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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58화 (458/1,000)
  • 459화 한국, 중국, 일본 (3)

    그린헬의 빽빽한 밀림.

    온통 굵은 나무뿌리와 울창한 나뭇잎으로 가득한 땅.

    윤솔은 운 좋게도 같은 팀 멤버 한 명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세희야!”

    “…언니!?”

    유세희는 저 언덕 아래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윤솔의 외침을 듣고 반색했다.

    눈이 안 보이는 그녀의 특성 상 이렇게 지형이 복잡한 곳은 쥐약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윤솔이 유세희와 경기 초부터 접선한 것은 매우 잘 된 일이었다.

    “이렇게 바로 만나게 돼서 다행이다.”

    “그러게요, 순간 진짜 안심했어요. 눈물 핑 돌 뻔.”

    윤솔은 유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마 주장인 마동왕의 오더에 따라 드레이크와 마태강 역시도 유세희를 찾고 있을 것이다.

    윤솔은 유세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마동왕 씨가 경기가 시작되는 즉시 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오라고 했었어.”

    “맞아요. 저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두 여자가 같은 말을 하고 있을 때.

    …콰쾅!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밀림 저편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려온다.

    “저쪽이다.”

    “저쪽이네요.”

    윤솔과 유세희는 바로 위치를 감 잡았다.

    아마 저 요란한 폭음 소리가 마동왕이 보낸 집합신호일 것이다.

    차라라락!

    유세희가 대낫을 들어 전방의 풀숲을 길게 베었다.

    윤솔은 미묘한 시선으로 유세희가 쓰는 대낫을 바라보았다.

    “…왜요 언니?”

    “으응? 아니야. 예전에 그 대낫을 쓰던 친구를 좀 알아서.”

    윤솔은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내 그 둘은 폭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유세희가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커다란 나무들이 쓰러졌고 풀숲 사이로 길이 트인다.

    …우지직! 뚜둑!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다가 다른 나뭇가지에 걸려 비스듬히 누우면 유세희가 그 위를 걸어가 다음 나무를 쓰러트렸다.

    그렇게 해서 쓰러진 거목은 또다시 한동안 그녀들의 길이 된다.

    “와아, 조금만 움직였는데도 숨이 턱턱 막히네요.”

    “으응, 그러게. 엄청 덥고 습기차다.”

    이번 새해 업데이트를 기점으로 땀을 흘릴 수 있는 패치가 이루어졌기에 윤솔과 유세희는 온몸에서 땀을 잔뜩 흘리고 있었다.

    이곳 그린헬의 대기는 정말로 고온다습하다.

    빠지직! 뚝! 우지끈!

    유세희는 계속해서 대낫으로 길을 만들어 냈다.

    윤솔은 유세희의 눈이 되어 방향을 지시하는 동시에 그녀가 지치지 않게끔 꾸준히 회복마법을 걸어주고 있었다.

    그때.

    “…언니. 잠깐만요.”

    비스듬히 쓰러진 나무줄기 위를 걷던 유세희가 진지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뻗었다.

    윤솔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유세희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적들이 와요.”

    눈도 안 보이는 아이가 그것을 어찌 알까?

    하지만 윤솔은 유세희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경기 시작 전, 어진이 했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희의 전투감각은 탁월해. 오히려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 더 정확할 거야. 위기 시에는 믿어도 좋아.’

    윤솔은 유세희의 말을 듣고 바로 전투에 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풀숲이 사납게 흔들리며 몇 명인가의 선수들이 모습을 불쑥 드러냈다.

    “…으음?”

    불편한 신음을 내뱉는 다섯 명의 선수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일본 측 선수들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결집했나 싶을 정도로 빠르고 신속한 결합, 애초에 주최측과 서로 입을 맞춰놓은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놀라운 집합력이다.

    첫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야마카미 시가쿠.

    종족은 인간이며 현 일본 랭킹 2위에 빛나는 검사이자 창잡이다.

    가벼운 갑옷으로 전신 무장을 최소화한 뒤 한 손에는 일본도를, 다른 한 손에는 투창을 들고 다니는 독특한 스타일의 근접 딜러.

    두 번째 선수의 이름은 우에바라 아츠카네.

    2미터가 넘는 장신의 키에 뚱뚱한 몸을 가진 오크 전사로 일본 팀에서 유일한 인외종(人外種) 유저이다.

    의외로 무장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하체에 두른 흰 색의 훈도시가 무장 겸 의복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세 번째 선수의 이름은 히데사토 유키에.

    종족은 마법사답게 인간, 대지의 힘을 이용하는 마법사로 주 메타는 골렘 소환이다.

    그녀의 마법 수준은 6클래스 마스터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네 번째 선수의 이름은 스즈키 히카리.

