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46화 (446/1,000)

447화 기억의 습작 (2)

8미터에 이르는 키, 3톤에 육박하는 몸무게.

검은 근육으로 꽉 들어찬 몸과 사악한 마기로 무장하고 있는 힘의 화신.

무저갱 속에서 수없이 많은 악마들을 조종하는 만마전(萬魔殿)의 왕.

…그런 마몬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큭!?]

마몬의 왼쪽 머리가 표정을 잔뜩 구긴다.

반면 오른쪽 머리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묵직한 반사 데미지! 그것도 숙적이었던 죽음룡 오즈의 기운이 실린!

마몬은 몸과 자존심을 둘 다 다친 채 으르렁거렸다.

[노옴! 무슨 잔재주냐!?]

마몬은 또다시 거대한 망치를 들어올렸다.

무저갱이 통째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거대한 망치.

콰-콰콰쾅!

또다시 엄청난 버스트 딜이 들어온다.

딜 미터기가 뚫리며 그래프가 하늘로 수직 폭증!

…하지만!

“응, 소용없어~”

자욱한 포연이 걷히고, 나는 또다시 조악한 방패 하나를 든 채 마몬의 앞에 섰다.

이번에도 마몬의 일격을 멀쩡한 몸으로 받아 낸 것이다!

[…….]

“…….”

“…….”

너무나도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마몬도 놀라고 내 친구들도 놀랐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나를 보며 물었다.

“……어진아, 어떻게 막은 거야?”

“이건 진짜 말이 안 된다 어진.”

화산이 폭발하는 순간 손으로 꾹 눌러 분화를 멈출 수도 있는 힘을 가진 것이 바로 마몬이다.

…그런 절대적인 물리력을 이 조악한 방패로 막아 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해내고 있다.

그것도 몇 번이나 연속으로!

콰지지직!

나는 또다시 반사 데미지를 뿜어내 마몬을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콰쾅!

황금의 산 몇 개를 주저앉히고 나가떨어지는 마몬.

나는 벨럿을 등진 채 오연히 서서 작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패링(Parrying)’이라는 개념을 알아?”

패링이란 격투기나 검투 등에서 상대의 공격을 자신의 무기로 옆으로 쳐 내는 동작을 뜻한다.

단순히 막거나 회피하는 것과는 달리, 패링은 공격을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는 동작으로 상대의 연속적인 동작을 일시적으로 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스트 가드’의 개념으로 쓰일 때도 많은데 이럴 경우 패링 과정에서 오는 가드 데미지는 0이 될 뿐만 아니라 상대를 밀어내거나 공격을 반사하는 경우까지도 있는 것이다.

“매우 찰나의, 극도로 까다로운 타이밍을 정확히 잡아내는 동체시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이런 개념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플레이 타임만 해도 어지간한 미성년자의 생애 시간을 가볍게 뛰어넘는 고인물이다.

“패링만 잘 할 수 있다면 아무리 싸구려 방패라도 강한 적과 싸울 수 있어.”

나는 벨럿의 방패 ‘기억의 습작’을 든 채 당당히 마몬 앞에 섰다.

쿠구구구구…

눈앞에서는 격분한 마몬이 대망치를 들어 올리고 있다.

나는 뒤에서 보고 있는 벨럿과 윤솔, 드레이크에게 강의를 시작했다.

“확실히 마몬의 망치는 깡 공격력이 미쳤지. 어지간한 A+급 방패 따위는 한 방에 부숴 버릴 거야. A+등급 대에서 제일 성능이 좋은 ‘야만전사의 고기방패’ 같은 것도 몇 방 못 버티겠지.”

…하지만! 나는 C+등급의 조악한 방패로 마몬의 공격을 막아 냄에 있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그러나! ‘일반 방어’보다 한 차원 높은 ‘고급 방어’ 기술에 속하는 이 패링 기술만 제대로 숙지한다면 방패에 데미지 하나 없이 적의 공격을 흘려보낼 수 있지. 잘 보라구!”

