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06화 (406/1,000)
  • 407화 권선징악(拳善懲惡) (2)

    -<복수자의 핏빛 대낫> / 양손무기 / S

    진득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대낫.

    어딘가 그리운 향취가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민첩 +3,500

    -물리공격력 +9,900

    -파괴불가 (특수)

    -특성 ‘할로윈’ 사용 가능 (특수)

    익숙한 아이템이다.

    유세희는 바람에 펄럭이는 검은 망토 아래로 검붉은 대낫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뾰족한 기암괴석 위에 서 있는 ‘눈 먼 처형인’

    깜짝한 소녀의 외모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한편 나는 유세희가 들고 있는 대낫을 보며 옛 추억에 젖었다.

    좀도둑 잭 오 랜턴.

    먼 옛날 용 사냥에 실패했던 도로시 원정대의 마지막 생존자.

    그는 죽음룡 오즈의 목을 반쯤 잘라 버리는 기염을 토해 낸 뒤 그동안 유예 받았던 선고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검은 포연이 아스라지는 구덩이 속에 불카노스 대낫 한 자루만 남기고 사라진 승부사.

    그의 장엄한 최후를 기억하는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새삼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캐스터들은 그저 놀라기에 바쁘다.

    [어, 엄청납니다! 방금 보셨죠? 리플레이 영상? 눈 깜짝할 사이에 신지예 선수와 김굴단 선수를 리타이어 시켰습니다!]

    [와! 심지어 유세희 선수는 아직 풀피에요 풀피! HP가 가득 차 있는 상태입니다! 바스터즈의 최정예 둘을 노히트런으로 잡아낸 거예요 지금!]

    [아, 아까 말씀드리는 것을 잊었는데. 사실 세희 양은 몸이 조금 불편합니다. 눈이 안 보이는 선수에요! 그런데도 이런 기적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솔직히 맨 처음 유세희 선수가 나왔을 때 약간 의문을 가졌었는데… 참, 제 캐스터 인생 중 가장 창피한 순간이 바로 그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네요, 증말.]

    관중들의 반응 역시 캐스터들의 반응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돔 천장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유난히 열광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유다희와 유창이었다.

    “내새끼 잘한다! 다 쓸어버려! 언니가 여기 있다!”

    “캬! 우리 막내 클라스가 이 정도라 이거야! 보고 있나? 차규엽?”

    팔불출 남매의 막내동생 응원이 마교 팬클럽을 중심으로 우렁차게 터져 나온다.

    나는 그 옆에서 예상대로의 반응에 웃음 지었다.

    ‘…역시. 약점 하나만 보완하니 날아다니는군.’

    과거, 나는 유세희의 부탁에 의해 그녀와 PVP를 치룬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유세희의 나이와 장애 때문에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 그러다가 호되게 얻어맞아 하마터면 회귀 이후 첫 죽음을 맞게 될 뻔했었다.

    ‘그때 세희의 공격력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진짜 위험했을 거야.’

    내가 그때 유세희에게 기습당하고도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 그녀의 공격력이 조금 모자라서이다.

    괴물 같은 게임 센스와 순발력 등 모든 스탯들이 준수했지만 단 하나 부족한 점.

    …그것은 바로 ‘딜’이다.

    유세희의 조그만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폭발적인 기동력에 물리공격력까지 갖춰진다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폭딜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죽음룡 오즈 레이드 이후 수습한 잭 오 랜턴의 유품을 그녀에게 넘겨 준 것이다.

    종잇장처럼 가볍고 용비늘처럼 단단한데다가 물리공격력이 극한까지 올라가 있는 ‘양손무기’.

    …이보다 더 유세희에게 적합할 무기가 어디 있겠는가?

    “이게 내가 세희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지.”

    내 말을 들은 유창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두 번째는…?”

    “보다 보면 알겠지. 스포해 줘?”

    “앗! 아뇨. 직접 보겠습니다.”

    유창은 양파맛 팝콘을 와구와구 먹으며 다시 스크린에 집중한다.

