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화 데스웜(Deathworm) (2)
스투웜.
샌드웜이 극한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인해 변이한 개체.
꼼장어 같은 몸체를 단단한 비늘로 휘감아 보강하고 더욱 불어난 덩치로 지면을 눌러 땅을 뚫는다.
그 힘은 가히 수만 마리의 말이 돌진하는 것만큼 대단하며 그 위용은 산을 밀어 평지로 만들고 호수의 물을 빼 버릴 정도.
“…이거 옛날 생각나네.”
나는 스투웜을 따라 내려가며 생각했다.
예전에도 샌드웜을 이용해 출입할 수 없는 던전에 백도어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출입금지가 걸려 있던 지하 던전 쪽으로 샌드웜을 유인해 커다란 구멍을 뚫고 중간에 생긴 통로로 잠입해 보스인 ‘이름 없는 여왕’을 사냥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이름 없는 여왕도 다시 한번 만나러 갈 때가 됐는데.’
대격변 이후 그 몬스터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뭐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잠시 생각이 샛길로 샜다.
나는 지금 샌드웜과 같은 웜형 몬스터를 이용해 또다시 백도어를 시도하고 있다.
쿠왁! 쿠와악! 우적! 우적! 우드드득! 푸확-!
저 아래쪽의 굴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토사(土砂)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전부 스투웜의 입으로 들어가 항문으로 나오는 흙과 모래들이다.
-띠링!
<히든 던전 ‘스투웜의 항문으로 가는 길’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입장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고인물>
…별로 명예롭지 않은 기록도 떴다.
나는 세계최초로 스투웜의 항문에 들어온 자가 되었다!
“어진. 동굴 전체가 걸쭉하다.”
드레이크가 진흙을 흠뻑 뒤집어쓴 채 불평했다.
심지어 지독한 악취까지 나는 진흙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 동굴 전체가 스투웜의 배설물로 뒤덮여 있으니.”
우리는 지금 거대한 똥쟁이가 만드는 똥밭, 똥의 길, 배설물 로드, 똥색 카펫 위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예전 데린쿠유에서 겪어 봤던 ‘살점토막 구더기’의 악취 덕분에 지금 이런 수준의 악취들은 귀엽게 느껴진다는 것?
“시체 썩는 냄새보다는 똥냄새가 훨씬 낫지.”
우리는 나름대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스트웜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땅굴 속은 마치 스투웜의 항문 속을 걷는 듯한 풍경이었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놈의 항문 속으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 싶은 착각이 절로 일 정도다.
내장 속, 장벽의 주름처럼 주름진 땅굴은 진짜 창자라도 되는 양 이리저리 비틀리고 꼬여 있었다.
부글부글부글…… …푸시시식!
심지어 바닥과 천장에서 질척한 배설물들이 떨어지거나 고여 있곤 해서 더더욱 고약했다.
가스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배설물 웅덩이는 강한 독성까지 머금고 있기에 실수로라도 체내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독려했다.
“그래도 이 똥의 끝에는 금이 있을 거야.”
마몬은 황금을 좋아하는 악마이니 아마 만마전에 보물들을 가득 쌓아 두고 있을 것이다.
지독한 악취가 풍겨오는 똥을 헤치고 나가면 눈부신 황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뭔가 아이러니했다.
“원래 돈을 벌려면 더러운 꼴을 겪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
“금 보기를 똥 같이 하라는 옛말이 맞았군.”
윤솔과 드레이크가 코를 감싸 쥔 채 중얼거린다.
지금 이 순간 머나먼 똥길을 걸어가고 있는 입장에서는 금이나 돈이나 똥이나 다 거기서 거기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스투웜이 만들어 놓은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었다.
* * *
모든 길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주름 사이마다 질척하게 고여 있는 배설물 웅덩이들을 건너고 또 건너 결국 긴 땅굴 여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와아!”
“오오!”
[으음!]
윤솔과 드레이크는 땅굴의 끝에 도달하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심지어 지금껏 입을 닫고 침묵하고 있던 벨럿마저도.
스투웜이 뚫고 들어간 땅굴의 끝은 거대한 지하공동과 연결되어 있었다.
-띠링!
<히든 던전 ‘만마전 옥좌’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입장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고인물>
나 역시도 땅굴의 끝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예상했던 대로.’
미래에서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대로다.
만마전 안의 풍경은 내가 아는 것과 거의 대부분 동일했다.
마치 커다란 소라고둥 껍데기 속 같은 세계.
가로로 뉘어진 나선(螺旋)모양으로 빙글빙글 뒤틀려 있는 기괴한 대지 위에는 중력을 무시하고 솟아 있는 건물들이 빼곡하게 보인다.
천장이나 벽을 가리지 않고 툭툭 튀어나와 있는 뾰족 지붕의 건물들, 그것들은 하나같이 전부 아름답고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 전체가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어 극도로 사치스러워 보였다.
심지어 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보석, 혹은 금괴를 깎아서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수없이 많은 황금 술잔과 검, 목걸이, 왕관, 각종 보석으로 치장된 반지, 브로치 등이 도처에 쓰레기처럼 그득그득 널려 있다.
