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65화 (465/1,000)
  • 466화 집에 가는 길 (2)

    “……쉬발.”

    욕이 절로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거 진짜 춥긴 더럽게 춥다.

    거기다 비까지 오고 있으니 연초부터 감기는 100% 예약이다.

    심지어 눈앞에는 저 얄미운 놈이 쫄랑쫄랑 가고 있지 않은가!

    “야, 고인물!”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놈의 닉네임을 불러 버렸다.

    그러자 놈은 앞서 가던 걸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쪽을 돌아본다.

    “우리 유다희 씨는 현실에서도 게임 닉을 쓰시나?”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서 그 눈을 확 찔러 주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항의를 했다.

    “왜 자꾸 따라오냐 너?”

    내가 묻자 놈은 씩 하고 밉살맞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앞에 가고 있는데 따라오긴 뭘 따라와.”

    음, 일견 타당한 대답이로군. 그럼 그냥 가는 방향이 같은 것뿐인가?

    나는 뭐라 더 쏘아 주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내가 뭐라고 하든 간에 나만 화가 날 것 같아서였다.

    ‘…후, 말려들지 말자.’

    나는 심호흡을 했다.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더라?

    나 유다희 방년 24세. 좋아하는 프로게이머를 응원하러 상하이까지 원정 온 몸.

    그러던 차에 내가 좋아하는 프로게이머를 음해하려고 안달이 난 어떤 서양인을 만나 따라붙던 중 길을 잃었고 평소 숙적이었던 노출광 변태 놈을 마주했다.

    택시라도 잡으려고 30분간 거리에 서 있었는데 모조리 승차거부를 당했다.

    돈도 없었고 중국말도 몰라 외상을 할 자신도 없었던 터라 그냥 걸어가기로 했는데… 이거 생각보다 너무 춥고 배고프다.

    더군다나 가는 방향이 같은 저 밉살맞은 놈까지!

    “…진짜 최악이네.”

    나는 흘러내리는 콧물을 흥 들이마신 뒤 입김을 내뿜었다.

    그러자 앞서 가던 고인물… 아니, 변태 놈이 나를 돌아본다.

    “왜 자꾸 투덜거려. 배고파서 그래?”

    그러자 놈은 비닐봉지에서 오징어 꼬치 하나를 꺼내 또다시 내게 내민다.

    버터향이 사르르 녹아있는 오동통한 오징어, 노릇노릇 구워진 불 자국과 그 위에 뿌려져 있는 타르타르 소스를 보자 입가에 침이 고인다.

    원체 노점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나인데…….

    “크, 크윽! 안 먹어!”

    …하지만 사람이 자존심이 있지!

    저런 웬수같은 놈이 주는 음식을 넙죽 받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굶어 죽으면 죽었지.

    나는 단호하게 입장 표명을 했다.

    하지만 놈은 집요하게 나를 향해 오징어를 들이밀었다.

    “…그럼 팔게.”

    놈의 말에 나는 표정 관리를 할 최소한의 힘마저 잃어버렸다.

    “뭐? 야 이 ㅆ… 나 돈 털린 거 알면……!?”

    “외상.”

    “…뭐?”

    “외상으로 해 준다고. 나중에 열 배로 갚어.”

    나는 놈의 말에 조금 흔들렸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악마와 천사가 싸우기 시작했다.

    ‘키키키, 놈을 죽여 버린 뒤 오징어를 빼앗으면 되잖아!’

    ‘아이 참, 그건 너무해! 오징어를 받아먹은 뒤 죽이는 게 더 인도적이야!’

    나는 한동안 고민했다. 저 웬수 놈이 주는 오징어 구이를 받아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지만 손은 뇌가 생각할 시간을 그리 오래 주지는 않았다.

    턱-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은 벌써 놈이 건네는 오징어 구이를 받아들고 있는 채였다.

    오물오물…

    맛있다.

    버터가 배인 오징어다리가 입 안에서 녹아내리고 있다.

    순간 나는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렸다.

    …다만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나를 보고 빙글빙글 웃고 있는 저 밉살맞은 표정을 마주했을 뿐이다.

    “맛있냐?”

    빌어먹을 자식, 꼭 물어봐야 알겠어?

    굳이 그렇게 확인 사살을 해야 해?

