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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66화 (466/1,000)
  • 467화 중국vs일본 (1)

    리틀리그의 꽃 ‘플레이 오프(Play off)’가 열렸다.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오버 경기에서 미세한 차이로 2등을 한 중국과 3등을 한 일본.

    그 결과 3등을 한 일본이 2등을 한 중국에게 도전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여기서 이긴 나라는 이제 1등을 한 한국과 빅리그 진출권을 놓고 최종 대결을 치루는 것이다.

    경기가 열리는 토요일 오후 2시.

    중국과 일본의 빅매치가 열리는 오후 6시를 불과 4시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그리고 이곳 호텔의 최상층, 개인방송을 하고 있는 뷰티 유튜버가 하나 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미세먼지 차단 화장품을 리뷰해 볼게요!”

    윤솔.

    그녀는 프로게이머로 데뷔해 중국까지 원정 경기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초심을 잊지 않은 채 본업에 충실하고 있었다.

    “자! 중국에 미세먼지가 많다고 해서 특별히 미세먼지 차단 효과가 있다는 화장품들을 사용해서 며칠간 사용해 봤는데… 음, 글쎄요? 아직까지는 특별하게 효과를 봤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말을 마친 윤솔은 손등에 여러 가지 화장품들을 조금씩 발라 색과 점도, 촉감 등등을 자세히 묘사했다.

    “사실 이 중에 식품의약품안전처 검사를 통과한 게 절반 밖에 안 되거든요. 미세먼지 차단 기능이 있는 화장품 제조업체 22개 중 10개가 행정처분 및 광고 중지 명령이 내려왔다네요? 사실 미세먼지 차단 효과에 대한 정확힌 기준이나 규제가 없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마당이니까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도 과장, 허위 광고에 속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셔야……”

    여느 때처럼 윤솔의 뷰티 팬덤은 탄탄하다.

    -갓솔님 오늘도 인사드리고 갑니다^^ 2024년에도 화이팅!

    -온늬 손이 떨리시는데 아픈거뉴아니져ㅜㅠ영상 늘 챙겨보는데 항상 건강한 라이프 유지하면서 업로드해주시길ㅜㅠ적게일하거 많이 버세용♥♥♥

    -힝 다 좋은데 화면이 조큼 뿌옇게 보여요ㅠㅠ...

    -2023년 고생 많으셨습니다!! 2024년에도 좋은 제품들 많이 소개 해주시고 이쁜 얼굴 자주 보여주세요❤❤

    -제가 2023년중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부반장님 채널을 알게 된 것이야요! 2024년에도 파이팅

    .

    .

    하지만 오늘은 날이 날이니만큼, 뷰티 관련 댓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댓글들이 더 많이 달리고 있었다.

    게임 댓글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에서 경기 직관...아니 직접 참여하는 소감이 어떤가요 누나?

    -프로게이머가 이렇게 예뻐도 되는 겁니까? 예?

    -마동왕 선수 지금 뭐해요?

    -저번 배그옵때 유세희 선수랑 같이 달리시는 모습 완전 심쿵,,,^^

    -중국이랑 일본 중 누가 이길 것 같나요?

    -마태강 선수는 어딨나요?

    -빅리그 진출하면 세레머니 해주세요!

    -드레이크 선수랑 친해요??

    -아키사다 아야카랑 본인이랑 비교하면 누가 더 예쁘다고 생각합니까?

    .

    .

    아무래도 윤솔이 프로게이머로서도 입지가 굳건하다보니 뷰티에는 전혀 관심 없는 게임 팬들도 많다.

    때문에 착한 윤솔은 뷰티 방송 관련 분량이 끝나면 따로 짬을 내서 팬들의 게임 이야기에 어울려 소통해 주는 편이었다.

    윤솔은 오늘 정해져 있는 뷰티 관련 정보들을 뚝심 있게 모두 전달하고는 비로소 게임 팬들과도 소통을 시작했다.

    “죄송해요~ 오늘은 뷰티 정규방송 날이라서 중간에 따로 짬을 못 냈네요. 지금부터는 자유시간이니까 궁금한 것 있으시면 성의껏 답변해 드릴게요.”

    윤솔이 카메라에 대고 착하게 말하자 지금껏 왜 게임 관련 질문은 무시하느냐는 불만들이 쏙 들어갔다.

