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화 데스웜(Deathworm) (5)
…콰콰콰콰쾅!
금화들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금과 은으로 된 기둥들이 마치 딱딱하게 굳은 케이크처럼 박살나 무너진다.
보석들은 가루가 되어 가지각색 분진을 피웠다.
붕괴하는 황금향.
그만큼 데스웜이 만들어 내는 지진은 엄청난 위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건, 지진이라기보다는 와류에 가깝군.”
나는 데스웜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금화들을 바라보며 표정을 구겼다.
쿠르르르륵!
우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모든 것들이 데스웜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금괴, 은괴, 고대 문명의 미술품, 각종 권리증서, 값비싼 술, 수없이 많은 보석들이 전부 데스웜의 입안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 역시도 점점 데스웜의 입 쪽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쿠오오오오!
데스웜은 거대한 입을 벌리며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온다.
놈의 흡입력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와류는 지진의 힘마저 담고 있었기에 더욱 더 위험하다.
나는 급한 대로 윤솔과 드레이크에게 대비책을 알려 주었다.
“자, 나를 따라해.”
나는 자세를 낮추고 데스웜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이윽고.
…쿵!
데스웜이 고개를 땅에 처박자 묵직한 지진파가 전해져 온다.
나는 그 파장을 눈으로 쫓으며 지면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물결처럼 퍼지는 지진파가 뒤로 지나가는 순간, 나는 계속해서 땅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따라했고 말이다.
그러자.
“어!? 지진 데미지가 안 들어왔네?”
“이럴 수가! 지형 데미지가 무효 처리되었어! 버그인가!?”
윤솔과 드레이크는 상태창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다.
나는 피식 웃었다.
“지진파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실체파(body wave, 횡파)이고 다른 하나는 표면파(surface wave, 종파)야. 데스웜의 지진은 지진계에 기록된 실체파, 즉 횡파의 모양을 따르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어. 데스웜이 일으키는 지진의 모델이 된 지진은 1960년 5월 22일에 칠레에서 발생한 칠레 대지진으로 지진계에 기록된 그때의 리히터 규모 9.5짜리 진폭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지. 따라서 지진계의 모양과 구간에 맞춰 다음 바디 웨이브의 패턴을 예측한 뒤 높은 진폭에서 점프해 주고 낮은 진폭에서 발을 땅에 디뎌 주기를 반복하다 보면 데미지를 최소화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스킵도 가능한…….”
그러나 윤솔과 드레이크는 이미 내 말을 듣기를 포기한 것 같다.
“…어진이는 가끔 사이버 망령 같아요. 대체 저런 걸 어떻게 아는 걸까요?”
“으음. 샌드웜 등 비슷한 아종이나 하위종과는 많이 싸워 봤으니 그간의 데이터들을 연역해 추리해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지금껏 늘 그래 온 것 아닌가?”
뭐, 드레이크의 혼잣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15년간 쌓아올린 집단지성 중에서 알짜만을 수집하고 또 외우는 것이 인생의 낙이자 목표였던 고인물이 바로 나니까.
‘7만 시간의 플레이가 아주 헛되지는 않았군.’
회귀 이후의 플레이 시간까지 합치면 그보다 훨씬 더 될 것이다.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땅을 박차고 펄쩍펄쩍 뛰었다.
…콰콰콰쾅!
지진을 유령처럼 피해 버리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란 데스웜은 공격 패턴을 조금씩 바꾸었다.
…하지만.
“이건 1892년 퉁구스카 대지진!”
“이건 1926년 캘리포니아 대지진!”
“이건 1941년 탕산 대지진!”
“이건 1970년 동남아시아 대지진!”
“이건 2012년 러시아 대지진!”
“이건 공격이 죄다 빗나간 네놈의 동공지진!”
나는 데스웜에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수많은 지진들의 진폭과 지진계에 기록된 그 모양을 모조리 꿰고 있다.
마치 탭댄스를 추듯 몸을 잘게 흔들어 P파를 흘려 버린 나는 곧이어 방방 크게 뛰어 S파마저 제껴 버렸다.
[…….]
내 신들린 듯한 몸놀림에 할 말을 잃은 것은 데스웜뿐만이 아니라 마몬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같은 편인 윤솔이나 드레이크, 벨럿조차 멍한 표정.
그 상태에서, 나는 불붙은 화살 한 대를 들고 데스웜의 입속으로 곧장 뛰어갔다.
