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51화 (451/1,000)
  • 452화 키스 타임 (1)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푸슉-

    나는 캡슐의 문을 열고 몸을 일으켰다.

    마몬을 잡고 보상을 받았다.

    스크루지 후작의 대저택에서 파티를 여느라 온갖 빚을 진데다가 그마저도 마지막 돈 뿌리기 불꽃축제에서 잔고가 거의 0에 수렴하게 되는 바람에 이번 레이드는 더더욱 필사적이었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밖에는 평할 수 없는 돈지랄.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산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이 영광을 당신들께 바칩니다.”

    나는 전화번호 목록을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내가 레이드가 끝난 직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지금껏 나를 믿고 지금껏 레이드 자금을 지원해 준 이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은혜는 두 배로, 복수는 네 배로.

    드레이크가 알려 준 좋은 격언이다.

    재산의 극히 일부만을 현금으로 환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액수가 내 가상계좌에 꽂혔다.

    …음, 이제 이것을 배분할 차례.

    나는 주위에 전화를 돌렸다.

    나에게 돈을 빌려 준 이들에게 훨씬 더 큰 배당금을 선물로 줄 생각이었다.

    #유다희 ver.

    유다희는 내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이유를 묻지도 않고 꽤 큰 액수를 쾌척했다.

    (물론 마동왕 신분으로 빌린 것!)

    이것은 그녀가 개인방송 생활을 하며 번 전 재산으로 지금껏 내가 받은 투자금 중 두 번째로 큰 액수였다.

    내가 전화를 걸자 몇 초 뒤 유다희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마왕님! 간만에 연락 주셨네요?]

    “으음. 안녕. 잘 지냈어? 다름이 아니라…….”

    [앗! 혹시 저번에 빌려드렸던 돈 이야기라면……천천히 갚으셔도 돼요! 저 지금 당장 돈 필요한 곳도 없고, 뭐 또 원래 돈이라는 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법이니…!]

    오히려 돈을 빌려 준 쪽이 더 당황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유다희는 내 경제적 상황이 많이 어렵다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

    “…그게 아니라. 돈 갚으려고 전화한 건데.”

    [네? 아니 벌써요? 마왕님 무리하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무리 안 해. 레이드가 대박이 났거든. 배당금 받아가라는 거야.”

    내 말을 들은 유다희가 잠시 말이 없다.

    수화기 너머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그녀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이내 입금된 액수를 본 유다희는 깜짝 놀라 외쳤다.

    [세상에! 이 액수가 다 뭐예요! 이런 큰 돈 못 받아요, 마왕님!]

    “배당금 싫다는 주주는 처음 보네. 꽁돈 아니야. 안목과 신뢰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지.”

    나는 할 말을 마친 뒤 통화를 마무리했다.

    다음 타자는…….

    #엄재영 감독 ver.

    엄재영 감독은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나에게 빌려 주었었다.

    심지어 부모자식 간에도 하는 게 아니라는 연대보증까지 서 줬다.

    (참고로 와이프 되시는 오희선 씨는 이 사실을 아직 모른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졸린 목소리의 엄재영 감독이 전화를 받았다.

    아마 자고 있었던 모양.

    […여보세요? 아, 어진이냐? 이 자식 이런 시간에 어휴!]

    “네 형님. 저번에 그 좋은 투자 건 때문에 연락 드렸습니…….”

    [아이 씨, 이거 보이스 피싱 아냐?]

    “…됐고요. 계좌나 부르세요. 아, 맨날 쓰던 그 계좌에 이체해 드리면 되려나.”

    [어? 돈 갚게? 마침 잘 됐다. 와이프가 눈치 챈 것 같거든. 아휴, 뭐 부동산에서 전화 왔다고 이거 뭐냐고 묻는데 진땀 뺐다. 나 좀 살려 줘라~]

    “형님은 좀 혼나셔도 돼요. 사모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그게 뭐예요. 아무튼 배당금 입금했으니 한번 확인해 보세요.”

