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38화 (438/1,000)
  • 439화 바로 잡기 (4)

    ‘트로이 목마(Trojan horse)’란 무엇인가?

    이 거대한 목마는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에서 승패를 가른 결정적인 도구이다.

    그리스는 트로이의 단단한 성을 포위하고 10년이나 공격을 했지만 성벽을 넘어가지 못했다.

    이에 그리스의 장군 오디세우스는 커다란 나무 말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30여 명의 군인을 매복시킨 뒤 거짓으로 퇴각했다.

    트로이 군인들은 승리를 축하하며 목마를 전리품으로 취했고 그날 밤 목마 속에서 나온 그리스 군인들은 성문을 열어 버려 그리스 군대를 맞이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트로이 목마는 컴퓨터의 ‘악성 코드(malware)’로서 더 유명하다.

    마치 꼭 필요한 프로그램인 척 위장하여 유저들로 하여금 설치를 유도하고 보안을 뚫고 들어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프로그램, 그것이 바로 트로이 목마인 것이다.

    *       *       *

    “완성이네.”

    나는 고개를 들어 불타는 숲 중앙에 세워진 커다란 목마를 올려다보았다.

    위엄 있는 눈동자, 날카로운 이빨, 육중한 몸체, 그리고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는 불타는 갈기.

    말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지만 뭐 어떤가? 충분히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작품이다.

    “역시 백도어 하면 트로이 목마지.”

    나는 치명적인 해킹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빙긋 웃었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위장 전술에서 유래된 해킹 프로그램을 나는 다시 위장 전술로 써먹고 있는 것이다.

    벨럿이 만든 이 목마는 몸 전체가 부진목으로 되어 있어 불에 타지 않는다.

    갈기 부근의 불길 역시도 살아 있는 부진목에 붙어 있던 원래 잎사귀들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라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었다.

    4층 상가 건물 한 채에 필적할 정도로 커다란 규모였지만 부진목의 특성 상 무게가 그다지 많이 나가지 않아 우리 네 명으로도 충분히 밀 수 있을 정도였다.

    말발굽 밑에 바퀴가 달려 있어서 이동하기에도 좋다.

    “여기에 타면 되나?”

    나는 목마의 옆구리에 난 사다리에 주목했다.

    사다리는 탈부착 식이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 끝은 옆구리에 있는 덮개로 연결되어 있었다.

    덮개의 각 귀퉁이는 놀랍도록 잘 은폐되어 있어서 육안으로 보기엔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안에서도 덮개를 열 수 있도록 해 놨다.]

    벨럿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목마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본 뒤 최종 합격 판정을 내렸다.

    “좋아.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음? 어진. 성벽 앞에다 가져다 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 구역은 악마들의 정찰 구역이야. 들어가 있으면 곧 정찰대가 오겠지.”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곧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몬스터들을 상대로 난리를 쳐 놓은 것도 있으니 아마 척후병들이 오기는 올 것이다.

    우리는 약 4층 높이의 사다리를 나란히 올라가 목마의 덮개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

    윤솔은 목마 안에 들어가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다라다란딴♬♫♪

    귀에 익숙한 BGM이 깔리는 듯하다.

    좁은 공간 속 아늑한 거실, 세련된 주방, 포근한 침실, 확 달라진 조명.

    목마 안은 잠시 머물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스위트한 룸으로 꾸며져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러브하우스 급인데?”

    “놀랍군.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시설을 만들어 내다니.”

    윤솔과 드레이크는 새삼 벨럿의 솜씨에 감탄했다.

    나무 톱밥으로 만든 침대와 소파, 부진목 잎사귀로 만든 조명, 그리고 그 외 오로지 나무로만 만들어진 수많은 가구와 조각들.

    심지어 안에는 당구나 볼링을 칠 수 있게끔 간이 놀이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쓸데없이 잘 만들었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차피 한번 쓰고 버려야 할 시설에 뭐 이리 정성을 기울였담?

    “…그래, 뭐 어차피 벨럿이 한 거니까.”

    나는 잡생각을 버리고 푹신해 보이는 톱밥 침대 위에 앉았다.

    쿠션은 연필을 깎고 난 뒤 남은 잔해들처럼 보드랍고 따듯하다.

    그때.

    철커덕!

    드레이크가 장화 아이템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아이템을 왜 벗어?”

    내가 묻자 윤솔과 드레이크가 동시에 당황한다.

    “음. 왠지 신발은 벗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그새 한국 문화권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앗, 나도 벗으려고 했는데.”

    ……하여간 재미있는 친구들이라니까.

    *       *       *

    간만에 여유가 찾아왔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벌목과 몬스터 레이드로 지친 몸을 쉬게 두었다.

    (물론 신발은 신은 채다)

    나 역시도 어두운 나무 방에 홀로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짜고 있었다.

    ‘만마전 외성의 구조, 그리고 내핵(耐核)으로 들어가는 길, 데모고르곤과 발록 공략법은 이미 알고 있지만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으니 패스하고. 마몬 직속의 중간 보스, 그리고 마몬……갈 길은 분명 짧지만……어째 멀게 느껴지네.’

    분명 죽음룡 오즈 레이드를 뛸 때보다 훨씬 더 간소화된 과정이건만 어째 부담감은 더하다.

