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25화 (425/1,000)
  • 426화 지하도시의 역병 (4)

    <역병파리 ‘체체’> -등급: D / 특성: 벌레, 맹독, 어둠, 하수인

    -서식지: 데린쿠유 외곽, 설원 북동지대, 구더기 언덕

    -크기: 0.01m.

    -사람의 기름과 피로 살을 불린 파리.

    악취도 악취지만 지독한 병균을 옮기는 것으로 악명 높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파리들이 이쪽을 향해 날아들었다,

    “꺄아아아악!”

    새된 비명을 지르는 이는 의외로 드레이크였다.

    하기야, 나 역시 비명이 목젖 밑까지 차오르는 것을 겨우 눌러 삼키고 있는 터다.

    ‘…으, 이렇게 보니까 되게 징그럽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똥파리.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녹색 바디에 붉은 눈, 털투성이의 살찐 다리들.

    웨에에에엥-

    평소에도 더럽고 징그러워서 맨손으로는 절대 만지지 않는 것이 파리 아닌가.

    심지어 이놈들은 모기와는 달리 터트리면 툭 터져 나오는(?) 내장 때문에 더더욱 불쾌하다.

    그때.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구원투수가 있었다.

    [부우우!]

    쥬딜로페.

    녀석은 볼을 크게 부풀리더니 정면의 파리 떼를 향해 손가락을 휘저었다.

    키이이이잉-

    놀랍게도, 쥬딜로페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린 곳에 원형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낙서처럼 삐뚤빼뚤 제멋대로의 마법진이었지만, 제 역할은 충실하게 해냈다.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소환수들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후두둑! 후둑! 후두두두두둑!

    사람 주먹 크기에서 머리통 크기만 한 우박들이 쏟아져 파리 떼의 진열에 구멍을 내 놓기 시작했다.

    파리들은 뜬금없이 몰아치는 우박 세례와 그로 인한 차가움에 깜짝 놀라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빠그작! …딸그락!

    쥬딜로페의 마법진에서 소환된 우박들은 파리 떼를 흩어 버린 뒤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의지를 가진 듯 제각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그 우박들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싸락우박 풍뎅이> -등급: C+ / 특성: 하수인, 과식, 맹독, 빙결

    -서식지: 가혹한 설산, 얼어붙은 부패, 빙하숲 ‘고대 보존지대’

    -크기: 0.1m.

    -하잘 것 없는 작은 벌레처럼 보여도 대격변을 버티고 살아남은 강력한 고대 충왕종 몬스터이다.

    얼음굴을 걸어가다가 난데없이 우박이 쏟아진다면 십중팔구 이 녀석들임에 분명하다.

    바닥에 떨어진 우박들은 둥글게 말았던 몸을 펴 한 마리의 풍뎅이로 변한다.

    이 벌레들은 주변에 있는 모든 온기 느껴지는 것들의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며 말이다!

    웨에에에에엥-

    파리들 사이에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쥬딜로페가 소환한 풍뎅이들은 하나하나가 파리의 100배는 더 강한 개체들이다.

    이 작은 전사들은 여왕의 의지를 따라 용맹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차가운 숨결로 파리들을 얼리고 단단한 갑옷으로 후려쳐 기절시키거나 으깨 버린 뒤 날카로운 이빨로 깨물어 먹는다.

    이이이이잉…

    파리들의 기세가 많이 죽었다.

    가뜩이나 냉해에 약한 곤충인데 그것을 패시브 스킬로 갖춘 상위 포식종을 만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기특하다, 욘석.”

    나는 품속의 쥬딜로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쥬딜로페가 벌인 활약상에 감탄했다.

    “와아, 예전에 리치 왕을 잡으러 가던 길에 길들인 풍뎅이들이구나!”

    “그렇군. 죽음룡 오즈와 싸울 때는 용암지대였기 때문에 소환하지 못했었지. 잊고 있었다.”

    [뀨잉!]

    쥬딜로페는 모두의 칭찬을 받자 매우 으쓱해졌다.

    간만에 여왕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였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몹시 대견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이윽고.

    서리 풍뎅이들은 파리들을 어느정도 쫓아 버리는 것에 성공했다.

    지하굴에 드글거리던 파리들이 사라지자 녹색 안개도 자연스레 옅어진다.

    내가 파리들이 끓고 있던 곳을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딛자마자.

    -띠링!

    <‘지하도시 데린쿠유 식량창고’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고인물>

    귓가에 심상치 않은 알림음이 떴다.

    새로운 구역을 발견했다는 메시지.

    “…식량창고?”

    윤솔이 고개를 갸웃했다.

    드워프들은 수은이나 철괴 같은 것들을 주식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식량창고라 함은 광물 보관실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드워프들도 가축을 기르지. 아마 가축들이 먹을 식량을 뜻하는 것일 거야.”

    드워프들도 생활에 필요한 가축들을 기른다.

    털이나 가죽을 얻기도 하고 알이나 젖으로 가공품을 만든다.

    대부분 무언가를 제작할 때 쓰이지만 드물게 지상의 인간들과 교역할 때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만 해도 고기와 빵을 얻어먹지 않았던가?

