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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17화 (417/1,000)
  • 418화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 (4)

    굵은 장작들이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그득하게 쌓여 있다.

    그 위에는 수많은 폭죽들이 하늘을 향해 장전되어 있었다.

    빨간색, 흰색, 노란색. 총 3가지 색으로 구분되어 있는 폭죽들이었다.

    폭죽들의 중간 부분에는 끈들이 묶여 있었는데 그 끈의 반대쪽 끝에는 커다란 풍선들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Fire in the hole! 마 불 함 붙이바라!”

    내가 손가락을 뻗어 명령을 내리자 장작에 불이 당겨졌다.

    수많은 폭죽들 중 빨간 폭죽들에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붙었다.

    퍼퍼퍼펑!

    거대한 캠프파이어가 벌어짐과 동시에 하늘로 무수히 많은 불의 궤적들이 그려진다.

    …빠바바방!

    밤하늘을 수놓는 찬란한 불꽃들. 그 거대한 폭죽 쇼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든 것은 불꽃놀이가 아니었다.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돈의 비가!

    브론즈(bronze).

    동화(銅貨)가 온 사방에 휘날리고 있었다.

    폭죽에 묶여 있던 풍선과 자루들이 찢어지고 터지며 그 안에 든 수많은 브론즈들이 흩뿌려진다.

    [우와아아아아! 돈이다!]

    “이, 이거 진짜 돈이야? 주워! 다 긁어모아!”

    [세상에! 돈이 비처럼 내린다!]

    “고인물 만세! 인간 만세! 야호!”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을 미친 듯이 끌어안는다.

    브론즈라고 해도 온 사방을 번쩍거리게 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

    사람들의 눈알은 조명에 비쳐 반짝거리는 동전처럼 빛이 났다.

    …하지만 여기서 벌써 졸도하기엔 이르지.

    나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하얀색 폭죽들에 일괄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쿠르르륵!

    수없이 많은 심지들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땅바닥에 있던 동전을 줍는 사람들의 마음을 졸인다.

    [뭐지?]

    [어엇!? 뭐가 더 남은 건가?]

    “설…설마 다시 한번 돈을……?”

    “에이, 그건 말도 안 돼. 지금 뿌린 것만 해도 얼만데!”

    하지만.

    피슈우웃!

    이내 두 번째, 하얀 폭죽들도 하늘 높이 솟구쳤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빠바바방!

    다시 한 번 환한 불꽃이 작렬한다.

    쩔그렁- 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

    이번엔 주위가 한층 더 요란하게 빛난다.

    브론즈보다 광택 선명한.

    브론즈보다 가치 있는.

    브론즈보다 대단한.

    실버(silver)!

    은화(銀貨)가 온 사방에 휘날리고 있었다.

    [실, 실버 레인이다아아앗!]

    [온 세상이 은빛이야! 이럴 수가! 눈보다 하얘!]

    “으, 은비! 은비까비! 실버 만세에에에!”

    “야! 지금 뭐해! 다들 빨리 접속하라 그래! 으, 으아! 모르겠다! 나부터 줍고 보자!”

    사람들은 미친 듯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예 입까지 벌린 사람들도 있다.

    입안 가득 더러운 동전이 가득차면 어떤가.

    이 세상에서 제일 더럽지만 제일 깨끗한 것.

    정말 더럽게 깨끗한 것이 바로 돈 아니던가!

    [하읏! 고인물 백작님!]

    “형님! 아니 아버지! 아니 하느님! 아니 킹더제네럴충무공 고인물 니이임!”

    마치 사이비 신을 실제로 영접한 듯 여기저기서 간증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까부터 가장 목이 좋은 가운데 서 있던 여자는 아예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고인물 님이 대통령 꼭 좀 했으면 좋겠어…우리 고인물 님 너무 좋아서 어떡해…….”

    행복이 과하면 신뢰가 되고, 신뢰가 과하면 사상이 된다더니.

    여자는 황홀경에 가득한 눈으로 돈에 흠뻑 취해 버렸다.

    [와, 브론즈에 이어서 실버!]

    [이거 꿈 아니지? 우리 지금 유토러스에 있는 것 맞지?]