나는 눈앞에 있는 마몬의 거대한 육체 앞에서 숨을 골랐다.

…꾸드득!

마몬의 오른팔 근육, 손등에 나 있는 Y자 모양의 힘줄이 터질 듯 꿈틀거린다.

그 힘줄이 약 7분의 6박자로 맹렬하게 떨리는 순간.

“핫-챠!”

나는 벨럿의 방패를 들어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몬의 망치 자루가 방패 뒤에 손잡이처럼 붙어 있었기에 가능한 동작이었다.

동시에.

콰쾅!

마몬의 망치가 내 방패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절묘한 순간, 내 방패는 마몬의 망치가 준 물리력을 회전시킨 뒤 그대로 주변으로 흩어내 버린다.

이해를 쉽게 돕자면, 우산을 펼친 채 초고속으로 돌리고 있을 때 빗방울이 모두 튕겨나가 우산이 젖지 않는 느낌이랄까?

“핫하! 참고로 이 ‘헛 패링’ 후 들어가는 ‘정 패링’ 동작은 고전게임인 Z다의 전설 마스터모드에서 오마쥬 된 것이기 때문에 기존 플레이 경험만 있다면 초보자도 쉽게 흉내 낼 수 있지! 참고로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공격에 한해서만 각도 계산이 가능한 제한적인 가드이기에 모든 공격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때! 참 쉽지!?”

또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세계관을 통틀어 이런 고난이도의 패링 동작을 가능케 하는 아이템은 이 방패 단 하나뿐이다.

-<기억의 습작> / 한손무기 / C+

초보 땜장이 ‘드머프 마몬 클레망소’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도구.

서툴고 조악하지만 바른 정신과 큰 꿈이 깃들어 있다.

-공격력 +120

-SET (특수)

-<기억의 습작> / 방어구 / C+

초보 땜장이 ‘드머프 벨럿 엘리제’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도구.

서툴고 조악하지만 바른 정신과 큰 꿈이 깃들어 있다.

-방어력 +120

-SET (특수)

마몬의 망치 자루가 벨럿의 방패 뒤에 손잡이가 되어 붙어 있기에 마치 접히지 않는 우산 같은 모양새가 되어 빙글빙글 돌리기가 훨씬 쉬워졌다.

합체가 가능한 세트 아이템.

힘을 하나로 합쳤을 때 비로소 그 숨은 진가가 발휘되는.

[…물건을 넘어 그것의 영향을 받을 사람을 본다.]

벨럿은 가물거리는 시야를 들어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 앞에는 마몬의 망치질을 모두 흘려 버리는 내가 있다.

“나 역시도 네 스승님의 말에 일부 동의해.”

나는 벨럿에게 말했다.

벨럿 역시도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앞에 있는 마몬에게 말했다.

[여기서 처음 너를 보았을 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나?]

[……?]

[이 친구는 감히 너 따위가 평할 그릇이 아니야.]

벨럿의 말을 들은 마몬의 왼쪽 머리에 시커먼 핏줄이 돋아났다.

[까불지 마라! 어디서 감히 그딴 너절한 궤변으로!]

마몬은 다시 한번 망치질을 시도한다.

대분화(大噴火), 대지진(大地震), 자연재해(自然災害), 압궤(壓潰), 초전박살(初戰撲殺) 등등…….

마몬의 살벌한 특성들은 모두 힘에만 몰빵되어 있다.

그 모든 파괴적인 기술들이 나 하나만을 노리고 떨어져 내린다.

……물론.

…빙글! …콰콰콰콰쾅!

나는 패링으로 모든 공격을 흘려 버릴 뿐이지만 말이다.

“네 망치가 결국 너를 잡는구나.”

나는 마몬의 망치자루를 빙글빙글 돌리며 씩 웃었다.

이 손잡이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정교한 패링은 불가능했겠지.

이별의 밤 당시 아르파공이 이 망치를 집지 않아 망치가 온전했기에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한편, 내 뒤에 있던 윤솔과 드레이크의 표정 역시 밝아졌다.

