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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50화 (450/1,000)
  • 451화 기억의 습작 (6)

    “…달러($)야.”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한다.

    아직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임에 틀림없는 표정.

    하지만 내가 굳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내 친구들의 표정은 천천히 변해 간다.

    상식적인 수치 뒤에 추가로 붙어 있는 몇 개의 0들.

    단위가 다르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대로.

    내가 말한 15억은 원이 아니라 달러 기준이다.

    1,500,000,000 불($).

    한국 돈으로 환전하면 약 1조 7,017억 5,000만 원!

    내가 괜히 전 재산을 털어 가며, 심지어 지인들에게 돈까지 빌려 가면서 마몬 레이드에 나선 것이 아니다.

    ‘…그때는 나도 참 여러모로 배수진이었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 아니겠나?

    나는 지금까지 번 모든 돈을 인간 유저들에게 뿌려 버렸고 그날부로 알거지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스크루지의 저택에서 돈지랄 불꽃놀이를 해서 날린 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이 내 손아귀 안으로 들어와 있다.

    내 완벽한 설계가 통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는 상황.

    “메, 메가 밀리언스! 파워볼 당첨도 이렇게는…….”

    드레이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인벤토리를 살폈다.

    수없이 찍혀 있는 숫자들과 쉼표.

    게임머니로는 그 액수를 어림잡기가 어렵다.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마 게임머니를 현실 돈으로 환전하는 형식이 아니라 회사 지분의 퍼센테이지를 우리에게 승계하는 방식으로 보상금 전달이 이루어질 거야. 혹은 가상화폐를 취급하는 환전소를 통하는 것도 괜찮지.”

    이렇게 엄청난 양의 게임머니를 환전하게 되는 경험은 전무후무하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세무사와 법무사를 고용해 최대한 세금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이 돈을 승계 받는 것뿐.

    “……꿈을 꾸는 것 같아.”

    윤솔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동안 번 돈을 전부 나에게 빌려주었던 그녀는 이제 말도 안 되는 이자를 받게 생겼다.

    그리고 나를 믿고 돈지랄 파티에 전 재산을 투자했던 니아 멤버들, 엄재영 감독, 우리 구단 식구들이나 팬클럽 회원들 역시도 그에 따른 합당한 배당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윤솔의 어깨를 몇 번 툭툭 쳐 주고는 싱긋 웃었다.

    “열일곱 서브스트림 중 가장 부자인 몬스터를 잡았는데 이 정도 보상이야 당연하지. 돈은 공평하게 삼등분하자고.”

    그러자 윤솔과 드레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어진아! 기여도에 따라 나누는 게 나아!”

    “맞다. 나중에 돈 가지고 트러블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기여도에 따라 나눠야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파이가 워낙에 커서 가져가는 돈의 액수는 여전히 천문학적이다.

    이윽고, 보상 배분이 모두 끝났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아직도 얼떨떨한 태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두 손을 쓱쓱 비비며 말했다.

    “…이제 정말로 대회만이 남았군.”

    국격(國格) 상승.

    한때 E스포츠 강국이었던 한국은 사회 지도층들의 잘못된 인식과 비합리적인 규제 탓에 점점 E스포츠 경쟁에서 뒤쳐져 이제는 후진국 소리까지 듣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이제 이 흐름을 확 뒤집어 엎어 버릴 생각이었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Asia Champions League)’!

    이제 이 거대한 규모의 리그를 완전히 쌈 싸먹을 일만 남았다.

    …….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바로 그때.

    [스승님께서는 언제든 돌아오라 하셨다.]

    벨럿의 목소리가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렇다.

    메인 스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몬은 여전히 옥좌에 앉은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

    그는 무덤과도 같이 무거운 침묵으로 벨럿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벨럿은 답답하다는 듯 다시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도구를 고쳐 쓸 수 있듯, 사람도 고쳐 쓸 수 있다고 하셨다. 스승님도, 나도, 너도. 모두 잘못된 부분이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니 고칠 점이 있는 것은 매한가지.]

    […….]

    [그리고 너 역시도 아까 비슷한 말을 했었지?]

    벨럿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돌아와라, 사형.]

    그녀의 무덤덤한 눈빛 속에는 습기가 배어 있다.

    그러자 이내, 마몬의 말라붙은 입술이 움직였다.

    [돌아가긴 어디를 간단 말이냐.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

    극도로 무겁고 또 무거운 목소리.

    차게 식어 굳어 버린 회한이 그대로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하지만 벨럿은 포기하지 않는다.

    마치 쇠를 달구고 두드리는 듯, 그녀는 다시 마몬의 가슴을 두드렸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빗물이 내를 이뤄 바다로 가듯,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기만 하면 언젠가 닿기 마련이다. 방향만 올바르다면 말이야.]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왔구나.]

    말을 마친 마몬은 눈을 감았다.

    그는 한 마디를 추가했다.

    [나에겐 시간이 없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 심지어 벨럿까지 마몬의 대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일제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순간.

    …쾅!

    저 멀리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쿠르르르르륵!

    바닥을 옅게 진동시키는 힘!

    무언가가 엄청난 기세로 만마전을 향해 밀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

    그렇다.

    지금 만마전을 향해 몰려오고 있는 것은 엄청난 크기의 파도였다.