    위 여자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종족에 마법사이다.

    히데사토 유키에에 뒤지지 않는 6클래스 마스터의 고위마법사로 강력한 화염마법이 주특기.

    다섯 번째 선수의 이름은 아키사다 아야카.

    현 일본 랭킹 1위, 아이돌 뺨치는 외모로 엄청난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선수이다.

    종족은 역시 인간이며 강력한 원소마법을 사용한다.

    마법의 경지는 5클래스로 국가대표가 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이지만, 무려 4개나 되는 원소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할 수 있다는 괴물 같은 재능이 그녀를 여기까지 올려놓았다.

    일본 대표팀 ‘쥬신구라(忠臣藏)’의 멤버 5인이 지금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것이다!

    “시작부터 한국 랭커를 둘이나 발견하다니, 운이 좋네.”

    일본 랭킹 1위, 아키사다 아야카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5클래스의 마법사, 심지어 마스터도 아니다.

    준프로 영역에서는 최상위권이겠지만 프로리그에서 살아남기에는 다소 부족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야카는 명백히 일본 대표팀 최강이라 불리는 마법사였다.

    5클래스에 불과한 실력으로 이런 타이틀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금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마법진 때문이다.

    쿼드라 캐스팅(Quadra casting)!

    자그마치 네 개나 되는 원소마법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이 인간의 재능으로 가당키나 할 법한 일이던가. 그것은 복잡한 수학 문제 네 개를 동시에 연산하는 것과도 비슷한 지능과 정신력이 필요한 작업!

    하지만 지금 아야카는 그것을 무리 없이 해내고 있었다.

    콰콰콰쾅!

    풀, 불, 바람, 얼음.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네 개의 각기 다른 성질의 마법들이 쏟아져 내린다.

    “우리도 질 수 없지.”

    유키에와 히카리 역시 각기 마법을 캐스팅한다.

    커다란 골렘과 시뻘건 불덩이가 날아들어 아야카의 마법을 지원하고 있었다.

    거기에 시가쿠와 아츠카네가 근접 공격을 위해 빠르게 돌진한다.

    …바야흐로 일본 팀 5인의 총력전!

    “호오. 어디 붙어 보자 이거지?”

    하지만 그 앞에 선 유세희는 전혀 기죽지 않고 있었다.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대낫을 단단히 쥔 채로 역습을 노리는 모양새.

    그런 유세희의 뒷목을 낚아채 내빼는 이는 바로 윤솔이다.

    “세희야, 빠지자! 5:2는 승산이 없어. 거기에 나는 서포터잖아.”

    윤솔은 의외로 게임 센스가 좋다.

    그녀는 전투센스보다는 상황 전체를 폭넓게 조망하는 쪽에 재능이 있었다.

    윤솔의 지적을 들은 유세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참, 그랬죠 언니. 그래도 저 정도 수준들이라면은 한번 붙어 볼 만도 한데. 사부님은 프로리그에 막 데뷔했을 때 25:1로도 싸워서 이기셨다고…….”

    “아직은 이르지 요 녀석아. 첫 술에 배 부를래?”

    “헤헤, 하긴.”

    윤솔의 장난스러운 핀잔에 유세희는 생긋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쾅!

    저 멀리서 마동왕이 내는 소음이 한 번 더 들려온다.

    애초의 전략대로, 윤솔과 유세희는 그 방향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아~ 잡아야 해요! 놓쳐서는 안 됩니다! 중국보다 성가신 쪽이 한국이니까요!]

    일본 측 캐스터가 외치는 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려 퍼진다.

    시작부터 꽤나 상당한 위세였다.

    *      *       *

    한편 그 시각.

    운 좋게 경기 초반부터 만난 드레이크와 마태강 역시 나름대로 긴박한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

    중국 대표팀 ‘제왕세기(帝王世紀)’

    전원이 리자드맨으로 이루어져 있는 중국 최강의 팀이다.

    “오랜만이로군.”

    중국 팀에서 한 명이 마태강을 향해 이를 갈았다.

    빨간 말 한 마리를 타고 있는 큰 키의 리자드맨.

    마태강은 그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서초패왕 커제.

    그는 뿌연 흙먼지에 뒤덮인 채 이쪽을 향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양 손에는 열 자루나 되는 거대한 칼이 늘어져 있다.

    리자드맨 특유의 손톱이 기형적으로 발달해 커진 듯한 외형.

    탈것을 타고 있다는 점도 특히나 눈에 띈다.

    기마병 메타는 프로리그에서 처음 선보여지는 것이니만큼 꽤나 낯선 메타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옆으로는 네 명의 리자드맨 전사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거대한 대포를 들고 있는 리자드맨 원딜러 ‘팅위안(鎭遠)’.

