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05화 (405/1,000)

406화 권선징악(拳善懲惡) (1)

‘닳고닳은 뉴비(Veteran newbie)’

vs

‘바스터즈(Basterds)’

결전의 서막이 올라갔다.

오늘 여기서 이기는 쪽이 한국 국가대표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리틀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

국격이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선수 개개인으로서도 엄청난 부와 영예를 손에 거머쥘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모든 선수들은 엄청난 커리어를 얻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20만 명.

오늘 몰려든 관중들의 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1차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오버’ 경기에 모인 15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 그것도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되는 오후 2시보다 4시간이나 이른 오전 10시 기준 집계이니 관중의 수는 앞으로도 더 불어날 것이다.

심지어 1차 때는 10개 구단, 10개 지역의 다양한 팬들이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팬덤의 분포도가 사뭇 다르다.

‘닳고닳은 뉴비’, 그중에서도 마동왕!

그렇다.

사람들은 오늘 나를 보러 이곳에 온 것이다.

끼익-

나는 유창이 모는 벤에서 내려 경기장을 향했다.

선글라스를 낀 엄재영 감독과 흰 가면을 쓴 나를 중심으로 닳고닳은 뉴비의 올스타가 모였다.

‘…그래 봐야 6명이지만.’

우리들은 열렬히 환호하는 팬들의 사이를 지나 구장으로 향했다.

간혹 몇몇 열렬한 종족주의자들이 오크와 리자드맨의 번영을 외치며 내게 달려들기도 했지만 유창 선에서 모두 정리되었다.

이윽고.

우리가 무대에 도착할 때쯤 반대편에서도 바스터즈의 멤버들이 올라온다.

신지예, 김굴단, 오승훈, 이연호, 마동섭.

새로 임명된 김한선 감독이 이끄는 바스터즈의 최정예가 우리의 반대편에 섰다.

20만 명이 넘어가는 관중들이 지켜보는 전장.

둘 중 하나만이 살아남는 진검승부가 시작되었다.

*       *       *

[자, 오늘의 경기! 시이작 합니드아아아아!]

전용진 캐스터의 명대사와 함께 결전의 막이 올랐다.

오늘의 맵은 ‘바바리안 필드’, 야만전사의 땅이라는 이름답게 거칠고 황량한 느낌이 물씬 나는 황무지였다.

회전초 몇 뭉텅이가 굴러가는 대지 위에는 단단한 암석과 바싹 마른 흙, 검붉은 모래먼지만이 흩날린다.

바스터즈 측에서 첫 타자로 내보낸 이는 역시나 신지예였다.

그녀의 등장에 캐스터들은 모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나 신지예 선수가 제일 먼저 나서는군요.]

[당연한 일입니다. 5:5 태그매치에 있어서 사실 식물계 마법사는 초반의 필수 카드이지요. 경기 시작 전 미리 수많은 식물을 필드에 깔아 둬야 앞으로 계속 진행될 다른 아군들에게 유리하니까요.]

[신지예 선수는 경기 시작부터 필드에 다량의 씨앗을 뿌려 놓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소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첫 번째로 나오는 적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힐 수만 있다면 딜 교환에서 엄청난 이득을 보고 가는 거거든요 사실!]

캐스터들은 자신들의 예상이 적중한 것에 꽤나 신이 난 듯하다.

그들은 기분 좋게 멘트를 이어 갔다.

[바스터즈 측에서 식물 메타 마법사를 초반에 내보냈다면… 닳고닳은 뉴비 측에서는 아마…?]

[네, 보통 식물계 마법사를 초반에 견제할 수 있는 메타는 화염계 메타나 자연재해 메타죠. 불로 잎과 줄기를 태우거나 지진으로 뿌리를 끊는 것이 정공법이니까요.]

[제가 알기로 닳고닳은 뉴비 쪽에는 그런 메타를 이용하는 선수가 둘이나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바로 마태강 선수와 마동왕 선수가 그렇습니다.]

