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42화 (442/1,000)
  • 443화 데스웜(Deathworm) (3)

    마몬.

    이 세계관 정점에 올라 있는 열일곱 절대강자 중 하나.

    수없이 많은 악마들을 다스리는 일곱 악마성좌의 일인이자 힘으로는 전 세계에 적수가 없는 패왕(霸王).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마몬의 전신에 꽉꽉 들어차 있는 시커먼 근육은 가히 산을 뽑아 내던질 수 있을 정도로 장대하고 옹글다.

    실제로 맨틀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뚫고 내려갈 수 있다는 스투웜이 마몬의 한 팔에 휘어 잡혀 맥을 못 추고 있지 않은가!

    탐욕과 지하광물을 다스리는 무저갱의 악마 마몬, 그는 비통에 겨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 만마전에 쌓인 부를 증명할 옥좌! …이 만마전의 위용에 어울리는 옥좌! …나의 존재 그 자체를 상징할 옥좌! …오오! 대체 왜 나는 만들 수 없는 것이냐! …그 보잘 것 없는 아르파공 조차도 오래 전에 해냈던 것을 나는 왜 해내지 못하는 것이냐!]

    …그리고 그 번민에 응답하는 목소리가 여기에 하나 있다.

    [그것은 네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카타콤 최후의 드워프 벨럿.

    그녀가 망치와 방패를 든 채 용감히 앞으로 나서서 한 말이다.

    벨럿의 얼굴을 본 마몬은 벨럿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네놈들은 뭐냐?]

    마몬은 오히려 벨럿에 앞서 나를 먼저 주목했다.

    그의 왼쪽 머리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노려보았다.

    [으음, 그래. 너는 본 적이 있다. 유토러스의 대저택에서 알몸으로 축제를 벌이던 변태로군. 돈푼께나 있어 보이지만 기실 잔고는 하나도 없는 알거지 놈.]

    …왜 저런 식으로 기억하는 것이지?

    보통 게임 속 악당들이 주인공을 회상할 때는 ‘그때 나를 방해했던 놈’ 혹은 ‘싹수 있어 보이던 놈’ 정도로 기억하지 않나?

    인공지능이 너무 높아도 문제다 이런 건.

    그나저나, 알몸 변태라고 욕먹을 때는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알거지라고 욕을 먹자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졌다.

    ‘돈 없는 놈’이라는 말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벨럿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이 친구는 네가 지난날 저지른 과오를 대신 처리해 준 고마운 사람이다. 감히 너 따위가 평할 그릇이 아니야.]

    [……?]

    마몬이 고개를 갸웃하자 벨럿이 분노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고르딕사 말이다!]

    그러자 마몬이 눈을 게츰스레나마 떴다.

    그제야 벨럿의 정체를 눈치 챈 모양이었다.

    [뭐야, 설마 네가 벨럿이냐? 모습이 많이 변해서 몰라봤군.]

    [……그 더러운 입에 내 이름을 담지 말아라.]

    [사형에게 말하는 본새가 영 글러먹었구나.]

    [사형? 너는 사형(師兄)이 아니라 사형(死刑)이다.]

    말을 마친 벨럿은 방패와 망치를 들고는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좋은 타이밍이군. 레이드 개시!”

    나 역시도 벨럿이 나서는 타이밍에 맞추어 앞으로 돌진했다.

    “서포트는 맡겨 둬!”

    “내가 엄호하지.”

    윤솔과 드레이크는 재빨리 내 좌익과 우익을 점하여 따라붙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마몬 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었다.

    한편, 마몬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볼 뿐이다.

    [거렁뱅이들은 상대할 가치가 없도다.]

    과연 돈귀신답다.

    마몬은 순식간에 우리와 맞붙는 시간과 행동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고 가격을 매겼다.

    시급으로 따져도 형편없는 싸움. 아무런 이득이 없는 분쟁은 피하는 것이 마몬의 습성이다.

    …쿠르르륵!

    마몬은 눈빛만으로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나는 그 마법진을 보고 외쳤다.

    “놈이 데모고르곤과 발록을 이쪽으로 역소환하려 하고 있어! 일정 페이즈가 지나면 놈들이 이 전장에 개입한다! 그 전에 레이드를 끝내야 해!”

    데모고르곤과 발록은 수틀리면 마몬에게도 덤벼들 정도로 힘이 세고 호전적인 몬스터, 심지어 개체값 역시 리치 왕이나 데스나이트에 밀리지 않는 초엘리트들이다.

