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54화 (454/1,000)
  • 455화 키스 타임 (4)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

    이곳에는 현재 그 어떤 때보다도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마교의 정예전투부대 천 명. 그리고 덜렁교의 정예알몸부대 천 명.

    그 둘 사이에는 불꽃과도 같은 진검승부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교 측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주인공이 될 마동왕을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응원하기 위해.

    덜렁교 측은 고인물과 함께하는 S급 관람석에서의 쾌적한 관람 및 단합대회를 위해.

    마교도 덜렁교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본다면 금세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대결!

    마교 Q: <고인물이 대외행사에서 방귀를 뀐 횟수는?>

    덜렁교 A: <너무 쉽지. 총 4회. 대외행사 때마다 초고화질 직캠 외에 열화상카메라로도 항상 24시간 촬영해 왔기에 알 수 있다. 사인회 할 때 한 번, 애장품 나눔 행사 때 한 번, 광고 모델로 나왔을 때 한 번, 아이돌 E스포츠 대회 때 걸그룹 니아의 코치로 활동할 때 한 번……>

    덜렁교 Q: <깔끔한 승부로 유명한 마동왕, 하지만 그는 평소의 깔끔한 전투방식과는 어울리지 않게 착용한 건틀릿을 세척, 수선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렇다면 마동왕의 건틀릿에 난 잔기스들의 수는?>

    마교 A: <너무 쉽지. 총 23개. 프로리그에서 생긴 흉터가 총 6개, 보스 몬스터를 거꾸러트릴 때 생긴 흉터가 4개,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앙신의 프로리그 습격사건 당시 생긴 흉터들이다. 참고로 우리들은 마지막 리그에서 파괴되어 소멸하기 전까지 이 23개의 흉터들에 하나하나 모두 이름을 붙여 존경의 뜻을 표하고 있었……>

    마교 Q: <고인물이 자기 무기에 찔린 횟수는?>

    덜렁교 A: <너무 쉽지. 정답은 단 1회. 원래의 치밀한 컨트롤을 떠올려 보면 그런 실수를 생각하기 쉽지는 않지만 사실 고인물도 자기 몸을 자기가 찔러 상처 입힌 적이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바다 레이드를 갔을 때의 34번 영상 57분 8초 부근에 나오지. 당시 고인물은 ‘복서 문어’라는 몬스터에게 등 뒤를 잡혀 있었는데 등 뒤에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과감히 자신의 배를 칼로 찔러 등 뒤에 있는 문어의 뇌를 관통시켜 파괴하는 과감한 플레이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우리는 자신의 배를 칼로 찌르면서까지 적을 격살하는 그의 자학적이고 희생적인 플레이를 리스펙……>

    덜렁교 Q: <마동왕의 손목과 발목을 가리켜 ‘워터 링(Water Ring)’이라고 부른다. 이것의 정확한 뜻과 그 무게를 구하라.>

    마교 A: <너무 쉽지. 워터 링이랑 마동왕이 ‘와류’ 특성을 발현한 이후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주변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 손목에 생겨나는 물의 고리다. 발목에 생기는 워터링의 원리는 조금 다른데 이는 와류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갑옷이 가두고 이 열기가 하반신으로 빠져나가면서 갑옷과 갑옷 사이의 이음매에 결로 현상이 발생해 회오리쳐 만들어지는 물의 고리를 뜻하지. 둘 다 밀리그램으로 환산한다면 약 65mg 정도의 평균치를 낼 수 있……>

    마교 Q: <고인물이 쓰는 바디워시는 어디의 제품일까?>

    덜렁교 A: <너무 쉽지. 국내 로케 촬영 당시 비밀리에 땀 한 방울을 몰래 체취해서 국내와 해외 모든 유명 시향사들에게 문의한 결과 헬라스틴 사의 쇼킹벨벳 퍼퓸이라는 제품으로 판명되었다. 참고로 마트에서 제일 싼 편에 속하는 제품으로 희망소비자가격은 약 2300원 가량……>

    덜렁교 Q: <마동왕이 경기 중 가장 많이 흥얼거리는 노래는>

    마교 A: <너무 쉽지. 정답은 ‘팔도비빔왕’!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 로 시작하는 흥겨운 가락이 특징이지. 참고로 노래의 제목은 팬들이 지어 준 것이다. 주로 8데시벨 정도의 목소리로 흥얼거려서 육성으로는 잘 들리지 않고 나중에 정밀한 녹음 파일을 들어야 알 수 있다. 미묘하게 익숙한 멜로디의 자작곡으로 작년 11월에 처음 그 존재가 밝혀진 이래 많은 마교인들의 자장가로 쓰이고 있지. 참고로 이 흥얼거림들을 믹싱하여 리메이크된 팬 메이드 송의 종류는 약 1천여 개에 이른다. 얼마 전에는 워터멜론 차트에도 한번 올랐을 정도로 중독성이……>

    마교 Q: <고인물이 게임 플레이에 열중하고 있을 때 가장 많은 빈도로 나타나는 고유의 버릇은?>

    덜령교 A: <너무 쉽지. 정답은 땀을 훔치는 동작이다. 게임 안에서는 땀이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습관인지 항상 콧등이나 인중을 한번씩 훔치는 버릇이 있지. ‘방금은 정말 위험했다. 물론 게임 속이라 식은땀이 날 리는 없지만’이라는 중얼거림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덜렁교 Q: <마동왕이 강타 동작을 준비할 때 무의식중에 행하는 동작은?>

