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47화 (447/1,000)
  • 448화 기억의 습작 (3)

    <마몬>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다스리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지하광물과 탐욕을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신과 재물.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나니!”

    -마몬- <신약, ‘산상보훈(山上寶訓)’ 中>

    마몬은 두 개의 머리를 꼿꼿하게 폈다.

    여전히 오른쪽 머리의 눈알은 감겨 있고 왼쪽 머리의 눈알은 부릅떠진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돈은 곧 나의 힘이요, 생명이요, 주인이요, 신앙이요, 모든 것이리니!]

    돈을 목숨처럼 아낀 결과 결국 돈 그 자체에 목숨이 되어 버린 악마, 그것이 바로 마몬이다.

    만마전의 가득한 황금 덕에 불사신에 가까운 생명력을 손에 넣은 존재.

    스크루지 후작을 비롯해 온 세계의 재벌들을 타락시켜 그들의 돈을 빼앗으려는 흉계를 꾸민 자.

    무저갱의 수전노!

    […때가 되었다! 나는 이곳 지저의 궁전이 낡은 가축우리로 보일 만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제국을 지상에 건설할 것이로다! 오즈, 그 지긋지긋한 늙은 도마뱀 놈이 사라졌으니 나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이 무저갱 속에 아무도 없다!]

    마몬은 거대한 망치를 집어든 채 껄껄 웃었다.

    쩌적- 쩌적- 쩌적- 쩌적-

    또다시 거대한 압력이 밀려온다.

    아직 망치가 땅에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대기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지면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망치!

    …콰콰콰콰콰쾅!

    말도 안 되는 데미지! 심지어 크리티컬까지 섞여 떴다.

    가히 산을 무너트릴 만한 일격이다.

    “…쳇, 패링도 계속 하면 손목에 부담 가는데.”

    나는 이번에도 역시 적절한 타이밍에 방패를 회전시켜 마몬의 망치를 흘려보냈다.

    퍼펑! 우지지지직!

    내 몸에서 뿜어져 나간 반사 데미지가 시커먼 벼락처럼 변해 마몬의 전신을 날카롭게 꿰뚫었다.

    죽음룡 오즈의 기운이 숙적을 만나 사납게 날뛴다.

    마몬의 질긴 근섬유가 터져나갔고 잘려나간 뼈의 절단면에서 시커먼 골수가 펑펑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츠츠츠츠츠츠…

    마몬은 우습다는 듯 돈을 써 자신의 체력을 모두 회복해 버렸다.

    황금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이내 끈적하게 녹아 마몬의 피부에 덧씌워졌다.

    영롱한 보석들은 수백 가지 색깔의 분진이 되어 마몬의 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풀피. 지지 않는 태양과도 같은 찬란함. 영원의 증표.

    [이것이 돈의 힘이다.]

    말을 마친 마몬은 망치를 아래로 휘둘렀다.

    마치 골프선수의 스윙과도 같은 샷!

    …파캉!

    그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퍼-퍼퍼퍼퍼퍼퍼펑!

    수많은 금화들이 탄환처럼 흩뿌려진다.

    마치 기관총이 쏘아 보내는 총알처럼 미친 듯이 쇄도하는 금화 무더기들!

    “…에잇!”

    윤솔이 재빨리 신성불가침 특성을 발현했지만 금화는 보호막을 갈가리 찢어발기며 안으로 들어온다.

    보호막이 금화의 속도를 늦춘 틈에 재빨리 황금 기둥 뒤로 숨지 못했다면 아마 모두가 일시에 벌집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한편, 마몬은 신성불가침 특성을 보자 표정을 찡그리며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났다.

    […천사? 아직도 살아남은 것들이 있었나? 사탄, 그 머저리는 당최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게람.]

    천하의 악마성좌도 천사의 힘은 경계하는 모양.

    그것은 아마도 악마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진저리치게 만드는 영험한 기운임에 틀림없다.

    [다 꺼져 버려라!]

    마몬은 크게 포효하며 발을 굴렀다.

    수백 마리의 코끼리 떼가 난동을 피는 듯한 충격이 대지를 뒤흔든다.

    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

    금화의 산이 무너지며 엄청난 규모의 산사태가 일어나 우리를 덮쳐 왔다.

    금화와 보석의 쓰나미!

    “젠장, 지형 데미지로 공격해 온다 이거지? 치사한 놈.”

    나는 잽싸게 몸을 날려 친구들에게 향했다.

    차라락-!

    고인물 모드일 때는 잘 쓰지 않는 킬 체인 특성을 쓸 수밖에 없다.

    나는 점액을 묻힌 철조망을 뻗어 윤솔과 드레이크, 벨럿을 잡아끌어 한 곳으로 모았다.

    “떨어졌다간 어디에 파묻혀 죽을지 모르니 서로를 단단히 붙잡으라고!”

    내 경고를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앞으로 몰아닥치고 있는 거대한 황금의 폭풍!

    아쉽게도 이런 종류의 자연재해를 막아 낼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은 우리 파티원들 중에 없다.

    …아니, 하나 있었다.

    [내게 맡겨라. 광물이라면 자신 있다.]

    벨럿은 쓰러져 가는 몸으로도 손바닥을 들어 바닥을 때렸다.

    퍼-퍼퍼펑!

    낮지만 두터운 황금의 벽이 바닥에서 솟구쳐 금은보화의 쓰나미를 막아 주었다.

    …땅! …따땅! …따따따따땅!

    금화가 황금 벽을 때릴 때마다 무수한 불똥들이 비산하고 있었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황금의 벽에 납작 붙어 이 사치스러운 산사태를 피해야 했다.