    [어어, 지금 폰뱅킹 켜는 중. 잠깐만 잠깐만, 나의 계좌… 잔액 조회… 엥? 야 이거 뭐야. 너 왜 사기 쳐!]

    “아 뭔 사기.”

    [내가 빌려 준 돈보다 인마 액수가 적잖아! 요 짜식아!]

    “…잠 깨고 나시면 0개수 잘 세어 보세요.”

    나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투덜대는 엄재영 감독에게 일침을 넣고는 전화를 끊었다.

    #박보연 및 니아 멤버들 ver.

    이 녀석들은 요즘 스케줄이 바쁜지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중국 콘서트에 갔다고 들었는데 시차 때문인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무튼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입금 후 메시지만 남겨 놓았다.

    <입금완료. 수고~>

    그러자 얼마 뒤 답장이 오긴 왔다.

    <?????>

    아마 액수를 보고 놀란 것이겠지.

    그러더니 내가 보내 준 금액이 다시 돌아왔다. 처음에 빌려줬던 금액을 제한 액수였다.

    <사부돈애굿잘못입금ㄷ좼어요>

    다급함이 느껴지는 메시지도 첨부되었다.

    아마도 ‘사부 돈 액수 잘못 입금됐어요’의 오타 같은데…….

    <배당금은 %로 계산. 맞게 계산된 것.>

    나는 다시 돈을 니아 멤버들의 계좌로 입금했다.

    수수료 때문에 은행만 좋겠네 이건.

    그러자 이번엔 임우람 매니저에게 전화가 온다.

    [아이고 어진 씨! 애들이 지금 콘서트 중인데, 쉬는 시간에 잠깐 핸드폰 봤다가 놀라서 다들 난리도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네요. 괜히 공연이나 방해하고. 돈 갚지 말걸.”

    [아뇨! 아하핫! 당연히 그런 말씀은 아니고, 제 월급까지 투자했는데 너무너무 감사하죠!]

    그렇다. 박보연을 비롯한 니아 멤버들이 내게 빌려 줬던 돈 중에는 임우람 매니저의 투자금도 포함되어 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화는 언제나 즐겁고 훈훈하다.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니아 멤버들의 노랫소리와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통화를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       *       *

    그 뒤로도 배당금 행진은 쭉 이어졌다.

    자신들의 연봉을 그대로 들이부었던 마태강이나 유세희, 유창… 심지어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던 큰아버지까지 넉넉하고 풍성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진이 네가 그냥 아주, 우리 가문의 자랑이여 자랑! 유래가 읎어 유래가! 어허헛허허허! 이번 명절에는 꼭 한번 놀러오너라~ 애들이 너 보고 싶다고 난리야 아주!]

    나는 내 레이드에 퇴직금을 부어 투자해 주었던 큰아버지의 덕담을 마지막으로 모든 통화를 완료했다.

    배당금 분배 이후에 남은 돈은 앞으로 세무사의 조언에 따라 차차 분산할 계획.

    나는 앞으로의 재무설계가 담긴 서류들을 가지고 7층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로비의 대형 소파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윤솔과 드레이크가 나를 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어진아! 왔어?”

    “음. 어진. 분배 문제는 끝났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둘 옆에 걸터앉았다.

    둘 다 서류를 끄적이고 있는 걸 보아하니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이번 레이드 보상금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던 모양.

    문득,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가 마몬을 잡고 얻은 막대한 배당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 궁금해졌다.

    “너네들은 돈 어디에 쓸 거야?”

    내가 묻자 윤솔은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잘 모르겠어. 사실 아직도 얼떨떨해. 내가 평생에 생각해 본 적 없는 액수라서. 일단 세금부터 낸 뒤에 나머지는 어머니 옷도 사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 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하게. 지금껏 나 키우시느라 맨날 제대로 못 드시고, 친구들도 못 만나시고… 우리 엄마 제주도도 한번 못 가 보셨거든.”