[그럼 아마도 둘 중 하나가 나서게 되겠군요? 오호! 두 선수 모두 굉장한 박진감을 보여 주는 선수이니 초반부터 볼 만한 경기가 펼쳐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잔뜩 흥분한 캐스터들은 이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아앗!? 이게 무슨 일인가요? 닳고닳은 뉴비 측에서 나온 선수는 마동왕 선수도 마태강 선수도 아닙니다! 전혀 뜻밖의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렇다.

내가 바스터즈에 맞설 첫 대항마로 꼽은 이는 바로 유세희였던 것이다!

유세희가 필드로 나서자 관중들도 캐스터들도 의아한 기색이다.

‘유세희가 누구야?’, ‘저런 어린애를 내보내다니’ 등의 반응들.

캐스터들의 반응 역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앗? 저 선수는 누구죠!?]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요? 전적도 없고.]

[유세희 선수입니다! 프로필을 보면 중학교에 다닐 나이에… 몸이 조금… 음. 약간의 불편함이… 음.]

캐스터들은 말을 아낀다.

유세희가 백혈병을 앓고 난 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중들에게 어찌 알려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

한편 신지예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뭐야? 어린애에 장애까지? 아주 골고루 하는구만. 나를 얼마나 얕보는 거야?’

식물계 마법을 쓰는 마법사는 아무래도 서포터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가끔 딜러나 탱커들에게 실전에서 무시를 당하기도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일방적인 상대를 붙여 줄 줄이야!

신지예는 눈앞에 있는 유세희를 아니꼽게 쳐다보았다.

유세희는 누가 봐도 구단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 대충 영입했다가 실전에서는 버리는 패 같은데…설마 그것을 자신에게 떠넘길 줄이야.

‘보아하니 구단 이미지 메이킹 용으로 대충 선수로 영입한 것 같은데… 이거 몸도 아픈 애 잘못 건드렸다간 괜히 나만 나쁜 년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혹시 이걸 노린 건가?’

신지예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격하기에도 애매한 적이니 그냥 거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냥 바닥에 식물이나 깔고 태그해야겠다. 김굴단 그 또라이가 알아서 하겠지 뭐. 걔는 애고 어른이고 봐주는 게 없으니…….’

복잡한 생각은 그만 하기로 한 그녀였다.

“에휴. 애기야. 언니는 그냥 언니 일 하고 갈 테니까 적당히…….”

하지만. 신지예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 눈을 뜬 순간.

부웅-

망막 바로 앞에까지 다가와 있는 그림자.

바로 유세희였다!

“헉!?”

신지예는 경악해야 했다.

비록 눈을 조금 오래 감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한숨 한번 내쉴 시간이었다.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던 거리를 눈 한번 깜짝할 새에 좁혀온 유세희의 가공스러운 피지컬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빠각-

하지만 신지예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두개골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사망 로그아웃.

캐스터들은 경악한 채 외쳤다.

[……세상에! 방금 뭐였죠!?]

[저, 저도 못 봤습니다! 유세희 선수의 망토 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와서 신지예 선수를 죽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일격’, 일격에요!]

[이럴 수가! 신지예 선수가 필드에 식물 씨앗을 깔기도 전에 당했어요! 이거 느린 화면으로 리플레이를 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아! 바스터즈! 초반부터 식물계 마법사를 잃었습니다! 필드 장악을 하기도 전에 이렇게 되면 곤란하죠! 딜 교환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시작하는 겁니다!]

아무리 인간 마법사가 방어력이 낮다고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할 정도로 허무하게 끝났다.

20만 관중들 역시 일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실감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릴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결과였다.

대회 운영진이 느린 화면을 재생하고 있을 때.

“뭐 저딴 꼬마녀석이 다 있지? 꼬마, 너 각오해라.”

김굴단. 오크 주술사가 필드로 나섰다.