    “꺄아악! 가끔 돈에 파묻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세상에 돈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고 하셨었는데… 이제는 그 말뜻을 조금 알 것도 같군!”

    몰아치는 황금의 폭풍은 너무나도 무겁고, 날카롭고, 빠르고, 또 잔인한 것이었다.

    온 세상이 금화가 짤그랑거리는 소리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누런 폭풍 너머로 커다란 그림자가 일렁인다.

    [후후후후. 그러게 선택의 날 때 고르딕사를 골랐으면 좋았지 않느냐.]

    마몬.

    그는 폭풍 안으로 들어오면서까지 굳이 벨럿을 조롱한다.

    자기가 직접 타락시킨 고르딕사를 언급함으로서 스승과 데린쿠유의 동료들까지 싸잡아 모욕하고 있었다.

    벽 뒤에 선 벨럿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닥쳐라! 눈에 금깍지가 껴도 단단히 꼈구나! 그런 눈으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다!]

    […돈 없는 것들은 늘 말뿐이지. 그런다고 해서 정말로 천 냥 빚을 탕감해 줄 존재는 없단다.]

    [너 같은 건 죽었다 깨어나도 스승님의 마음을 몰라!]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 비루한 것 따위는.]

    마몬은 왼쪽 머리를 들어 금색으로 변한 눈알을 번들거리고 있었다.

    정말로 눈에 황금깍지라도 낀 듯한 모양새.

    [자, 또 간다. 네 스승과 다른 점을 보여 봐라.]

    말을 마친 마몬은 또다시 커다란 망치를 들어 올린다.

    콰지지지직!

    망치에 닿은 산사태의 중앙 부분이 충격으로 인해 터져나간다.

    황금빛 대지가 역단층처럼 쪼개져 기괴하게 어그러졌다.

    커다란 크레이터를 더 커다란 크레이터가 삼키고 그것은 훨씬 더 큰 크레이터에 의해 삼켜졌다.

    하지만 벨럿 역시도 나약하게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았다.

    …쾅!

    벨럿은 드워프 특유의 단단한 몸을 이용해 지진 데미지를 흡수했고 그 힘을 역이용해 마몬의 파동에 맞선다.

    우지지직!

    땅거죽을 밀어 버리며 솟구친 두 개의 황금 파도가 허공에서 맞붙어 높은 산맥을 형성했다.

    끼기기기긱…

    물론 벨럿의 힘이 훨씬 약했기에 황금의 산은 초승달 같은 모양으로 기괴하게 휘어져 내리게 되었다.

    퍼석! 쩌저적!

    동시에, 마몬에 맞선 벨럿의 한쪽 손이 깨져나간다.

    마치 과열된 도자기 흙처럼 바스러지는 벨럿의 손.

    휘이이이잉-

    금속 비린내 진동하는 대지에 일순간 고요함이 찾아왔다.

    “꺼져라!”

    황금 벽 뒤에 있던 드레이크가 재빨리 불카노스 화살을 날려 마몬을 저격했다.

    “벨럿을 괴롭히지 마!”

    윤솔도 질세라 신성불가침 특성으로 마몬을 옭아매었다.

    퍼펑! 쿠르르륵!

    다섯 개가 넘는 디버프에 노출된 마몬은 일시적으로 몸이 굳는다.

    그 위로 불카노스 화살 세례가 퍼부어졌다.

    제아무리 마몬이라 할지라도 불카노스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임에 틀림없다.

    윤솔과 드레이크의 합공에 마몬이 데미지를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마몬은 씩 웃고는 또다시 주위에 있는 황금을 빨아들었다.

    …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

    수많은 금화와 보석들이 마몬의 피부로 흡수되어 그의 생명력을 충만하게 만든다.

    마몬은 또다시 싸움을 시작하기 전의 몸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마전의 황금들은 조금도 줄지 않은 채 여전히 넘쳐나고 있었다.

    최강(最强)! 불가살(不可殺)!

    그 누가 감히 그의 부와 힘, 넘치는 생명력을 의심할 수 있으랴!

    [이 세상은 돈 많은 놈이 왕이다. 그 누구도 돈을 거역할 수는 없어. 너희 인간들이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마몬은 절대적인 우위에 선 채 모두를 내려다본다.

    자연스럽게 모두는 마몬을 우러러보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도처에 넘쳐나는 황금!

    그것이 있는 한 마몬은 무적이요 그의 말이 곧 진리이다.

    “……크윽!”

    모든 이들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분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한 것이었기 때문.

    돈이 없는 자는 약하다.

    돈이 많은 자는 강하다.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이 세상의 논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럼 돈이 없으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몬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마몬보다도 높은 곳에 서서 쪼그려 앉아 있는 이는 바로 나다.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돈이 없으면 너는 뭐지?”

    내가 묻자 마몬은 코웃음 쳤다.

    [고민할 필요가 없지. 그 전제는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가득한 재물이 모두 나의 것이기 때문……음!?]

    하지만 마몬은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마몬보다도 높은 곳에 알몸으로 우뚝 서서 찬란한 황금향의 아우라를 등지고 있는 나.

    그런 내가 발로 밟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건!?]

    마몬의 말끝이 살짝 떨린다.

    늘 단단한 무쇠 같던 목소리에 처음으로 무른 변화가 일어났다.

    “고민해 본 적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고민해 보는 게 좋을 거야.”

    말을 마친 나는 발밑을 향해 시선을 힐끗 돌렸다.

    파괴된 채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옥좌들, 왕을 떠받칠 자격이 없는 실패작들.

    그 파편들의 한가운데 위엄 있게 우뚝 솟구친 의자가 하나.

    ‘황금만능주의자(黃金萬能主倚子)’

    일명 ‘돈지랄 의자’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