    두 주먹에 절로 힘이 꽉 들어간다.

    나는 씹어 내뱉듯 말했다.

    “…갚을 거야.”

    “뭐?”

    “얻어먹는 것 아니라고! 돈 낼 거라고!”

    내가 외치자 놈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실소를 머금는다.

    그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나한테 갚지 말고 마교 팬클럽 회원들에게 갚아.”

    ……이게 뭔 개소리래?

    내가 뚱한 표정으로 있자 놈은 부연설명을 했다.

    “내 친구 하나가 마교에 몸담고 있거든. 잘해 주라고.”

    오호라? 이것 봐라? 마교 내부에 첩자를 박아 놨었군?

    이것은 자칫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기에 나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따져 묻기로 했다.

    “야! 대놓고 첩자질이냐? 그게 누군데!?”

    내가 묻자 놈은 무언가를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더니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알랴줌.”

    정말 사람 속 뒤집는 데에는 천재적인 놈이 아닐 수 없다.

    대놓고 물어보면 알려 줄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나는 은근히 질문을 돌렸다.

    “…호오, 그렇게 뒤에서 은근히 챙겨 줄 정도면 여자인가 보네? 이쁘냐? 하긴, 이쁘니까 챙겨 주겠지?”

    내 말에 놈은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마교 내에 있는 여자 팬인가보군. 그리고 이쁘다?

    ‘쳇, 이쁜 애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마교는 여성팬 비율이 높은 집단이다. 그중에는 예쁘고 날씬한 애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특정인을 가려내기가 힘들었다.

    “대놓고 이쁘다고 할 정도면 진짜 ‘여신급’인가 보다?”

    내가 슬쩍 더 캐묻자 놈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 급? 그 정도로 예쁘다고 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는데.

    나는 약간 고민하던 끝에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이렇게 해서 어떻게 알아.

    “쳇, 모르겠다. 어차피 너 친구면 너랑 똑같이 변태에 인성 터졌겠지!”

    그러자 내 말을 들은 고인물 놈은 웃음을 빵 터트렸다.

    “하하하, 맞아. 걔 인성이 좀 나쁘긴 하지.”

    “……?”

    “성격도 엄청 괄괄하고 싸움도 잘해, 엄청난 골초고. 얼굴만 이쁘지 진짜. 내가 걔 때문에 한때 인생 망할 뻔했다니까? 뭐, 내 잘못도 있지만서도.”

    당최 누굴 말하는 건지를 모르겠네.

    세상에 그런 또라이 같은 여자가 어딨어?

    그리고 저 교활하고 음흉한 놈이 인생 망할 위기까지 몰렸었다는 건 진짜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여자라는 건데…….

    나는 열심히 생각하던 끝에 이내 추리를 포기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춥고 피곤하다.

    바로 그때.

    “야, 이거 핫팩 하나 너 써라. 감기 걸릴라.”

    앞서 걷던 놈이 아까 노점상에서 산 핫팩 하나를 던져 주었다.

    나는 받고 싶지 않았지만 핫팩이 빗물 웅덩이에 빠질 것 같아서 재빨리 손으로 잡았다.

    다시 집어던져 돌려주려 했지만 놈은 이미 앞으로 총총총 걸어간 뒤였다.

    “야! 필요 없어! 가져가!”

    “버리든가~”

    “…….”

    나는 핫팩을 든 채 잠시 다리 밑 호수를 바라보았다.

    버릴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손아귀가 너무 따듯한데.

    “……내가 요즘 환경미화에 관심이 많아서… 쳇!”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쓰레기를 무단 투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요즘 과거에 쌓은 죄를 조금이라도 씻기 위해 나무도 심고 연탄도 나르는 마당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할 수는 없지.

    “핫팩 값도 10배로 갚을 테니까 계좌 보내.”

    나는 결국 핫팩을 주머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나와 놈은 물안개 낀 다리를 도보로 건너고 있었다.

    옆에는 차들이 씽씽 지나간다.

    한참 동안 걷고 있는데 또다시 놈이 말을 걸어 왔다.

    “요즘 대부업은 잘 되냐?”

    뜨끔!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

    저놈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지우고 싶어 하는 과거를!

    “…뭐, 뭐, 뭐, 뭐래. 그, 그. 그런거 아, 안 하거든?”

