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64화 (464/1,000)

465화 집에 가는 길 (1)

이 인파 중에서도 눈에 확 띄는 미모.

도떼기시장의 혼잡한 거리조차 패션 화보의 배경으로 만들어 버리는 비주얼.

“어? ……너!?”

유다희가 나를 향해 손가락을 뻗고 있었다.

반가운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미묘한 표정이지만…… 아마 우리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후자 쪽에 가깝겠지.

나는 마동왕 전용 가면과 깔창, 음성변조기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을 생각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얘도 휘말린 건가?’

중국 팬들과 일본 팬들의 다툼은 격렬했다.

그보다 더 격렬한 공안의 경찰력에 의해 제압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으니까.

유다희는 나를 보며 바닥에 침을 한번 퉤 뱉었다.

“망할, 그 허여멀건한 다크서클 놈 본 것 같아서 뛰어왔더니 더 이상한 게 있네.”

아마 유다희 또한 조디악을 보고 뒤쫓아 왔던 모양.

(현실에서 만나 뭘 하려고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유다희 역시도 조디악과 꽤나 악연이다.

예전에 어둠 대왕 레이드 당시 조디악에게 뒤통수를 맞아 꽤나 큰 손해를 봤으니까.

‘그때 조디악이 입었던 데미지를 모조리 독박 쓴 채로 죽었었지 아마?’

그 뒤로 마동왕을 도와 썩은물 사냥 때 한번 활약했고 프로리그 습격사건 당시 전장에서도 나름 분전한 바 있었다.

그리고 뭐 기타 등등…….

바로 그때.

꼬르륵…

극도의 배고픔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 배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참, 야시장 구경 간다고 일부러 굶었는데.’

하지만 지금 나는 지갑은 물론 신발까지 싹 다 털린 상태.

내가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자 유다희는 코웃음 친다.

“하하하! 꼴 좀 봐! 보아하니 소매치기한테 싹 다 털린 모양이네! 그렇게 칠렐레 팔렐레 다니니까 그렇지! 게임 속에서 하는 것 반만 정신 챙기고 다녀라~”

말을 마친 유다희는 깔깔 웃으며 뒷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누나는 밥 사 먹는다. 수고…… 어?”

하지만, 그녀의 득의양양한 웃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뒷주머니로 손을 가져간 유다희의 표정이 창백해진다.

“어? 내 지갑? 내 폰?”

그래, 내가 털렸는데 너라고 멀쩡하겠냐.

사실 유다희는 평소에도 물건을 잘 흘리고 다니니 꼭 소매치기 당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뭐, 아무튼.

꼬르륵…

유다희 역시도 야시장 간다고 뱃속을 비우고 온 모양.

우리는 잠시 서먹한 표정으로 서로를 곁눈질했다.

“환전 많이 해 놨었는데…….”

유다희는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린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유다희는 마교 팬클럽 회장 자격으로 마동왕과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목적지는 같으니 일단 협력해서 돌아가도 될 것 같은데…….’

길에 버려 두고 가기 불안한 캐릭터인 것도 있고, 또 나름 마교의 회장이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1월에 무슨 비람!

“…….”

“…….”

결국 나와 유다희는 알거지가 된 채로 비 내리는 거리에 나앉게 된 것이다.

“…춥다.”

유다희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빈털터리가 된 마당이라 더욱 춥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돈 한 푼 없이 외국에 표류하는 상황.

유다희는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야, 너는 어디서 묵냐?”

나는 대충 내가 묵는 호텔 근처 주소를 댔다.

그 근방에는 호텔들이 많으니 대충 주워섬겨도 될 일이었다.

유다희는 다시 물었다.

“너 돈 없지? 숙소까지 어떻게 가게?”

“너는?”

“…나야 뭐.”

유다희는 머쓱한 표정으로 시선을 살짝 피한다.

아마 나한테 부탁하려던 것 같지는 않고, 내가 무슨 조치를 취하면 그것을 따라 할 생각이었겠지.

아마 회귀하기 전 세상의 유다희였다면 지나가던 관광객에게 능숙하게 작업을 건 뒤 숙소까지 차를 얻어 타는 것도 모자라 식사까지 대접받았겠지만……그것은 어디까지나 서른 중반의 유다희의 이야기이고, 지금 이십 대 초반의 유다희에게는 아직 그런 노련함과 능글함은 찾아볼 수 없다.

유다희는 정말로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풋풋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무심코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 추위 많이 타지?”

“뭐? 야, 니가 뭘 알아.”

유다희는 입김을 호 내뿜으며 눈을 치켜떴다.

나 역시 아차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회귀하기 전 유다희와 나름 많이 얽혀 있었던 처지라서 본의 아니게 그녀의 정보를 많이 안다.

앞으로는 조심해야지.

“별 수 없지. 택시비라도 벌려면…….”

상하이는 택시 요금이 비싸다.

심지어 배가 너무 고프니 뭐라도 먹으려면 돈이 꽤 필요한 상황.

나는 선 자리에서 옷을 주섬주섬 벗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다희가 경악과 경멸의 감정을 담아 나를 바라본다.

“으악, 야 너 미쳤냐? 뭐 해!?”

“…코스프레.”

“뭐? 뭘 코스프레하길래 옷을 쳐 벗고 지랄… 춥지도 않냐? 아니, 그보다 너 그러다 공안에 잡혀가!”

하지만, 유다희의 걱정은 기우였다.

