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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20화 (420/1,000)
  • 421화 돈지랄 (2)

    “나는 악마와는 거래하지 않거든.”

    나는 단호한 어조로 선언했다.

    순간, 검은 로브 속 스크루지 후작의 두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어간다.

    […쿨럭! …쿨럭! …컥!]

    그는 녹색 기침을 연거푸 뱉어내며 몸부림쳤다.

    나는 스크루지 후작의 손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손아귀에 힘을 꽉 주었다.

    ‘쳇, 힘 하나는 엄청 세군.’

    나는 스크루지 후작의 힘에 조금 놀랐다.

    다 죽어 가는 인간 노인의 힘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강하다.

    이윽고, 스크루지 후작이 발버둥치는 통에 그의 얼굴을 덮고 있던 검은 후드가 벗겨져 버렸다.

    녹푸른 피부, 입술 밖으로 툭 불거져 나온 아랫이빨, 녹색의 침.

    검은 후드 밖으로 드러난 스크루지 후작의 맨얼굴은 영락없는 오크의 것이었다!

    동시에 낡고 오래된 서재 안이 천천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던전.

    그렇다.

    처음 들어올 때 봤던 대로 이 서재는 던전이었던 것이다.

    스크루지 후작은 이곳의 보스 몬스터이고 말이다.

    “참 나, 유토러스 안에 A+등급 던전이라니. 뉴비들이 보면 기절하겠군.”

    하긴 뭐, 나는 튜토리얼의 탑에서부터 S급 몬스터를 잡았는데 이쯤이야.

    나는 피식 웃고는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빡!

    깎단을 거꾸로 들고 뭉툭한 부분으로 스크루지 후작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빡! 빡! 빠악! 뻑!

    두 개의 깎단이 야구방망이처럼 날아들어 스크루지 후작의 전신을 녹신녹신하게 쥐어 팬다.

    피카레스크 마스크 덕에 물리공격력이 한계까지 강화되어 있었기에 데미지는 충분했다.

    [그아아아아악!]

    스크루지 후작이 의자에서 완전히 일어났다.

    그가 검은 로브를 벗어던지자 반쯤 오크로 변한 스크루지 후작의 몸뚱이가 보인다.

    츠츠츠츠츠…

    그는 아직 완전한 오크가 아니었다. 반쯤은 인간의 몸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

    즉 악마의 꼬임에 반쯤 넘어간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가능성이 있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다.

    컵에 물이 반쯤 차 있을 때 그것을 보고 ‘반 밖에 없다’라며 투덜대는 사람과 ‘반이나 있네’라며 긍정하는 사람.

    굳이 따지자면 나는 후자에 속하는 부류였다.

    “인간인 부분이 반이나 있네요! 제가 곧 구해드릴게요 스크루지 후작님!”

    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두 깎단을 꽉 움켜쥐었다.

    빡! 빠각! 우드득! 딱!

    깎단들이 휘둘러져 스크루지 후작의 전신을 다시 한번 녹신녹신하게 쥐어 팬다.

    일부러 도트 데미지는 걸지 않았다. 실수로 죽여 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크악! 그아아악! 끄악!]

    스크루지 후작은 내 깎단 방망이에 맞을 때마다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더욱 더 간절하고 애타는 표정으로 외쳤다.

    “스크루지 후작님! 돌아와요! 타락하지 마세요! 악마의 유혹에 지면 안 돼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방망이로 스크루지 후작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간절한 소망이 통한 것일까?

    츠츠츠츠츠츠…

    스크루지 후작의 몸에서 녹색 물이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부풀어 오른 근육은 수축하고 뼈도 가늘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성실하고 꾸준하게 구타를 계속했다.

    물론 강도는 차츰차츰 약하게 했지만.

    [그, 그만! 그만! 아우, 아파! 나 완전히 정화됐네!]

    “악마 개새끼 해 보세요.”

    [음, 아…악…아악…악마 개…개…개 아드님!]

    “이런, 아직 정화가 덜 됐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는 또다시 깎단 방망이로 스크루지 후작의 둔부를 강타했다.

    뻑!

    육질이 연해지는 이 감각! 정타로 들어갔다.

    […꺄울!]

    스크루지 후작의 비명소리가 조금 바뀌었다.

    그는 엉덩이를 붙잡고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으으… 이 악마보다 더한 놈!]

    “악마 개새끼 해 봐.”

    [아, 악마 개… 개…….]

    “아직 정화가 덜 됐군.”

    [으악! 아, 악마 개새끼! 악마 쉽새끼! 이 알몸 변태새끼!]

    “…마지막은 누구한테 한 욕이죠?”

    [무, 물론 악마일세.]

    나를 향해 손사래를 치는 스크루지 후작의 몸은 어느덧 많이 작아져 있었다.

    날카로운 눈에 매부리코, 가지런한 치열, 쪼글쪼글한 살색 피부, 검버섯.

    서재에 올라오면서 봤던 스크루지 후작의 초상화와 완벽히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 되셨군요.”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하나 만들어 놨다는 뿌듯함이 벅차올랐다.

    스크루지 후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세, 세상에! 내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어!]

    “맞습니다. 새 사람 되셨습니다.”

    [고, 고마우이! 이대로 오크가 되면 집 밖으로 어찌 나가나 고민이 많았는데…….]

    스크루지 후작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아직 정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스크루지 후작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히익!?]

    스크루지 후작은 내 몽둥이찜질이 두려웠는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나는 그를 더 때릴 생각이 없었다.

    “인간은 악마에 씌어 오크로 변하지요.”

