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33화 (433/1,000)
  • 434화 이별의 밤 (7)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광산 개발 목적으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이 ‘죽음의 상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이후에 한 고민 中-

    ‘오늘날, 인류 역사상 가장 가공할 만한 무기의 발명에 참여했던 한 물리학자는 죄책감과 책임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후일담 中-

    *       *       *

    아르파공은 말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단순히 물건을 넘어 그것의 영향을 받을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마몬의 귀에는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턱!

    마몬은 손을 뻗어 벽에 걸려 있는 망치를 집어 들었다.

    “……?”

    아르파공은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 그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으로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너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스승의 질문에 제자는 대답했다.

    “어차피, ‘그날’이 오면 당신과 나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가이악사인지 고르딕사인지.”

    “…당신? 당신이라니!?”

    “먼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단절시킨 것은 당신 쪽입니다.”

    마몬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츠츠츠츠츠츠…

    아르파공은 그제야 눈치 챘다.

    제자의 피부색이 점점 검은 녹색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이내 마몬은 입을 열었다.

    “나는 고르딕사 파였습니다. 당신은 가이악사 파. 우리는 서로 보는 방향도, 가는 방향도 다르지요. 어차피 평생 함께하긴 어려울 운명이 아니었을지…….”

    “너 미쳤느냐!? 망치를 내려놓거라!”

    “휴머니즘으로 포장되는 비합리에 지쳤습니다. 나는 인간을 그만두겠어요.”

    말을 마친 마몬은 망치를 집어 들고 아르파공을 향해 성큼 다가왔다.

    오크(Orc).

    마몬의 외형은 거의 오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키도 훌쩍 커지고 전신의 근육도 한층 더 우람해졌다.

    원래 인간일 때에도 아르파공과 거의 대등한 피지컬을 갖추고 있었던 마몬이다.

    “아, 안 된다! 마몬아! 악마에게 넘어가서는 안 돼!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너라!”

    아르파공은 기겁을 하며 마몬을 불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마몬의 몸에서는 이미 시커먼 아우라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푸시시시식…

    대장간 안에 있는 모든 식료품들이 썩기 시작했다.

    우유와 말린 생선에는 구더기가 슬고 빵과 야채는 썩어서 쪼그라들었다.

    윙윙윙윙-

    어디선가 파리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불쾌한 소음이었다.

    ‘…뭐, 뭐지?’

    아르파공은 코끝을 괴롭히는 악취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스스스스스스…

    대장간 위 천장, 분명 아무것도 없어야 할 그곳에 괴상한 환영 하나가 부유하고 있다.

    그것은 절대로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하고 흉측한 두 개의 붉은 눈알이었다.

    …꿈틀!

    안면 양쪽에 달린 크고 시뻘건 눈이 아래로 조금 움직였다.

    순간, 아르파공은 무저갱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은 정신적 충격을 느껴야만 했다.

    거대한 눈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기실 안구가 아니라 안와(眼窩)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구덩이 속에는 수억 개나 되는 작은 눈알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아르파공의 아연실색한 표정이 수억 개의 눈알들에 각각 나뉘어 담긴다.

    전신이 수억 개의 살점 조각으로 잘려나가는 느낌, 그리고 그 살점들을 셀 수도 없이 많은 구더기들에게 빼앗기는 듯한 느낌.

    ‘펴, 평정심! 평정심! 아니 된다, 아니 돼!’

    아르파공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어지러워지는 마음을 필사적으로 다잡았다.

    ‘하라뿌지! 할아부……!’

    바닥 밑,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벨럿의 목소리가 아르파공에게 약간이나마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이윽고.

    …쿠르르르륵!

    이 거대한 눈알의 환영은 나타났던 것처럼 갑자기, 아무런 징조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

    마몬은 잠시 감고 있었던 눈을 떴다.

    그리고는 눈앞에 있던, 이제는 작아져 버린 스승을 내려다보았다.

    “…인정하고 나면 이렇게 마음이 편한 것을.”

    마몬은 깊고도 깊은 묵은 숨을 토해 냈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망치를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도구 그 자체만을 보는 나와 그 너머의 인간까지 보겠다는 당신. 결국 누구 실력이 더 뛰어난지 한번 봅시다.”

    말을 마친 마몬은 손에 쥐고 있던 망치를 휘둘렀다.

    콰쾅! 우지지지직!

    나무 바닥이 터져나갔다.

    마치 지뢰라도 폭발한 듯한 모양새.

    “으아아앙!”

    지하실에 있던 벨럿이 겁에 질려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

    아르파공은 바닥을 굴러 뒤로 물러났다.

    거리를 널찍하게 벌린 아르파공은 애초에 마몬의 망치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다.

    마몬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부러 빗맞춘 거요. 방금 그 자비가 옛 스승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소.”

    “…내가 너를 잘못 키운 것이 맞구나. 나의 과오(過誤)로다.”

    아르파공은 탄식했다.

    마을 밖 세상은 용과 악마의 전쟁으로 인해 혼탁하기 그지없다.

    조금이라도 마음 수양을 게을리 하면 괴물로 변해 버리는 것이 일상.

    “왜 진즉에 눈치 채지 못했던고.”

    아르파공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손을 뻗었다.

    드르륵…

    그가 집어든 것 역시 커다란 망치였다.