    한편, 바스터즈 측에서는 신지예와 김굴단에 이어 세 번째 선수를 내보냈다.

    [아! 다음으로 나온 선수는 오승훈 선수네요!]

    [아직까지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변칙 메타 마법사입니다! 마법사 치고는 특이하게도 종족이 리자드맨이에요!]

    [지난 번 엘리트즈와의 대결에서 조금 허무하게 지긴 했지만 사실 이 선수가 그리 호락호락한 선수는 아니거든요!]

    [특히나 근접 딜러 타입 선수와는 상성이 아주 좋은데다가 승률도 꽤나 높습니다! 아무래도 전의 신지예 선수와 김굴단 선수는 다소 방심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번 경기는 조금 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드네요!]

    캐스터들의 중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오승훈이 필드를 밟는다.

    휘이이잉…

    메마른 바람이 불어 오승훈의 전신을 가린 검은 로브를 흩날린다.

    […이번엔 쉽지 않을 것이다 꼬마야.]

    오승훈은 입을 열어 말했다.

    유세희는 종족이 달라 그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리자드맨의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싸움은 선빵이 반이랬어요!”

    유세희는 내가 알려준 특급비밀(?)을 만천하에 외치며 대낫을 들었다.

    엄청난 속도로 도약해 대낫을 횡으로 그어 버린 유세희.

    하지만 오승훈은 자세를 낮춰 유세희의 일격을 피해 냈다.

    그러느라 바람에 펄럭이던 로브가 길게 찢어지고 말았다.

    찌이이이익…!

    로브가 찢어지는 순간.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요!]

    [오승훈 선수가 사라졌습니다! 뭐죠 이게? 버그인가요?]

    [순간이동? 아닙니다! 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캐스터들이 하나같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브가 찢어지자마자 오승훈은 옷을 벗어던졌고 그 즉시 허공에 녹아들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투명인간!

    그렇다. 오승훈은 몸을 보이지 않게 하는 능력을 가진 리자드맨인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리자드맨 계열의 히든클래스이자 히든종족인 카멜레온맨으로 진화했다고 봐야겠지.’

    나는 회귀 전의 15년을 회상했다.

    오승훈은 인간 시절에도 분신 메타라는 희귀한 히든 클래스의 마법을 사용했었다.

    리자드맨으로 진화한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숨겨진 퀘스트를 깨고 히든 피스를 얻어 리자드맨에서 진화할 수 있는 ‘상위종’으로의 진화를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카멜레온이라.’

    리자드맨에서 진화한 카멜레온 맨은 사실 리자드맨과 비교해서 스탯에 큰 증가폭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주변 환경과 동화되어 보호색을 띄게 됨으로써 거의 투명인간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능력을 얻게 된다는 점이 특이할 뿐.

    하지만 카멜레온 맨의 특수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와 달리,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그것을 대단하게 여기는 것 같다.

    [이럴 수가! 오승훈 선수가 보이지 않아요!]

    [세상에 투명한 사람을 어떻게 이깁니까! 보이지를 않는데!]

    [와아, 오승훈 선수! 무적의 메타를 들고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역시 변칙 메타의 장인다워요!]

    캐스터들은 모두 오승훈을 향해 열띤 칭찬 세례를 퍼붓는다.

    그것은 관중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처럼 오승훈의 ‘투명 메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딱 한 사람 더 있었다.

    “응? 뭐죠?”

    바로 필드에 나와 있는 유세희, 본인이었다.

    밖에서 오승훈의 기괴한 변신에 경악하고 있거나 말거나, 정작 그 오승훈을 상대하고 있는 유세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할 뿐이다.

    ……퍼억!

    유세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려 대낫의 궤도를 꺾었다.

    “…크헉!?”

    투명화 된 후 의기양양하게 서 있던 오승훈이 있는 방향이었다.

    오승훈은 여유로운 태도로 서 있다가 그만 유세희가 휘두르는 대낫에 꼬리를 잘리고 말았다.

    “끄아아악!”

    뭉텅 빠져나가는 HP, 오승훈은 기겁을 하며 자세를 낮췄다.

