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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36화 (436/1,000)

437화 바로 잡기 (2)

쏴아아아아……

비가 내린다.

미친 듯이 퍼부어지는 장대비.

하지만 그럼에도 땅을 온통 뒤덮고 있는 불길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불타는 땅>

제 7분쟁지역의 극동에 자리한 이 구역은 365일 연중무휴 24시간 동안 불타고 있는 독특한 구역이다.

‘썩고 불타는 땅’의 ‘불타는 구역’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쿠르르르륵…

온 세상을 뒤덮은 불길이 하늘에 닿을 듯 높게 타오른다.

잿가루가 열풍에 실려 높게 치솟고 검은 매연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땅.

그리고 나는 드디어 이 대지에 접어들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나는 벨럿이 만들어준 방화복을 입은 채 불길을 헤치고 대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섰다.

드워프들과 오랜 교류를 통해 호감도를 올려 방화복을 사야만이 들어올 수 있는 구역이니만큼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아무도 이곳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리라.

가끔 화염 저항력이 극도로 높은 유저 몇몇이 얼쩡거리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대지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자 아무도 없게끔 되었다.

이 구역을 통과할 수 있는 유저는 오로지 나와 윤솔, 드레이크 뿐.

…아, 그리고 또 하나의 든든한 아군이 추가되었다.

어비스 터미널 최후의 드워프, ‘드머프 엘리제 벨럿’

그녀가 망치와 방패로 무장한 채 우리를 도우러 온 것이다.

[전투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무기 수리만큼은 자신 있지.]

벨럿이 옆에 있어 주는 덕분에 마을로 돌아가 아이템의 내구도를 수리할 필요가 없어져서 다행이다.

서포터 파티원으로서 매우 유능한 존재라고 아니할 수 없다.

쏴아아아아아……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지의 홍염은 여전히 거세다.

땅 밑에서 올라오는 기름과 가스 때문에 불의 벽은 계속 높고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저쪽에 숲이 있는데?”

눈이 좋은 드레이크가 대지 너머를 가리켰다.

이런 불지옥에 숲이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다.

재빨리 망원경에 눈을 대자, 아니나 다를까 드넓은 숲이 일제히 불타고 있는 것이 보인다.

푸른 잎사귀들 대신에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이 나무를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타는 숲을 넘어, 시커먼 재의 언덕 위에 높게 솟구친 성벽이 보였다.

검은 매연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성채.

나는 망원경에 댄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만마전의 외성(外城)이야.”

마몬이 있는 본거지 외곽을 견고하게 둘러싸고 있는 최초의 방어지대.

만마전 외성은 마치 거대한 괴수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양새였는데 양익의 거대한 첨탑 위에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이글대고 있었다.

성의 움푹 들어간 가운데에는 커다란 성문이 있었고 그 위에는 수많은 악마들이 우글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와아, 수가 엄청 많네.”

윤솔은 성벽 위에 우글대는 악마병들을 향해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잡졸들이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성벽 양익에 우뚝 솟은 두 개의 탑.

그리고 그 위에 넘실거리고 있는 두 개의 거대한 불덩어리였다.

“…저것들이 문제란 말이지.”

나는 턱을 쓰다듬는다.

그제야 윤솔과 드레이크는 양쪽 첨탑 위를 바라보았다.

죽음룡 오즈 휘하의 언데드 쌍두마차 ‘리치 왕’과 ‘데스나이트’에 필적하는 괴물 두 마리가 불덩어리의 심지가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좌측 탑 정상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악마.

뿔이 난 머리를 두 개나 가진 근육질의 몸 전체에 천 개도 넘는 시뻘건 눈알들이 돋아나 빛난다.

암흑의 한 자락을 잘라낸 듯한 날개를 펼치고 두 팔과 꼬리에 시뻘건 불기둥을 휘감고 있었다.

<데모고르곤> -등급: S / 특성: 어둠, 야수, 하수인, 싸움광, 1:1, 맹독, 마나 번, 침묵

-서식지: 만마전(萬魔殿).

-크기: 9m.

-빛과 어둠이 갈라질 때 발생한 어둠의 부스러기에서 파생된 존재. 원시시대 때부터 명계와 관계가 있었던 위대한 악마이다.

시선을 마주치거나 그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금기시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악마이며 7대 악마성좌인 마몬조차 ‘그 무서운 데모고르곤!’이라 평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다.

물소의 것과 비슷한 두 개의 머리, 그리고 불길하게 번뜩이는 눈을 보면 누구나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고르곤(Gorgon)’

이 몬스터는 패륜아의 둥지를 지키던 고르곤의 상위종이라는 것을.

고르곤의 몬스터 설명에는 몸 안에 무시무시한 태고의 악마가 봉인되어 있다고 되어있는데 그 악마가 봉인을 깨고 진짜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이 데모고르곤이다.

…하지만.

우측 탑 정상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 또한 데모고르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해골만 남은 머리에 치솟은 두 개의 휘어진 뿔,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양새 그대로 굳어 버린 몸 위로 시커먼 매연이 뭉게뭉게 뿜어져 나오고 있다.