그 부(富)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미처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모양새!
‘황금향(黃金鄕)’
그것은 실존하는 것이었다!
신화 속에 나오는 황금 도시도, 전설 속에 등장하는 해적왕의 은닉 재산도, 이 세상 그 어떤 거부의 금고 속도 이처럼 화려하고 웅장하며 사치스럽지는 못하리라!
한편.
모든 들쑥날쑥한 건물들은 여럿이 하나 모여 커다란 궁전을 이룬다.
그리고 그 모든 어지럽고 복잡한 건축물들의 중앙에 3단 케이크처럼 솟구쳐 있는 웅장한 건축물 하나가 있었다.
금화를 기본으로 곳곳에 산이 쌓였고 금괴와 보검(寶劍), 값비싼 골동품과 눈을 멀게 만들 정도로 찬란하고 영롱한 보석들이 그 사이를 이어 산맥을 만든다.
부동산 권리를 증명하는 수많은 문서와 서류, 놀라울 정도의 가치를 지닌 미술품과 마찬가지로 극도로 값비싼 술이 담긴 병들이 곳곳에 파묻혀 있는 것도 보인다.
“드디어 찾았군.”
나는 고개를 들어 이 모든 금은보화들의 정중앙, 가장 높고 위대한 곳에 솟아 있는 제전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반쯤 만들어지다 만 옥좌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옥좌들의 주변에는 부서진 옥좌들이 가득했다.
하나같이 크고 사치스럽게 생긴 것들이었지만 이 화려하고 웅장한 만마전 중앙에 어울리는 옥좌라고 하기에는 뭔가 살짝 부족한 감이 있는 것들이었다.
또한.
[…….]
이 부족하고 모자란 옥좌들을 내려다보며 고민하고 있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만마전의 중앙에 우뚝 서 있는 남자.
한 손에는 거대한 망치를, 다른 한 손에는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스투웜의 목을 조르고 있는 이.
<마몬>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다스리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지하광물과 탐욕을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신과 재물.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나니!”
-마몬- <신약, ‘산상보훈(山上寶訓)’ 中>
고정 S+등급 몬스터, 무저갱의 수전노, 이 세계의 모든 악마들의 위에 서 있는 존재.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
나는 드디어 그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한편 윤솔과 드레이크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세상에, 저 커다란 망치를 어떻게 손으로 들고 있지!? 어지간한 단독주택 한 채만 한 크기인데!?”
“그보다… 저 놈의 손에 들려 있는 것, 저거 스투웜이잖나!? 설마 스투웜을 한 손으로 제압한 건가!?”
집채만 한 망치를 무기로 휘두른다는 것도 놀랍고 그 강력한 스투웜을 한 손으로 제압했다는 것도 놀랍다.
“…과연 ‘힘’의 상징답군.”
나는 캡술 속 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 괴력난신(怪力亂神), 불가살(不可殺)의 존재가 오늘 내가 죽여야 할 사냥감이다.
한편.
마몬은 스투웜이나 우리의 등장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다른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오오! 아무리 시도해도 이 만마전의 위용에 걸맞는 옥좌를 만들 수가 없도다.]
그렇다. 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궁전은 딱 하나가 부족했다.
그것은 바로 옥좌다.
왕이 앉을 장소.
궁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엄 있고 눈에 띄어야 할 곳이 아니던가!
하지만 정작 마몬은 만마전을 완성해 놓고도 마지막 화룡점정을 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던 듯하다.
마몬은 검은 몸에 큰 키를 가진 근육질 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흉악하게 일그러진 두 개의 머리가 그 위에 열매처럼 매달렸다.
오크나 오우거의 것보다 훨씬 더 추악하게 일그러진 얼굴.
오른쪽의 얼굴은 눈을 감고 있었고 왼쪽의 얼굴은 눈을 부릅뜬 채 부서진 옥좌들을 살핀다.
[…더 크고 더 화려한 옥좌가 필요하다! …모두가 나를 우러러볼 수 있도록!]
마몬은 커다란 발바닥을 들어 올려 반쯤 완성된 옥좌를 짓밟았다.
쿵! 파사사삭…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던 옥좌는 마몬의 발바닥에 깔려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그 파편들이 밑으로 굴러 떨어져 쓰레기처럼 쌓인다.
그렇게 파괴된 옥좌의 무덤이 벌써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 만마전에 쌓인 부를 증명할 옥좌! …이 만마전의 위용에 어울리는 옥좌! …나의 존재 그 자체를 상징할 옥좌! …오오! 대체 왜 나는 만들 수 없는 것이냐!]
아무리 거대하고 화려한 옥좌라고 해도 마몬의 눈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다.
마몬은 계속해서 부르짖었다.
[…그 보잘 것 없는 아르파공 조차도 오래 전에 해냈던 것을 나는 왜 해내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왜 내 마음에 드는 옥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인가! …대체 왜!]
고뇌(苦惱).
실로 지독한 번민이 텅 빈 황금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응답하는 목소리가 여기에 하나 있다.
[그것은 네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벨럿.
그녀가 망치를 든 채 앞으로 나서며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