    그것을 본 마몬은 껄껄 웃었다.

    “암만, 그렇지. 명색이 대장장이라면 망치를 잡아야지.”

    이내, 마몬과 아르파공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우드득!

    아르파공의 전신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노쇠한 흰긴수염고래.

    아르파공은 자신이 평소 애용하던 커다란 망치를 들어 마몬을 향해 휘둘렀다.

    수백 번 쇠를 두드리며 가졌던 마음.

    ‘…부디 바르게 펴지거라!’

    그 마음이 이번에도 통하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지만.

    “어림없소. 나는 쇠가 아니거든.”

    마몬은 씩 웃으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우드득! …뿌드득! …뚝!

    오크의 몸에 살모사 같은 핏줄들이 돋아난다.

    단순한 오크의 육체를 한참 전에 넘어선 힘.

    그렇다.

    마몬은 오크(Orc)라기보다는 오우거(Ogre)에 가까운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부우우웅-

    마몬이 휘두른 망치 역시 아르파공의 망치를 향해 쇄도한다.

    따-앙!

    두 망치가 허공에서 격돌하는 순간.

    콰콰콰콰콰쾅!

    엄청난 규모의 폭풍이 일어 온 사방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불똥이 사납게 튀었고 바람이 나무판자들을 부수고 땅을 온통 뒤집어 놓는다.

    퍼퍼퍼퍽! …꾸드드득!

    뭉개진 것은 아르파공의 망치였다.

    마몬의 망치에 맞아 기괴하게 퍼지고 뒤틀린 망치.

    아르파공은 자신의 손에 들린 망치를 보며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찢겨지다시피 망가진 망치.

    하지만 망치만 상한 게 아니다.

    손아귀 가죽이 통째로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놈!”

    아르파공은 망치를 집어던지고 새 망치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우드득! 뿌지직! 뚝! 뚜둑!

    마몬의 육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더욱 더 커지고 팽창하고 있었다.

    윙윙윙윙윙…

    동시에 귓가에 들려오는 파리의 날갯짓 소리도 점점 더 크고 또렷해진다.

    부웅-

    스승은 또다시 제자를 향해 망치질을 했다.

    ‘부디 바르게…!’

    아르파공이 망치를 들어 노린 쪽은 마몬의 머리가 아니었다.

    전에 마몬이 그랬듯, 마몬의 앞에 있는 바닥을 노린 것이다.

    제자의 정신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충격을 줄 셈이었다.

    하지만.

    “어딜 때리는 거요? 그새 노망났소?”

    마몬은 껄껄 웃더니 앞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는 아르파공이 일부러 빗맞춘 망치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빠-악!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살점과 피가 튄다.

    “헉!? 마, 마몬아! 괜찮으냐!?”

    아르파공은 너무 놀라 망치마저 떨어트릴 정도였다.

    그리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몸을 숙여 마몬의 머리를 살핀다.

    하지만.

    “망치 다시 집어.”

    마몬은 젖혀진 머리 그대로 눈알을 아래로 기울여 아르파공을 내려다본다.

    뚝… 뚝… 뚝…

    피 몇 방울이 마몬의 이마에서 턱까지 일직선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피는 이미 시커멓게 물들어 있다.

    …뚜둑! …뚜두둑!

    마몬은 목을 좌우로 몇 번 꺾은 뒤 머리의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윙윙윙윙윙!

    사라진 줄 알았던 파리 날갯짓 소리가 더욱 심하게 들려온다.

    츠츠츠츠츠츠…

    동시에 마몬의 머리에 난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어 가고 있었다.

    “파리가 와 부딪친 것 같군.”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다.

    마몬은 말라붙은 피딱지를 긁어내며 씩 웃었다.

    …털썩!

    아르파공은 허탈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몬의 덩치는 더욱 더 커져서 어느덧 대장간의 천장에 정수리가 닿을 정도이다.

    “망치 다시 집으라고 했다.”

    마몬은 아르파공을 내려다보며 내뱉듯 말했다.

    그 시선은 흡사 예전에 싱클레어를 내려다보던 눈빛과 흡사한 것이었다.

    “…….”

    피투성이가 된 아르파공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무얼 집어야 할까?

    이 손에 무얼 집어야 눈앞에 있는 제자를 다시 바르게 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끼긱…

    마몬이 아르파공의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스승과 눈높이를 맞추는 제자.

    이내, 마몬은 씩 웃었다.

    “손에 무얼 집어야 할지 모르겠는가?”

    “…….”

    “그렇다면 내가 골라 주지.”

    말을 마친 마몬은 자리에서 뒤돌아 대장간의 벽으로 향했다.

    이윽고.

    …텅! …텅!

    아르파공에게서 멀리 떨어진 좌우의 벽에 망치 하나씩이 던져졌다.

    오른편에 있는 망치는 한눈에 보기에도 아주 조악해 보이는 싸구려 망치였다.

    반면 왼편에 있는 망치는 한눈에 보기에도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진 명품이다.

    “둘 중 하나를 집어 들어라. 그리고 스승으로서 증명해 보여라. 네가 옳고 내가 그르다는 것을.”

    마몬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르파공을 내려다보며 비죽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디 한번 보자. 단순히 물건을 넘어 그것의 영향을 받을 사람을 볼 줄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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