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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14화 (414/1,000)
  • 415화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 (1)

    [입지 않은 듯한 완벽한 촉감. 이 세상 속옷이 아니다. 레고 이너웨어.]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기름을 발라 윤기가 흐르는 내 몸은 그동안의 격한 운동으로 인해 조각처럼 반들거린다.

    나는 속옷만 입은 채 하얀 방 중앙에 서서 정면에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마찬가지로 몸에 기름을 바른 채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니아 멤버들이 있었다.

    박보연, 윤두나, 배수지, 박소담.

    그녀들과 나는 현재 속옷 모델로 CF를 찍는 중이었다.

    “좋아요! 이걸로 끝!”

    PD는 후련한 표정으로 카메라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 나에게로 다가와 악수를 건넨다.

    “이야, 이번 샷도 잘 나왔네요. 속옷만 걸치고도 이런 자연스러움이라니 세상에! 전문 속옷 모델들도 이렇게 자연스럽게는 안 나오는데 말이죠.”

    “과찬의 말씀을.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드리죠. 어진 씨와 니아 분들이 속옷 모델을 해 주신 뒤부터 선정적이라는 지적들도 눈에 띄게 줄었어요. 확실히 판매량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다음 재계약 시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뭐, 원래 벗고 다닌다는 이미지라서. 아마 위화감이 제로에 가까울 겁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나는 PD와 악수를 하고 바로 돌아섰다.

    그때.

    코트를 입고 차 키를 꺼내 쥐는 내게 다가오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사부, 바로 가시게요? 같이 저녁 먹어요!”

    박보연이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코트 자락을 툭툭 친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쁘다.”

    “에이, 뭐가 바빠요. 얼마 전에 선발전 끝났는데~”

    “이제 리틀리그 준비해야지.”

    “네?”

    내 말을 들은 니아 멤버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일제히 웃었다.

    “에에~ 사부는 아마추어면서 또 프로인 척한다!”

    “사부가 리틀리그 준비할 게 뭐 있어요!”

    “뻥쟁이!”

    나는 니아 멤버들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누가 내가 나간대? 친구들이 준비하는 거 도와주는 거다.”

    내 말을 들은 박보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분들 세 명이요?”

    “응.”

    “뭘 준비해야 하는데요?”

    나는 그녀의 말에 심플한 대답을 남겼다.

    “돈.”

    그렇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리틀리그에 출전하기 전, 나는 게임 속으로 들어가 게임세계를 지배하는 일곱 악마성좌 중 하나를 꺾을 예정이었다.

    고정 S+등급 몬스터.

    죽음룡 오즈에 필적하는 대괴수.

    놈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돈이다.

    한편, 내 말을 들은 박보연은 씩 웃으며 물었다.

    “돈이요? 사부 돈 필요해요? 내가 빌려 줄까요?”

    “응.”

    “…엥?”

    장난처럼 한 말에 내가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이자 박보연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배수지와 윤두나 박소담 역시도 내 옆으로 다가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싸부 돈 엄청 많잖아요?”

    “오늘 CF 출연료만 해도 저희랑 비슷하거나 더 많이 받으셨을 텐데.”

    “탑 급 걸그룹보다 페이 쎈 스트리퍼, 아니 스트리머라니. 역시 사부.”

    다들 내 재산을 어느 정도 아는 친구들이기에 더욱 더 의아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족해. 한참 부족해.”

    내가 앞으로 펼칠 계획에는 돈이 정말 많이 든다.

    무려 일곱 악마성좌 중 하나를 끌어내리는 작업이다.

    당연히 한 푼 두 푼 할 리가 없는 일.

    “지금은 고양이 동전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다. 돈 좀 빌려 줄래?”

    “으음. 저축해 둔 돈이 약간 있기는 한데, 그렇게 큰 액수는 아니에요.”

    “상관없어. 빌려 줄 수 있으면 빌려 줘.”

    내 말을 들은 박보연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 계좌에 있는 돈은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나에게 전송했다.

    “제 전 재산이에요.”

    당찬 표정으로 콧김을 내뿜는 박보연이다.

    그러자 윤두나나 배수지, 박소담 역시도 별다른 말없이 나에게 돈을 전송한다.

    “울 아빠는 못 믿어도 울 사부는 믿을 수 있지.”

    “애초에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준 사람도 사부니까.”

    “사부 덕에 번 돈인데 당연하죠. 쓰세요.”

    니아 멤버들은 돈의 사용처도 묻지 않은 채 나에게 전 재산을 송금했다.

    그녀의 전폭적인 신뢰와 믿음 앞에 나는 뭉클함을 느꼈다.

    나는 박보연의 머리를 대표로 한번 쓰다듬어 준 뒤 차에 올랐다.

    “리틀리그 시작 전까지 갚을게. 이자는 은행금리보다는 훨씬 셀 거야. 기대하라고.”

    “돈 빌려 가는 주제에 기대하라니, 배짱 한번 좋네요, 사부.”

    “빌려 주는 게 아니라 투자한다고 생각해. 나는 확실한 우량주라고. 앞으로 나에게 돈 빌려주기 힘들 거야.”

    돈을 빌려 가는 쪽이 오히려 떵떵거리자 니아 멤버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는다.

    “이자는 됐고 밥이나 사 줘요! 저번에 밥 먹다가 튀었잖아요!”

    박보연이 심통 난 듯 외친다.

