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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09화 (409/1,000)

410화 권선징악(拳善懲惡) (5)

“…글쎄? 과연 어느 쪽이 잡힌 걸까?”

마태강은 토사에 휩쓸려 가는 와중에도 투지를 잃지 않고 있었다.

꽈악-

흙과 모래의 격류 속에서 마태강이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은 투박하게 생긴 하나의 돌멩이였다.

-<살아 있는 화석> / 재료 / ?

오래 전부터 모습이 일절 변하지 않은 채 전해져 내려온 고대의 존재.

그것을 본 순간 마동섭은 움찔했다.

‘…뭐지 저건?’

오랜 시간 게임을 플레이해 온 자신도 알지 못하는 괴상한 아이템.

겉보기에는 별볼일없는 돌멩이로 보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마태강이 저렇게 신주단지처럼 소중하게 쥐고 있을 리가 없다.

기묘한 위화감이 엄습해 온다.

본능이 외치는 경고.

마동섭은 으레 천재들이 그렇듯 자신의 직감을 꽤나 신뢰하는 편이었다.

…뚝!

그는 땅을 짚고 있던 두 손을 뗐다.

지진과 와류가 멎자 마태강을 끌어당기던 토사도 멎는다.

어정쩡한 거리. 마태강은 눈 깜짝할 사이에 뒤로 물러나 마동섭과 거리를 벌렸다.

토사에 붙잡혀 있던 마태강이 와류가 멎자마자 황급히 도망치는 것을 본 마동섭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방금 그 위화감은 뭐였지? 허세였나?’

아무리 마동왕을 노리고 나온 판이라지만 중간 보스 격인 마태강 역시도 무시할 수 없는 강적이다.

겉으로는 무시하고 있지만 내심 신경이 쓰이던 차였기에 필요 이상으로 조심했던 것 같다.

마동섭은 그렇게 생각했다.

“흥. 이번에는 얄짤없다.”

허둥지둥 도망치는 마태강의 뒷모습을 보자 확신은 더욱 짙어졌다.

마동섭은 두 손바닥을 다시 바닥에 가져다 댔다.

콰콰콰콰쾅!

묵직한 지진파가 일어나 대지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렇게 해서 바스라진 흙과 모래는 와류에 의해 회전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륵!

마동섭을 중심으로 몰아치는 거대한 토류 폭풍!

허공에까지 소용돌이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쳇!”

마태강은 넓적한 바위 하나를 밟고 올라가 서핑보드처럼 타기 시작했다.

퍼펑!

그는 주먹을 휘둘러 커다란 주먹 모양의 불덩이를 쏘아 보낸다.

“큭큭큭. 급하긴 급한가 보구나.”

마동섭은 마태강의 주먹을 그냥 맞아 주었다.

어차피 인간의 약해빠진 주먹으로는 오크의 강인한 육체에 데미지를 입힐 수 없다.

펑! 퍼펑! 펑!

마태강이 계속해서 불길을 쏘아 보냈지만 마동섭은 그 모든 것을 그냥 씹어 버렸다.

다만 왼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력을 더욱 더 강하게 할 뿐이다.

쿠르르르륵…

어느덧, 마태강이 타고 있는 바위가 마동섭의 팔이 닿는 범위까지 끌려왔다.

마태강은 균형을 잡기 어려운데다가 바위 표면적 외에는 움직일 공간이 전혀 없는 상태.

심지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입장이다.

반면 마동섭은 흔들림이 없는 와류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고 그 폭풍의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언제든 필요한 순간 와류와 관성의 속도를 조절해 마태강의 균형을 잃게 만든 뒤 손을 뻗어 나포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

한마디로 마동섭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판국이었다.

…하지만.

“……!”

마동섭은 또다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위화감.

아까 느꼈던 불길한 감각이 또다시 이 천재의 뇌리를 노크한 것이다.

본능이냐, 이성이냐.

누구의 판단을 따를 것인가!

“…개 같네.”

마동섭은 결국 땅바닥에서 손을 뗐다.

이번에도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다.

쿠르르르르…

와류가 잦아드는 것을 본 캐스터들과 관중들은 의아해한다.

[……아아,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마동섭 선수가 어째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틀 마동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자연재해 특성을 잘 다루던 마동섭 선수인데요. 이상하게도 오늘은 자꾸만 스킬이 불발나고 있어요! 일부러 그러는 걸까요? 일부러라면 대체 왜일까요?]

[어쨌든 이 상황은 마태강 선수에게 호재입니다! 이번에도 위기에서 벗어나는 마태강 선수!]

중계진의 반응대로다.

마태강은 휘몰아치는 토류의 벽에서 탈출해 또다시 마동섭으로부터 거리를 멀리 벌린다.

펑! 퍼펑!

주먹 모양의 불꽃들이 날아와 마동섭의 전신 곳곳을 때렸지만 여전히 그리 큰 데미지는 아니었다.

“이런 별…파리 새끼 같은 놈이….”

마동섭은 또 속았다는 생각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태강이 가까이 다가오기만 하면 본능이 비명을 지른다.

맞붙으면 위험하니 도망치라고 말이다.

지금껏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던 감각.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감각이 틀린지 맞는지는 증명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본능이 경고하는 일도 별로 없었거니와 항상 그것을 따라서 모험을 피해 왔기에 손해를 입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러운 게 아닐까?’

마동섭은 처음으로 자신의 본능을 의심했다.

투신 마태강.

대단한 적이지만 분명 자신의 상대는 아니다.

같은 근접 딜러 포지션에 있는 이상 인간은 절대로 오크를 이길 수 없다.

마동왕 같은 규격 외의 괴물이 아닌 한은 말이다.

“좋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는다.”

