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21화 (421/1,000)

422화 돈지랄 (3)

[…바로 저 요물(妖物) 때문일세.]

스크루지 후작은 자기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앉아 있었던 의자를 가리켰다.

‘그래. 그러시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스크루지 후작의 뒤로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어둠 속에 잠겨 있는 거대한 의자. 그것은 시커먼 천으로 꽁꽁 덮여 있어 그 안쪽의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다.

펄럭-

나는 손을 뻗어 의자를 덮고 있던 검은 천을 걷어냈다.

그러자.

검은 천 밑에서 눈이 멀 듯한 황금빛이 폭사되었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휘황찬란한 옥좌 하나가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높고 커다란 등받이는 온통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팔걸이에는 사람 머리통보다도 더 큰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그 주위로는 수많은 칼들이 공작의 꼬리 깃털마냥 넓게 퍼져 부채꼴 모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칼들은 하나하나가 백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보검(寶劍)이었다.

루비, 호박, 진주, 에메랄드, 사파이어, 토파즈, 자수정, 오팔, 흑요석, 가넷, 아쿠아마린… 셀 수도 없이 많은 보석들이 영롱한 빛을 내뿜어 의자의 화려함을 보탠다.

의자 안쪽의 빨간 안장은 금실, 은실, 홍실을 꼬아 만들어진 재질이었으며 천사의 날개마냥 푹신하고 보드라워 보였다.

가장 압권인 것은 의자 위에 떠 있는 전광판이었다.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이 전광판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그 숫자들은 천문학적인 단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래 지식이 있는 나는 한 눈에 이 의자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불완전한 황금만능주의자> / 의자 / A+

세계 제일의 대장장이 몰리에르 아르파공이 만들어낸 귀물(鬼物).

화려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의자로 한번 앉으면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는 일어날 수 없다.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기에 이만한 의자가 또 없을 것이다.

-어둠 속성 저항력 -50%

-‘수전노’ 특성 사용 가능

‘황금만능주의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의자.

하지만 이 아이템은 훗날 ‘돈지랄 의자’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다.

이 의자는 부자들, 그리고 관심종자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악명 높은 것이었다.

바로 이 의자가 가지고 있는 미쳐 버린 특성 탓이다.

‘…이 의자에 앉으면 그 순간부터 1초당 10만 원가량이 빠져나가지. 그리고 그렇게 빠져나간 금액이 전광판에 표시되고 더불어 의자의 사이즈도 업그레이드되는 시스템.’

나는 의자에 닿지 않게 조심하며 그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수전노’ 특성. 이것은 자신에게 닿은 적의 재산을 말려 버리는 정신 나간 스킬이다.

보통 닿은 적에게 피해를 주는 기술들은 많지만 상대방의 재산에 직접 피해를 입히는 것은 참으로 기괴하고 신박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목숨’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건가?’

나는 의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참고로 한때 최고의 갑부 중 하나였던 빌 게이츠의 재산이 약 100조, 그가 버는 돈이 1초에 약 15만 원 정도라고 했었다.

이 의자에 앉으면 1초에 약 10만 원, 이쪽 세계의 화폐단위로는 약 100만 골드 정도가 빠져나가게 되니 세계 제일의 갑부라고 해도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갑부의 입장에서도 이런데 일반인의 기준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의자에 앉은 채 깜빡 졸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파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뒤에서 침중한 안색으로 서 있는 스크루지 후작에게 물었다.

“이 의자에 얼마나 앉아 계셨죠?”

[아주…아주 오랫동안. 내 기억이 닿는 곳부터 시작해 모든 재산이 사라질 때까지 쭉.]

“오래도 앉아 계셨네. 가만? 이 의자가 원래 이렇게 컸나요?”

[아니, 처음에는 작았었지. 하지만 내 재산을 빨아먹으면 빨아먹을수록 거대해지더군.]

스크루지 후작은 이 의자에 앉아 실로 오랜 시간을 보냈고 결국 그 많던 재산들을 다 탕진한 것이다.

대격변으로 인해 도시의 인구수가 급감한 것이 설상가상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아니, 돈이 사라지는 걸 빤히 알면서도 여기 앉아 있던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스크루지 후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 예쁜 의자가 점점 커지는 게 신기했어. 내 돈을 잡아먹으면 잡아먹을수록 크고 화려해지니 키우는 맛도 있었지. 마치 반려동물…아니, 자식처럼 말이야.]

가끔 극도로 부유한 사람들을 보면 통장이나 금고를 자신의 자식처럼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스크루지 후작도 그런 부류의 사람인 것 같았다.

…뭐, 일반인의 상식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스크루지 후작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 의자에게 애착과 호기심 이상의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지. 자존심? 아니면 나 자신, 혹은 내 부일까? 아니 내게 있어서 그 셋은 어찌 보면 같은 것일지도. 아무튼 그것들의 한계가 궁금했던 것 같네. 이 의자가 어디까지 크고 화려해질 수 있는지 확인해 가는 과정은 마약으로 얻는 쾌락보다, 만백성들의 존경과 사랑, 관심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쾌락이었어.]

나는 스크루지 후작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의자는 앉는 사람으로 하여금 엄청난 쾌감을 준다는 설정이다.

마치 마약, 아니 그 이상의 중독적 쾌락을 안겨 주는 아이템.

하기야, 가끔 사람들 중에는 돈 쌓이는 걸 보는 것만큼 흐뭇하고 중독되는 일이 또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 의자가 주는 쾌락은 그 흐뭇함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까?

