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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48화 (448/1,000)
  • 449화 기억의 습작 (4)

    “돈이 없으면 너는 뭐지?”

    나는 물었고 마몬은 코웃음 쳤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태도.

    하지만 마몬의 표정은 이내 급격히 굳어진다.

    [……저건!?]

    나는 화려한 옥좌를 밟고 우뚝 선 채 마몬을 내려다보았다.

    “고민해 본 적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고민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수많은 옥좌 파편들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멀쩡한 옥좌.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휘황찬란한 등받이는 온통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팔걸이에는 사람 머리통보다도 더 큰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수많은 칼들이 등받이 뒤로 공작의 꼬리 깃털마냥 넓게 퍼져 부채꼴 모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백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보검(寶劍)들.

    루비, 호박, 진주, 에메랄드, 사파이어, 토파즈, 자수정, 오팔, 흑요석, 가넷, 아쿠아마린… 셀 수도 없이 많은 보석들이 영롱한 빛을 내뿜어 의자의 화려함을 보탠다.

    의자 안쪽의 빨간 안장은 금실, 은실, 홍실을 꼬아 만들어진 재질이었으며 천사의 날개마냥 푹신하고 보드라워 보였다.

    -<비로소 완전한 황금만능주의자> / 의자 / S

    세계 제일의 대장장이 몰리에르 아르파공이 만들어 낸 귀물(鬼物).

    화려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의자로 한번 앉으면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는 일어날 수 없다.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기에 이만한 의자가 또 없을 것이다.

    -어둠 속성 저항력 -100%

    -‘수전노’ 특성 사용 가능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다른 옥좌들과는 그 화려함과 위엄의 차원이 다르다.

    만마전의 위상에 실로 걸맞은 훌륭한 옥좌!

    […오오!]

    마몬은 무엇엔가 홀린 듯 탄성을 내뱉었다.

    자신이 버렸던 옥좌들 중 하나가 더욱 더 완전하고 아름다워진 모습으로 눈앞에 되돌아왔다.

    만마전의 중심을 장식하기에는 조금 모자라다고 느꼈던 단점들까지 완벽하게 보완된 상태로!

    황금을 향한 욕구, 그 근원에는 마몬이 있다.

    당연히 마몬은 눈앞에 있는 화려한 옥좌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앞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아차!]

    마몬은 멈칫했다.

    하마터면 이대로 유혹에 이끌릴 뻔했다.

    눈앞에 있는 저 옥좌는 스승이 만든 무구가 분명하다.

    분명 먼 옛날 고르딕사를 잡기 위해 만든 덫이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왜?]

    마몬의 발걸음은 무엇에라도 홀린 것처럼 돈지랄 의자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나는 옥좌 위에 서서 씩 웃었다.

    “이 의자는 졸부, 관종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지.”

    졸지에 부자가 된 이들은 꼭 다음 단계로 남들의 관심과 존경,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이 돈지랄 의자는 그런 관종들에게 무한한 충족감을 준다.

    이 의자에 앉는 것만으로도 전광판에 자기가 의미 없이 날려버린 금액이 표시되며 그것이 많을수록 사람들이 놀라기 때문이다.

    한때 반짝 유행하고 사라졌던 ‘부자 인증서’, ‘부의 상징 어플’처럼 의미 없이 엄청 비싸지만, 일단 이걸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이런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쓸 정도로 돈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 상징물들과도 비슷한 개념.

    마몬 역시 이런 특성을 가진 AI이니만큼 돈지랄 의자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크아아악!]

    마몬은 자신의 두 다리를 땅에 무릎까지 박아 넣어 전진을 멈췄다.

    더 이상 저 옥좌의 유혹에 이끌리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하듯 말이다.

    “야이~흐흐흐…그래서 옥좌 안 앉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놔둘 내가 아니다.

    나는 숨을 참은 뒤 전신을 점액범벅으로 만들고 마몬의 앞으로 달려다갔다.

    [놈!]

    마몬이 망치를 휘둘러 정면의 금화들을 탄환처럼 날려 보낸다.

    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

    수없이 많은 금화들이 쇄도해 온다.

    아무리 씨어데블의 점액으로 몸을 코팅하고 있다지만 저런 것에 맞으면 못 버틸 것 같은데…….

    하지만!

    […어딜!]

    나를 바싹 따라붙은 벨럿이 황금의 벽을 비스듬히 세워 금화들을 빗겨 나가게 만든다.

    마몬의 망치가 크게 한번 휘둘러졌다가 그 위치에서 그대로 다시 휘둘러진다.

    나는 벨럿의 방패를 들고 그 앞으로 향했다.

    욱신-

    손목의 데미지가 느껴진다.

    아마도 내가 이런 통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벨럿의 방패 역시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겠지.

    ‘이게 마지막이겠군.’

    나는 최후의 패링을 준비했다.