“낙타의 원수를 갚아 주마!”
레이드 전에 미리 깔아 놓았던 떡밥을 회수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불붙은 화살 한 대를 데스웜의 쩍 벌어진 입안으로 힘껏 던져 넣었다.
각도기를 잘 재야 한다.
저 거대한 입 안에도 식도로 통하는 구멍이 있고 아가미로 통하는 구멍이 있으니까.
나는 정확하게 데스웜의 식도 부근에 불화살을 꽂았다.
그러자.
[구우우욱!?]
데스웜이 몸을 비틀며 크게 놀란다.
상대적으로 연약한 몸 내부의 부드러운 부분에 뜨겁고 뾰족한 것이 닿자 불쾌감을 느낀 모양.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콰콰콰콰콰콰쾅!
이내 무시무시한 폭발음과 함께 데스웜의 몸통이 확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놈의 입안에서 코로나가 토해져 나온다.
데스웜의 부드러운 식도 살점이 폭발에 찢겨지고 불길에 익어가고 있었다.
불길과 검은 연기를 토해 내며 꿈틀거리는 지하괴수.
나는 굴러다니는 황금 술잔 하나를 집어 들어 건배해 보였다.
“미리 부진목 농축액을 먹여 두길 잘했군.”
만마전 외성에 침입하기 전, 나는 트로이 목마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부진목을 벌목했었다.
당시 부진목을 일정 수량 이상 베면 부진목 농축액이라는 아이템이 나왔는데 이는 부진목의 잎사귀를 끊임없이 불타게 만드는 휘발성 수액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정수(精髓)이다.
나는 이 부진목 농축액들을 전부 모았고 그것들을 전부 낙타 네 마리에 실어 날랐다.
상당한 양의 부진목 농축액을 짊어진 낙타들은 트로이 목마 안에서 만마전 지하감옥까지 이르는 동안 우리와 함께 했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샌드웜의 먹이가 되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 샌드웜이 진화한 것이 바로 지금의 데스웜이지.’
고로 저 데스웜의 뱃속에는 아직도 샌드웜 시절에 삼켰던 낙타, 그리고 부진목 농축액들이 가득 들어 있단 말씀!
슈우우우욱…
데스웜은 뱃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후유증을 제대로 겪고 있다.
입에서 불길과 매연을 뿜어내며 비틀거리는 모습이 꽤나 데미지를 입은 모양새.
마치 불볶닭음면을 한입에 먹은 유투버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르르르르륵!]
데스웜은 죽지 않았다.
다만 엄청난 포효를 내지르며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올 뿐이다.
“음!?”
나는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했다.
부진목 농축액의 물량은 충분했는데 어째서 데스웜이 죽지 않았지?
‘…빌어먹을! 이게 S급 몬스터의 위용인가!’
그것도 그냥 S급이 아니다.
무저갱 데스웜은 거의 초 S급, 그러니 S+등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개체값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너무 안일했다!’
황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데스웜의 뱀 게임 공격패턴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와아아아아악!]
데스웜은 엄청난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진아!”
때마침 내 앞을 가로막아 준 윤솔이 아니었더라면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다.
…콱! …콰기긱!
윤솔은 두 팔로 데스웜의 이빨 하나를 붙잡아 밀기 시작했다.
데스웜과 힘겨루기를 하는 윤솔!
그녀의 이마에는 두 개의 커다란 뿔이 돋아나 있었다.
악귀 대왕 세트!
윤솔은 지금 하린마루의 왼팔과 오른팔, 그리고 뿔로 무장한 채 데스웜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S급 몬스터 하린마루 역시도 근력으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괴물 아니던가!
그런 정상급 악귀의 힘을 물려받은 윤솔이라면 데스웜을 상대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오래는 못 버틸 것 같아!”
윤솔은 빨개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외쳤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가녀린 팔 앞에 선 데스웜은 너무나도 크고 위협적이다.
‘…방법을! 방법을 생각해야 해!’
예기치 못한 변수,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상황이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종류의 것.
무저갱 데스웜의 화염 속성 저항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고 이것은 미래 지식으로도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그때.
내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해결책을 찾으려 허둥거리고 있는 사이로 빠르게 움직이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응?”
“…음?”
“…엇?”
데스웜과 힘겨루기 중이던 윤솔도, 화살을 쏘며 최선을 다하고 있던 드레이크도, 타개책을 찾으려 허둥거리던 나도 동시에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포르르-
미치광이 벌레 데스웜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작디작은 존재.
