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11화 (411/1,000)
  • 412화 진짜가 나타났다 (1)

    “오늘의 우승팀은 ‘닳고닳은 뉴비!’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에 출전할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들을 향해 많은 박수 부탁드립니다!”

    전용진 캐스터는 무대 위에 올라선 채 외쳤다.

    나는 흰 가면을 쓰고 관중들 앞에 섰다.

    마동왕. 현 한국 프로리그의 비공식 절대자.

    하지만 오늘의 스포트라이트는 나를 향하지 않았다.

    유세희와 마태강. 닳고닳은 뉴비의 막내 둘이 무대 제일 앞에 나란히 섰다.

    나와 드레이크, 윤솔은 그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서 있었다.

    전용진 캐스터는 마이크를 든 채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맨 처음으로 인터뷰한 대상은 아무래도 팀의 리더인 나였다.

    “마동왕 선수! 1차 선발전에서 가장 인상 깊은 활약을 보여 주셨었는데요. 주먹 한 방으로 홀인원을 만들어 낼 때 캐스터들 다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막강한 물리공격력의 비법이 뭡니까?”

    앞으로 마이크를 들이밀며 묻는 전용진 캐스터의 질문에 나는 짧게 대답했다.

    “템빨이죠.”

    그 말에 좌중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전용진 캐스터는 껄껄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떤 등급의 아이템을 착용했길래 그런 힘이 나오죠? 또 그런 등급의 아이템을 떨어트리는 몬스터는 대체 뭘 어떻게 잡아야 하는 건지 감도 잘 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평소에 레이드를 잘 뛰지 않으시는 걸로 유명하신데요.”

    “…뭐, 틈틈이 뜁니다.”

    “크, 천재들의 틈은 저 같은 일반인의 틈이랑은 개념이 조금 다른가 봅니다.”

    말을 마친 전용진 캐스터는 그 옆에 있는 윤솔과 드레이크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두 분 선수들은 제가 알기로 이제 첫 데뷔인데요. 국가대표가 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전용진 캐스터의 말에 윤솔과 드레이크는 손사래를 쳤다.

    “슬프게도… 저는 1차, 2차 모두 활약한 게 없어서 드릴 말이 딱히 없네요.”

    “I can’t give you any horse.”

    윤솔과 드레이크 모두 직접적으로 경기를 플레이한 적이 없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2차 경기를 뛰지 않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경기의 주역은 유세희와 마태강, 이 둘이다.

    유력한 우승후보들 중 하나였던 바스터즈를 부숴 버린 두 초신성이 무대 중앙에서 밝게 빛난다.

    환호하는 관중들 앞으로 걸어나온 전용진 캐스터가 마태강을 향해 마이크를 내밀었다.

    “아 투신 마태강 선수! 대격변 이후 화려한 비상 잘 보았습니다. 기량이 더욱 더 출중해지신 것 같은데요?”

    “…과찬이십니다.”

    “과찬은요! 마지막에 오크로 변해서 마동섭 선수를 리타이어 시키는 모습을 보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대체 어떤 원리로 오크와 인간의 몸을 갈아타시는 건가요? 원래 몸이 오크인 겁니까? 아니면 인간인 겁니까?”

    “전략 상 대외비이므로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마태강은 내가 시킨 대로 잘 대답했다.

    사실 뭐 말해 줘도 별 상관은 없는 사실이었지만 신비주의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 두는 게 낫겠다.

    마태강의 무뚝뚝한 말에 전용진 캐스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이후 전용진 캐스터는 마태강에 대해 몇 가지 덕담을 더 한 뒤 다음 대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진 주인공, 바로 유세희였다!

    전용진 캐스터는 고조된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경기는 특별히 따로 개인 MVP 트로피가 없지만… 만약 트로피가 있었다면 단언컨대 만장일치로 유세희 선수에게 수여되었을 겁니다. 오늘 상대 팀 에이스 세 명을 연달아 잡아 내시던 모습에 소름이 다 돋더군요. 우승 소감이 어떠십니까, 유세희 선수?”

    “…헤헤, 좋아요. 밥값 한 것 같아서.”

    몸을 배배 꼬던 유세희가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미소 짓자 무대 앞쪽의 수많은 관중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린다.

    전용진 캐스터 역시 안경을 고쳐 쓰며 껄껄 웃었다.

    “아휴 이거 참. 너무 귀여운 거 아닙니까? 제 딸래미 보는 줄 알았어요. 플레이만 보면 제 와이프처럼 무시무시하신데 말이죠. 지금 학교 같은 반 친구들이 여기에 응원 와 있나요?”

    “네 와 있어요. 얘들아!”

    유세희가 무대를 향해 손을 흔들자 저쪽 구석에서 와-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백 명에 육박하는 중학생들이 유세희를 향해 깃발과 플랜카드를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희야! 빨리 학교 와!”

