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10화 (410/1,000)
  • 411화 권선징악(拳善懲惡) (6)

    “오, 저걸 이제야 쓰네.”

    나는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크로 변해 버린 마태강.

    그가 저런 모습이 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살아 있는 화석> / 재료 / ?

    오래 전부터 모습이 일절 변하지 않은 채 전해져 내려온 고대의 존재.

    중앙에 작은 고생물의 흔적이 찍혀 있는 돌멩이.

    이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는 덕분에 마태강은 오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살아 있는 화석’은 특별히 대단한 히든 피스는 아니었다.

    그저 한 개체의 진화를 억제하는 아이템일 뿐이다.

    리자드맨이나 오크는 이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는 한 대격변 전의 모습, 즉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다만 HP가 일정 %이하로 줄어들게 되면 이 아이템은 효과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때부터는 인간의 탈 속에 감추고 있던 본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마태강은 본디 튜토리얼의 탑에서 악마의 진영에 가담했었고 그 때문에 오크 종족으로 변태한 플레이어였다.

    …왜 굳이 오크의 육체를 감췄냐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크윽!?”

    스턴이 풀린 마동섭은 경악한 표정으로 마태강을 바라보았다.

    상대가 인간에서 오크로 변했다. 그것도 경기 도중에!

    아까 전부터 본능이 경고를 하던 이유가 있었다.

    설마 이런 공격패턴을 숨겨 놓았을 줄이야!

    “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이게!”

    마동섭은 재빨리 주먹을 들어 마태강을 향해 내뻗었다.

    부웅-

    하지만 주먹은 마태강의 귓바퀴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간 인간의 몸을 하고 있던 마태강을 상대하는 데 익숙해져 리치 거리를 계산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상대가 인간 수준의 무빙에 익숙해져 있을 때.

    …팟!

    마태강은 오크 특유의 폭발적인 다리 근육을 이용하여 마동섭에게 도약했다.

    “꺼져라!”

    마동섭은 주먹을 회수하고는 몸을 빙글 돌려 어깨로 마태강을 찍어 누르려 했다.

    하지만.

    …꾸드득!

    마태강의 HP가 자연적으로 천천히 회복됨에 따라 오크의 육체가 다시 인간의 육체로 탈바꿈한다.

    마태강은 HP가 자연 회복되는 절묘한 타이밍을 노려 마동섭의 주먹 궤도 안으로 뛰어들었고 이내 인간의 작은 몸으로 변해 마동섭의 주먹을 피해 버렸다.

    동시에.

    뿌득-

    마태강은 혀를 깨물어 피를 내었다.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HP가 다시 한계선 아래로 내려가며 오크로의 변신이 시작되었다.

    퍼억!

    오크로 변한 마태강은 커진 주먹으로 또다시 마동섭의 복부를 후려갈겼다.

    “크학!?”

    마동섭은 갈빗대들이 우르르 부러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부웅!

    마동섭은 혼신의 힘을 다해 미들킥을 날렸지만.

    …팟!

    그새 HP가 약간이나마 자연회복된 마태강은 인간의 몸으로 변한 채 잽싸게 고개를 숙여 마동섭의 미들킥을 피했다.

    인간은 오크보다 체구가 작아 상대적으로 근접전에서의 공간 활용도가 높고 작은 행동들이 민첩할 수밖에 없다.

    마태강은 HP가 자연회복되는 타이밍을 노려 인간의 몸으로 변해 날쌔게 움직였고 또 혀를 살짝 깨물음으로써 HP를 떨어트려 오크의 몸으로 변해 묵직한 주먹을 날린다.

    기동력 있게 움직일 때는 인간의 몸으로, 한 방 크게 먹일 때는 오크의 몸으로.

    뻐억-

    마태강의 주먹이 또다시 마동섭의 안면 정중앙에 꽂혔다.

    인간 시절의 가냘픈 팔뚝과 조막만한 주먹이 아니다.

    오크 특유의 통나무 같은 팔뚝과 무쇠 솥 같은 주먹이 마동섭의 골통을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는다.