말을 마친 마동섭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잡스러운 불꽃들을 모두 걷어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저런 자잘한 공격들도 계속 맞으니 HP가 상당히 깎여나간 상태였다.

파팟!

마태강이 발길질로 돌덩이들을 걷어차 날려 보낸다.

노골적으로 접근전을 꺼리는 듯한 모양새.

‘보아하니 다음으로 나올 놈을 위해 내 HP를 어떻게든 깎아 보려는 것 같은데…… 정말 더럽게 질척거리는군. 자존심도 없는 놈.’

마동섭은 이를 뿌득 갈았다.

“그럴 거면 그냥 태그를 해라 겁쟁아. 가서 마동왕 불러와!”

말을 마친 마동섭은 발을 크게 굴러 땅을 뒤집었다.

콰콰쾅!

흙과 바위의 파도가 일어 마태강을 덮친다.

“…큭!?”

자신에게로 밀려드는 거대한 자연재해의 그림자!

마태강은 그것을 피해 바위에서 뛰어내렸고 커다란 버섯바위 밑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그러느라 대지에 발을 댄 것이 실수였다.

…쿠르르르륵!

마동섭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와류를 써 지면에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벌써 세 번째 같은 공격이지만 필드 전체를 뒤틀어 조이는 자연재해의 힘 앞에서는 탈출 공략이 따로 없다.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마동섭은 눈에 살기를 띤 채 마태강을 끌어당겼다.

토사에 파묻힌 마태강은 무력한 사냥감이 되어 포식자의 손아귀를 향해 빨려 들어올 뿐이다.

그때.

“……!”

마동섭은 마태강과 눈이 마주쳤다.

“…….”

마태강은 여전히 담담한 시선으로 마동섭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현듯, 또다시 기묘한 위화감이 마동섭의 목덜미를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또냐!? 또 속냐!?’

하지만 마동섭은 이를 악물었다.

“꺼져라! 이제 그딴 허세는 안 통해!”

마동섭은 처음으로 자신의 감을 불신했다.

그토록 쨍쨍 울려 퍼지는 본능의 충고를 무시해 버렸다.

콰쾅!

마동섭은 오른 주먹을 뒤로 크게 뺐다.

앞으로 끌려오고 있는 마태강의 전신을 이 주먹 한 방으로 으깨 버릴 심산이었다.

동작이 커서 그사이 반격을 당할 수도 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마태강은 인간이고 인간이 뻗을 수 있는 주먹의 힘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으니까.

이윽고.

마동섭과 마태강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쌍마(雙馬)의 접전이 초읽기에 들어간다.

“뒈져라!”

마동섭은 왼손을 땅에 댄 채 오른손을 위로 확 치켜들었다.

지형을 뒤틀어 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 담겨 있는 주먹.

이 한 방은 산을 무너트릴 정도로 강력하다.

맞으면 100% 죽는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마태강은 태연하게 마동섭의 전신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적의 근섬유 한 가닥 한 가닥이 당겨지고 풀어지는 모든 과정을 낱낱이 관찰하고 있던 마태강.

그가 드디어 토류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확!

안 그래도 좁던 둘 사이의 거리가 더욱 좁혀졌다.

“……!”

마동섭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지금껏 거리를 벌리기에만 급급하던 마태강이 위기의 순간 오히려 거리를 더욱 좁혔다.

“그래! 자포자기냐!?”

마동섭은 끌끌 웃으며 오른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오크인 이상 인간보다야 공격 속도가 조금 느리겠지만 딱히 상관없다.

마동섭은 마태강의 주먹을 맞아도 버텨낼 힘이 있고 마태강은 마동섭의 주먹을 맞고 버텨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마태강의 주먹은 아까 무수히 맞아 봤지만 하나하나가 영양가 없는 주먹이었다.

그런 물주먹쯤 앞으로 얼마든지 더 맞아 줄 수 있다.

‘…한 방! 단 한 방이면 된다!’

마동섭은 오른손에 들어간 힘이 한계까지 차오른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

화악!

마태강의 주먹이 정면으로 날아드는 것이 보인다.

속도 면에서는 밀리니 선빵은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그 뒤는 없다.

마동섭은 곧 떨어져 내릴 마태강의 주먹을 무시한 채 오른팔을 앞으로 당겼다.

하지만.

“……!?”

마동섭은 이내 두 눈을 찢어질 정도로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눈 한 번 깜빡일 순간.

코앞에 있는 마태강의 모습이 바뀌었다.

…뚜두둑! …뿌드드득!

그 찰나의 시간 속에서 마동섭은 분명히 목격했다.

자기 품 안으로 파고든 마태강의 작은 육체가 갑자기 확 부풀어 오르는 것을.

황색의 피부가 녹색으로 물들고 슬림하던 몸뚱이가 우락부락하게 팽창했다.

꽃미남에 가깝던 마태강의 이목구비가 갑자기 확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입술을 비집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역으로 툭 튀어나왔다.

뻐-억!

동시에, 농구공보다 훨씬 크고 볼링공보다 훨씬 무거워진 마태강의 주먹이 마동섭의 복부를 푹 파고들었다.

뿌직! 우드득! 꾸르륵!

질긴 가죽이 찢어지고, 그 안의 뼈가 부러지고, 그 안의 내장들이 죄다 터져나가는 소리.

마동섭은 미친 듯이 떡락하는 HP바를 보며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상태이상 ‘스턴’에 걸린 듯 비명은 나오지 않는다.

한껏 장전해 둔 오른팔 역시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인간이 나약하다고?”

마태강이 고개를 들어 마동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마디 내뱉었다.

마동섭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동감이야.”

흔들리는 마동섭의 눈동자.

그 눈동자에 비친 마태강의 모습은 완연한 한 마리의 오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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