    놈들이 이 전장에 난입해 들면 승산이 없다.

    ‘…반드시 그 전에 레이드를 끝낸다!’

    데모고르곤과 발록이 전장으로 소환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우리가 여기까지 내려오는 동안 걸렸던 시간만큼은 걸리겠지.

    그러니 그 전에 후다닥 마몬을 잡아야 했다.

    콰쾅!

    벨럿이 망치를 휘둘러 눈앞에 있는 금화의 산을 내리쳤다.

    …쿠르릉!

    황금이 사방으로 비산했고 누런 대지가 사정없이 출렁거린다.

    마몬을 휘청거리게 만들어 산 아래로 굴러 떨어트릴 심산.

    하지만 마몬은 황금의 산 꼭대기에 미동도 없이 우뚝 선 채 그런 벨럿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따위 조악한 망치와 방패로 잘도 덤벼드는구나.]

    마몬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피식 웃어 버렸다.

    하지만, 벨럿의 옆으로 얼굴을 내민 내 앞에서는 천하의 마몬조차 입가의 웃음기를 거둬 갈 수밖에 없다.

    …쿠오오오오!

    내 전신에서 사납게 약동하고 있는 시커먼 아우라!

    ‘죽음룡 오즈’의 죽음비늘이 온통 마몬을 향해 빳빳하게 곤두서 있었던 것이다!

    내 몸에 돋아난 블랙드래곤의 비늘을 본 마몬의 두 동공이 흔들렸다.

    […으음? 이 기운은 오즈의 것? 너는 그 늙은 도마뱀의 후예인가?]

    후예라. 뭐, 일단 그렇다고 해 둘까나?

    나는 피식 웃으며 마몬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블랙드래곤과 블랙스미스의 대결이라, 어감이 좋은데?

    나는 깎단을 들어 마몬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두 개의 쌍살(雙殺)이 벌처럼 날아 마몬을 향해 쇄도한다.

    […어딜.]

    하지만 마몬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정 S+등급 몬스터답게, 마몬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개의 턱을 뒤로 당겨 내 공격을 피해 냈다.

    동시에.

    콰콰콰쾅!

    어지간한 단독주택 한 채보다 훨씬 더 큰 망치가 날아들어 나의 전신을 강타했다.

    “……끄헉!?”

    뭐야 이거?

    뭐 이런 미친 데미지가…….

    나는 머리통이 날아가 버리는 듯한 아득함에 몸서리쳤다.

    온몸이 세포 단위로 분해되었다가 다시 재조립되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일순간 뇌를 마비시킬 정도.

    실로 무시무시한 충격이었다.

    회귀 전, 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압도적인 데미지가 내 전신을 우악스럽게 짓이겨 놓았다.

    마치 쇠망치에 얻어맞은 순두부처럼, 내 몸은 그 자리에서 피떡이 되어 널브러졌다.

    …데스나이트의 갈기가 가진 ‘앙버팀’ 특성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한 줌의 목숨조차도 건지지 못했겠지.

    “푸하! 딜량 무엇? 미쳐 버렸군.”

    나는 바로 상태창을 켜 보았다.

    마몬의 망치에 단 한 방을 맞았을 뿐인데 그동안 누적된 데미지를 모두 합친 것만큼이나 엄청난 딜 미터기 수치가 기록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지 않는다.

    앙버팀 특성 덕에 HP가 1남은 상태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바로 리치 왕의 심장을 통해 전신 혈관에 포션을 꽉 채워 넣었다.

    [……?]

    마몬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자신의 망치에 정통으로 피격당했는데도 어째서 멀쩡한가 싶은 표정.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지!

    “명색이 수전노인데, 빚은 바로 받아 가셔야지!”

    나는 죽음룡 오즈의 비늘을 꼿꼿하게 세웠다.

    -<죽음룡 오즈의 죽음비늘> / 갑옷 / S+

    무저갱 속의 왕이 두르고 있던 비늘로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불길함이 깃들어 있다.

    나약한 존재들은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방어력 -666

    -‘어둠’ 저항력 +500%

    -‘부패’ 저항력 +500%

    -특성 ‘근묵자흑(近墨者黑)’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부관참시(剖棺斬屍)’ 사용 가능 (특수)

    근묵자흑 특성은 받은 데미지의 100%를 적에게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것!

    퍼퍼퍼퍼펑!

    자신의 망치에 의한 충격을 그대로 돌려받은 마몬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뒤로 반 보 물러섰다.