    심지어 뜨거운 불꽃이 실려 있는 주먹이다.

    마동섭은 안면이 타들어가는 작렬통과 두개골이 쪼개지는 것에서 오는 두통을 느끼며 뒤로 비틀비틀 물러섰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아니라,

    권선징악(拳善懲惡).

    말 그대로 주먹으로 악을 징벌하고 있다.

    …뻑! …뻐억! …퍽!

    오크로 변한 마태강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자비하게 주먹을 날렸다.

    캐스터들은 이 상황을 보고 입을 딱 벌린 채 제대로 중계도 하지 못한다.

    [아… 아아! 이,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유일하게 전용진 캐스터가 제정신을 차리고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잔뜩 흥분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삑사리를 섞어 현재 상황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마, 마태강 선수! 경기 도중에 오크로 변신했습니다! 원래 오크인데 인간으로 변한 걸까요!? 아니면 원래 인간인데 오크로 변한 걸까요!? 마치 얼룩말의 원래 바탕색이 흰색이고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것인지……아니면 원래 바탕색이 검은색이고 흰 줄무늬가 있는 것인지……아니, 내가 지금 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무튼 굉장합니다! 투신 마태강 특유의 108계단 콤보가 사정없이 작렬하고 있-습니다아아아아아!]

    동시에 관객석에서 슬슬 기립하는 이들이 보인다.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일어나 발을 구르고 고함을 치며 응원하는 열성팬들.

    마태강이 보여준 파격적인 퍼포먼스는 20만 명의 정신을 홀딱 빼놓기에 충분했다.

    한편, 이 모든 사실을 이미 예견하고 있던 나는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

    ‘확실하게 밟아 줘라. 나까지 안 나가도 되게.’

    쌍마(雙馬)의 시대.

    투신과 본좌의 싸움은 내가 상상했던 대로 박진감 넘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는 그들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다.

    마동섭은 승부조작 브로커로서 맞이해야 할 합당한 최후를 맞을 것이고 두 번 다시는 E스포츠 바닥에 그 더러운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될 테니까.

    펑! …퍼펑! …쾅! …우지지직!

    마태강의 주먹세례에 맞아 걸레짝이 되어 가는 마동섭의 몸뚱이.

    짓이겨진 자존심과 고통에 일그러진 마동섭의 두 눈알에는 서서히 ‘공포’라는 감정이 깃든다.

    가상현실 게임은 모니터 속에서 벌어지는 구시대의 게임들하고는 그 타격감이 완전히 다르다.

    내가 남을 때리는 게 실제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내가 남에게 맞는 것 역시도 실제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는 수많은 이들에게 정신병을 유발한다.

    일반인 같으면 싱크로율을 낮춰 이를 피할 수 있겠지만 프로게이머들은 항상 싱크로율을 최고조로 맞추어 두기 때문에 PTSD에 걸리는 확률이 매우 높은 편이었다.

    …심지어 환지통(리자드맨의 꼬리와는 다른 경우다)이나 펀치 드렁크 현상을 겪는 프로게이머들까지 나타날 정도니 말해 무엇하랴?

    “그, 그만. GG! 졌……!”

    마동섭은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HP바를 보며 외쳤다.

    하지만 마동섭이 기권이라는 단어를 외치는 속도보다 마태강의 행동이 훨씬 더 빨랐다.

    턱! 터억!

    마태강은 마동섭의 앞으로 접근해 한 손으로 그의 왼손 손목을, 다른 손으로는 그의 오른손 손목을 움켜쥐었다.

    “이따위 실력으로 어디 가서 마동왕 후계자네 뭐네 지껄이지 마라.”

    마태강은 싸늘한 어조로 마동섭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뿌욱! 뿌드드득!

    마동섭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차 그의 두 팔목을 그대로 뽑아 버렸다!

    ‘지진’과 ‘와류’.

    마동섭을 리틀 마동왕이라는 별명으로 만들어 주었던 그의 두 손이 무참하게 뽑혀 나왔다.

    붉게 찢어진 가죽과 허옇게 부러진 뼈, 흩어지는 살점과 핏방울.