그녀의 정체는 바로 쥬딜로페였던 것이다!
[…….]
[…….]
쥬딜로페와 데스웜은 잠시 서로를 물끄러미 마주보았다.
데스웜에게는 눈이 없었지만 적어도 놈이 윤솔을 짓누르려던 것을 멈추고 쥬딜로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포르르르-
이내, 쥬딜로페의 작고 여린 날개에서 뻗어나간 포자들이 데스웜의 몸에 닿았다.
…움찔!
그러자 천하의 데스웜이 그 큰 몸을 한번 파르르 떨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세상에, 사실상 S+등급의 몬스터인 무저갱 데스웜이 F급 몬스터인 쥬딜로페에게 위축되다니!
‘…벌레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나?’
그러고 보니 데스웜에게는 나조차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특성이 하나 있긴 하다.
‘예지’ 특성이 바로 그것이다.
데스웜의 행동패턴을 모두 꿰고 있는 내가 모르는 패턴이라면 분명 이 특성에 의한 것일 것이다.
이 특성만큼은 회귀 전, 날고 기던 수많은 고인물들도 결국 끝끝내 존재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던 것이었으니까.
[오-오오오오!]
데스웜은 쥬딜로페에게서 몸을 물리며 크게 한번 포효했다.
[뿌-애애애앵!]
쥬딜로페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작은 배를 부풀리며 위엄 있는 척 소리친다.
그게 끝이었다.
…쿠드드드득!
데스웜은 그대로 몸을 돌리더니 만마전 벽에 땅굴을 파고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놀랄 만큼 허무하고 갑작스러운 퇴장이었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아앗!? 데스웜이 그냥 가네! 휴우, 살았다!”
“어진, 그런데 저쪽은 바다가 있는 방향 아닌가? 동해 쪽이잖아.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월드맵과 방위를 놓고 봤을 때 확실히 저쪽은 바다가 있는 방향이다.
“…뭐, 뱃속에 난 불을 끄고 싶은가 보지.”
아마 속이 타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을 것이다.
부진목 농축액은 그만큼 강력하니까.
그때.
-땡그랑!
데스웜이 사라진 방향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아이템이 떨어졌다!
분명 데스웜을 처치했다는 알림음이 들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놈의 레이드 보상은 정말 종잡을 수가 없군.’
몬스터를 처치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전투 기여도나 성취도에 따라 호칭이 생기거나 아이템이 떨어지는 등, 레이드의 변수는 언제나 다양하다.
예전에도 죽음길 나락의 중간보스 ‘밴시 퀸’을 처치하지 못했는데 레이드 보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 않은가!
당연히 그 역도 성립한다.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는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경우 역시 존재하지 않는가.
대표적인 예로 얼마 전 데린쿠유의 역병을 정화할 때 만났던 보스 몬스터 ‘살점토막 구더기’가 있다.
…뭐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데스웜이 남기고 간 아이템을 줍는 것이다.
나는 한손무기 특유의 저 황금빛 광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이윽고, 시커먼 색의 건틀릿 하나가 내 손에 들어왔다.
-<데스웜의 생매장 건틀릿> / 한손무기 / S
데스웜의 거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증유의 거력이 깃들어 있다.
-물리 공격력 +9,900
-특성 ‘와류’ 사용 가능 (특수)
아이템 무게가 상당하다. 실로 엄청나게 묵직한 건틀릿이었다.
스펙 또한 엄청나다.
깡 데미지가 거의 1만에 육박하는 S급 한손무기.
심지어 ‘와류’라는 1티어 특성도 붙어있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아이템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딱 마동왕 아이템이네.”
“어진, 너를 위한 맞춤형이군.”
예전에 불카노스 주괴를 얻었을 때처럼, 아이템 분배 문제는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도 없이 즉석에서 바로 끝났다.
“다들 양보해 줘서 고마워.”
나는 데스웜 건틀릿을 인벤토리에 넣은 뒤 고개를 돌렸다.
데스웜의 거대한 몸이 사라지자 이제야 황금향 저편이 보인다.
순간.
“……!?”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일제히 눈을 부릅떠야 했다.
데스웜에게 쫓겨 다니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쪽.
벨럿.
그녀가 황금 절벽 위,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마몬에게 멱살을 잡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