    이내, 마몬의 대망치와 벨럿의 방패가 한데 맞부딪쳤다.

    콰-콰콰콰콰콰쾅!

    마몬이 만들어 낸 지진파는 방패의 둥근 테두리를 한번 빙글 돈 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벨럿의 방패 역시도 완전히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파캉!

    C+등급 아이템이 S+등급 아이템을 상대로 이렇게 분전한 예는 앞으로도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이다.

    ●REC

    ‘…기억할게!’

    나는 ‘기억의 습작’을 향해 짧은 묵념을 해 보였다.

    동시에, 내가 옥좌에서 마몬의 코앞까지 이동하는 동안 씨어데블의 점액이 미끈미끈한 점액자국을 길게 적셔 놓는다.

    나는 재빨리 마몬의 등 뒤로 돌아가 방금 축적한 반사 데미지를 뿜어냈다.

    “등짝! 등짝을 보자!”

    죽음룡 오즈의 기운이 마몬의 등짝을 사납게 두들겼다.

    퍼-펑!

    마몬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뒤로 밀려난다.

    [오-오오오!?]

    통나무 같은 두 다리가 금화의 밭에서 쑥 뽑혀 나왔다.

    “지금이다! 총공격!”

    내 오더가 떨어지자 윤솔, 드레이크, 벨럿이 온 힘을 모아 마몬을 뒤로 밀어냈다.

    미끈거리는 점액 덕분에 우리의 데미지는 그대로 넉백(Knock-Back)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마몬은 그 상태 그대로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끈거리는 점액 위에서는 버틸 수 없다.

    […이런!]

    마몬은 뒤로 밀려나는 도중 손을 뻗어 바닥을 짚었지만…그의 손아귀에 잡히는 것은 딱 그만큼의 금화 한 주먹뿐.

    몰락 직전의 순간, 돈은 그저 돈일 뿐 그의 편이 아니었다.

    …짤그랑짤그랑짤그랑!

    산더미같이 쌓인 돈도 마몬을 제자리에 붙잡아 주지는 않았다.

    그저 뒤로 끌려가는 그를 무감정하게 배웅할 뿐.

    [안-돼애애애!]

    마몬은 절규했지만 너무 늦었다.

    그가 밀려난 곳의 끝에는 돈지랄 의자가 넓은 품을 벌린 채 놓여있다.

    나는 싸늘하게 선고했다.

    “세상에서는 당신이 의자에 앉지만, 만마전에서는 의자가 당신에 앉습니다.”

    결국.

    …쿵!

    마몬은 옥좌에 엉덩이를 붙이고 말았다.

    그러자.

    츠-츠츠츠츠츠츠!

    돈에 미친 자라면 절대로 엉덩이를 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쾌락과 중독이 마몬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마몬이 옥좌에 앉아 멍한 표정을 짓는 순간.

    차라라라라락!

    옥좌가 맹렬하게 반응한다.

    그 대상은 바로 도처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재물이었다!

    […아, 안 돼! 안 돼!]

    마몬은 허공에 대고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옥좌에서 엉덩이를 떼지는 못했다.

    그저…그저 눈앞에서 엄청난 속도로 줄어드는 재물들을 보며 허무하게 외칠 뿐이었다.

    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

    눈앞의 재물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줄어들고 있었다.

    평생 넘쳐흐를 것 같았던 금화의 바다가 점차 수위를 낮춘다.

    찬란하고 영롱한 보석들도 가루가 되어 옥좌로 빨려들었다.

    병 속에 담긴 명주는 깨져 흩뿌려졌고 각종 부동산 권리증서 역시 한 줌 재로 변했다.

    미술품은 어린아이의 낙서보다도 가치가 없는 쓰레기가 되었고 골동품은 으레 동시대의 물건들이 받았던 취급대로 흙으로 돌아갔다.

    그 모든 것들은 전부 옥좌를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아아아아앗! 안 돼! 안 된다! 내 저것들을 얼마나 힘들게 모았거늘!]

    마몬은 옥좌로 빨려 들어오는 재물들을 보며 처절하게 포효했다.

    하지만 재물의 바다는 줄어드는 속도를 더욱 더 빠르게 할 뿐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을 일은 없다지만, 그에 필적하는 규모였던 금화의 바닷물과 보석의 산은 순식간에 마르고 닳아 버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옥좌의 크기는 부쩍부쩍 커지고 있었다.

    전광판에 적힌 액수들도 천문학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천민자본주의적 쾌락은 마몬의 엉덩이부터 시작해 골수를 통해 뇌까지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이, 일어나야 해! 지금이라도 일어나야……!]

    마몬의 모습은 도박중독자들이 판을 보며 시뻘건 눈알을 번들거리는 것과 같았다.

    이성적으로는 지금 일어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도저히 몸이 그 통제를 따르고 있지 않는 상태.