    동시에 마동섭의 HP가 깔끔하게 바닥을 쳤다.

    쿵!

    양 손을 잃은 마동섭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고 그대로 이마를 바닥에 처박았다.

    마치 투신을 향해 경배하는 듯한 모양새로.

    …….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홀 안은 잠시 정적에 잠긴다.

    이내.

    전용진 캐스터가 뜨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 방금 승부가 결정났습니다! GG! 투신 마태강이 리틀 마동왕이라고 불리는 마동섭을 잡고 전장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동시에 홀 안과 밖에 모인 모든 관중들이 온통 환호성을 질러댔다.

    수십만 명이 한데 섞인 열광의 도가니.

    무려 유세희와 마태강, 단 두 장의 카드로만 이루어 낸 결과이다.

    “…….”

    나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뒤돌아섰다.

    [오늘의 우승자는 ‘닳고닳은 뉴비!’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에 출전할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들을 향해 많은 박수 부탁드립니다!]

    등 뒤로 전용진 캐스터가 외치는 소리가 귀로 들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지.’

    우리가 우승했지만 아직 대한민국 국가대표 자격을 완전히 손에 넣은 것은 아니다.

    푸슉!

    나는 캡슐 밖으로 몸을 빼내어 무대 저편을 바라보았다.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팬들의 기립박수.

    하지만 그보다 먼저 보인 것은 핏발 선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는 가면 속으로 피식 웃었다.

    차규엽.

    그는 바스터즈의 5인 올스타가 닳고닳은 뉴비의 두 명에게 모조리 패배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다.

    ‘아마 온갖 딴지를 걸어 오겠지. 대회 규정이 잘못 되었네… 대표성이 있는지 불확실하네… 경기가 시작부터 공정하지 못했네… 재경기가 필요하네….’

    이미 경기가 끝난 마당이지만 협회의 부정 개입으로 인해 경기결과가 바뀐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태권도, 복싱, 축구, 야구, 각종 빙상스포츠 등등에서는 이미 흔하게 벌어지는 일.

    E스포츠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협회 측에서 팬들의 원성을 각오한 채 졸렬하게 딴지를 걸어온다면 골치 아파질 여지가 있다.

    어쩌면 협회들이 늘 그래왔듯 엄재영 감독에게 국가대표 엔트리를 바꾸라고 불법적인 외압을 행세할 가능성도 있었다.

    가령 선발전에서 한 번도 활약하지 못한 윤솔이나 드레이크 등을 빼고 마동섭 등을 넣으라거나….

    아직 룰이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한 E스포츠 리그이기에 권력자, 자본가들이 제 입맛대로 간섭하려 들면 일이 복잡해질 여지가 다른 종목들에 비해 더 크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나는 우승한 김에 확실하게 이 점에 대해서 못을 박아 둘 생각이었다.

    ……어떻게 못을 박냐고?

    뒤적-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외장하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캡슐 옆에 있던 엄재영 감독에게 귓속말을 했다.

    “형, 이 안에 들어 있는 동영상 지금 빨리 확인해 보세요.”

    “…? 뭔데 이게?”

    엄재영 감독은 내게서 받아든 것을 바로 핸드폰에 연결해 확인했다.

    순간.

    쩍-

    엄재영 감독의 입이 딱 벌어진다.

    우리 구단이 우승을 했을 때보다 더 놀란 듯한 눈치.

    “너, 너, 너, 너, 너… 이 안의 동영상들 이거 다 뭐야?”

    하지만 나는 대답 대신 그저 생긋 웃어 줄 뿐이다.

    폴더 안에 늘어져 있는 동영상들.

    중간중간의 화면들이 모자이크로 편집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동영상 속의 배경이나 인물, 사건을 알아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우리가 시상대에 올라서 우승컵 받는 순간… 그 동영상들 바로 돔구장 위 초대형 스크린에 대고 까 버리세요.”

    차규엽을 비롯한 모든 적폐들에게 고하는 메시지.

    이것이 이번 대회의 마무리를 장식할 마지막 샷!

    우리가 한국을 대표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최후의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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