“꺄악! 어진아 멋져! 이대로라면 정말 잡을 수 있겠어!”

“어진! 대단하다! 그 패링 타이밍이라는 것…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해!”

묵직한 반사 데미지에 몇 번 피격당한 마몬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다.

7대악마 중 최강의 힘을 가진 마몬을 1:1로 밀어내는 위업!

이 모습이 공개되었다면 아마 전 세계 게이머들이 입을 벌리고 경탄했겠지.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

길게 끌 생각 없다.

나는 초반부터 총력전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리치 왕의 심장, 버서커 모드, 맹독 혈액 등의 패가 남아 있다.

나는 벨럿의 방패에 씨어데블의 점액을 코팅하며 패링과 함께 그 모든 것들을 쏟아 부을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바로 그때.

[큭큭큭큭……. 그래 인정하마.]

마몬은 망치를 든 채 옅게 웃는다.

그리고는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꽤나 골치 아픈 존재임에 분명하다. 아르파공, 그 늙은이처럼 말이야.]

“…….”

[그러나 거기까지다. 더 이상 나를 귀찮게 할 수는 없어.]

마몬의 기세가 확 변했다.

놈은 망치를 잠시 옆에 내려놓고는 두 팔을 쫘악 벌렸다.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짤랑!

시작은 아주 작은 소리였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금화 한 닢이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그 뒤로.

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

어마어마하게 많은 금화들이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황금의 맥이 살아서 펄떡대는 것 같은 풍경.

그렇게 약동하기 시작한 황금의 줄기는 곧장 마몬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 검은 피부 속으로 흡수된다.

…차르르르르르륵!

마몬의 HP가 엄청난 속도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힘, 그리고 생명과도 같지.]

그렇다.

마몬은 이곳 만마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재물들을 흡수해 자신의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짤그랑!

금화 한 닢이 마지막으로 마몬의 피부로 빨려 들어감과 동시에 놈의 생명력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풀피(Full HP)!

반면 만마전에 산처럼 쌓인 부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여전히 금화는 곳곳에 산처럼 쌓였고 금괴와 보검(寶劍), 값비싼 미술품, 골동품과 찬란하고 영롱한 보석들, 각종 부동산 증서들이 그 사이를 이어 산맥을 만든다.

너무 많아서 마몬이 흡수한 양은 거의 티도 안 날 수준.

그러니 이론 상 마몬의 HP는 천문학적인 수치, 거의 무한에 가까운 것이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쌓인 모든 황금들이 다 여벌의 목숨이라고? 그건 반칙이잖아. 대체 어떻게 잡으라고…….”

“역시 고정 S+급 몬스터는 사기적이군. 하긴, 잡으라고 만든 몬스터가 아니니 당연한가? 이건 도저히 답이 없을 것 같은데…….”

벨럿 역시도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주변에 쌓인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몬은 그 표정들을 쭉 흩어보며 통쾌하게 웃어젖혔다.

[표정들이 가관이구나. 하하하하!]

만마전의 왕. 무저갱의 수전노.

이 세상에서 가장 힘 센 존재이며 또한 가장 부유한 존재.

마몬이 포효했다.

[…때가 되었다! 나는 이곳 지저의 궁전이 낡은 가축우리로 보일 만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제국을 지상에 건설할 것이로다!]

지금껏 마몬을 억제하고 있던 죽음룡 오즈도 사라졌으니 이제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나만 아니었더라면 말이지.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

이쯤이야 당연히 예상했던 바다.

천하의 고정 S+등급 몬스터를 잡는 것인데 일이 너무 쉬우면 안 되잖아?

심지어 상대는 죽음룡 오즈보다 공략 난이도가 높은 마몬이 아닌가!

“코인(Coin)이 목숨을 뜻하는 건 당연하지. 게이머라면 당연히 추리할 수 있는 내용이야.”

나는 입맛을 다시며 눈앞 만마전의 제왕을 노려본다.

…이제부터 2페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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