    그것이 바로 지금 마몬의 상태이다.

    그때.

    [이 옥좌는 스승님이 너를 위해 만든 것이다. 만족하느냐?]

    벨럿은 마몬을 올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

    마몬은 넋 나간 표정으로 그런 벨럿의 우러름을 마주본다.

    이윽고.

    …짤그랑!

    텅 빈 만마전 공동에 금화 한 닢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지막 금화 한 닢이 옥좌에 흡수되는 것을 끝으로, 만마전 안에는 단 한 푼의 재물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옥좌.

    만마전의 모든 부를 빨아먹고 몸을 불려 거대해진 옥좌 하나만이 이 거대한 세상 중앙에 홀로 우뚝 서 있을 뿐이다.

    츠츠츠츠츠…

    동시에, 마몬의 몸을 물들이고 있던 검은 기운 역시도 옥좌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황금색으로 번들거리던 눈알에서 녹아내린 금이 흘러내리자 이내 눈알이 허옇고 검은 제 색을 되찾는다.

    순간.

    [……!]

    마몬의 오른쪽 머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무표정으로 감겨 있던 눈이 번쩍 뜨인다.

    […그렇군. 이 옥좌는 스승이 만든 것인가?]

    벨럿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번에는 고르딕사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잡기 위해서 만드셨다.]

    [……집들이 선물로는 최고로군. 마침 의자가 없어 고민이었는데.]

    마몬은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이 앉아있는 옥좌 팔걸이를 툭 쳤다.

    그의 몸은 현재 옥좌와 거의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다.

    뜨거운 철판 위에 올려진 고기가 눌러 붙는 것처럼, 마몬의 하체는 거의 옥좌에 녹아든 듯 빨려 들어가 있어 분리는 요원해 보인다.

    마몬은 끓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망치는 어째서 가지고 있었지? 내 기억 속 습작 말이다. 폐기된 것이 아니었나?]

    마몬은 예전에 그 망치를 대장간에 버리고 왔었다.

    아르파공에게 선택받지 못했던 바로 그 망치를 말이다.

    그 말에 벨럿은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은 그 망치를 평생 보물 1호로 간직하고 계셨다. 첫 제자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만큼. 먼지 하나라도 묻을까 녹 한 점이라도 슬까 늘 관리하셨지.]

    […….]

    [네가 떠난 이후로도 쭉 말이다.]

    [……!]

    마몬의 오른쪽 머리가 두 눈을 부릅떴다.

    벨럿은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서는 그 순수하고 소중한 망치에 피 한 방울 묻는 것조차 원치 않으셨다. 그것은 무기로 사용될 운명이 아니라고 하셨어. 그래서 그날 밤에도 집지 않으셨던 게지.]

    [무기로…사용될…운명이…아니었다고?]

    마몬이 멍한 표정으로 묻자 벨럿은 하나 남은 손을 들어 보였다.

    그곳에는 죄다 깨져서 너덜너덜해진 방패에 붙어 있는 마몬의 망치자루가 보인다.

    ‘방어구’

    C+등급으로 S+등급 무기의 공격을 몇 번이나 막아 냈던 ‘방어구’.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한 몸 바쳤던 역전의 아이템.

    [스승님은 도구가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무기를 만들 때는 늘 인간을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넘겼지. 방어구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가. 그래서 그때 그 설산의 용사냥꾼 부녀에게…….]

    [이 망치 역시 당신께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써야 한다고 하셨었지. 비록 내가 이번 여행길에 몰래 들고 오긴 했지만 말이다.]

    벨럿의 말을 들은 마몬은 잠시 입을 벌렸다.

    그때.

    문득 벨럿의 입술이 움직였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

    [미안하다고.]

    [……!]

    마몬은 멍한 표정으로 입을 반쯤 벌렸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빈 허공을, 빈털터리가 된 황금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의 말라붙은 입술이 달싹였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아무것도.]

    극도의 혼란에 빠진 듯한 모양새.

    이윽고.

    황금향에 가득하던 금속 비린내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데린쿠유를 지독하게 물들였던 역병 기운이 사라진 것처럼, 만마전에 가득하던 마기가 아침을 맞이한 새벽 물안개처럼 스러진다.

    이곳에 있던 모든 재물, 심지어 마몬의 마기까지도 빨아들인 옥좌는 이제 성장을 멈추었다.

    옥좌는 더 이상 재물을 빨아들이지 않은 채, 크고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이 드넓은 공동 중앙 제일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다.

    마치 이만하면 충분히 먹었다는 듯이.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의 어깨를 한 번씩 툭 쳤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악마로서의 마몬은 죽었어. 레이드 종료야.”

    그리고 그런 내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세계 최초로 ‘악마성좌 마몬’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물.>

    <보상이 지급됩니다!>

    귓가에 요란한 알림음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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