    마교 A: <너무 쉽지. 정답은 주로 공격을 담당하는 오른쪽 팔의 팔꿈치를 반시계 방향으로 한번 회전시키는 것이다. 탄환과도 같은 강력한 일격을 먹이기 전 학습적으로 카운터에 대비하는 투철한 유비무환 정신이 아예 루틴처럼 굳어진, 그야말로 철옹성과도 같은 플레이어라 아니할 수 없는……>

    마교 Q: <고인물은 평소 알몸으로 다니기는 하나 최근에는 점점 격렬해지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요즘은 망토로 자신의 몸을 꼭꼭 가리고 다니는데 이것을 뚫고 그의 속옷 색깔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덜렁교 A: <너무 쉽지. 정답은 비가 오는 필드에 고인 물웅덩이에 비친 고인물의 망토 속을 고배율 렌즈로 확대하면 알 수 있다. 우리 덜렁교는 그의 속옷 색깔을 알아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도를 했지만 결국 끝끝내 그의 속옷 색깔을 알아낼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단 한 번도 속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

    .

    .

    퀴즈 공방전은 엄청나게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상대방이 문제를 내면 제한시간 안에 상대편 팬덤의 최고 브레인들이 토의 끝에 대답과 자료를 첨부한다.

    서로의 진영에서는 정신없이 부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어느새 문제들의 수는 두 자리수를 넘어 세 자리수에 육박하게끔 되었다.

    “……제법인걸?”

    “……너희도.”

    유다희가 이끄는 마교 군단과 임요셉이 이끄는 덜렁교 군단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노려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전의 그 살벌한 투기는 어느 정도 중화된 상태였다.

    쉽게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던 상대가 팽팽하게 분전을 하자 약간 정도는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승리는 양보할 수 없지.”

    “아챔 직관 1열은 우리의 것이다!”

    승부욕 강한 유다희는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기다렸다.

    이윽고, 임요셉이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문제를 냈다.

    덜렁교 Q: <마동왕의 몸에서 가장 긴 털은?>

    기습 문제.

    지금껏 공방전을 주고받은 결과 마교는 마동왕의 게임 속 모습에는 빠삭한 정보력을 자랑하지만 현실의 모습에서는 조금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노린 약간의 기습 번트였다.

    일순간 마교인들의 사이에서 혼란이 일었다.

    그 누구도 쉽게 부저를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꺄악, 저 변태 자식들! 이런 민감하고도 은밀한 문제를 내다니!”

    “…수, 수위라는 것을 당최 모르는 건가!? 하여간 저질들이야! 남세스러워!”

    “마왕님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라도 이 문제의 답은 공개되어선 안 돼!”

    “아니, 그보다 저 변태 녀석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람!?”

    마교의 여인네들은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화를 냈다.

    그리고 그것은 유다희도 마찬가지였다.

    “…으흠. 으흠. 진정들 하세요. 동요하면 지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유다희의 얼굴도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뜨거워진 낯을 손부채질로 애써 식히려 손바닥을 물개처럼 파닥거린다.

    그러나 퀴즈가 진행될수록 제한 시간은 점점 짧아진 상태이다.

    마교인들은 저마다 붉어진 얼굴로 우왕좌왕하느라 제대로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는 상태.

    결국.

    삐익-

    타임아웃.

    마교인들은 이 문제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자 임요셉을 위시한 덜렁교 남자들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동왕의 몸에서 제일 긴 털은……당연히 머리카락이다. 무엇을 생각한 것이지, 휴먼?”

    그러자 순간 마교인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약간의 침묵.

    뿌드득-

    그리고 그것을 깬 이는 바로 유다희였다.

    “이런 성적인 문제로 우리를 낚다니! 이 저열한 것들!”

    “흥! 당신의 상상력이 무고한 문제를 저열하게 만든 것 아닙니까?”

    “닥쳐! 지금껏 나온 문제들의 질을 봐! 하나같이 다 저질이었잖아!”

    “자기네들은 뭐 고상했는 줄 아네.”

    마교와 덜렁교의 사이는 또 다시 험악해졌다.

    마교 단원들 사이에서 비분강개한 몇몇 투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언니! 그냥 확 찢어 죽여 버립시다!”

    “A열은 무슨. 저놈들의 주마등을 A열에서 보게 만들자구욧!”

    “아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허약한 것들이 입만 살아서는!”

    “현피 뜨자!”

    마교의 무력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여고생 군단의 투쟁심이 가장 뜨겁다.

    반면 힘과 힘으로 부딪쳐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덜렁교의 화력이 마교의 화력에 밀린다.

    천 명 대 천 명으로 인원수는 같지만 주로 원양어선 선장, 광부, 보디빌더, 헬스트레이너, 이종격투기 선수, 철공소 사장님, 특전사 간부, 조폭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덜렁교의 남자들은 나약하고 가녀려서 힘을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크아악! 죽여! 현피 떠!”

    “겨, 경찰에 신고할 거야!”

    마교와 덜렁교의 반목이 점차 더 심화되고 있을 때.

    “싸움을 멈춰 주세욧!”

    누군가 E스포츠 스타디움 중앙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고인물, 이어진이었다!

    “저희 친합니다! 그러니 싸우지 말아 주세요!”

    그 뒤를 이어 등장하는 이가 있었다.

    가면과 후드로 몸을 가리고 있는 남자.

    음성변조기로 만들어진 목소리.

    바로 마동왕이다.

    양 거대 팬덤의 정신적 지주이자 우상인 두 당사자가 한 시간, 한 공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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