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08화 (408/1,000)
  • 409화 권선징악(拳善懲惡) (4)

    [바스터즈의 ‘마지노선’! 마동섭이 드디어 출격합니다!]

    사회자의 우렁찬 멘트와 함께 마동섭이 필드를 밟는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 검은 망토자락을 날리자 그 안으로 황록색의 질기고 단단한 피부가 드러나 보인다.

    오크.

    동 레벨대의 인간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한 피지컬을 가진 종족.

    체력도, 근력도 모두 인간보다 우월하다.

    질긴 가죽은 어지간한 물리데미지를 그냥 튕겨 내거나 흡수해 버렸고 굵고 단단한 뼈는 질기고 쫀쫀한 근섬유들을 튼튼하게 지탱한다.

    머리통보다도 큰 주먹은 평타나 하타로도 동렙 인간의 크리티컬 데미지 이상을 뽑아내며 그 큰 덩치로도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다.

    심지어 오크는 인간보다 성장 속도가 훨씬 빠르며 그에 따른 스탯 증가량의 폭 역시 훨씬 넓었다.

    같은 조건이라면 인간은 절대로 오크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쿵!

    하지만 마태강은 마동섭에게 기죽지 않고 발을 굴렀다.

    옅은 지진이 일어나 주변의 먼지들을 걷어버린다.

    시야확보 및 기선제압. 두 가지 목적이 있는 퍼포먼스다.

    “…….”

    마동섭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마태강의 도발을 직시했다.

    그의 시선은 마태강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나를 향하고 있다.

    처음부터 마동왕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한 태도.

    ‘…건방지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저 뜨거운 눈빛을 보니 나가서 한번 싸워 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콰쾅!

    내가 그렇게 하게 놔둘 정도로 마태강은 만만한 선수가 아니다.

    투신(鬪神)!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마태강은 전신에 기름과 가스를 두른 채 앞으로 질주했다.

    마치 불벼락 한 줄기가 마동섭의 심장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광경이었다.

    콰쾅!

    마태강의 주먹이 마동섭의 몸을 강타했다.

    “……,”

    마동섭은 건틀릿의 팔꿈치 뿔 부분으로 마태강의 주먹을 막아냈다.

    간발의 차로 가로막힌 공격.

    그러나 마태강의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연달아 쏟아져 내리는 주먹세례!

    시뻘겋게 달아오른 건틀릿이 마동섭의 몸에 무수히 많은 불도장을 찍어 놓는다.

    마태강은 뜨겁게 달아오른 두 손바닥에 기름과 가스를 두른 채 냅다 마동섭의 가슴팍을 내리찍었다.

    퍼펑!

    폭발이 일어나며 마동섭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마동섭은 그 짧은 순간 등에 매고 있던 방패를 앞으로 돌려 마태강의 공격을 방어한 상태였다.

    치지지지직……

    방패 정면에 지글지글 타오르는 마태강의 손바닥 자국 두 개가 검게 찍혔다.

    그러나 마동섭이 맞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귀찮은 파리새끼가…….”

    마동섭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확 뻗었다.

    순간 마태강에게는 그 손이 거대한 파도 혹은 산사태처럼 보였다.

    자연재해가 가져다주는 압도적인 힘과 공포, 그것이 마동섭의 손아귀 속에서 느껴진다.

    ‘잡히면 죽는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당장 그 자리에서 도망치라고.

    …하지만 마태강은 물러나지 않았다.

    스팍!

    그는 오히려 자세를 낮추고 몸을 더욱 민첩하게 움직였다.

    “……!”

    마동섭은 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마태강은 오히려 자신의 손이 닿는 범위 안으로 바싹 붙었고 순식간에 자신의 팔꿈치 부근을 지나쳐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인간 특유의 순간 순발력!

    이것은 체적이 넓은 오크의 육체로는 미처 커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쳇.”

    마동섭은 손을 회수하는 것을 포기한 채 몸을 빙글 돌렸다.

    등에 매고 있던 방패로 마태강의 공격을 방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너의 패턴은 이미 파악했지.”

    마태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마동섭의 옆구리 쪽으로 빠져나가 순식간에 그의 뒤를 잡았다.

    방패와 함께 빙글 돌아 텅 빈 마동섭의 복부를 따라서 이동한 것이다.

    …콰직!

    마태강의 불도장이 마동섭의 빈 배를 파고든다.

    단발성 공격이 아니라 제대로 연계된 콤보 동작이었다.

    퍼-퍼퍼퍼퍼퍼퍼펑!

    하필 회전 도중이라 허리가 어색하게 꺾여 있던 시점.

    마동섭은 스텝이 꼬이지 않게 회전을 마치느라 변변찮은 반격을 하지도 못했다.

    [오오오오! 마태강! 반격입니다! 반격의 신호탄이 터졌습니다!]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다섯 대! 여섯 대! 계속 터져 나옵니다! 공포의 108계단 콤보가 마동섭을 향해 작렬합니다!]

    [아아, 마태강 선수의 콤보는 무섭죠. 옛날 어렸을 적에 오락실에서 하던 X권이 생각나요. 거기서 고학년 형들이 쓰는 콤보에 한번 걸리면 그날 동전 다 털리는 거였는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진짜 미쳐 죽죠! 한 번이라도 잡히면 반격 한 번 못해보고 허공에 뜬 채로 죽는 거예요 그냥! 마동섭 선수 이 위기에서 어찌 빠져나올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채널고정!]

    캐스터들이 흥분해서 외치는 동안에도 마태강의 콤보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태강 오빠 파이팅!”

    옆에서 유세희가 앙증맞은 주먹을 움켜쥔 채 외친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 마동섭이 뭐라고 중얼거렸더라?’

