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37화 (437/1,000)
  • 438화 바로 잡기 (3)

    백 도어(Back Door, Trapdoor).

    관리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시스템 상의 보안 허점.

    시스템 접근에 대한 사용자 인증 등의 일반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프로그램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악인의 손에 의해 유용될 경우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       *       *

    -띠링!

    <‘불타는 숲’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고인물>

    나는 불타는 숲으로 한 발을 들여놓았다.

    …쿠르르륵! …펑! …쿠르륵!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시커먼 줄기와 뿌리를 가진 나무들은 앙상한 차림으로 헐벗은 채 서서 신록의 잎사귀 대신 이글거리는 불꽃을 매달고 있었다.

    온 숲의 나무들이 다 같은 모양새였다.

    검게 쪼그라든 줄기와 뿌리, 잎사귀라고는 한 장도 없이 온통 불길만이 넘실거리는 숲.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들은 죽지 않고 있었다.

    아니 더욱 더 줄기를 굵고 크게 키워 하늘 높이 뻗어나간다.

    드레이크는 신기하다는 듯 눈앞에 있는 거목(巨木) 하나를 바라보았다.

    “흐음, 분명 나무인데 왜 불에 타지 않는 것이지?”

    잎사귀 대신 불을 매달고 살아가는 나무.

    잘 보니 잎사귀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두께가 얇고 색 또한 검붉은 색이라서 눈에 잘 띄지 않았을 뿐.

    -<부진목(不盡木)> / 재료 / ?

    일명 ‘타지 않는 나무’.

    화산의 불꽃 속에서도 서식할 정도로 화염 저항력이 높은 식물이다.

    기름과 가스가 함유된 흙 밑으로 단단히 박힌 뿌리.

    구불구불한 줄기 속으로는 휘발성 수액이 흐르고 뜨거운 잎사귀를 통해 불이 뿜어져 나온다.

    불타는 땅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식물형 생명체.

    “…추억이네.”

    나는 부진목의 숲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언젠가 프로리그에 나갔을 때 매드독의 리더 김정은이 이 부진목 특성을 이용해 맞서왔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레벨에 여기까지 왔을 정도로 상당히 앞서나갔던 존재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래 봐야 핵쟁이에 불과하지만.’

    불법 프로그램으로 부당이득을 얻는 게이머, 내가 제일 혐오하는 부류이다.

    아무리 눈부신 업적을 거두고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 주는 랭커라 해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더 나아가 게임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이상 쌀알만큼의 존경심도 생기지 않는다.

    ‘그나저나, 매드독 이놈들 어디서 뭘 하고 있으려나?’

    조디악과 손을 잡았으니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

    처리반 반장 남세나의 증언에 의하면 분명 그레이 시티에 숨어 못된 짓을 계획하고 있을 것인데…….

    ‘…요즘 조금 풀어 줬었지. 조만간 한번 또 단속하러 가야겠다.’

    어차피 놈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나는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조금 생각해 보니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얼추 알 것도 같고.

    뭔가 좀 해 볼까 싶을 때 급습해서 죄다 망쳐 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디악, 그 악당 놈이 팔팔 뛰는 모습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단 말이지.

    ‘…이러다 진짜 변태 되는 거 아냐?’

    내가 나 스스로를 걱정하고 있을 때.

    “어진아, 이 나무들을 베면 되는 거야?”

    뒤에 있던 윤솔이 손에 도끼를 든 채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열심히 도끼로 나무를 찍어 목재를 수집했다.

    쾅! 우지지직! 뚝! 콰쾅!

    하린마루의 힘이 깃들어 있는 건틀릿을 착용했기 때문에 그녀는 몇 번의 도끼질만으로도 거대한 부진목을 넘어트릴 수 있다.

    -<부진목(不盡木) 조각> / 재료 / ?

    ‘타지 않는 나무’로 만들어진 건축재료.

    이 재질로 만들어진 집은 화재보험에 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도끼로 나무를 찍을 때마다 수액이 터져 나왔고 그것은 뜨거운 대지에 닿아 불길처럼 일어난다.

    이 구불구불한 나무는 보기와는 다르게 즙이 아주 많았고 때문에 벌목하는 데에 꽤나 수고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우리가 얌전히 벌목을 하게 둘 만큼 이곳 생태계가 만만하지만은 않다.

    [그에에에엑! 게엑!]

    [끼긱! 킥! 끼기긱!]

    [찍! 찍찍! 찌찍!]

    [모-오오오오!]

    나무가 쓰러지자 뿌리 밑이나 옹이구멍 속에 살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기어 나온다.

    전신이 불로 뒤덮여 있는 도마뱀, 쇠약해져 쫓겨난 악마, 타락한 불의 정령, 불타는 갈기를 가진 사자…….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몬스터는 석탄으로 된 껍데기 속에서 용암처럼 흐물흐물한 점액을 흘리고 있는 달팽이들이었다.

    <용암달팽이 부글부 씨> -등급: B+ / 특성: 불, 암석, 지진, 유폭, 자폭

    -서식지: 부글부 굴, 불타는 땅.

    -크기: 20m.

    -화강암으로 된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달팽이. 부끄러움이 많아 낯을 심하게 가린다.

    낯선 이를 만나게 되면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체내에 쌓여 있는 초고온의 화쇄류(火碎流)를 격렬하게 분사한다.