    ‘…됐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근묵자흑 특성은 받은 데미지의 100%를 반사하는 것 외에도 초당 최대 체력의 0.01%를 깎아내는 부가적 능력도 있다.

    아마 마몬의 HP는 10%까지 점진적으로 계속 깎여나갈 것이다.

    ‘…깎단 유효타는 실패했지만 일단 근묵자흑 특성을 걸었으니 됐다.’

    딜 교환에서는 상당한 이득을 봤다.

    물론 저 멀리 창고에 보관해 둔 심장에 상당한 과부하가 간 것, 그리고 심장을 절여 둔 오크통 속의 포션들이 상당량 증발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흐음, 검은 도마뱀, 그 늙고 사악한 것의 꼼수를 그대로 쓰는군.]

    마몬은 고개를 갸웃하며 망치를 들었다.

    쩡! 쩌엉! 깡!

    그는 망치자루를 들어 내가 휘두르는 깎단 두 개를 손쉽게 막아냈다.

    놈은 확실히 근접전투의 달인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빈틈이 없어서 억지로 틈을 벌리고 들어가도 족족 가로막혔다.

    ‘확실히 17 서브스트림 중 하나라 그런가 인공지능이 장난 아니군. 단순 공격은 거의 안 먹히네.’

    나는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파캉!

    몇 수의 공방을 주고받은 뒤 나와 마몬은 멀리 떨어졌다.

    이윽고, 마몬은 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이 온 듯하다.

    [직접 부딪치면 재미없으니 어디에 파묻어 버리는 게 좋겠구나.]

    마몬은 악마다.

    악마는 용과 다르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적을 죽이고자 했던 오즈와 달리, 마몬은 약삭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콰콰쾅! …우지지직!

    그리고 망치로 황금 바닥을 때려 강력한 지진 데미지를 가해 왔다.

    직접 공격을 하면 충격이 되돌아오니 지형 데미지를 이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자존심보다는 실리(實利).

    과연 돈과 셈에 밝은 악마다운 판단력이었다.

    “하지만 내 도트 데미지를 피해갈 수는 없을 걸?”

    나에겐 도트뎀을 걸 수단이 많다.

    바실리스크의 맹독, 깎단의 능지처참, 죽음비늘의 근묵자흑, 혈액포식자의 링……등.

    더군다나 든든한 아군 셋이 내 주변을 보좌하고 있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믿음직스럽게 외쳤다.

    “제가 여러분을 돌보겠어요! 항상 몸 상태를 주시하시고, 필요하면 절 부르세요!”

    “드레이크 대기 중! 어진! 계속 전진하라! 난 준비 됐다!”

    벨럿 역시도 입술을 꽉 깨문 채 망치와 방패를 들고 내 옆을 지킨다.

    콰쾅!

    마몬이 망치를 내리쳐 만들어 낸 황금의 파도, 벨럿 역시 망치를 내리쳐 황금의 파도를 만들어 이에 맞선다.

    황금과 황금이 한 자리에서 만나 사납게 격돌하고 있었다.

    그때.

    [오랜만에 동향(同鄕) 출신을 만나 반가웠는데 방해꾼이 많구나.]

    마몬은 나를 노려보며 짜증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윽고, 그는 내 쪽을 향해 손을 뻗어 시커먼 기운을 폭사했다.

    “엎드려!”

    나는 뒤에 있던 드레이크와 윤솔의 어깨를 누르며 외쳤다.

    번쩍!

    마몬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류는 우리들의 머리 위를 스치고 날아가 뒤편을 때렸다.

    “……?”

    나는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

    마몬은 애초에 우리들을 노린 것이 아닌 듯 한참 뒤를 향해 아우라를 뿌렸기 때문이다.

    뭔가 싶어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이내 내 눈에 충격적인 것이 보인다.

    [오-오오오오오오!]

    격통을 호소하며 전신을 맹렬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거대괴수.

    스투웜!

    이 지하종의 왕자는 마몬의 기운에 닿아 미친 듯 폭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드레이크는 코웃음쳤다.

    “소용없어! 샌드웜은 고고한 정신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 설정 상 그 누구도 샌드웜을 길들일 수 없다고!”

    …하지만.

    [흐음, 과연 그럴까?]

    마몬은 싱긋 웃으며 나를 쳐다볼 뿐이다.

    나는 캡슐 속 몸에 흐르는 식은땀 한 줄기를 느꼈다.

    이윽고.

    …뿌드득!

    만마전을 울리는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투웜의 몸이 부풀고 있었던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