    게임 초반, 마태강이 마동섭에게 유효타를 먹였을 때 마동섭이 중얼거렸던 대사가 있었다.

    ‘귀찮은 파리새끼가…….’

    사람은 자기에게 경미한 피해를 입히는 대상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저런 말을 내뱉곤 한다.

    부담감을 줄 정도로 큰 피해를 입히는 적에게는 저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마동섭은 지금 마태강을 제대로 된 적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걱정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아앗!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마동섭! 변변찮은 저항 한번 못해보고 콤보에 전부 당하고 있습니다! 한데…!?]

    [HP! HP가 닳지 않아요! 체력 바가 깎이지 않습니다!]

    캐스터들의 경악 역시도 내 예상대로다.

    콰콰콰콰콰쾅!

    “…….”

    마태강의 공격에 속절없이 얻어맞고 있는 와중에도 마동섭의 체력은 거의 깎여나가지 않고 있었다.

    두터운 가드, 거기에 원래 뛰어난 피지컬.

    마동섭은 투박하지만 단단한 방어구와 오크 특유의 질긴 육체로 마태강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회귀 전의 지식을 떠올렸다.

    투신 마태강이 상대방의 공격을 피해 자신의 공격을 찔러 넣는 스마트하고 깔끔한 아웃복서라면 본좌 마동섭은 피투성이가 되어가며 상대방에게 달라붙어 만신창이 육탄전을 벌이는 전형적인 인파이터 복서.

    맞고 들어가는, 전형적인 ‘진흙탕 질럿’이라며 평가절하당하기는 하지만 사실 마동섭의 진짜 무서운 점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쑤욱!

    마동섭은 마태강이 뿌리는 무수한 주먹세례를 맞아가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콰-쾅!

    결국 크고 묵직한 주먹 한 방을 마태강의 복부 깊숙이 찔러 넣고 말았다.

    “크헉!?”

    마태강의 HP바가 크게 요동친다.

    체력 게이지가 순식간에 절반 넘게 줄어들었다.

    콰콰콰콰쾅!

    마태강은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 두 개를 부수고 나가 떨어져 그 옆에 있는 모래언덕들까지 우르르 무너트려 버렸다.

    “재미없네.”

    마동섭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모래먼지가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걸었다.

    같은 근접 딜러끼리 싸우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지만 그 상대가 인간이어서는 재미없다.

    “탱커는 오크, 딜러는 리자드맨. 서폿도 오크, 원딜도 리자드맨. 전사, 도적, 궁수, 주술사, 기타 등등 전부 다 오크와 리자드맨이 해먹지.”

    마동섭은 지루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포연이 피어오르는 구덩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밑에 쓰러져 있을 마태강을 향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마법사뿐이잖냐… 사실 그마저도 오크와 리자드맨들이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고. 이연호 그 멍청이는 마법사니까 그나마 이해라도 하지. 넌 뭔데 인간 주제에 딜러 행세 하면서 까부는 거냐?”

    피식 웃으며 휘휘 손사래를 치는 마동섭이다.

    하지만.

    “……?”

    흙먼지를 걷어낸 마동섭은 이내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구덩이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팟! 타탁!

    마동섭이 고개를 들자 저 멀리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 있는 마태강이 보였다.

    임시방편으로 마동섭을 피해 고지대로 후퇴한 것이다.

    “후욱… 후….”

    마태강은 많이 지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HP도 20% 이하로 줄었고 전신의 아이템들도 내구도가 거의 다 닳았다.

    마동섭의 주먹 단 한 방에 이 꼴이 된 것이다.

    마태강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후, 종족빨X망겜.”

    일단 위로 피어오르는 흙먼지 기류에 숨어 고지대로 피신하는 것에 성공했으니 여기서 몸 상태를 가다듬고 전세를 재정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도망쳤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머저리 인증인데.”

    마동섭은 피식 웃으며 양 손바닥을 짝 소리나게 부딪쳤다.

    …쿠구구구구구!

    이내 그의 전신에서 묵직한 파동이 요동친다.

    그것은 마주하고 있는 두 손바닥을 진원(震源)으로 하고 있었다.

    이내 그 파동은 지면까지 날뛰게 만든다.

    “……!”

    마태강은 두 눈을 부릅떴다.

    저 힘을 어떻게 잊겠는가!

    캐스터들 역시 흥분의 도가니다.

    [아! 마동섭 선수! 드디어 ‘진짜 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동섭 선수가 ‘리틀 마동왕’으로 불리는 이유가 드디어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대격변 이전 시절 프로리그를 주름잡았던 마동왕 선수의 초필살기가 마동섭 선수의 손에서 그대로 재현됩니다!]

    마동섭은 두 손바닥을 떼고 그것들을 땅바닥에 가져다 댔다.

    …콰지지지직!

    ‘지진’의 힘이 주변의 모든 단단한 것들을 전부 때려 부숴 잘게 다진다.

    …쿠르르르륵!

    ‘와류’의 힘이 그것들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뒤틀어 중앙을 향해 빨아들이고 있었다.

    콰르릉!

    그것은 마태강이 피해 있던 높은 바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파사사사삭-

    밑에서부터 모래로 변해 천천히 주저앉는 바위.

    그것은 놀라운 속도로 소용돌이에 휘말려 마동섭에게로 끌려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가 좁혀졌다.

    마동섭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끌려온 마태강을 향해 두 눈을 빛냈다.

    “잡았다!”

    그는 지진의 힘이 담긴 주먹을 높게 들어 올렸다.

    원 큐에 게임을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태강은 모래의 소용돌이에 붙잡혀 마동섭에게 끌려가는 도중에도 여전히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마동섭의 사정거리까지 끌려온 그가 내뱉은 소감은 아주 짧은 것이었다.

    “…글쎄? 과연 어느 쪽이 잡힌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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