    “게임 같이 하자!”

    “나도 이 게임 시작했어!”

    “반장이 없으니까 반이 안 돌아간다!”

    남학생 여학생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유세희를 향해 환호한다.

    전용진 캐스터는 껄껄 웃은 뒤 유세희를 향해 마이크를 다시 내밀었다.

    “역시나 대단한 인기네요. 세희 씨, 어린 나이에 프로로 데뷔했는데 구단 생활은 할 만한가요?”

    “네! 다들 잘해 줘요!”

    “누가 제일 잘해 주나요?”

    전용진 캐스터가 묻자 유세희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나는 내심 나를 지목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윤솔이나 드레이크 역시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하지만 유세희는 옆에 있는 마태강의 어깨를 머리로 툭 건드렸다.

    “태강 오빠가 제일 잘해 줘요!”

    “뭐? 내, 내가 언제… 뭘 해 줬다고….”

    “연습 상대도 해 주고요. 제가 눈이 잘 안 보이니까 어디 갈 때 항상 손도 잡아 주고….”

    그러자 전용진 캐스터가 굳은 표정으로 마태강을 바라본다.

    주변 관중들도 작은 목소리로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유다희와 유창은 마태강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우우- 꺼져라!”

    “세희에게 손대지 마!”

    “도둑놈 새끼!”

    순식간에 마태강의 안티 팬이 불어난다.

    유세희는 마이크에 대고 구단 생활이 매우 즐겁고 또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필했다.

    “다른 구단은 구단 운영비가 구단주 뒷주머니로 들어간다는데, 우리 구단은 구단주 뒷주머니가 구단 운영비로 들어온대요. 복지 짱 좋아요!”

    좌중들이 훈훈하게 웃는 동시에 옆에 있던 엄재영 감독이 마이크를 넘겨받고는 바로 멘트를 쳤다.

    “저희 ‘닳고닳은 뉴비’ 구단에서는 언제나 재능 있는 코치, 선수진들의 입단을 기다립니다. 365일 24시간 연중무휴로 열려 있으니 언제든 지원서 내 주십쇼.”

    그 말에 여기저기서 눈들이 반짝인다.

    선발전에서 아깝게 탈락한 선수들,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2군 프로들, 그리고 가르치는 것에 더 소질이 있는 현역 랭커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재영 감독은 계속해서 우승 소감을 이어 나갔다.

    “1차전에서는 마동왕이라는 카드 하나로 올라왔고 2차전에서는 마태강, 유세희라는 카드 두 장으로 우승했습니다. 저희 닳고닳은 뉴비, 일명 ‘닳닳뉴’는 아직도 보여드릴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엄재영 감독의 소감이 이어지고 있을 때쯤, 무대 뒤의 암막 너머에서는 차규엽의 소감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규엽은 협회 관계자들을 모아놓은 채 핏발 선 눈을 빛냈다.

    “이대로 저 닳닳뉴인지 닳닳이인지 하는 팀을 한국 대표로 내보낼 거요?”

    …….

    아무도 대답이 없다.

    대회에서 명확하게 판결이 난 사실이다.

    심지어 현장에서만 20만 명이 그 판결이 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하지만 차규엽은 도저히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모양.

    “자. 보시오들.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

    그는 자기가 매수했거나 산하에 거둔 협회 임원들을 모아둔 채 말했다.

    “닳고닳은 뉴비 구단은 이번 대회에서 총 세 명의 선수를 내보였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나? 대표성이 부족하다 이거야. 한 보 양보해서 마동왕이라는 저 친구랑 오늘 나왔던 두 꼬맹이들의 실력은 인정한다고 해도 나머지 둘은 실력이 검증된 적이 없지.”

    그제야 사람들은 차규엽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했다.

    “그러니 어르신 말씀은 마동왕, 유세희, 마태강, 이 셋은 국가대표로 인정하되 나머지 둘은 엔트리에서 제외시키자 이것이군요.”

    “그리고 그 자리에 우리 쪽 선수 두 명을 채워 넣고요.”

    “음, 확실히……. 실질적으로 한국을 대표할 자격이 증명되지 않은 둘 정도는 어떻게 논란거리로 만들어 볼 수는 있겠습니다. 저 둘이 정말 실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 여론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3차 대회를 만들던가 아니면 구단별로 따로 특별 T.O를 책정하든가 해서 조속히 협회 룰을 바꾸면 가능할 것도 같……”

    하지만.

    그들은 회의를 계속할 수 없었다.

    엄재영 감독이 우승 소감을 밝힌 뒤에도 무대 아래로 내려가지 않은 채 마이크를 계속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승 소감 인터뷰였습니다. 시간을 잠시 내어 주신다면 그동안 저희를 응원해 주신 분들께 재미있는 영상 하나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말을 마친 그는 나를 향해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나는 엄재영이 건네는 마이크를 받아들고는 무대 중앙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나는 마동왕 특유의 목소리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이번에 저희는 꽤나 좋은 성적으로 우승했습니다.”