시커먼 아우라를 무럭무럭 뿜어내는 김굴단은 필드로 나오자마자 유세희를 비주얼로 압박했다.

파파파파팟!

검은 아우라는 이내 시커먼 바늘이 되어 유세희를 찔러 들어갔다.

신지예가 순식간에 당하는 것을 보았기에 한 치의 방심도 하지 않은 모양새.

그러나.

쉬익! 파팟!

유세희는 상체의 가벼운 무빙만으로 김굴단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발을 가볍게 튕겨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까지 좁혀오고 있었다.

“으헉!?”

김굴단은 유세희를 피해 연신 뒤로 물러나야 했다.

“뭐, 뭐야!? 이걸 어떻게 다 피해! 저, 저거 사실은 눈 보이는 거 아냐!?”

나는 경악하는 김굴단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나도 세희를 처음 만났을 때 같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지.’

하지만 유세희는 분명 맹인이다.

다만 그녀는 불가해의 피지컬과 몰입력, 그리고 시각 외의 각종 감각들을 거의 극한까지 끌어올려 그것을 모두 전투센스로 활용하는 천재적인 케이스.

“소리랑 피부로 다 느껴져요.”

공격이 발생할 때 들리는 소리, 그리고 공기를 밀어낼 때 느껴지는 바람의 촉감.

유세희는 게임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의 차이를 극도로 민감하게 구별할 줄 알았다.

그 몰입력과 적응력, 말도 안 되는 게이밍 센스는 회귀 전 게임 플레이 시간 수십만에 달했던 고인물, 썩은물, 광기의 우물, 적폐, 사이버 망령들조차도 끝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이른바 ‘재능의 영역’이다.

쩍-

유세희가 손을 휘두르자 전면에 있던 바위가 대각선으로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커다란 사구(沙丘)들이 줄줄이 잘려나가 주저앉는다.

퍼퍼퍼퍼펑!

사방팔방에서 흩날리는 흙먼지, 마치 포격이라도 떨어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으아아아! 뭐야! 대체 뭘 휘두르는 거야!?”

김굴단은 유세희가 뭘 휘둘러 공격해 오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

찌지지지직!

급한 대로, 김굴단은 일단 몇 마리인가의 소환수를 꺼내 유세희의 앞을 막아섰다.

지푸라기로 만들어진 시커먼 허수아비 몇 마리인가가 유세희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공교롭네. 마침 허수아비라니.”

유세희는 주저할 것 없이 망토 속에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방금 전 신지예를 죽였을 때와 같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능숙하게 허공을 싹뚝 베어 버렸다.

…쩌억!

김굴단이 소환한 너절한 지푸라기 인형들은 순식간에 사멸되었다.

당연히 소환자인 자신 역시도 말이다.

“끄아악! 마, 말도 안 되는 재능…!”

김굴단은 결국 유세희의 공격에 의해 몸통이 세로로 쪼개져 버렸다.

그 자리에서 즉사, 사망 로그아웃 당한 것은 물론이다.

그때쯤 해서 대회 운영진이 준비한 느린 화면 리플레이가 준비되었다.

방금 전 신지예를 죽였을 때의 순간이 몇 배속으로 느리게 재생되자 비로소 유세희가 쓰는 무기의 정체가 20만 관중 앞에 똑똑히 드러났다.

<‘선악과 앞에 선 자’ 잭 오 랜턴> -등급: S / 특성: 어둠, 백전노장, 할로윈, 선악과(善惡果)

-서식지: 죽음길 나락 ‘몰이해지대(沒理解地帶)’

-크기: 2.5m.

-‘이제는 도망치지 않는다. 끝을 보자, 오즈.’

-뇌 없는 허수아비-

한때, 용과도 대등하게 싸웠던.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장엄한 최후를 맞이했던 ‘용사(勇士)’의 유품!

‘불카노스 대낫’

그것이 유세희의 망토 속에서 시뻘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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