
유다희가 중국에 왔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그녀를 만나겠답시고 무작정 찾아오는 남자들이 생겨났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스펙 좋고 허우대도 멀쩡한 것들이 왜 저러나 몰라.”
그녀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테이블 위에 앉았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낄낄 웃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연예인은 아니더라도 한때 연예인 제의는 받았었잖아?”
유창, 그는 입에 담배를 꼬나문 채 이쪽을 들여다보며 실실 웃고 있다.
유다희는 표정을 확 구긴 채 고개를 기울였다.
“담배 꺼라.”
“오? 금연할 거면 혼자 하십셔~ 왜 나까지?”
“죽이기 전에.”
“…….”
유창은 슬쩍 눈치를 보다가 담배를 껐다.
확실히 누나는 요즘 달라졌다.
술은 여전히 좀 마시는 것 같았지만 담배는 아예 손도 안 댄다.
“방송 장비는 세팅했냐?”
“으응. 아까 해 놨지.”
유다희는 헤드셋에 연결된 전선들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유창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여기서도 방송하게?”
“음. 아니, 중국 대 일본 전 직관 후기 남기려고. 선수들 직접 본 느낌이랑.”
유다희 역시 요즘 한창 잘 나가고 있는 게임 방송 전문 스트리머다.
어떤 면에서는 마동왕보다도 앞선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그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편.
…물론 어지간한 탑급 아이돌에게도 밀리지 않는 외모 역시도 무시 못할 요소이지만 말이다.
“마동왕 씨 덕분에 이런 데서 방송도 다 해 보네.”
유다희는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는 뒤에서 멀뚱멀뚱 눈을 끔뻑이는 동생에게 물었다.
“야, 너는 요즘 일 어떠냐?”
마동왕의 경호실장 겸 캡슐방 전문경영인.
유창은 픽 웃었다.
“순조롭지. 나는 노하우가 있잖아. 자금이 없어서 잘 못했을 뿐이지. 차규엽 간섭이 오죽 심했었나.”
“……그랬지.”
“형님 만나서 진짜 다행이야. 아니었으면 난 뭐 먹고 살았을까?”
“나도. 으에취!”
유다희는 말을 하다가 재채기를 했다.
그리고는 몸을 한번 바르르 떨었다.
“망할, 그때 비 맞으면서 너무 오래 떨었나. 감기 제대로 왔네.”
“아, 뭐. 그때 고인물? 그 사람이랑 같이 걸어왔 댔나?”
“어어. 그랬지.”
유다희는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열이 갑자기 확 오르는 게 감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인물 생각을 해서일까?
“……잠시 괜찮은 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내 뇌를 뽑아 버리고 싶다.”
유다희는 한숨을 쉬었다.
돈이 없어도 기죽거나 구걸하지 않고 꿋꿋하게 코스프레방송(?)을 해서 시청자들에게 후원금을 받는 걸 보고 조금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무심결에 무시하는 말을 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할 정도로.
자신이라면 저 상황에서 저렇게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절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예전에 크라켄 레이드 때 느꼈던 경외감이 다시 살짝 고개를 들고 나오기까지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기만하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었던 것!
“그 새끼, 돈도 있으면서 오징어랑 핫팩으로 날 조롱했어! 으아아아아! 굴욕이다 굴욕!”
그러자 유창은 싱글싱글 웃으며 누나를 비웃는다.
“에이~ 그건 아니지. 그 사람이 뭐 누나한테 돈 나눠 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 사이도 개나쁘잖아.”
“…너 묘하게 그놈 편든다?”
“그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잖아.”
“그, 그래도 인도적으로다가 야, 좀 도와줄 수 있는 것 아니냐? 그 상황에?”
“누나라면 도와줌?”
“…….”
유창의 말에 유다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오물거렸다.
이윽고, 유다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같으면 도와주긴 도와줄 것 같은데.”
“?”
유창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자 유다희의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아, 아니! 물론 지랄맞게 갑질하고 또 빈정거린 끝에 도와준다는 얘기지만!”
“웬일이야? 늘 죽여 버리고 싶다고 하더니.”
“아 새끼, 그건 게임에서고! 누나도 사람이야~ 그 정도 인정은 있지.”