    악플러들마저 얌전하게 만드는 윤솔의 순한 눈빛은 카메라를 통해서도 여과 없이 빛난다.

    이번에도 역시 질문들이 쏟아졌다.

    Q. 프로들 중 본인보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에이, 사람은 다 고유한 매력이 있고 예쁜 부분이 다들 다 다른데 어떻게 비교를 하겠어요.”

    Q. ‘아키사다 아야카’라는 일본 팀 프로게이머가 아이돌 뺨치는 외모로 유명한데 본인과 비교하면?

    “그분은 그분의 매력이 있고 저는 저의 매력이 있죠~ 하지만 아키사다 씨는 정말 되게 예쁘셔서 저번에 무심코 선수 대기실에서 마주쳤다가 한 5초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니 되게 실례되는 행동을 저질렀네요 저, 아하하~”

    Q. 처음에는 ‘고인물’과 함께 다니며 파티 플레이를 했던 것 같은데 대격변을 비롯하여 프로 구단 생활은 ‘마동왕’과 같이 하는 이유는? 혹시 라인 갈아타기인지?

    “아하하, 아니에요. 고인물 씨와는 학생 때부터 동창이라서 종종 같이 레이드 도는 거구요. 개인적으로 무지 친한 친구임과 동시에 저를 게임에 입문시켜 준 은인이에요. 닳고닳은 뉴비 구단에 저를 추천해 준 사람도 고인물 씨입니다! 마동왕 선수는 음… 동료라기보다는 약간 직장 상사 느낌? 사적으로는 아직 약간 어려워요. 그리고 고인물 씨랑 마동왕 씨는 서로 좋은 라이벌임과 동시에 친구라고 알고 있습니다!”

    Q. 직접 세계의 벽을 느껴 보니 소감이 어떤지?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어휴, 막 다들 홱홱 날아다니시는데… 저는 서포터 타입이라서 그런가 근접 딜러 분들이 제일 무서웠어요. 진짜 ‘벽’들이 막 달려드는 느낌? 그래서 저번에 세희랑 도망갈 때 전략적으로 후퇴한 것도 있지만 진짜 무서워서 도망간 것도 있어요.”

    윤솔은 시청자들의 질문에 최대한 열의와 성의를 담아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훌쩍 흘러가 어느새 오후 5시.

    이제 경기가 시작되기까지는 불과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앗, 이제 경기 시작된다! 여러분들 저 이제 방종할게요! 모두 즐거운 관람 되세요!”

    윤솔은 서둘러 카메라를 껐다.

    방송 직전 닳고닳은 뉴비 팀 전원이 모여 경기를 관람하는 영상을 찍어 주면 엄청난 액수를 후원하겠다는 시청자들이 몇 있었지만 윤솔은 정중하게 고사했다.

    “저 혼자만 찍는 거면 상관없는데 다른 선수들에게는 민폐잖아요, 헤헤. 또 마동왕 씨는 사생활에 조금 엄격하셔서 아마 게임 외의 개인방송은 잘 안 하실 거예요. 그럼 여러분들, 진짜 안뇽!”

    말을 마친 윤솔은 정말로 방송을 종료했다.

    ‘……됐어, 어진이와의 의혹설은 잘 넘겼다.’

    그동안 그녀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던 질문들 몇 개가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그중 몇 개는 게임 파티원에 대한 의혹들이었다.

    맨 처음 윤솔이 처음 게임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고인물 캐릭터와 함께 다녔는데 왜 대격변에서는 마동왕과 함께 했느냐, 그리고 왜 구단 생활은 마동왕 캐릭터와 함께 하느냐 등등, 그간 이런 류의 질문들이 꽤나 많았었다.

    사실 누가 누구랑 다니든 파티를 하든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탑 티어에 올라서 있는 선수들은 이런 사생활 하나하나까지도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아직 ‘고인물=마동왕’이라는 것이 알려져서는 안 될 것이기에 윤솔은 최선을 다해 사실을 얼버무린 것이다.

    ‘뭐, 그래도 거짓말은 안 했으니까.’

    윤솔은 어진을 대할 때 공과 사를 확실히 구별하고 있었다.

    때문에 고인물과는 사적으로 친하고 마동왕과는 공적으로 친하다는 말이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

    그때.

    똑똑똑-

    호텔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난다.

    “언니!”

