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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32화 (432/1,000)
  • 433화 이별의 밤 (6)

    지하실을 나와 다락으로 올라온 아르파공은 크게 놀라야 했다.

    그것은 방금 전에 확인한 도둑의 정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도둑의 정체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최근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둘만 남은 이웃집 소년 싱클레어였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평소 인사성 밝은 활달한 소년으로 아르파공과도 친분이 있었다.

    애초에 싱클레어의 첫 생일 잔치 때도 참석했던 이가 바로 아르파공이다.

    당연히 아르파공은 싱클레어의 부모들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최근 싱클레어의 아버지가 마을 밖으로 상행을 나갔다가 사망하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닐 것은 자명한 사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돈도 없는 놈이 평소에 대장간 안을 호시탐탐 두리번거리는 꼬락서니가 영 수상하긴 했다.”

    싱클레어의 여린 머리통을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꽉 누르고 있는 건장한 체격의 청년.

    이제는 아르파공만큼이나 키가 큰 마몬이었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도둑질이나 하고, 아주 싹수를 고쳐 주마. 네 아버지 대신이라고 생각해라.”

    마몬은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싱클레어의 뺨을 후려갈기고 있었다.

    그것이 막 아르파공이 위로 올라왔을 때 벌어지고 있던 일이었다.

    한편.

    “…….”

    싱클레어는 마몬에게 뺨을 맞는 도중에도 꽉 쥐고 있는 물건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몬이 만든 호미였다.

    마몬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꽉도 쥐고 있구나? 마치 네 물건처럼 말이야. 뺨을 더 맞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놓거라.”

    “…….”

    “돈 없으면 누가 너 착하다고 해 주는 줄 아냐? 넌 남의 노력을 공짜로 주워 먹으려고 하는 도둑놈에 불과해. 한평생 가이악사 님의 밑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농사를 짓던 네 아버지가 지금의 너를 보면 참 좋아하겠구나?”

    그러자 싱클레어가 발끈했다.

    “우리 아빠 욕하지 마!”

    “네가 네 아빠 욕 먹일 짓을 하고 있잖아? 욕 먹을 짓을 하고 욕하지 말라니? 심보마저도 도둑놈이네.”

    “나, 나중에 갚으려고 했어!”

    “그럼 보증인, 공증인을 데리고 오거나 어음이라도 끊어 오는 성의를 보였어야지. 밤에 창문을 타 넘어 오는 게 아니라. 그런 노력도 없이 우긴다고 누가 널 믿어주지? 그것도 현장에서 잡힌 도둑놈이 늘어놓는 말을?”

    그러자 싱클레어는 답답하고 억울하다는 듯 대장간 한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수많은 호미와 삽, 낫, 갈퀴 등 농기계들이 깔끔하게 오와 열을 맞춰 정돈되어 있었다.

    평소 성실한 마몬의 손길이 닿은 흔적들이다.

    “저렇게나 많은데! 호미랑 삽이 여기 저렇게 많은데!”

    “많으면 네가 하나쯤 가져가도 되는 거냐? 이 많은 것들이 거저 생겼는 줄 알아? 다 내가 새벽같이 일어나 쇠를 갈고, 두드리고,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하나하나 정리해 둔 것들이야. 전부 하나하나 다 관리 및 재고파악이 확실하게 되고 있지. 어느 것 하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단 말이다.”

    마몬의 서슬 퍼런 말에 싱클레어가 잔뜩 주눅 들었다.

    싱클레어는 이내 눈물이 범벅된 표정으로 우물거렸다.

    “…그, 그래서. 그래서 그나마 제일 싸 보이는 호미를 집어든 거란 말야. 피해 덜 주려고.”

    말 그대로, 싱클레어가 집어든 호미는 벽에 정리되어 있는 농기구들 중 제일 작고 가벼운 것이었다.

    무게로 달아 팔아먹는다고 해도 가장 값이 적게 나올 것 같은 작은 호미.

    만약 정말로 도둑질로 한 탕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더 크고 무거운 도구를 노렸을 것이다.

    하지만 싱클레어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들은 마몬은 헛웃음을 지을 뿐이다.

    “지금 그딴 걸 핑계라고 대는 거냐?”

    “…….”

    “그리고 방금 그 발언으로 확실해졌다.”

    마몬은 싱클레어의 손에 쥐어져 있는 호미를 우악스럽게 잡아 뺏었다.

    마몬은 호미 날을 싱클레어의 미간 사이에 겨누며 말했다.

    “똑똑히 봐라, 이 호미가 어떤 호미인지.”

    “……?”

    “비록 작고 가볍긴 하지만 각도, 경도, 강도, 등등 어느 면 하나 뒤지는 게 없어. 스승님께서도 칭찬하셨지. 이 호미는 내가 만든 농기구들 중에서도 꽤나 역작으로 꼽히는 것이다. 장인의 자부심이 투영된 최상급 호미라고 할 수 있지.”

    말을 마친 마몬은 극도로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 싸 보여서 이걸 집었다고? 차라리 이게 제일 비싸 보여서 집었다고 했으면 오히려 보는 눈을 인정하고 정상 참작이나 해 주었을 텐데.”