    궁수 메타에서 극도로 나아가 원거리 포격을 하는 변칙 메타를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커다란 손과 발을 가진 장신의 리자드맨 ‘장마오 쉰’이 콧김을 내뿜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발보다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양 어깨에 얹어져 있는 수많은 참새였다.

    허리춤에는 녹슬어 버린 칼 몇 자루가 덜렁덜렁 매달려 있다.

    그 옆에는 얼굴 절반을 가린 마스크 위로 날카로운 눈을 빛내고 있는 리자드맨 ‘탕쯔이’가 서 있었다.

    외형으로는 남녀를 판별할 수 없는 리자드맨이지만 아마 그는 이 조합의 유일한 홍일점일 것이다.

    마지막 리자드맨은 흰 도복을 입고 있는 격투가 ‘구리’였다.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태극무늬가 유독 선명해 보였다.

    “리자드맨이라, 러시아 쪽 랭커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군.”

    드레이크의 말에 마태강이 귀를 쫑긋한다.

    “러시아 리자드맨들과도 싸워 보셨습니까, 드레이크 씨?”

    “으음. 예전에 금광 공략 당시에 한 번. 그때 리자드맨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

    “부럽습니다. 저도 이번 기회에 리자드맨에 대해 공부해 보겠군요.”

    한편, 커제는 말 위에 올라 마태강을 향해 바로 돌진해 들어온다.

    “한국! 예전 토토리그에서의 굴욕을 갚아 주마!”

    과거 열렸던 불법 사설리그에서 커제는 마태강을 이기고 위로 올라갔다가 마동왕에게 처참하게 패한 바 있었다.

    마태강은 씩 웃으며 눈앞의 커제를 향해 팔을 걷어붙였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둘은 서로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나인 것을 용케 알아봤군. 이쪽이야말로 그날의 굴욕을 갚아 주마.”

    커제의 손톱과 마태강의 건틀릿이 사납게 격돌했다.

    콰콰쾅!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일어나 주변 나무들을 뿌리 채 뽑아 놓았다.

    한편, 드레이크 역시 같은 원딜러인 팅위안과 마주서고 있었다.

    “활잡이인가? 더러운 휴먼, 암만 쏴 봐라. 대포 앞에서는 소용없다.”

    “도마뱀 녀석들이 당최 뭐라는 건지 모르겠군. 그런 무거운 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나?”

    팅위안은 바로 드레이크를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드레이크 역시 팅위안을 향해 쇠뇌를 쏘아 보냈다.

    피피핑! 콰쾅!

    하지만 활과 대포는 그 파괴력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팅위안의 경우에는 장마오 쉰과 탕쯔이, 구리에게 보호받고 있다.

    “5:2인가. 아무래도 힘들겠군.”

    드레이크는 몇 번의 교전 후 바로 상대측의 전력을 파악했다.

    그것은 커제와 몇 합을 겨루고 난 마태강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드레이크 씨. 분하지만 지금의 커제는 꽤나 실력자입니다. 그새 많이 컸군요.”

    “저 대포잡이도 마찬가지로 보이는군. 거기에 근접 딜러가 3명이나 붙어서 호위하고 있으니 우리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하다못해 세희나 솔, 둘 중 하나만 합류했어도 해볼 만할 텐데.”

    5:3 정도만 되어도 해 볼 만하다는 드레이크의 혼잣말은 마태강에게 큰 용기를 심어 주었다.

    “일단은 뒤로 빠지지. 경기 전 대장의 명령도 있었고.”

    드레이크의 말에 마태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경기 시작 전 마동왕의 오더를 들은 바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면 바로 폭음이 들려오는 곳으로 집합하라는 명령.

    마침 짜기라도 한 듯 밀림 너머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콰쾅!

    그것은 마동왕이 내리는 집합 명령이 분명하다.

    저런 굉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는 전 아시아를 통틀어서도 많지 않으니까.

    “운 좋은 줄 알아라.”

    마태강은 커제를 향해 조소를 날리고는 재빨리 뒤로 빠졌다.

    드레이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큰 발을 가진 리자드맨 장마오 쉰이 콧김을 쒹 내뿜었다.

    “추격한다! 모두 대약진이다!”

    그가 고함치자 주변에 있던 네 마리 리자드맨들의 몸에 힘찬 버프가 깃들었다.

    오오오오!

    이내 중국 팀 5인이 무서운 기세로 한국 팀 2인을 맹추격하기 시작했다.

    [아~ 잡아야 해요!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일본보다 성가신 쪽이 한국이니까요!]

    중국 측 캐스터가 외치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이 또한 꽤나 상당한 위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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