    “이건 진짜 고인물 클라스다!”

    “우린…게임사에 길이 남을 돈지랄의 현장에 있는 건지도 몰라….”

    꿈 아니다.

    인벤토리만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

    살짝 고개를 아래로 향하니 나를 보고 연신 허리를 굽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고인물 백작님!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고백작님 천세 천세 천천세! 만세 만세 만만세!]

    “그대가 인간이라 다행입니다! 당신은 인간의 등대! 오늘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인간이 이긴 것이 아니다! 그냥 고인물이 이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다.

    ‘……?’

    이 사람들이 뭔가 대단히 착각을 하고 있나 보다.

    뭘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거지?

    나는 불쾌한 표정을 가득 담아 미간을 찌푸렸다.

    [아앗! 백작님이 인상을 쓰셨어!?]

    “쉿! 절대 저분을 노하게 해서는 안 돼!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흠칫했다.

    영장류로 살아가는 생물에게는 모두 내재된 공포.

    바로 자본에 대한 공포다.

    돈은 곧 권력.

    가진 자들에 대한 공포심과 복종심은 원숭이들마저도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절대 이런 푼돈을 가지고 횡포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댓츠 노노.”

    나는 손사래를 치고 검지를 높이 들어 올려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하늘을 향했다.

    아직 폭죽이 남지 않았던가?

    […아니지?]

    “아니…설마, 어? 에에엣?”

    모든 이들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

    나는 아직 진짜 쇼는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슈욱! 쉬이이이익-

    파티의 최종단계를 장식할 노란색 폭죽들이 출발의 신호를 알렸다.

    후두둑… 후둑… 쩔그렁… 쩔그렁…

    사람들의 손에서 한가득 쥐었던 은화들이 떨어진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상식을 벗어난 상황에 몸이 머리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빠바바방!

    드디어 마지막 피날레다.

    주변이 누런 빛으로 환해졌다.

    비단 폭죽 때문은 아니다.

    골드(gold)!

    금화(金貨)가 온 사방에 휘날리고 있었다.

    태양과도 같은 빛을 발하는 금화!

    밤하늘을 가득히 메워 대낮을 만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화세례!

    쩔그렁- 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쩔그렁-

    [어어어억! 우워어어억!]

    “골든 샤워어어어억!”

    [갸아아아악!]

    “삐에에에엥!”

    이제는 제대로 된 대사마저도 들려오지 않는다.

    인간이 내지를 수 있는 원초적인 비명과 함성만이 도처에 끓어 넘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리고 인벤토리를 열어 마구마구 동전을 쓸어 담았다.

    [내, 내가 먼저 집었어! 놔!]

    [쌓인 게 돈이야! 다른 데 가서 집어!]

    “아앗! 또 떨어진다! 나, 나도, 나도 만질거야!”

    “갸아아아악! 신발 뿌셔! 투구 뿌셔! 인벤토리 다 비워!”

    인벤토리가 이미 가득 찬 사람들은 장비를 뜯어 바가지처럼 금화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모두가 돈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이 추한 모습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으아아아! 이게 나라다! 이게 뎀이다! 이게 인간이라고!]

    “이번에 태어난 우리 아들 이름을 고인물로 할 거야! 성도 바꿀 거야!”

    플레이어고 NPC고 가리지 않고 허리를 납작 굽히고 바닥을 쓸기에 바쁘다.

    수영장에 떨어지는 돈, 나무에 걸리는 돈, 폭죽의 불꽃에 타 버린 돈…….

    수많은 돈들이 파티의 하이라이트를 받으며 쏟아져 내린다.

    성대하고 사치스러운 만찬의 마무리로는 아주 훌륭한 퍼포먼스였다.

    [우오오오오-!]

    “와아아아아-!”

    곳곳에서 용기백배한 인간들의 함성소리가 요란하다.

    뜨겁게 달아오른 대망에 나의 연설이 종지부를 찍는다.

    “…인간들이여! 기죽지 맙시다! 인간답게 살아 봅시다!”

    물론 기죽지 않고 인간답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

    그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민낯 아니겠는가?

    나는 흩뿌려지는 돈의 소나기를 맞으며 목청껏 연설했다.