    유세희가 깜찍한 웃음을 지은 채 윤솔을 부르고 있었다.

    “언니 요깃지롱~!”

    “꺄악! 꺄르륵!”

    몰래 문을 연 윤솔은 유세희를 안아들며 간지럽혔다.

    유세희는 중학생이 되었지만 아직 키가 작고 깜찍해서 이렇게 놀려주기 딱 좋다.

    “가시죠, 누님.”

    그 옆에 있던 마태강이 딱딱한 호칭으로 윤솔을 부른다.

    이제 슬슬 군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마태강은 말수가 더욱 더 적어졌다.

    윤솔 역시 마태강은 아직 어딘가 어려웠기에 슬쩍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유세희를 가운데 끼고 호텔 로비로 나갔다.

    *       *       *

    로비 저편으로 윤솔과 유세희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어, 왔어?”

    나는 커다란 소파에 앉아 TV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옆에는 드레이크가 앉아 과일을 깎고 있는 중이다.

    “어진, 사과는 토끼 모양이 좋은가? 아니면 공룡 모양?”

    “……공룡 모양도 있어? 아니, 그냥 대충 깎아 줘.”

    나는 멤버들마다 팝콘을 한 컵씩 나눠 주며 대답했다.

    엄재영 감독이 TV를 바라보며 씩씩하게 외쳤다.

    “자, 이제 시작이다! 우리랑 빅리그 진출 티켓을 놓고 붙을 상대가 정해지는 순간이야!”

    그의 말대로 TV 속에서는 지금 중국 대 일본의 경기가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전용진 캐스터와 뎀걸 홍영화가 시종일관 유쾌한 목소리로 경기를 중계한다.

    [네, 저희는 오늘 3위 결정전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대 일본’ 경기장에 나와 있습니다. 영화 씨? 영화 씨는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옙! 저는 쓰리디로 봅니다! 꺄하하하!]

    [네, 재미없고요. 상반기 제일 재미없는 멘트 축하드립니다.]

    […시무룩.]

    [오늘 텐션이 완전 높으신데요?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니, 그냥요. 사실 저번에 있었던 한국 전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어서요. 그때 정말 흥분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였죠. 가뜩이나 요즘 한국 E스포츠에 대한 위상이 조금 많이 위축되어 있는 시기였는데 이번 기회에 확~! 살아난 것 같아서 아주 유쾌, 상쾌, 통쾌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동왕 선수가 너무 좋은데… 아차! 이거 편파적 발언인가요? 편집해 주세요! 제발!]

    [아하하하하! 이거 생방송이에요 영화 씨. 어떻게 편집을 하나요?]

    전용진 캐스터가 빵 터지고 옆에 있던 홍영화의 얼굴이 화다닥 붉어진다.

    나는 그 모습을 심드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푼수는 여전하구만.’

    그래도 늘 밝고 씩씩한 모습이 기니피그 같아서 보기 좋다.

    회귀 전, 원래대로였으면 지금쯤 한창 중국 자본이 LGB 방송국을 흔들고 있을 때라서 말단 입장에서 마음고생 심하게 하고 있을 때인데… 이번 운명에서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

    바로 그때.

    -띠링!

    내 핸드폰에 문자 한 통이 왔다.

    마동왕 명의의 핸드폰이다.

    메시지 함을 확인해 보니 낯익은 번호로 문자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금방 끝내고 오겠습니다 ٩( ᐛ )و 아자!>

    아키사다 아야카에게서 온 문자였다.

    ‘…얘는 또 뭐야?’

    우리가 시합 전에 이런 문자를 주고받을 사이는 물론 아니다.

    이 여자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겠기에 마음속이 어딘가 찜찜했다.

    “뭐, 자신감은 좋네.”

    중국 팀은 강하다.

    장마오 쉰이 이끄는 리자드맨 풀 파티는 조합도 탄탄하고 균형이 잘 분배되어 있어 뚫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앞으로의 경기를 대충 예상해 보았다.

    …이내, 내 입이 열린다.

    “다들 이번 경기랑 상관없는 지인들에게 전화해.”

    내 말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동시에, 나는 바로 핸드폰에 베팅 화면을 띄웠다.

    <코리아 E스포츠 토토>

    그리고 자신 있게 한마디 했다.

    “‘4:5 일본 승’ 에 올인하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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