말을 마친 유다희는 괜히 딴청을 피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그 자식, 인성은 터졌어도 게임 하나는 잘하잖아? 그런 놈이 폐렴이라도 걸려 뒈지면 아깝긴 아깝지. 그러니까 도와주기는 해야지. 나도 일단은 게이머고. 나보다 게임 잘하는 놈은 인정이랄까? 뭐 그런 거지.”
“…….”
“그리고 뭐, 그놈 망하기를 기다리는 재미도 나름 있고……. 나름대로 인생의 양대 활력소 중 하나 아니겠냐?”
사실 유다희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정의내리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그것을 유창은 한 마디로 정의해 주었다.
“한마디로 삐뚤어진 팬심이라는 것이군?”
“누, 누가 누구 팬이야 이 새끼가 진짜 못하는 말이……!”
유다희가 발끈하자 유창은 혀를 끌끌 찼다.
“고인물 마지막 방송이 언제였지?”
“…막방? 한 2주 전일걸? 요즘 영상 잘 안 올리던데.”
“마지막 방송 콘텐츠가 뭐였지?”
“…아마 흔들귀의 미궁 보스 아카오니를 혀로 핥아서 잡는 거였을 거야. 으, 변태 새끼.”
“잡는 데 얼마나 걸렸더라?”
“…정확히 56분 7초 컷. 세레모니 시간까지 합치면 57분. 개더럽더라.”
유다희가 인상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유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팬 맞네.”
“……?”
“그것도 열혈 팬이네.”
유창의 말에 유다희는 구겨진 인상을 더욱 구겼다.
“아, 뭔 개소리야 진짜. 맞을래?”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진짜 삐뚤어진 광팬이잖어. 저번 덜렁교랑 했던 퀴즈 배틀 때 새벽까지 공부하던 것도 그렇고, 사실 누나는 그 누구보다도 고인물을 사랑하는 게 아닐……”
하지만 유창은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유다희의 주먹이 그의 턱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후, 진짜. 개소리 조금만 작게.”
유다희는 쓰러진 동생을 짓밟고 샤워실로 걸어갔다.
옷을 훌훌 벗고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시자 오한이 조금 줄어든다.
‘감기, 걸리긴 걸렸나 보네.’
유다희는 치약 거품을 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고인물, 그놈 때문에 깜빡 잊고 있었다.
맨 처음 그녀가 야시장으로 뛰어갔던 이유는 길가에 서 있던 낯익은 얼굴 때문이었다.
조디악 번디베일.
현실에서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던 놈.
유다희 역시도 악의 고성 공략 당시 조디악에게 입은 피해가 있기에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
‘마동왕 님은 그놈이 아주 위험한 놈이라고 했어. 보는 족족 죽여야 한다고까지…….’
실제로 조디악은 몬스터들을 이끌고 와 한국 랭커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 주었다.
자칫하면 한국 E스포츠 전체가 한 번에 쇠락할 뻔한 엄청난 위기였다.
……그리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 위기에서 한국을 구한 것은 고인물, 그 밉살맞은 변태 놈이다.
‘아우! 내가 왜 또 그놈 생각을…! 이놈의 감기 진짜!’
유다희는 분노의 양치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이 정도면 이제 슬슬 미운 정 들 때도 안 됐나?’
“아앙아아아아!”
유다희는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어냈다. 왜 자꾸 이런 미친 생각이 든단 말인가!?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었다.
그리고 잠시 찬 공기라도 쐬기 위해 식물들이 있는 공중정원으로 나섰다.
“…진정하자. 게임 실력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놈이야, 인성은 터졌고. 언젠가 잡히면 죽일…….”
막 로비 외곽을 가로질러 정원으로 향하려는 순간.
“……?”
유다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방금 자기가 본 게 맞나 의심하는 표정.
그렇다.
유다희는 지금 비상구 계단을 스치듯 지나가는 무언가를 봤다.
그것은 이 시점에서 절대로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착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불길한 직감.
유다희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비상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청소용구들이 담긴 카트를 밀고 가는 청소업체 직원 하나가 있었다.
“야.”
유다희는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비상구 위에 있는 직원을 불렀다.
그러자 직원은 시선을 내려 계단 아래의 유다희를 바라본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뿌옇고 탁한 동공.
“嗨.”
조디악.
야시장에서 놓쳤던 사이코가 호텔 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