    나는 침착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놈은 태연하게 되묻는다.

    “아 그래? 그럼 뭐 했었는데 원래?”

    “으응? 그, 그야 대학생! 대학생이었지! 내 나이에 그럼.”

    “무슨 대학?”

    아, 이 자식. 왜 이렇게 집요해?

    내가 댈 핑계를 떠올리려 눈알을 굴리고 있을 때, 놈이 별 생각 없는 듯한 어조로 슬쩍 물어왔다.

    “아, 돌아다니는 반경 보면 그쪽에서 공부하나? 낙성대?”

    옳지! 잘됐다. 마침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는군!

    “맞아. 낙성대 다닌다 왜?”

    “아 그래? 좋은 대학 다니네. 학번은?”

    “…하, 학번?”

    “응. 아 너는 키가 크니까 좀 뒷번호겠구나? 한 50번쯤 되냐?”

    “…어, 어어. 맞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놈은 ‘흠, 낙성대학교 50학번이라……’라며 중얼댄다.

    ‘혹시 낙성대학교 교무실에 전화해서 50학번들 중에 내가 있나 없나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살짝 불안함에 떨었다.

    그놈은 내 대학 생활에 대해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계속 스토커처럼 치근거린다.

    “대학 생활은 할 만해?”

    “…그게 왜 궁금하냐? 너 스토커냐?”

    “그냥, 나도 팬클럽이 있다 보니까 궁금해서. 너 팬클럽 활동 엄청 많이 하지 않냐? 대학 생활 하면서 그게 돼?”

    “흥. 하면 하는 거지 뭐. 사랑과 열정이 있으면 다 가능하다.”

    나는 코웃음쳤다.

    천사의 집 돌봄이, 양로원 봉사, 무료급식 센터 청소, 나무 심기, 연탄 나르기, 유기견 유기묘 주인 짝 지어 주기 등등…… 내가 하는 활동이 조금 많기는 하다.

    하지만 이 활동을 통해 마동왕 씨의 이미지를 좋게 할 수 있으면 그것보다 더 좋을 것은 없으리라.

    ……또 나름 보람차기도 하고.

    그러자 변태가 다시 물어온다.

    “마동왕이 뭐가 그렇게 좋냐?”

    나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보다는 36조 6천억 배 낫거든?”

    “아니,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어느 면이 그렇게 좋은지.”

    나는 놈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비가 오고 추운데 가슴의 핫팩이 따듯해서 그런가, 까짓거 못 말해 줄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맨 처음에는 사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접근한 거였는데. 지금은 그냥 다 좋아.”

    게임도 엄청 잘 하고, 배울 점도 많고, 미래를 향해 착착 나아가는 모습도 멋지고…… 또 내 차의 재떨이도 비워 줬고.

    그리고 그토록 증오스럽던 차규엽의 간섭에서도 벗어나게 해 줬을 뿐만 아니라 둘째 취업 자리도 알선해 주고 막내의 병도 고쳐 줬다.

    이제 내 삶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 것이다.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내 인생의 활력소 두 개 중 하나지.”

    “오 그래? 그럼 나머지 하나는 뭐야?”

    내 말을 들은 놈이 되묻는다.

    나는 이때다 싶어 두 눈을 반짝였다.

    “다른 하나는 너 망하기를 기다리는 거지, 크크크.”

    “…….”

    내 말을 들은 놈은 입을 다물고 몸을 한번 파르르 떤다.

    후후, 이만 하면 제대로 반격이 들어간 모양이군.

    내 말에 약간이라도 데미지를 입은 모양인지, 놈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야. 근데 우리 게임 하면서 은근 엄청 많이 마주쳤던 거 아냐?”

    “……모르겠냐 내가? 너한테 당한 게 몇 번인데.”

    “이 정도면 이제 슬슬 미운 정 들 때도 안 됐나?”

    그 말이 내 복장을 뒤집어 놓았다. 역시 이 새끼는 구제불능이야.

    “야! 장난하냐!? 내가 너한테 당한 게 몇 번인 줄 알어!? 이름 없는 여왕 때 당했고, 우는 천사 때 당했고, 메두사 때 당했고, 샌드웜 때 당했고, 악의 고성 때 당했고, 핑크 덜렁덜렁이 때 당했고, 이히히히 때 당했고, 마트료시카 때 당했고, 퀴즈대회 때 당했고, 아틀란둠 때 당했고, 고르딕사 때 당했고……! 아주 그냥 끝이 없어!”