    바닷물!

    어디서 밀려들어 왔는지 알 수 없는 대량의 바닷물이 만마전이 위치해 있는 무저갱 속으로 들이닥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망할! 아까 그 데스웜 놈이 바다 쪽으로 간다 싶더라니!”

    아까 도망친 데스웜이 아마 무저갱과 바다 사이의 벽을 허물어트린 모양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바다와 만마전 사이의 그 두터운 지층의 벽에 구멍이 날 리가 있나!

    …콰콰콰콰콰콰! …철썩! …꾸르르르륵!

    무저갱 속, 금은보화들이 빠져나간 거대한 곳간에 차가운 바닷물이 가득 차오른다.

    이곳 만마전은 엄청난 바닷물에 의해 수몰될 위기에 놓였다.

    참으로 갑작스러운 전개였다.

    “피해! 뒤로 빠져야 해!”

    나는 만마전 반대편에 있는 스투웜의 땅굴을 바라보며 외쳤다.

    최선을 다해 달린다면 도망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최종 콘텐츠까지 소모한 마당이니 추가 페이즈 정도야 어렵지 않게 클리어가 가능할 것이리라.

    …문제는.

    [사형! 얼른…!]

    벨럿이 마몬을 옥좌에서 떼어 내려 한다는 것이다.

    우드드득!

    벨럿이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마몬의 엉덩이가 옥좌에서 조금 떼어졌다.

    [……너.]

    벨럿을 바라보는 마몬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나는 혀를 찼다.

    “…쳇!”

    여기까지 와서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 역시 벨럿을 도와 마몬의 몸을 당겼다.

    뚜둑! 우드득!

    마몬의 몸이 점점 옥좌와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잘 되었을 경우 구해낼 수도 있겠다 싶다.

    [……너희들.]

    마몬은 흔들리는 눈으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가 막 입을 열어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할 때.

    콰-쾅!

    맨 앞의 쓰나미를 뚫고 나타난 거대한 괴물체 때문에 마몬의 대사는 들리지 않았다.

    [……마몬아, 네 어디를 그리 바삐 가려느냐! 배신자의 말로는 죽음뿐이라는 것을 잊은 게냐!]

    파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머리.

    흉측한 고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심해의 초대형괴수.

    그 모습을 본 나는 심장이 멎을 듯 놀라야 했다.

    “…레비아탄!?”

    하해(下海)의 왕.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

    푸른 용과 더불어 바다를 둘로 나누어 지배하는 수중 최강의 대악마!

    …놈이 어찌하여 이런 곳에 있단 말인가!?

    “어진! 빠져야 한다! 이러다 죽겠어!”

    드레이크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외쳤다.

    나 역시 그 의견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사형! 사형을 데리고 가야 해!]

    벨럿은 애절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하소연할 뿐이다.

    바로 그때.

    […가거라.]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마몬의 입이 열렸다.

    마몬은 나를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다.

    [신과 재물.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나니!]

    그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다.

    …드르륵!

    마몬은 옥좌에 앉은 채로 뒤로 돌았다.

    “…….”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우리는 마몬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울며불며 발버둥치는 벨럿을 허리에 끼고 스투웜이 만들어 놓은 출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한다.

    파도 속, 거대한 그림자의 주인 레비아탄이 쩌렁쩌렁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몬! 패배한 악마성좌의 말로는 알고 있겠지!? 네놈을 단죄할 날만을 지느러미 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마몬은 옥좌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여유롭다 못해 권태가 느껴지는 시선으로 눈앞에 몰아닥치는 거대한 광풍을 주시한다.

    [닥쳐라 하찮은 질투쟁이, 소인배 놈아. 나는 탐욕의 증좌(證左) 마몬. 너의 미적지근한 바닷물로는 나의 달아오른 용광로 심장을 조금도 식힐 수 없음이라.]

    마몬은 악마성좌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은 채, 나직한 목소리로 눈앞까지 쇄도한 레비아탄을 꾸짖었다.

    이윽고. 마몬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쿠드드드득!

    거대한 만마전에 어울리는, 그 무엇보다도 높고 화려한 옥좌.

    마몬은 그 옥좌를 번쩍 치켜들었다. 마치 망치처럼.

    콰-콰콰콰콰콰!

    전신에 격렬한 수류를 휘감은 레비아탄이 뿔끝을 내세워 폭포처럼 돌진해 온다.

    마몬은 거대한 옥좌를 망치처럼 휘둘러 이에 맞섰다.

    악마성좌 대 악마성좌!

    두 마리의 대악마가 무저갱의 끝자락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순간.

    아무도 없는 텅 빈 만마전 속에서, 마몬은 귓가를 스치는 나지막한 목소리 하나를 들었다.

    ‘…고독할 걸세.’

    이 말을 언제 어디서 들었더라?

    눈 내리는 설원, 늙고 노쇠한 이의 충고, 용 사냥꾼.

    오래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하지만 마몬은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준 말에 공감했다.

    […고독하군. 정말이었어.]

    그것이 끝이었다.

    콰-쾅!

    격렬한 굉음, 눈부신 빛에 의해 부서지는 바닷물.

    까마득한 무저갱 속의 황금향(黃金鄕).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실로 아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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