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28화 (428/1,000)
  • 429화 이별의 밤 (2)

    <마몬>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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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다스리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지하광물과 탐욕을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신과 재물.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나니!”

    -마몬- <신약, ‘산상보훈(山上寶訓)’ 中>

    마몬.

    일곱 대악마성좌 중 탐욕의 좌에 앉아 있는 존재.

    비교적 최근에 세력을 키워 7대 마왕 반열에 오른 젊은 악마.

    힘으로만 따지자면 전 세계를 통틀어 당해 낼 자가 없으며 부유함으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용마(龍魔) 분쟁지역의 불카노스 채굴장을 놓고 죽음룡 오즈와 패권을 다투었으며 같은 반열에 올라있는 악마성좌 ‘벨제붑’과는 동맹 관계.

    “…마몬?”

    윤솔과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르파공의 입에서 마몬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상당히 의아함을 느낀 듯하다.

    “어진아. 마몬은 이제부터 우리가 잡으러 갈 몬스터 아냐? 악마라며?”

    “어진. 예전에 설정 상 고르딕사를 타락시킨 것이 마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마몬이 원래 드워프였다고? 그럼 시간대가 안 맞지 않나, 설정오류인가?”

    궁금한 것이 많을 것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몬스터들과 NPC들이 주인공이며 플레이어들은 그들을 도와 스토리의 작은 일부를 돕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명은 극도로 불친절하며 모든 세부 설정들은 플레이어들이 직접 찾거나 추리해 나가야 한다.

    어디에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수많은 히든 피스들을 찾아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운이 좋았다.

    내가 이미 벨럿과의 호감도를 MAX까지 쌓아 둔 상태였기에 아르파공 역시 처음부터 나에게 꽤나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데린쿠유의 역병을 치유하며 그 호감도는 더욱 높아진 상태였기에, 우리는 아르파공이 말해 주는 일의 전말을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지.]

    아르파공은 슬픈 눈으로 옛 기억을 끄집어냈다.

    낡고 오래된 이야기.

    그것은 고르딕사가 평범한 정령이었던 시절, 그리고 마몬이 악마가 되기 전이었던 시절을 다룬 것이었다.

    *       *       *

    어느 마을의 대장간.

    땅! 따앙! 쩡!

    여기 열심히 쇠를 두드리는 젊은 대장장이가 하나 있다.

    수십 수백 번 가연질을 하면서도 늘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 청년.

    그의 이름은 바로 마몬, ‘드머프 클레망소 마몬’이다.

    “…다 됐다.”

    마몬은 자기가 만들어 낸 물건을 보며 뿌듯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잘 만들어진 한 자루의 ‘호미’였다.

    마몬은 자기가 만든 호미를 벽에 조심스럽게 걸어 두었다.

    “좋아, 이 정도면 칭찬받을 만 해. 스승님이 돌아오시면 제일 먼저 보여드려야겠다.”

    벽에 걸린 호미를 바라본 마몬은 스스로를 대견히 여기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로 그때.

    끼긱-

    대장간 문이 열리며 용광로의 앞으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진다.

    “앗! 스승님? 벌써 돌아오셨…?”

    마몬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문을 연 사람은 스승인 아르파공이 아니었다.

    “홋홋홋홋! 여전히 스승밖에 모르는 바보로구나. 요 녀석.”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들어온 이는 부드러운 비단옷과 화려한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있는 남자였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마몬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파베누 씨.”

    성실한 은행가이자 최근에 벼락부자가 된 것으로 유명한 파베누였다.

    그는 멋지게 다듬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오늘도 활기차 보여서 좋구나, 마몬아.”

    “파베누 씨도요. 얼굴이 더 좋아지셨네요.”

    “홋홋홋! 좋아지긴, 요즘 너무 바빠서 잠도 제대로 못 자는걸. 우리 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너처럼 젊고 씩씩한 녀석들 보는 재미에 산단다. 자! 어디, 기운 좀 나눠 받자꾸나.”

    파베누는 코트를 벗고는 대장간 구석의 간이의자에 앉았다.

    그는 마몬이 손에 들고 있는 도구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떤 직업이든 간에 금속을 다룬다는 건 정말 힘든 거야. 나도 요즘 손에 금을 너무 많이 쥐어서 그런가 굳은살이 다 배겼단다.”

    그가 고르딕사의 금화를 이용해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이미 마을에서도 유명하다.

    파베누는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마몬에게 말했다.

    “너도 명심하렴. 요즘 세상에 돈은 곧 목숨과도 같단다. 목숨은 놓는 순간 끝 아니겠니? 따라서 돈도 한번 손에 쥐면 절대 놓지 말아야 해. 그래야 돈을 모을 수 있고 결국에는 이 아저씨처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란다.”

    “멋지다! 저도 금을 만지는 것이 좋아서 대장장이가 된 거예요! 비록 아직 땜장이(Tinker)에 불과하지만…….”

    “홋홋홋홋! 돈이 좋아서 대장장이가 되었다고? 멋지구나! 나도 돈이 좋아서 은행가가 되었단다. 돈은 정말 실컷 만질 수 있거든! 마음가짐이 남다른 것을 보니 너도 언젠가 나처럼 성공할 것이 분명하다. 아니, 그 이상도 성공할 수 있지, 암. 젊은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니까!”

    파베누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마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내, 그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참, 깜빡할 뻔했구나. 없는 시간을 쪼개서 대장간에 들린 것이었는데. 사실 나는 이렇게 잡담을 나눌 시간도 없는 불쌍한 인간이란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바쁘게 산다는 것을 은근히 뻐기는 듯한 말투였다.

    파베누는 대장간 주위를 둘러보며 마몬에게 물었다.