    “…….”

    “너는 이 도구의 가치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놈이다. 그러니 더더욱 이 호미를 가질 자격이 없지. 돈이 있다고 해도 너 같은 놈에게는 두 배의 가격을 받고 팔아야 해. 오래 전 파베누 씨가 그랬듯…!”

    마몬은 쐐기를 박았다.

    바로 그때.

    “그만 하거라.”

    아르파공이 마몬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돌린 마몬은 깜짝 놀라야 했다.

    아르파공의 표정이 전에 없이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스승님?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한데 어찌하여 그런 표정을…?”

    “그냥, 네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슬퍼지는구나.”

    아르파공은 마몬의 손에 들려있는 호미를 바라보았다.

    “그것 이리 줘 보거라.”

    마몬은 두 손으로 호미의 날 부분을 잡고 공손한 태도로 스승에게 호미의 손잡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호미를 받아든 아르파공은 그것을 다시 싱클레에게 건네줬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싱클레어.

    그리고 더욱 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마몬.

    아르파공은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부터는 문으로 들어 오거라. 다락 창에는 신호줄이 있어서 발이라도 걸리면 위험하단다.”

    그러자 싱클레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 아빠가……파베누 씨의 상행에서……돌아오지 않고 있…….”

    “안다. 안단다. 이 어린 것아.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엄마도 병으로 아파요… 밭의 감자라도 캐려면…….”

    “다 안단다 얘야. 할아버지는 다 알아. 괜찮으니 얼른 돌아가거라. 어머님 옆을 지켜드려야지.”

    아르파공이 따듯한 말로 말하자 그제야 싱클레어는 눈물을 훔쳤다.

    싱클레어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뒤 야음에 젖은 밖으로 후다닥 튀어나갔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마몬이 황당하다는 듯 두 팔을 벌렸다.

    “스승님!?”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더냐? 가엾은 아이다.”

    “왜 저를 나쁜 놈 만드십니까! 저는 제가 정성들여 만든 물건을 합당한 가격에 팔고 싶을 뿐입니다! 합리적(合理的)인 게 나쁜 것입니까!?”

    “…네가 말하는 합리(合理)라는 것이 나는 무섭게 느껴지구나.”

    아르파공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몬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느냐? 내가 너를 부족하게 키웠느냐?”

    아르파공이 묻자 마몬은 잠시 머뭇거렸다.

    한동안 숨을 고르던 마몬은 눈을 부릅떴다.

    “스승님도 저를 돈으로 사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을 들은 아르파공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다.

    아르파공이 재료를 구하러 마을 밖을 돌아다니던 때, 그는 용과 악마의 전쟁에 휘말려 사라진 마을을 보았고 폐허 속에서 우는 빈농 가족을 보았다.

    아르파공은 그 가족의 부모에게 얼마간의 돈을 건넸고 그 대신 아주 어린 막내아들 하나를 데려온 바 있었다.

    그가 바로 마몬인 것이다.

    “…그 모습을 봤더냐?”

    아르파공의 눈빛이 흐려졌다.

    보이지 않게 넓은 등으로 가로막고 있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잿더미 안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아이의 눈에는 보였던 모양이다.

    자신을 팔아넘기는 부모의 눈 망막에 비친 금화의 그림자를.

    입을 덜었다며 안도하는 그 표정을.

    마몬은 말했다.

    “저는 돈 그 자체입니다. 돈에 팔려 온 인간이니까요. 제게 있어선 돈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돈입니다.”

    “…….”

    “대장간에서 가끔 황금을 주무를 때면 꼭 제 자신을 주무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

    “돈이 제 가치를 증명하고 제 노력을 증명하고 곧 저 자신을 증명합니다. 이게 뭐가 나쁩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돈에 팔려 다니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 돈 말고 달리 뭘로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까?”

    아르파공은 고개를 저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단순히 물건을 넘어 그것의 영향을 받을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

    “싱클레어, 나는 저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봤지. 녀석의 부모가 태어나는 것도 봤다. 그런 아이가 일을 하기 위해 호미를 필요로 한단다. 그리고 그 일은 병든 홀어머니를 위한 것이고. 그들의 땀과 웃음, 감사인사면 호미 하나의 값어치로는 차고 넘치는 것이 아니더냐? 네가 만든 물건이 그들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장인으로서 영광된 일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제가 왜 거기까지 내다보아야 합니까!? 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무형의 대가들을, 그것도 외상으로 기대해야 합니까!? 저는 장인입니다! 땀과 미소, 가벼운 감사인사로 도구를 제작할 수 있을 만큼 대장장이 일이 만만한 것도 아니잖습…!?”

    마몬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전에 마몬이 싱클레어의 뺨을 때린 것과 같이, 아르파공이 마몬의 뺨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잘못 키웠구나.”

    스승의 목소리가 새벽녘 서릿발처럼 스산하다.

    동시에.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 말이 맞겠지요.”

    제자의 태도도 변했다.

    츠츠츠츠츠…

    마몬의 피부색이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깊어 가는 밤처럼 어둡게, 어둡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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