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화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 (3)
옛날 어느 나라에 욕심 많은 임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기꾼들이 다가와 임금에게 제안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옷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예산을 받아놓고도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다만 빈 허공을 가리키며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을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을 뿐이다.
신하들은 모두 임금에게 옷이 멋지다는 칭찬을 했고 임금 또한 기뻐하는 척 했다.
이윽고 임금은 알몸으로 만백성들 앞에서 거리 행진을 했고 백성들은 당황한 것을 숨긴 채 임금의 옷을 칭찬한다.
하지만 이내 한 어린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고 외치게 되었고 결국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만다.
* * *
나는 지금 알몸인 상태로 화려한 파티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입니다.’
이런 뻔한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알몸, 늘 다니던 복장 그대로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늘 나를 향해 보내던 경멸, 경악의 눈빛들은 간 곳이 없다.
[허허허, 복장이 참 자유로우시군요.]
[멋지십니다. 틀에 박힌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그 모습이.]
[호호! 흡사 바람 같으세요. 멋져!]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라 위대한 고추비입니다!]
[퍄! 그 무엇이 감히 고 백작님을 가둘 수 있겠습니까!]
이 도시의 고관대작 NPC들은 하나같이 내게 다가와 좋은 말을 늘어놓는다.
평소에 변태나 노출광이라고 욕먹던 상황과는 천양지차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자본’의 아우라라는 훌륭한 옷을 두르고 있기 때문!
이 거대한 파티를 기획하고 구현해내고 있는 나의 압도적인 자금력 앞에 그 누가 대들쏘냐!
‘……그래도 벌거벗은 임금님은 나름 착한 임금이었지. 자신의 백성들이 모두 착하고 지혜롭다고 믿었으니까.’
내가 만약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다면 사기꾼들이 개수작을 부리는 즉시 목을 쳐 버렸을 것이다.
나는 착하고 지혜로워서 옷을 볼 수 있다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아서 옷을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굳게 믿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들이 내가 만들어 낸 자본주의의 옷, 허영과 우상의 꺼풀을 볼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증거로 누구 하나 나에게 옷을 입으라고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원래 부자 동네 다닐 때 가장 멋진 패션은 슬리퍼에 잠옷이라는 말도 있지.’
부자 동네에서 놀 때 예쁜 옷이나 명품 액세서리 등을 걸치고 있는 것은 자기가 이 동네 살지 않고 어디 먼 곳에서 놀러왔다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소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부티에 아등바등 따라가거나 저항하려는 듯한 뜨내기들의 발악이 처절할 정도로 느껴지는 가련한 패션.
진짜 멋진 패션은 ‘나 이 동네 살아요’라고 외치는 듯한 편한 복장이다.
마치 볼일 있어서 집 밖으로 잠시 나온 양 말이다.
장소가 뿜어내는 부티를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있는 듯 편한 복장.
이것이 진정한 럭셔리 고인물이 아닐까?
[이런 훌륭한 저택에서 개최되는 파티라니, 너무 멋집니다!]
[원래 이 저택의 주인인 스크루지 번즈 씨는 성격이 폐쇄적이어서 절대 저택을 개방하지 않았거든요.]
[역시 고 백작님, 대단하십니다. 대체 얼마나 큰 금액을 제시했기에 스크루지 후작 그 구두쇠가 저택을 임대해 준 것일까요?]
귀족, 거상, 고위 군인들이 모두 내게 알랑방귀를 낀다.
나는 오늘 파티를 개최한 보상으로 명예 백작 지위까지 받은 몸, 모든 NPC들이 내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NPC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저택의 원래 주인 말이야. 스크루지 번즈 씨. 요 근래 통 안 보이지 않았나?]
[그러게. 노인네가 갈 때가 되었나… 평소라면 저택을 절대 개방하지 않았을 텐데.]
[못 본 지 꽤 오래됐지? 귀족 사교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한참 되었으니.]
이 저택의 원래 집주인인 스크루지 번즈 후작.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이자 수전노로 악명 높은 노인이었다.
하지만 대격변 이후, 그는 집의 가장 깊숙한 곳에만 틀어박혀 통 외출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전 세계의 부호들, 재벌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 모든 NPC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공통 현상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부자들이 은밀한 곳에 몸을 감추고 대중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부자 걱정은 하는 게 아니랬어.]
[맞아. 어디 처박혀서 평소처럼 인색하게 살고 있겠지 뭐.]
[우리는 고인물 백작님의 하해와도 같은 은총과 돈 씀씀이를 받아먹으며 즐겁게 놀기만 하면 된다네!]
NPC들은 이내 스크루지 후작의 안위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하이볼과 생크림에 취한다.
플레이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 대박이다! 이게 한 사람이 주최하는 파티라고?”
“유명한 NPC들 여기 다 모였네. 우와, 파티 규모 봐라.”
“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야? 현실에서도 이렇게 못 놀아 봤는데.”