    “……잠깐만. 고르딕사 그건 뭐야? 좀 억울한데?”

    “분쟁지대 보스몹 고르딕사 니가 잡았잖아! 그것 때문에 황금 출토량이 50% 감소된 거 모르냐!? 내가 금광 하나 분양받았다가 얼마나 개손해를 봤는 줄 알어!? 이걸 그냥 콱 씨!”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잘 하면 입에서 마그마를 쏠 수도 있지 않을까?

    한편, 내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자 놈은 입을 다물었다.

    비를 맞아서 그런가? 답지 않게 시무룩해 보이네.

    또 밉살맞은 말로 반격해 올 줄 알고 주먹도 쥐고 있었는데 막상 상대가 저렇게 나오자 맥이 좀 빠진다.

    문득, 왜일까? 얼마 전에 둘째 동생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누나는 오히려 마동왕 형님보다 고인물 쪽에 더 집착하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막내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나는 고인물 아저씨도 좋아. 그 아저씨 때문에 언니가 더 힘을 내는 것 같아서. 화만 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것도 힘이니까.’

    …이 생각이 갑자기 왜 든 것일까?

    나는 화를 내던 것을 잠시 멈췄다.

    비를 맞은 채 앞에서 타박타박 걷는 변태 놈의 뒷모습을 보자 어딘가 아주 약간 마음이 쓰였다.

    저 변태 놈은 밉살맞을 때야 비로소 짓밟는 맛이 있는데.

    ‘내가 게임 속 일로 너무 뭐라고 했나?’

    …하지만 이 생각은 든 지 1초 만에 사라졌다.

    ‘아냐! 내가 현실에서도 얼마를 손해 봤는데! 그때 느꼈던 분노 에너지만 해도 화력발전소 두 개는 돌리겠다!’

    뭐, 아무튼. 저놈은 저렇게 축 쳐져 있으면 안 된다.

    항상 저 밉살맞은 태도로 쭉 변치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그 시건방진 얼굴을 밟아 버릴 수 있을 테니까.

    콱!

    나는 발을 들어 놈의 뒷꿈치를 한번 꾹 밟아 주었다.

    놈은 아프기에 앞서 꽤나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젠장, 기분이다. 립 서비스 한번 해 주지 뭐.

    “…그래 야 뭐, 친하게 지내는 것까진 아닌데. 적어도 현실에서까지 싸우진 말자.”

    나는 큰 맘 먹고 신년 맞이 덕담 한번 해 주었다.

    내 말을 들은 놈은 두 눈을 끔뻑끔뻑거리기만 할 뿐이다.

    무지 놀란 표정.

    “새, 새기! 뭘 그리 쳐다봐! 새해니까 큰 맘 먹고……?”

    하지만, 나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내가 놈의 뒷꿈치를 밟는 순간.

    툭- 데구르르-

    놈의 양말 발목 부근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것은 돌돌 말린 채 고무줄에 묶여있는 지폐뭉치였다.

    “……!?”

    그것을 본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이 자식…… 비상금이 있었어?’

    돈도 있으면서 일부러 내 앞에서 그 기만을…!?

    내가 엿 먹어 가는 걸 실시간으로 감상하면서…!?

    그러자 놈은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거린다.

    “아, 맞다. 변장 세트 중에 비상금 넣은 양말이 있었지 참. 이걸 깜빡했…….”

    하지만 그 뒤의 말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주먹을 들어 놈의 배를 확 후려 버렸다.

    “…컥!?”

    놈은 허리를 꺾으며 바닥에 쓰러진다.

    어차피 다리도 다 건넜고 호텔이 코앞이다.

    나는 더 두들기고 싶은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눌러 참았다.

    춥고 비도 많이 맞아서 몸도 무겁다.

    당장 얼마 뒤에 있을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에서 마동왕 씨를 응원하기 위해서는 얼른 호텔로 들어가야 했다.

    “야! 방금 한 말 취소. 아오, 내 눈에 띄지 마라 진짜, 죽어!”

    그게 내가 저 변태 놈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대사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배를 감싸 쥐고 구르는 놈의 얼굴이 웃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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