    드레이크 역시 검은 머리를 헝클어트리듯 긁적인다.

    “나는 재활치료 머신을 구매할 생각이다. 그동안은 너무 비싸서 못 샀거든. 그것으로 운동을 하면 짧은 거리 정도는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돈이 남는다면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아이들을 후원할 생각이야.”

    효도과 기부라… 둘이서 단체로 나를 쓰레기로 만드는군.

    사리사욕만을 생각하던 나를 숙연하게 만드는 대답들이 나왔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 그래. 좋은 생각들이다. 나도 기부하려고 했어.”

    “앗! 너무 예쁜 생각이다, 어진아. 나도 같이 할래!”

    “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좋은 단체들을 많이 알지. 이 단체는 횡령 전과가 있으니 거르고, 이 단체는 투명하게 운영되는 곳이고, 이 단체는 과장홍보가 심하니 거르고, 이 단체는 정말 뜻깊은 이들이 운영하는…….”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신이 난 듯 자기들의 기부내역을 알려 준다.

    예산부족에 허덕이는 의료센터와 굶주리는 아이들의 쉼터, 고통받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 등에 내 재산들의 일부가 향한다.

    하지만 그러고도 한참 남을 정도로 마몬 레이드의 보상은 큰 것이었다.

    ‘뭐, 이렇게 해서 한국에 돈이 돌면 좋지.’

    전 세계를 떠돌던 돈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니 일석이조다.

    더군다나 기부활동으로 인한 금액은 세금 공제가 되니 더더욱 좋은 일.

    “자, 마몬 보상금 문제는 이제 이만 해두고.”

    나는 손뼉을 쳐 윤솔과 드레이크의 시선을 돌렸다.

    마침 그때쯤 해서 훈련실에서 나온 유세희와 마태강이 합류했다.

    “앗. 여기 모여 계셨네요.”

    “사부! 레이드 끝나셨어요!?”

    거기에.

    …우당탕!

    문 열리는 소리가 크게 열리며 누군가 허겁지겁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야! 마왕아! 너 통장에 이 돈 뭐야! 액수 착각한 거 아니냐!? 이씨, 이렇게 많이 입금하면 어떡해! 그냥 내가 먹으려다가 말해 주는 거야! 고마운 줄 알어! 이런 형이 또 없다!”

    잔뜩 부산을 떨고 있는 엄재영 감독이다.

    펄떡펄떡 뛰는 잠옷 차림인 것이 마치 자택의 침대에서 산지직송된 듯 신선한 움직임.

    이렇게 해서 닳고닳은 뉴비 구단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다소 늦은 시간이지만 다 모인 김에 앞으로의 계획을 논해 봐야겠다.

    ‘지겨운 원패턴이로군.’

    나는 TV에서 나오는 광고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TV에서는 곧 열릴 데우스 엑스 마키나 프로리그를 선전하고 있다.

    일명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12개국이 한 자리에 모여 최강국을 겨루는 세계적인 행사.

    나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선전 영상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정말 지금껏 늘 똑같은 원패턴이었다.

    게임에서 강한 보스를 잡고 좋은 아이템을 얻고 그것을 통해서 PVP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그치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시청자들, 독자들, 내 행동 따위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걸!’

    이 단조로운 원패턴 속에 E스포츠 팬들이 열광하는 요인들은 모두 들어 있다.

    요는 이런 단순한 플롯을 얼마나 재밌게, 그리고 통쾌하게 풀어 내느냐겠지?

    나는 생각을 정리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구단의 모든 멤버들을 향해 짤막하게 선고했다.

    “복잡한 건 질색이니까, 바로 가서 왕좌부터 접수하자.”

    내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의 눈에 강렬한 이채가 깃든다.

    세계정복의 첫 발이 이렇게 내딛어졌다.

    계획은 단순하다.

    일단 아시아 정점부터 먹고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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