‘어찌 보면 참 인간적인 의자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이 의자가 비단 NPC들에게만 효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설정 상의 쾌락을 느낄 수 없는 플레이어들 역시도 이 의자에 앉아 파산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나왔었다.

이 의자에 앉아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부러움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던 관심종자들.

타인의 인정과 애정에 목마른 결핍자들은 현대인들 중에도 얼마든지 있다.

이 의자는 그런 관심 괴물들의 파산처이기도 했다.

‘…실제로 같이 게임하던 게임폐인 아저씨들 중에 돈만 생겼다 하면 이 의자에 앉아서 길거리 지나다니는 플레이어들에게 부유한 척 거드름 피우던 사람도 있었지. 몇 초 앉지도 못할 거면서 말이야.’

전 재산을 털어 비싼 차를 사놓고 집이 없어 그 안에서 자고 먹을 것이 없어 그 안에서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의외로 흔하지 않은가?

그 비싼 차, 비싼 옷, 비싼 가방, 비싼 시계 등등이 가져다주는 쾌락.

남들의 인정과 관심, 애정, 주목받는다는 느낌.

이 의자는 그런 비틀린 욕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황금만능주의자’라는 이름과 썩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회귀 전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아무튼.

이 돈지랄 의자에 중독된 스크루지 후작은 자신의 전재산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종국엔 의자에 더 오래 앉아 있을 돈을 구하기 위해 대저택을 처분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과 거래하여 거의 오크가 될 뻔한 위기에 봉착해 가면서.

“이 의자를 어디서 구했죠?”

[경매장에 갔을 때 한 의문의 신사에게 선물 받았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내, 나는 의자에 바싹 다가가 의자의 등받이 부근을 살짝 핥아보았다.

스크루지 후작이 변태를 보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혀끝에 느껴지는 이 농후한 맛.

“…흐음. 이 맛은 악마의 손길이 닿은 맛이구나.”

경매장에서 스크루지 후작에게 돈지랄 의자를 선물로 준 신사.

거기에 혓바닥에 느껴지는 이 비릿하고 묵직한 쇠 맛이라면 안 봐도 뻔하다.

“그 신사가 바로 마몬이네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바다.

마몬은 스크루지 후작의 전 재산을 빼앗기 위해, 나아가 이 대저택마저 강탈하기 위해 일부러 이 의자를 넘겨 준 것이다.

그리고 스크루지 후작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재벌 NPC들에게 이 의자를 뿌렸을 가능성이 높다.

‘…확실히, 요 근래 부자 NPC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댔지?’

나는 얼마 전 파티에서 들었던 괴소문들을 떠올렸다.

대격변 이후, 마몬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온 세상 부자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지배자로서 군림하기 위해서 말이다.

동시에.

-띠링!

<메인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메인 퀘스트 ‘황금만능주의자’>

<메인 퀘스트 발생 조건: ‘스크루지 후작’의 인정을 받은 자>

<메인 퀘스트 완료 조건: ‘마몬’ 처치>

<※히든 퀘스트 ‘황천의 수감자, 타락정령 고르딕사’를 완료한 자만이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요란한 알림음들이 귓가에 빗발쳤다.

고르딕사를 잡은 뒤 스크루지 후작의 인정을 받은 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히든 퀘스트이자 메인 퀘스트.

“예전에 고르딕사를 처치한 것에 대한 연계 퀘스트로군. 이건 몰랐던 건데.”

나는 회귀 전 기억을 최대한 더듬어보았다.

그때 이 퀘스트를 깼던 대형 길드 연합의 보고서는 몇 년 뒤 모두가 볼 수 있게끔 인터넷에 공개되었고 나는 며칠 밤낮으로 그것을 탐독하며 흥분과 감격에 몸을 떨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전인미답의 루트를 혼자서 밟고 있다.

그것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디테일한 히스토리까지 직접 겪어 가면서!

두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썼던 모든 금액을 한 방에 만회하고도 몇 배, 몇 십 배, 몇 백 배나 남음이 있을 퀘스트.

마치 누적 액수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 복권 1등에 당첨된 사실을 알게 된 이의 심경이 이러할까?

“…좋아. 이제 준비는 거의 다 끝났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크루지 후작 역시도 나를 따라 일어났다.

그는 정말 새 사람이 되었는지 매우 기운차 보였다.

[…내가 지금껏 왜 그렇게 돈에 집착했는지 모르겠군. 죽으면 가져갈 수도 없는 것인데, 지금부터라도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수양을 해야겠어. 저택도 도시에 기증한 뒤 모든 이들이 편히 오갈 수 있게 해야겠네.]

“네 뭐, 그건 알아서 하실 일이죠. 하지만 좋은 결정이네요.”

[아무튼 정말 고맙네. 고마워!]

나를 향해 두 손을 흔드는 스크루지 후작.

끼긱-

나는 오크가 된 스크루지 후작을 잡은 보상으로 ‘황금만능주의자’ 의자를 챙긴 뒤 대저택 서재를 빠져나왔다.

아직 파티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정원에는 들뜬 분위기가 남아있다.

술 취해 곯아떨어진 이, 눈 맞은 남녀, 여전히 펑펑 터지는 폭죽과 남은 술, 안주, 풍선, 눈처럼 내리는 돈…….

나는 싸늘한 시선으로 파티장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곳을 등졌다.

‘…기다려라 S+급 악마성좌야!’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마시고 취하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훨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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