    나는 씩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크르릉!

    슈퍼카 특유의 묵직한 엔진음, 뜨거운 진동이 몸 전체를 달군다.

    앞으로 달려 나갈 준비가 된 것은 자동차나 나나 똑같다.

    *       *       *

    건물로 돌아온 나는 바로 회의실을 향해 올라갔다.

    문을 지키고 있던 유창이 나를 향해 허리를 굽히는 것이 보인다.

    “형님 오셨습니까!”

    여전히 깍듯한 기역자 인사.

    나는 유창에게 물었다.

    “배당은?”

    “챙겨 왔죠.”

    그는 두 손으로 서류 가방 몇 개를 들어 보이며 씩 웃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창에게 손짓했다.

    유창은 파티룸 안으로 들어와 테이블 위에 서류가방들을 내려놓았다.

    딸깍-

    가방을 열자 안에서 현금다발들이 쏟아진다.

    저번에 ‘바스터즈’ 대 ‘엘리트즈’ 전 당시 E스포츠 토토에 배당을 걸어서 번 돈이다.

    “……나와 관계없는 대회였으니 불법도 아니지 뭐.”

    ‘닳고닳은 뉴비’ 대 ‘바스터즈’ 전 당시에 걸었더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해당 경기 관계자의 베팅은 불법이니 불가능하다.

    난 어디까지나 국민체육진흥법 제 30조의 규정에 따라 적법한 베팅만을 하고 있었다.

    내가 토토 배당금을 정리하고 있을 때.

    “어진아. 형 왔다.”

    등에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엄재영 감독이 피곤한 표정으로 회의실 문을 열었다.

    두 손에는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네가 바꿔 오란 것 전부 바꿔 왔다. 휴, 더럽게 무겁네 진짜. 노인네한테 이런 거 시키게 되어 있냐?”

    “죄송해요.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서. 저도 방금까지 CF 찍다가 왔어요.”

    “저거저거 돈 세느라 쳐다보지도 않는 것 봐. 야! 빨리 와서 이거나 좀 받아.”

    엄재영 감독은 낑낑거리며 테이블 위로 가방을 나른다.

    나와 유창은 얼른 뛰어가 엄재영 감독의 짐을 나눠 들어 주었다.

    딸깍-

    나는 엄재영 감독이 가져온 가방들도 바로 개봉해 버렸다.

    역시나, 안에는 수많은 현금다발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이것들은 예전 고르딕사 레이드 당시 얻었던 금괴들을 모두 정리해 은행에 투자를 맡겨 지금껏 굴려오던 액수였다.

    현재 회의실의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토토 배당과 현금으로 환전한 게임머니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띠링!

    [입금이 완료되었습니다.]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입금됐네.”

    나는 인터넷 뱅킹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내 유튜뷰 수익이 입금되었다는 메시지다.

    현재 마동왕 SNS 계정의 팔로워나 구독자 수는 대략 5천만 명 이상.

    내가 저번에 올린 대격변 동영상의 조회수는 약 10억이 넘어간다.

    이 영상 하나를 통해 들어온 후원금과 광고수익만 해도 70만 달러, 한화로 7억 9,275만 원에 달했다.

    거의 8억에 이르는 거금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에 올렸던 동영상들 역시도 차트를 역주행하는 것처럼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한 수익들은 당연히 대격변 동영상 하나가 벌어 온 수익보다도 훨씬 많은 것이었다.

    “……여기에 고인물 명의로 CF 몇 개 찍었으니 그것까지 입금되면 얼추 딱 들어맞겠어.”

    내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자 현금다발을 정리하던 엄재영 감독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너 대체 뭘 하려고 그러기에 돈을 이렇게 바리바리 싸 짊어지는 거냐? 여기서 돈을 더 모아서 뭘 하려고?”

    “이게 다가 아니에요. 캡슐방 장사해서 벌어들인 돈이랑 그동안 쌓아뒀던 경기 상금, 광고료, 후원금까지 죄다 끌어 모았습니다. 심지어 이 빌딩도 담보로 잡아 놓고 은행에서 대출 한계까지 끌어 썼어요.”

    “뭐? 얀마! 너 정신 나갔냐!?”

    엄재영 감독은 내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을 뿐이다.

    “걱정 마세요. 이 돈은 곧 몇 십, 몇 백 배로 돌아올 테니까.”

    “……?”

    엄재영 감독이 귀를 의심한다.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 돈만 해도 얼마인데 그게 몇 백 배로 불어난다니?

    하지만 나는 의혹 어린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현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현금들을 모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게임머니’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벌어들은 모든 ‘현금’들을 전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골드’로 바꾸는 중인 것이다.

    테이블 위에 쌓인 엄청난 액수의 돈은 이제 곧 게임 세상의 단위로 치환될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대량이라면 할인이 들어가기 때문에 게임머니의 양이 더욱 더 불어나겠지.

    “……왜 그런 짓을 하는 거냐?”

    엄재영 감독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악마성좌를 잡으려고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힘이 곧 돈’, ‘돈이 곧 힘’이다.

    내가 지금 목적지로 삼고 있는 게임 속 세상, 그곳을 다스리는 존재는 철저하게 ‘힘’과 ‘자본’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 악마성좌였다.

    ‘탐욕’과 ‘지하광물’을 다스리는 악마성좌 마몬(Mammon)!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세고 탐욕스러운 이 대악마가 나의 다음 타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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