    고정 S+등급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에서 오는 긴장감에는 평생 적응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파칫!

    목마의 뱃속.

    캄캄한 어둠이 가득 차 있는 공간에 부진목 잎사귀 한 장이 밝게 타오른다.

    마치 작은 성냥불을 켜놓은 듯한 광경.

    드레이크는 윤솔이 들고 있는 부진목 잎사귀를 보며 말했다.

    “불 조심해라, 솔.”

    “앗, 그럴게요.”

    그의 말을 들은 윤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있는 낙타로부터 조금 떨어져 앉았다.

    졸린 눈으로 앉아있는 낙타의 등에는 부진목 잎사귀 농축액이 가득 실려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저것들은 부진목을 벌목할 때 얻은 아이템들로 폭약과 같은 성능을 가진 부산물들이다.

    내가 혹시 모르니 부진목 농축액들을 전부 모아두라고 오더를 내린 탓에 낙타들의 부담만 커졌다.

    한편, 벨럿은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잎사귀 한 장을 보며 회한에 젖은 듯 입을 열었다.

    […마몬. 결국 여기까지 와 버렸군.]

    사형을 죽이러 간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다.

    벨럿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 기억 속의 사형은 늘 무뚝뚝했다. 하지만 그런 사형이 활짝 웃을 때도 가끔은 있었지. 그것은 스승님의 칭찬을 받았을 때였어.]

    벨럿은 먼 옛날의 기억 속, 그녀와 마몬이 사이좋게 지냈던 날의 일부를 추억하는 듯했다.

    […나에게 처음 쇠 다루는 법을 알려 준 것도 사형이었지. 망치질 또한 그의 어깨 너머를 통해 배웠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도 달라졌군. 나는 나를 가르쳤던 이를 죽여야만 해.]

    아무리 무쇠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드워프라지만 마음만은 번뇌를 떨치지 못한 모양.

    나는 벨럿의 결심을 조금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기로 했다.

    “과거가 어쨌든 지금은 스승에게 몹쓸 짓을 한 패륜아일 뿐이지.”

    [……그야 그렇지. 놈이 스승님께 한 짓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미리 말해 두는 것이지만, 네 사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완전히 버리는 게 좋아.”

    나는 벨럿을 향해 눈을 빛냈다.

    “마몬을 타락시킨 놈은 벨제붑이야. 대부분의 타락과 부패에 관여하고 있으며 폭식과 역병, 심지어 죽음 그 자체와도 관련이 깊은 놈이지. 네 스승을 병들게 한 놈이자 지혜로운 왕 솔로몬을 타락시킨 원흉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그 거대 파리가 만악의 근원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나는 벨럿의 눈빛이 잔잔하게 가라앉는 것을 보고는 말을 마쳤다.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된 듯하다.

    한편,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호기심이 생긴 듯했다.

    “어진, 그 벨제붑이란 놈은 얼마나 강한가?”

    “한번 본 적 있잖아?”

    내 말에 드레이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예전에 부유섬 공략 당시 나와 드레이크는 벨제붑을 직접 눈앞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때의 기억이 거의 없다.”

    드레이크는 진솔한 속내를 밝혔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그만 선 채로 반쯤 기절했다나?

    ‘…어쩐지 그때 담담하게 서 있더라니.’

    나는 황당한 마음에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폭우가 쏟아지는 바다 위에서 나와 벨제붑은 나쁜 일로 얽혀들었다.

    벨제붑이 뿜어내는 위용 앞에서 나는 숨조차 제대로 못 쉬고 바들바들 떨 뿐이었는데 드레이크는 한 점 떨림도 없이 넓은 등으로 나를 지켜 주었었지.

    …한데 그게 선 채로 기절한 것이었다니.

    내가 웃자 드레이크 역시 멋쩍게 미소지었다.

    “……그때 용암룡 모르그마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다행이었지. 나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고였어.”

    “어진. 그나저나 그 둘 중에 누가 이겼을까? 용암룡 모르그마르와 폭식성좌 벨제붑 말이야.”

    드레이크의 말에 나는 한쪽 눈썹을 까닥 움직였다.

    어려운 질문.

    나는 한동안 고민한 끝에 대답했다.

    “…아마 벨제붑이 이겼겠지?”

    “오오, 벨제붑이 그 정도로 센가? 그 레드 드래곤 역시도 엄청나게 강해 보였는데.”

    “벨제붑은 정말 초 거물이야. 그 마몬을 타락시켰을 정도니까. 휘하 병력도, 개인의 전투력도 모두 악마성좌들 중에서도 2위, 3위를 다투는 실력자지.”

    “그럼 그런 벨제붑과 싸웠던 모르그마르는 죽었을까?”

    “그럴 리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관 근간을 이루는 17개의 서브스트림끼리는 서로 충돌하더라도 소멸까지 가지 않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 아마 적당히 맞붙다가 모르그마르가 힘이 딸림을 알고 물러났을 공산이 크지.”

    말을 마친 나는 눈을 빛냈다.

    “…아마 둘 다 부상당해 있을 거야.”

    나에게는 호재라는 소리다.

    …바로 그때!

    덜컹!

    나에게 또 한 번의 호재가 다가왔다.

    목마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