    “이놈들도 간만에 보네.”

    나는 추억에 젖은 채 눈앞에 있는 잡몹들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름 이 용암달팽이 부글부 씨는 저 멀리에 위치한 저렙 던전 ‘부글부 굴’에서는 보스 몬스터로 통하는 놈이다.

    ‘예전에 재특회, 일본 테러범 놈들에게 복수행을 나설 때 놈들의 리더를 그 던전에서 참살했었지.’

    …물론 그 던전에서 왕으로 군림하던 용암달팽이라고 해도 여기에서는 하찮은 필드 잡몹에 불과하다.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B+등급의 몬스터들이 널리 포진해 있었다.

    가끔 A등급의 고위 몬스터들도 더러 보였지만 큰 위험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게에에에엑!]

    [모오오오!]

    용암 달팽이 두 마리가 입 속에 머금고 있던 화산쇄설류를 격렬하게 토해 냈다.

    “Some Like It Hot.”

    드레이크는 위에서 솟구치는 열풍을 맞으며 마릴린 먼로처럼 자세를 숙였다.

    …하지만 그것은 화살을 쏘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한 것일 뿐!

    드레이크는 무릎을 펴며 두 발의 쇠뇌를 당겨 달팽이 두 마리의 미간에 화살을 박아 넣는다.

    퍼퍼퍼펑!

    드레이크는 놀라운 속도로 화살을 발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쏘아져 나간 화살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우와! 불카노스 화살촉이 효과를 제대로 보네요!”

    윤솔은 박수를 치며 그런 드레이크에게 힐 마법을 걸어 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드레이크는 지금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하고 있었다.

    푹! 푸슉! 푸푸푹!

    불카노스 화살촉은 아무리 뜨거운 불길이나 사나운 화쇄류도 그냥 뚫고 들어가 적의 수명을 확실하게 깎아 놓는다.

    [크아아아악!]

    사자 한 마리가 불로 이루어진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의 무쇠 같은 가죽도 드레이크의 화살촉 앞에서는 보드라운 아기 피부와도 같다.

    퍼퍼퍼펑!

    용암달팽이의 단단한 껍데기도, 불사자의 가죽도, 살라멘더의 점액도 불카노스 화살촉을 막지 못했다.

    퍼억- 퍼퍼퍼퍽!

    불길에 구멍을 내고 쇄도한 화살 한 대가 용암달팽이와 불사자, 악마 낙오병의 몸을 꼬치처럼 꿰어 부진목 등걸에 박아 놓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몬스터 산적(?)들이 불타는 숲 곳곳에 길게 늘어졌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고작 드레이크 하나의 난사를 막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땅그랑! 달그락! …툭!

    아이템들이 쏟아지듯 드랍되었다.

    이글거리는 신발, 끓어오르는 점액 장갑, 불타는 사자갈기 목도리, 달아오른 양손대검, 식어버린 강철 완갑, 홍염의 방패, 작렬하는 삼지창, 폭렬의 석탄 갑옷……그 외 기타 등등.

    전부 다 B~B+등급 이상의 아이템들로 경매장에만 올려도 상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어지간한 일반 회사원 월급에 해당하는 희귀 아이템들도 부지기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이건 경매장에 올리고, 이건 그냥 상점에 팔고, 이건 창고에 넣고, 이건 다시 경매장 행, 이건 상점 행, 이건 창고 행…….”

    그 와중에도 드레이크는 민첩 옵션이 붙은 아이템들만 골라내서 인벤토리 한 구석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민첩 스탯이 붙은 아이템은 따로 모아둔다.’

    이는 나와 그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쭉 지켜오고 있는 레이드의 규칙이었다.

    한편.

    “신났네.”

    나는 멀리서 구르고 뛰고 날아다니는 드레이크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하기야, 게이머에게 있어서 고등급 신무기를 시험해 보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한바탕 놀고 싶었지만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어 잠시 전장의 후방으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작업 가능하겠어?”

    내가 묻자 벨럿은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마라. 재료도 충분하고 설계도 역시 다 그렸다. 바로 공사에 착수하면 된다.]

    벨럿은 나와 윤솔, 드레이크가 구해 오는 부진목 목재를 이용해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부진목 목재들이 벨럿의 손에 이어 이어 붙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목조 건축물이 순식간에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불타는 땅에서도 타지 않는 나무 건축물.

    벨럿의 손놀림은 실로 빠른 것이어서 우리는 건축물이 높게 치솟아 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마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일꾼이 요새를 짓는 과정과도 같았다.

    “어진아, 근데 뭘 만드는 거야?”

    “보아하니 스케일이 아주 커 보이는데?”

    [호에에에…….]

    윤솔과 드레이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쥬딜로페조차 이 광경이 신기한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벌목과 몬스터 사냥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상황이 조금 바쁘다.

    윤솔은 계속해서 벌목을 해 목재들을 공급해야 했고 드레이크는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한다.

    (쥬딜로페는 귀여움을 담당한다)

    나는 쭉쭉 올라가고 있는 나무 건축물을 보며 싱긋 웃었다.

    “백도어 하면 생각나는 상징 같은 것이지.”

    벨럿이 눈 깜짝할 속도로 만들고 있는 것.

    …그것은 한 마리의 거대한 목마(木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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