비 오는 날 술과 음식, 몸을 따듯하게 쉬게 둘 곳을 찾던 모험가들이 모두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어지간한 주점과 여관 따위는 비교불가의 럭셔리 파티.
나는 이 호화 대저택의 모든 구간을 플레이어들에게 자유롭게 공개했다.
단 한 곳.
저택 최상층부에 있는 ‘서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는 이곳에 모여든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자! 오늘 수영장 파티 스킨 무료로 뿌립니다! 다들 와서 즐기세요!”
샴페인과 위스키로 된 수영장, 따듯하고 맛있는 안주들이 도처에 넘쳐난다.
화려하게 치장한 모델, 광대 NPC들이 분위기를 띄우며 저택 곳곳을 돌아다닌다.
곳곳에서 B급 이상의 아이템이 걸린 경품들이 팡팡 뿌려지자 일반 유저들은 열광한 채 모여들었다.
[꺄르륵! 뽀앵!]
초콜릿으로 된 분수 위에 앉아있는 쥬딜로페는 파티의 풍경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누가 여왕님 아니랄까 봐 화려한 것 참 좋아한다.
쥬딜로페의 호감도가 덩달아 오르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런 파티를 연 당위성을 확립해 줄 때가 되었다.
나는 파티장 중앙, 커다란 분수대 앞에 있는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준비해 뒀던 연설을 펼쳤다.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은 자유가 실현됨과 동시에 모든 인간은 천부적으로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리가 충실하게 지켜지는 새로운 도시를 이 대륙에서 탄생시켰습니다.”
내 외침을 들은 모든 NPC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특히나 꼬장꼬장하게 늙은 군인들의 공감대 형성이 두터웠다.
“그러나 대격변이 일어난 이래, 우리는 용과 악마의 세력 사이에 끼인 채 우리의 조상들이 물려 주었고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길 원했던 이 소중한 도시가 얼마나 오랫동안 존립할 수 있을지 우려될 정도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격변 이후 인간 종족의 위세가 크게 꺾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오크나 리자드맨이 되면서 태초의 마을 유토러스 역시 황량해지지 않았던가.
나는 연설을 이어 갔다.
“그러나 한층 더 엄밀한 의미에서 살펴보면, 이 땅을 인간의 성지로 만드는 존재는 결코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끼어들 여지도 전혀 없이, 전사자든 생존자든 여기서 싸웠던 용감한 분들이 이미 이 곳을 성스러운 곳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서 하는 말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도 않을뿐더러 오랫동안 기억하지도 못하겠지만, 그분들이 여기서 이루어 냈던 업적만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떠나간 자들.
여관 주인, 잡화점 상인, 무기점의 대장장이, 신관의 사제, 성벽을 지키는 군인, 그리고 플레이어들….
나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외쳤다.
“이제 우리는 인간으로 남은 자로서 이곳을 성지로 만들었던 위인들이 애타게 이루고자 염원했던 미완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마땅히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처럼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어머니의 도시 유토러스’는 새롭게 보장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며 인간의 도시(Of the human)이면서, 인간에 의한 도시(By the human)이면서, 인간을 위한 도시(For the human)로서 결코 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조금 변형해서 읊은 결과는 상당히 좋았다.
수많은 NPC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우리 인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어 정말 고마워!]
[과연 명예 백작 작위를 수여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풀 죽어 있던 유토러스에 조금이라도 온기와 활기가 감돌게 되었어요!]
[사랑해요 고 백작님! 우리도 힘낼게요!]
플레이어들 역시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은 듯했다.
“맞아. 리자드맨이랑 오크들 등쌀에 사냥터에도 못 나가고 요즘 죽을 맛이었는데.”
“그뿐인가? NPC들도 엄청 줄어들어서 상권도 몰락했잖아.”
“도시 자체도 엄청 썰렁해졌는데. 그래도 오늘 이렇게 다들 한 자리에 모인 걸 보니 위안이 되네. 우리 인간들의 머릿수도 아직 많구나.”
“고인물 씨가 인간 진영에 남아 주셔서 진짜 다행이야.”
NPC고 플레이어고를 떠나 인간이라면 모두 위로가 될 만한 파티였다.
나는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저는 오늘 인간 생존자들에게 작지만 따듯한 위로가 되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인간들이여! 기죽지 맙시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레와 같은 박수들이 터져 나왔다.
나는 박수갈채를 잠시 진정시킨 뒤 샴페인 잔을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축제도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제가 준비한 마지막 쇼를 즐겁게 구경하시길!”
그러자 수많은 시선들이 내 뒤에 마련되어 있는 커다란 무대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흰 천에 덮여 있었던 커다란 가설무대.
이내 대저택에 딸린 하인 NPC들이 달려와 흰 천을 걷어냈다.
펄럭-
그 순간.
[맙소사!]
“세상에!”
NPC고 플레이어고 상관없이 모두가 헛바람을 집어삼킨다.
나의 마지막 쇼!
역대급 규모의 돈지랄이 이제 막 선보여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