    한편, 드레이크는 식량창고로 가는 암굴 천장에 뚫려 있는 구멍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은 환기구 같은데, 지상으로 통하는 구멍들이 많이 뚫려 있군. 하지만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 아무래도 위에서 막힌 것 같다.”

    그 말대로였다.

    지하의 환기구들은 전부 무언가에 의해 막혀있을 뿐만 아니라 썩는 냄새까지 풍겨오고 있었다.

    지하굴 밑으로 조금 더 내려가자 우리는 이내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으음…이건.”

    나는 침음성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바닥을 보니 얇은 가죽 공 같은 것들이 죄다 터진 채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사람 머리통보다 조금 큰 크기의 이 가죽 공들은 환기구를 통해 떨어졌고 바닥에 부딪치는 충격으로 인해 터진 모양이다.

    널브러진 가죽 조각 안에는 썩어서 문드러진 고기토막이나 소동물의 사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아직 덜 자란 구더기들과 파리의 배설물, 번데기 허물들이 가득 쌓여 있는 채다.

    쉬이이익… 피이익…

    녹색 안개, 즉 역병은 바로 이 부패 덩어리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왜 이 지하도시가 역병굴이 되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가죽 공 안에 파리 알과 썩은 고기를 넣고 이 지하굴로 떨어트린 거야. 공이 아래로 굴러가는 동안 파리 알들이 그 안에서 부화하고 성장하는 거지. 그리고 바닥에 닿은 충격으로 공이 터지면 그 안에서 창궐한 파리들이 흩어져 나오는 구조겠네.”

    이는 한때 ‘바퀴벌레 폭탄’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신종 테러 방식이기도 하다.

    밀폐된 용기에 음식물 쓰레기와 바퀴벌레 몇 마리를 넣고 숨구멍만 뚫어준 뒤 따듯한 곳에서 얼마간 숙성시키면 그 안에 바퀴들이 우글우글 꽉 차게 되고 그 용기를 원하는 곳에 투척하여 그곳을 해충 천지로 만든다는, 다소 어이없는 논리.

    “하필 떨어진 곳이 식량창고라니 운이 없네. 아니면 이런 짓을 벌인 악마성좌가 엄청나게 교활한 건가?”

    “…뭐, 퀘스트 상 이미 정해진 것이겠지?”

    나는 윤솔의 말에 대답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우리는 가축과 가축들의 식량이 비축되어 있는 구역에 접어들었다.

    “…우욱!”

    나는 진입하자마자 나는 엄청난 악취에 전진을 멈췄다.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녹안개, 그리고…

    …왱왱왱왱왱왱왱!

    아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파리들이 식량창고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 안에는 소나 닭, 돼지들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하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하나같이 다 구더기와 똥, 허물, 알껍질들에 범벅된 채다.

    “으아! 오늘 저녁은 다 먹었다!”

    “우웩! 어진, 나는 보기보다 섬세하다. 밥 먹기 전에 이런 풍경은 좀….”

    하지만.

    “후후후. 이런 밥도둑을 봤나.”

    이런 역겨운 순간에도 오히려 밥숟갈을 들 수 있는 비위를 가진 자만이 시련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법.

    나는 입으로만 숨을 쉬며 눈앞에 있는 시체의 산을 바라보았다.

    이 토악질 나는 그림을 그린 놈이 누구인지는 안 봐도 뻔하다.

    썩은 시체, 악취, 역병, 그리고 구더기들.

    <벨제붑>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44m.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폭식과 부패를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너. 네가 올라가 누운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을 것이다.”

    -벨제붑- <구약, 역왕기(疫王記) 하권,

    역왕 1,3-4>

    폭식(暴食)과 부패(腐敗)의 성좌 ‘벨제붑(Beelzebub)’

    시체의 유골에서 태어난 작은 구더기가 진화하고 또 진화한 모습.

    이 세상의 모든 썩은 고기들을 우선적으로 소유하는 자.

    부패는 죽음과 필연적으로 닿아있고 또 닮아 있기에, 벨제붑은 오래 전부터 피안의 세계 저편에서 죽음룡 오즈와 패권을 다퉈 왔다.

    ‘부정부패’, ‘부패 관료’, ‘부패 정치인’ 등의 용어가 널리 쓰이는 까닭에 ‘탐욕’의 상징인 마몬과도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는 존재.

    벨제붑.

    존재 자체가 자연재해라고 할 수 있는 이 음험하고 역겨운 파리 대왕이 지금 이 지저도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이것 참 한숨 나오는군.”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벨제붑은 날갯짓만으로 바다를 뒤집고 눈빛만으로 여덟 다리 대왕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악마성좌, 일곱 대악마들 사이에서도 순위를 다투는 강력한 마물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절대로 얽히면 안 되지. 마몬 하나 잡기에도 벅찬데, 악마성좌가 둘씩이나 덤벼들면 절대 승산이 없다.”

    하지만.

    상황은 별로 좋지 않게 흘러나고 있었다.

    쉬이이이익-

    드워프들을 중독 시킨 역병 안개가 거세게 꿈틀거린다.

    동시에 구더기 산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식량창고의 보스 몬스터.

    놈이 고개를 들어 우리와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꺄아아아아악!”

    비위가 약한 윤솔과 드레이크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반응을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저 몬스터는 처음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쇼크를 받을 수 있는 비주얼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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