<발록 ‘가이악사’> -등급: S / 특성: 어둠, 야수, 하수인, 싸움광, 1:1, 유폭, 광폭, 자폭, 불의 씨앗

-서식지: 만마전(萬魔殿).

-크기: 9m.

-오로지 싸우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고대의 악마로 한때에는 정령왕이었던 적도 있는 듯하다.

크고 작은 10만 여 번의 전장에서 모두 살아 돌아온 바 있으며 자신보다 강한 존재의 말이 아니면 전혀 듣지 않는다.

한때 고르딕사와 정령왕 자리를 두고 다투었던 존재.

풍요와 평화의 상징으로 인간들에게 추앙받던 한 지방의 토지신.

가이악사가 악마에 의해 철저하게 타락한 결과가 바로 이 네임드 발록이다.

비옥한 토지와 알찬 씨앗을 관장하던 가이악사는 이제 오로지 전쟁의 불씨만을 뿌리는 죽음의 농부가 되어 버렸다.

데모고르곤과 발록.

이 두 마리의 고위악마는 탑 위에 감시자처럼 우뚝 선 채 주변을 주시한다.

두 악마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거대한 불꽃은 마치 쌍둥이 탑 위에 떠 있는 두 개의 태양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흡사 사방을 주시하는 두 개의 눈알처럼 보이기도 했다.

……!

문득, 나는 이 두 개의 불타는 눈알이 나와 시선이 마주쳤음을 깨닫고는 황급히 성벽에서 고개를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내 착각이었는지 데모고르곤과 발록은 탑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다른 방향을 감시하기 위해 시선을 틀었다.

“…골치 아픈 엘리트 악마가 한 자리에 둘이나 모여 있군.”

나는 눈을 감고 머리를 굴렸다.

회귀 전 세상에서 저 두 악마에 대한 정보는 꽤나 빠삭하게 주워들어 이미 아는 바가 많다.

‘…보자, 데모고르곤의 진화 트리가 어떻게 되더라? 타우렌에서 미노타우로스, 고르곤을 지나, 데미고르곤, 그 다음이 데모고르곤이었었지? …그리고 오크에서 오우거, 그리고 트윈헤드 오우거, 그리고 발록이었던가?’

중간에 미싱 링크들과 변종 진화트리가 몇 개 끼어 있기는 했지만 얼추 이 순서가 맞을 것이다.

회귀 전 세상에서 오크로 시작해 발록까지 진화한 플레이어들이 몇 있었으니 이 점은 확실했다.

‘…으음, 뭐 사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나는 다시 현실로 시선을 돌렸다.

“죽음룡 오즈의 왼팔과 오른팔이 리치 왕과 데스나이트였던 것처럼, 마몬의 왼팔과 오른팔이 저 데모고르곤과 발록이지. 상대하려면 엄청나게 귀찮을 거야. 심지어 전쟁 전 소집령이 내려진 상태라서 저 둘이 한 자리에 있으니.”

데모고르곤과 발록 둘 다 ‘싸움광’이라는 골치 아픈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한꺼번에 마주치면 답이 없다.

심지어 저 두 녀석은 각각 휘하에 S급 몬스터 하나씩을 부관으로 데리고 있을 것이 분명한 일이다.

리치 왕이 하린마루를, 데스나이트가 인간 지네를 데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 저 외벽 뒤에 숨겨 놨겠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악마병들 역시도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정면으로 맞붙는 것은 여러 모로 비효율적이다.

굳이 따지자면 죽음룡의 힘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기겠지만 막대한 피해와 시간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에 참가할 시간도 없게 되겠지.

약간의 침묵 끝에 나는 생각을 마쳤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윤솔과 드레이크, 벨럿을 향해 말했다.

“옆으로 잠깐 새야겠다.”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만마전 외성을 가는 길에 지나야 하는 커다란 숲이었다.

온통 불타고 있는 거대한 삼림.

그 불지옥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나를 보며 윤솔이 물었다.

“어진아, 저 S급 몬스터들하고 싸울 생각이야?”

“그럴 리가. 오즈 때와는 달리 지금은 시간이 부족해.”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에도 엄재영 감독에게 말했듯, 나는 만마전 외성에 도사리고 있을 귀찮은 중간 보스들을 한꺼번에 피해 바로 최종보스인 마몬을 사냥할 계획이었다.

“인생은 백도어(Back Door)지.”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적을 열 받게 할 수 있는 길 아니던가!

…하지만, 저 무시무시한 중간보스들의 화력을 피해 백도어를 열기 위해서는 벨럿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무언가를 빠르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장인의 손길이 꼭 필요한 작업.

이것이 내가 그녀를 이번 파티에 받아들여 준 이유이다.

“……?”

“……?”

[……?]

윤솔과 드레이크, 심지어 벨럿마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나는 앞장서서 생글생글 웃는다.

“지켜보라고. 내가 진짜 치사하고 사람 열 받게 만드는 공략법을 보여 줄 테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것이다.

아마 마몬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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