    “인간이여! 영원하라!”

    온 세상에 흘러넘치는 돈!

    나의 인품!

    나의 인간미!

    나의 인간다움!

    나의 인류애!

    [고 백작님의 하해와도 같은 은혜에 건배!]

    “고인물 형 사랑해요! 여기 한번 봐주세요! 꺄아아악!”

    [어머, 어머 어떻게 해! 너무 멋있어! 너무 눈부셔서 나 졸도할 것 같애! 날 가져요!]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인간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모든 이들은 나를 우상처럼 떠받들며 열광한다.

    한편, 나는 파티의 모든 실황들을 인터넷에 생중계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현실 세계의 커뮤니티들도 난리가 났다.

    -머임? 고인물 게임 접음? 왜 돈 다 뿌림?

    ↳그건 모르겠는데 진짜 돈이 겁나게 많네;;;

    ↳와...그냥 인간족을 위로하려고 이 정도 파티를 열었다고???

    ↳대체 게임하면서 얼마를 벌었길래 저러고 노냐? 사스가 VVIP 셀럽...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산증인..살아 있는 표본...

    ↳인간의 유일한 희망...그저 빛...!

    -실시간 파티 참여자다...당장 사냥 나갈 돈도 없었는데 여기서 1년치 물약값 벌었다ㅠㅠ..

    ↳나도임ㅠㅠㅠ대인배 고인물님 만세!!!!!!

    ↳부럽다...나도 인간으로 남을걸

    ↳아니 근데 고인물ㅋㅋㅋ저런데서도 벗고다니는 간지보소.

    -미친 건가? 왜 저렇게 돈지랄이야ㅋㅋㅋ

    ↳ㅇㅇ이해불가;;; 그렇게 돈 많으면 현실세계에서 기부를 하든가~~ㅉㅉ

    ↳응~고인물님은 이미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꾸준히 기부중~

    -ㅋㅋㅋ배알 꼴리는 놈들 많나보네, 여기서 욕하는 놈들 다 오크랑 리자드맨들이겠지?

    ↳ㄹㅇ자기 돈으로 저렇게 놀겠다는데 왜들 ㅈㄹ? 열폭종자 납셨죠?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후원금 보내요~~~

    커뮤니티에 달리는 댓글들의 수도 실시간으로 폭증한다.

    엄청난 어그로에 동영상 수익은 자꾸만 증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나는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동전들을 싸늘한 눈으로 흩고 있었다.

    비록 내가 지금까지 모았던 수많은 돈들이 허공에 증발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야.’

    온 세상에 휘날리는 골드들은 나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그것들은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 한낱 ‘푼돈’에 불과할 뿐이니까.

    나는 지금 이 화려함의 뒤에 도사리고 있을 돈의 ‘진짜 얼굴’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대저택, 사치스러운 파티, 쏟아지는 돈, 그리고 허울뿐이긴 하지만 백작이라는 지위까지……. 좋아, 필요한 조건은 모두 갖춰졌다.’

    철저한 손익계산의 논리.

    내가 속으로 셈을 하고 있을 때.

    끼긱…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대저택 저 위에서 들려오는 작디작은 소음.

    화려한 파티에 취해 있는 이들에게는 당연히 들릴 리가 없는 소리였지만 온 신경을 그곳에 집중하고 있던 나에게는 아까의 폭죽소리보다도 더 크게 들렸다.

    -띠링!

    <히든 맵 ‘대저택 서재’를 발견하셨습니다>

    <최초 발견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음이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온 세상에 쏟아져 내리는 금화와 지폐의 비를 등지자 비로소 낡고 오래된 서재로 통하는 길이 보인다.

    대저택의 가장 높은 공간, 지금껏 봉인되어 있던 미지의 구역이 해금되었다.

    <대저택 서재> -등급: A+

    던전처럼 보이는 서재.

    동시에 살짝 열린 문틈으로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봐, 백작. 이리로 들어오도록 해.]

    관심을 끄는 것에 성공했다.

    이 크고 화려한 대저택의 주인이자 세계관에서 제일가는 부자 NPC.

    ‘스크루지 번즈 후작’이 저 깊은 서재의 끝자락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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