    “곧 금화를 받으러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해. 한데 요즘 세상이 뒤숭숭하지 않니? 무기 상인들만 활개를 치고 있지. 용과 악마가 전쟁을 한다고 해서 출몰하는 몬스터들도 부쩍 많아졌어. 아직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요컨대 호신용 무기가 필요하다 이것이다.

    마몬은 슬쩍 벽을 돌아보았다.

    “저건 어떠세요?”

    벽 구석에 걸려 있는 것은 예리한 날을 가진 장검이었다.

    얼마 전 마몬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무구다.

    파베누의 표정이 밝아졌다.

    “호오? 이것 봐라? 제법 좋은 칼이로구나.”

    그는 벽에 걸린 칼을 집어들고 허공에 한번 획획 그어 보았다.

    공기가 일순간 토막 나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이걸로 사지. 남자의 쇼핑은 원래 굵고 짧은 것 아니겠니? 사실 고민할 시간도 없지만.”

    파베누는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400만 골드예요.”

    마몬은 자기가 생각한 칼 값을 불렀다.

    내심 너무 높게 부르는 게 아닌가 고민했지만 스승이 언제나 자기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당부했던 것이 떠올라 강하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뭐어? 400만?”

    파베누는 미간을 찡그리며 칼을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마몬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요 녀석! 이렇게 좋은 칼이 겨우 400만 골드라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내 800만 쳐 주마!”

    파베누는 기분 좋게 웃으며 품에서 금화 자루를 꺼내놓았다.

    그것을 본 마몬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멋지다.’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고 거금을 내놓는 파베누도 멋졌고 자신의 실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분도 좋아졌다.

    바로 그때.

    마몬이 만든 칼을 들고 나가려던 파베누의 발걸음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멈췄다.

    “…으음?”

    파베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 옆에 걸려 있는 한 투박한 장검을 바라보았다.

    “아, 그건 스승님이 만드신 거예요.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고….”

    마몬은 문 옆에 놓인 장검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파베누는 콧수염을 매만지며 웃었다.

    “호오. 명장 아르파공 님이 직접 만드신 검이라. 이런 건 얼마나 하나?”

    “가격은 잘 모르겠지만 스승님이 아무에게나 파는 칼이 아니라고…….”

    “홋홋홋! 녀석. 내가 아무나니?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자가 누구지?”

    “…그야 파베누 씨죠!”

    보아하니 파베누는 저 장검이 몹시 가지고 싶은 모양새였다.

    마몬은 장검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값과 스승의 인건비, 그리고 스승의 존엄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와 프리미엄을 따져본 뒤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했다.

    “…한 10억 골드는 하지 않을까요?”

    사실 터무니없는 가격 제시였다.

    아르파공이 1년간 만든 도구들을 다 팔아도 그 정도 금액은 안 되니까.

    하지만.

    “싸구나! 내 당장 사지!”

    파베누는 눈을 반짝였다.

    그는 코트를 다시 입고는 안주머니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사인을 했다.

    “이런 좋은 칼은 마땅히 그 이상의 값을 받아야 하지. 혹시 나중에 아르파공 님이 다른 소리를 하실 수 있으니 내 넉넉하게 15억으로 책정했다. 여기에 수표를 써 두고 갈 테니 나중에 내 은행에 와서 바꾸거라.”

    말을 마친 파베누는 황홀하다는 시선으로 장검을 바라보았다.

    “…햐, 내가 아르파공 님의 칼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다니. 이런 영광이 또 어디에 있겠나! 홋! 홋! 홋!”

    말을 마친 파베누, 그는 이내 아르파공의 장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까앙!

    그는 방금 산 아르파공의 장검을 들어 전에 산 마몬의 장검을 내리쳤다.

    섬뜩한 불똥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났다.

    마몬이 만든 장검은 일격에 두 동강 나고 말았다.

    반면 아르파공이 만든 장검은 이 하나 나가지 않고 그대로다.

    “아앗!? 뭐 하는 거예요, 파베누 씨!?”

    마몬은 자기가 만든 장검이 두 동강나는 것에 크게 놀라 외쳤다.

    하지만 파베누는 껄껄 웃을 뿐이다.

    “홋홋홋홋! 마몬아. 네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스승님에게 안 되는구나.”

    “아니! 그건 알겠는데, 사람이 열심히 만든 도구를 눈앞에서 그렇게 함부로 깨트리시면…….”

    “뭐 어떠냐! 내가 돈 주고 샀으니 내 물건인데 어떻게 하든 내 마음 아니겠니?”

    “…그, 그런 건가요?”

    “물론이지! 나는 제 값을 치렀고 너는 제 값을 받았으니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아도 된단다. 사실 그럴 권리도 없고 말이다.”

    파베누는 껄껄 웃으며 부러진 칼을 발로 툭 찼다.

    …뿍!

    부서진 칼의 파편이 그의 신발을 가르고 발가락에 살짝 상처를 냈다.

    빨간 피가 비단신을 천천히 물들이고 있었다.

    “어이쿠, 부러져서도 예리하구나. 홋홋홋!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이건 팁 겸 쓰레기 처리를 부탁하는 비용이란다.”

    파베누는 부러진 칼 조각을 한 번 더 툭 찬 뒤 10만 골드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잘 있으렴 마몬아. 상행(商行)이 끝나면 또 보자! 훗날 정령왕 선출 투표에서 고르딕사 님에게 한 표 부탁……엇!?”

    하지만 파베누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끼긱!

    대장간 문이 열리며 키가 2미터도 넘는 거구 장신의 노인이 들어온 것이다.

    노인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야성미, 괴량감 넘치는 근육을 마주한 파베누는 순식간에 기가 죽는다.

    꼬장꼬장한 성정을 가진 세계 제일의 대장장이, 아르파공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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