    말을 마친 나는 깎단을 들어 스크루지 후작의 몸에 씌어 있는 마지막 악마의 잔재를 걷어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나는 검은 용의 기운을 뿜어내어 스크루지 후작을 압박했다.

    후우우욱!

    그러자 죽음룡 오즈의 시커먼 아우라에 닿은 악마의 기운이 질색팔색을 하며 스크루지 후작의 몸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요란한 알림음이 귓가로 빗발쳐 들었다.

    <‘만마전(萬魔殿)의 수전노’가 ‘고인물’ 님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츠츠츠츠츠츠-

    이내 스크루지 후작의 등 뒤로 거대한 홀로그램 환상이 피어올라 서서히 구체화된다.

    그것은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는 불덩어리였다.

    황금으로 번들거리는 눈알!

    그것은 예전 고르딕사의 것보다 수억 배는 더 찬란하다.

    영롱한 보석 광맥들로 만들어진 실핏줄들이 그 황금 눈알의 주변을 태양의 불꽃처럼 장식하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나와는 격이 다른 존재임을!

    <마몬>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다스리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지하광물과 탐욕을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신과 재물.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나니!”

    -마몬- <신약, ‘산상보훈(山上寶訓)’ 中>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

    내가 죽음룡 오즈에 이어 공략할 대상, 그것은 다름 아닌 악마성좌 마몬이었던 것이다!

    ‘낮으신 분’ 죽음룡 오즈와 지하세계의 패권을 겨루던 ‘무저갱의 수전노’, 나는 이 놈을 세계관 정점의 옥좌에서 끌어내린 뒤 그 능력을 흡수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정복할 계획이다.

    한편.

    […너 하잘것없는 인간이여. 나의 부(富) 앞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무얼 하느냐.]

    마몬은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내가 왜 머리를 조아려야 하지?”

    [그것이 너희 인간들의 도리(道理)가 아니더냐?]

    “…….”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서 딱히 할 말이 없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마몬은 눈알을 힐끗 굴려 아래에 있는 스크루지 후작을 내려다보았다.

    스크루지 후작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 덜덜 떨고 있을 뿐이다.

    […비천하고 비루한 가난뱅이여! 너는 더 이상 나를 영접할 자격이 없도다!]

    마몬은 멸시의 눈빛으로 스크루지 후작을 흘겨보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치 돈 없는 인간과는 잠시도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만마전(萬魔殿)의 수전노’가 ‘고인물’ 님에게서 관심을 거둬갑니다.>

    나 역시 파티를 여느라 돈을 다 쓴 마당이다.

    마몬은 사라지기 직전 나에게도 완전히 관심을 꺼 버렸다.

    …쿵!

    마몬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스크루지 후작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몇 분 사이에 마치 수 년은 더 늙은 것처럼 보였다.

    “쯧쯧쯧.”

    나는 스크루지 후작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크루지 후작은 자신의 집을 팔 사람이 인세에 없자 무저갱의 수전노 마몬에게까지 거래를 텄던 것이다.

    그리고 악마와 거래를 하는 동안 점점 오크의 몸으로 변해 갔겠지.

    한편 나 역시도 체력이 꽤나 닳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7대악마를 눈앞에 둔다는 것은 아주 힘들고 피곤한 일이다.

    그들은 그저 눈앞에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

    특히나 마몬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한 편이었다.

    그는 다른 악마와 달리 인간의 몸이나 마음 같은 비가시적인 영역이 아니라 눈에 직접 보이는 영역에 영향을 준다.

    바로 돈이다.

    ‘…이 새끼, 내 돈 다 털어갔네?’

    인벤토리 안에 얼마 남지 않았던 골드마저도 거의 다 사라져 있었다.

    마몬 놈이 사라지면서 전부 훔쳐간 모양이다.

    모든 지하광물에 우선권이 있는 놈이니 내 인벤토리 안의 황금도 나에 앞서 그에게 먼저 귀속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거 몇 푼이나 된다고 그걸 그새 털어갔을까, 허 참. 도둑놈이로고.”

    나는 지갑을 탈탈 털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안에 동전 몇 푼이라도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한편.

    스크루지 후작은 많이 늙긴 했지만 전보다 더 또렷해진 눈빛을 몸을 일으켰다.

    [고맙네 고 백작! 자네가 나를 구했어! 나는 이제야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어!]

    “후후, 다행입니다.”

    [그런데 내게서 악마의 잔재를 몰아낼 때 말이야. 용의 기운을 쓴 것 같던데… 그럼 그냥 처음부터 그 방법을 썼으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나를 때리지 않았어도, 뭐…….]

    “…흐음. 의심이 많은 것을 보니 아직 악마의 잔재가 덜 빠진 걸까나.”

    [앗! 아니야! 다 빠졌네! 빠졌고말고! 의심하는 것이 아닐세! 어련히 그 방법뿐이었겠지 암!]

    뭐 아무튼.

    스크루지 후작은 원래의 총기를 되찾은 채 두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나름대로 보기 좋은 변화였다.

    한편, 나는 스크루지 후작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아니, 마몬과 거래할 생각은 어쩌다 한 겁니까? 왜 집을 팔려고 했어요? 그동안 모아뒀던 돈들은 다 어디다 쓰고요?”

    내가 알기로 스크루지 후작이 새로운 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토록 아끼던 집인 대저택.

    그리고 영혼이 머무는 집인 육체.

    이 두 개의 소중한 집을 악마에게 팔아넘기면서까지 돈을 필요로 했던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묻자 스크루지 후작은 끙 소리를 내더니 죽일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저 요물(妖物) 때문일세.]

    스크루지 후작이 가리킨 것은 뒤편 검은 천에 뒤덮여 있는 물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앉아 있던 거대한 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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