    그의 몸 색이 순식간에 땅 색과 동일하게 변했고 그 누구도 오승훈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나조차도.

    …하지만 유세희는 아니었다.

    “아까부터 안 움직이시고 뭐 하세요?”

    유세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오승훈의 움직임을 따라온다.

    그제야 오승훈은 자신이 치명적인 오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얘는 원래 눈이……!’

    그렇다.

    유세희의 괴물 같은 실력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는 맹인이다.

    따라서 오승훈이 투명하거나 말거나 그런 것 따위는 유세희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

    “제기랄!”

    오승훈은 전신의 비늘을 일으켜 세우고 손톱을 길게 빼들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유세희의 움직임을 살펴볼 요량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제 슬슬 나오겠네.”

    나는 스크린을 보며 미소 지었다.

    내가 유세희에게 줬던 두 번째 선물이 나올 때가 됐다.

    아니나 다를까, 유세희는 누가 천재 아니랄까 봐 타이밍을 정확히 알아맞혔다.

    “까꿍!”

    유세희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오승훈을 향해 고개를 들어 보였다.

    순간, 회색으로 물들어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그것은 바로 눈이 멀 듯한 황금빛이었다!

    -<황금광의 혈안(血眼)> / 안대 / A+

    황금에 미쳐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 자의 눈알을 빼서 건조시킨 것이다.

    이 핏발 선 눈알과 시선을 마주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시야 -5%

    -집중력 -5%

    -어둠 속성 저항력 -5%

    -특성 ‘실명’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마나 번’ 사용 가능 (쿨타임: 12시간)(특수)

    예전에 고르딕사를 잡고 얻었던 아이템.

    나는 이것을 처음 얻었을 때부터 주인으로 유세희를 낙점해 두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유세희가 뿜어낸 황금빛!

    그것을 본 오승훈은 눈알이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가는 것을 느꼈다.

    “으악!? 마나 번!?”

    황급히 눈을 감았지만 이미 늦었다.

    오승훈의 보호색이 천천히 사라지는 동시에 몸 전체가 금색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관중들에게도 보일 정도로 확연하다.

    바로 그때.

    “…멍청아! 마법을 써, 마법을! 쫄리면 교대하던가!”

    뒤에서 소리치는 이가 있었다.

    마동섭. 그가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오승훈을 보고 있었다.

    빠득-

    오승훈은 증오스러운 표정으로 마동섭을 돌아보았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수인(手印)으로 대충 뜻은 전해져온다.

    “교대 안 해도 돼!”

    오승훈은 리자드맨이긴 하지만 직업은 마법사이다.

    마법사답게, 오승훈은 마나 번 특성을 반사할 수 있는 마법을 알고 있었다.

    “미러 월(Mirror Wall)!”

    오승훈이 주문을 외우자 땅거죽을 뚫고 커다란 거울의 벽이 솟구쳤다.

    마나 번은 기본적으로 시선을 통해 전해지는 힘이기에 시선을 반사한다면 상대방에게도 같은 데미지를 입힐 수 있게 된다.

    가장 잘 알려진 예로 꼭두각시 회동에 서식하는 ‘메두사’를 들 수 있다.

    (메두사의 눈을 본 자는 돌이 되어 버리지만 메두사에게 거울을 보여 주면 자기의 시선에 맞아 돌이 되어 버리는 것과 같은 원리)

    하지만.

    거울을 통해 반사된 고르딕사의 시선을 맞받고도 유세희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자 오승훈은 자기가 또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아! 얘는 원래 눈이……!’

    유세희의 피지컬에 정신없이 압도되다 보면 그녀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순간 잊어버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천재의 대낫은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봐줄 정도로 관대하지 않았다.

    …쩍!

    거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파육음(破肉音)이 짧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캐스터들과 관중들이 내지르는 함성 소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우-와아아아아아!!

    트리플 킬(tripple kill)!

    노련한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기 힘든 기적.

    그것이 지금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한 꼬마 소녀의 고사리 같은 손에 의해 팡팡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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