내가 옷을 입고 있을 때는 그저 무심히 지나가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나를 서서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오! 그냥 흔한 알몸 변태……인 줄 알았는데 한국의 인기 스트리머 고인물이잖아!”

“뭐야? 진짜 고인물이야? 에이, 닮은 사람이 변장한 것이겠지.”

“이 사람 변태 아니에요! 이거 코스프레인 듯? 아니, 근데 어떻게 저기 승모근 힘줄까지 따라했지? 저기요, 이거 쉐딩 하신 거예요?”

“고인물 씨, 진짜라면 방송 잘 보고 있어요. 중국에는 아챔 보러 왔어요?”

“방송에서 보여 줬던 스텝 한번 보여 주세요!”

“현실이라서 도네이션 못 하네, 이거라도 받아요, 고인물!”

몇몇 관광객이 나를 알아본다.

옷을 입으면 몰라도 벗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나 보다.

심지어 나를 잡으러 왔던 공안마저 껄껄 웃더니 내 배에 빗물에 젖은 백 위안짜리 한 장을 탁 붙여 주고 갔다.

나는 중국 팬들을 향해 친절하게 웃어 주며 그들의 요구에 모두 응했다.

추워 죽겠는데다가 비까지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시청자들의 요구에 따라 스텝을 밟았으며, 섹시 포즈도 취해 주었고, 중국어로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 결과 내게는 오백 위안이라는 큰돈이 생겼다.

한국 돈으로 따지면 약 7만 원 상당으로 택시를 타기에는 충분한 거금.

나는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다시 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쭉 보고 있던 유다희는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야, 사내새끼가 쫀심도 없냐 너는? 벗어서 뭔 짓이여 그게.”

하지만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런 유다희를 바라볼 뿐이다.

“자존심이 어딨어, 돈 버는 데.”

일침.

사실 이것은 내가 회귀하기 전 유다희에게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한편 내 말을 들은 유다희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 역시 비를 맞으며 그런 유다희를 바라보았다.

서른 중반이 넘도록 수많은 인터넷 방송들을 보며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방송 속에서 미친 짓, 웃긴 짓, 우스운 짓을 하는 사람들의 뒷면.

그 뒷면에는 생각보다 더 슬프고 섬세하며, 안타까운, 혹은 이성적이거나 현실적인 면모들이 꽁꽁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개그맨들 중에 우울증 환자들이 유난히 많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말이다.

“…세상이 돈 없으면 얼마나 슬픈데.”

내가 중얼거리듯 넘기는 말에 유다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내, 나를 조금 놀라게 하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안.”

나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천하의 유다희에게서 사과를 듣게 될 줄이야!

하긴. 그녀 역시도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세상이 얼마나 살벌한지 잘 알고 있을 나이.

나 역시도 알거지가 되니 새삼 회귀 직후의 초심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꼬르륵…

내 배와 유다희의 배에서 동시에 꼬르륵 소리가 난다.

나는 길옆에 있는 노점상으로 다 오징어 꼬치 하나를 샀다.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오징어가 통째로 구워진 채 소스에 목욕을 하고 있었다.

중국은 참 별걸 다 꼬치로 만들어 파는구나 싶다.

“하나 먹을래?”

나는 유다희를 향해 오징어를 내밀었다.

“…….”

유다희는 바들바들 떨면서 내가 내민 오징어를 바라본다.

뿜어져 나오는 입김, 흔들리는 동공, 입가에 살짝 고이는 침.

하지만 유다희는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꺼져, 내가 그걸 왜 먹어.”

누가 봐도 먹고 싶어 하는 모양새로.

나는 야생동물을 먹이로 유인하는 것처럼 오징어를 슬슬 흔들었다.

버터를 발라 구워서 그런가 냄새 하나는 죽여준다.

“야이~ 그래서 안 먹을 거야?”

“…미친.”

“너 노점음식 좋아할 것 같은데?”

“아니, 아까부터 자꾸, 니가 어떻게 알어.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냥 그렇게 생겨서.”

“그렇게 생긴 게 뭔데!?”

유다희는 버럭 소리 지른다.

나는 픽 웃었다.

나름대로 악을 지르는 것 같은데 묘하게 하찮다.

작은 강아지가 짐짓 대형견인 척 몸을 부풀리고 짖는 느낌이랄까?

아니, 애초에 그렇게 싫으면 그냥 먼저 가면 될 게 아닌가? 안 가고 여기 서서 이럴 게 아니라.

‘그리고 너 노점음식 엄청 좋아하는 것도 내가 알지.’

또 하나의 오징어 꼬치가 유다희를 향해 내밀어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 크라켄 레이드 때도 같이 했었잖아?”

“뭐, 뭐? 크라켄? 아, 뭔 언제 적 얘길…….”

“오징어랑 인연이 있네.”

크라켄 레이드 당시 유다희가 분에 못 겨워 훌쩍훌쩍 울던 것을 들먹이며 놀려 볼까 했지만 그랬다간 진짜로 주먹으로 맞을 것 같아서 못 하겠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도로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호텔 가고 싶으면 따라오든가.”

더 이상 권하진 않는다. 시간도 없고.

나는 오징어를 손에 든 채 부슬비 내리는 거리를 도도도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쉬발.”

한동안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던 유다희는 이내 입술을 꽉 깨물고 나를 쫑쫑쫑 따라오기 시작했다.

특유의 경계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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