    나의 말에 경기장에 모인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대감 섞인 침묵이 나를 휘감아 돈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너무 압도적으로 이겨 버린 감이 없잖아 있지요.”

    관객석 곳곳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마이크를 입으로 더욱 바짝 가져갔다.

    “그래서일까요? 세희와 태강이 외에 다른 선수들이 활약할 틈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시선들이 내 옆에 있는 윤솔과 드레이크를 향했다.

    아직 대중들 앞에서 실력을 증명한 적이 없는 내 친구들.

    엄밀히 말하면 유세희와 마태강이 너무 잘해서 나설 차례가 오지 않은 것뿐이지만 언제나 의심 많은 사람들은 존재하는 법이니 의혹 어린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란 불가능하다.

    “이번 경기에서 두 명만이 나온 것을 구실삼아 저희 구단을 탐탁찮게 보시는 팬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말에 홀 안은 정적에 잠겼다.

    동의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궁금해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안해하는 사람도 한 명 있겠지.

    차규엽 놈은 무대 뒤에서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저희 닳고닳은 뉴비가 국가대표라는 중임을 맡기에 자격이 부족하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확실히 저희는 신생이고 여러분들 앞에 설 기회가 부족했으며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았고 심지어 빵빵한 스폰도 없습니다.”

    정적은 더욱 더 무거워진다.

    나는 관중들을 한번 쭉 흩어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동시에, 홀 안의 가장 큰 초대형 스크린에 동영상 하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돔구장 안팎의 모든 스크린에서 동시에 재생된다.

    심지어 돔구장 위에 있는 거대한 홀로그램 영상으로도 보여지고 있었다.

    […쾅! 우르릉!]

    굉음과 함께 산이 무너지고 대기가 요동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세상.

    [악마들의 세상 따위 전부 망해 버려라!]

    지금까지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된 적 없었던 S급, 아니 S+급 몬스터가 내지르는 단말마가 온 세상에 울려 퍼졌다.

    돔구장 위 까마득한 허공에 넘실거리는 홀로그램.

    현실 세상을 향해 무너져 내리는 게임 세상.

    그것을 알아본 많은 사람들이 입을 딱 벌렸다.

    “처, 천공섬! 천공섬이다!”

    “세상에! S+등급 몬스터야!”

    “…저, 저런 게 실제로 존재했어!?”

    몇몇 사람들은 돔구장 위로 쏘아진 거대 홀로그램,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천공섬의 붕괴에 경악하여 뒤로 나자빠질 정도였다.

    외신, 내신 가릴 것 없이 모든 취재진들이 입을 딱 벌린 채 미친 듯이 사진을 찍는다.

    모든 스트리머들이 입과 코에서 침과 콧물이 질질 흐르는 것도 모른 채 홀린 듯 영상을 송출하고 있었다.

    식인황제 보카사와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 ‘유토피아 폴’의 등장에 온 세상이 전율했다.

    그리고 그런 괴물을 쓰러트린 뒤 폭발에서 벗어나는 그림자가 셋.

    어마어마한 횟수의 레벨업 빛기둥을 뿜어내고 있는 천사, 윤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두 눈빛만은 또렷하게 살아 있는 모험가, 드레이크.

    그리고 포연과 모자이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얼핏 보이는 가면으로 짐작해 마동왕임을 알 수 있는 나의 그림자까지!

    …….

    관중들은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바빠 함성조차 지르지 못한다.

    다만 세상을 향해 무너져 내리는 천공섬, 그 거대한 붕괴 현장과 보스 몬스터의 장중한 사망을 보고 입만 딱 벌리고 있을 뿐.

    천공섬이 지상을 향해 붕괴하는 것을 끝으로, 홀로그램 영상은 멈췄다.

    …….

    20만 명이 모인 홀 안,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모인 홀 밖.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함성은커녕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그 지독한 정적을 향해.

    탁-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그동안 대격변을 일으킨 게 누군지 궁금하셨죠?”

    그리고 수많은 언론과 스트리머들을 향해 짧게 말했다.

    “그게 바로 접니다.”

    동시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천공섬이 붕괴할 때 났던 굉음에 필적하는 함성이 온 세상을 진동시킨다.

    실시간으로 해외까지 송출되고 있는 나의 모습.

    퍼퍼퍼퍼퍼퍼펑!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게임 스트리밍 채널과 커뮤니티가 실시간으로 죄다 터져 버렸다.

    나는 차규엽, 그리고 매수된 협회 관계자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중지 하나를 폈다.

    ‘좆까.’

    이것이 세계리그를 향한 나의 첫 출사표(出師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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