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화 쌍마(雙魔) (4)
대회가 끝난 지 이틀이 지났다.
나는 회의실 벽면에 빔 프로젝터를 쏘았다.
지이잉-
어젯밤 있었던 ‘엘리트즈 vs 바스터즈’의 마지막 경기가 커다란 화면에 재생된다.
결과만 놓고 보면 꽤나 임펙트 있는 대전이었다.
네 명의 선수를 잃고 패배 직전까지 몰려 있던 바스터즈의 구원투수 마동섭이 엘리트즈의 남은 네 명의 선수를 파죽지세로 밀어붙인 뒤 결국 최종 승리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바스터즈의 깔끔한 역전승!
화면 속에서는 지난 경기에서 마동섭이 펼쳤던 싸움이 재생되고 있었다.
[콰쾅!]
오크 전사 마동섭이 육중한 몸을 날려 정면으로 돌진한다.
[핑! 핑! 핑!]
이동비가 강력한 저격을 날려 마동섭을 견제하지만 마동섭은 이동비에 비해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기동력을 자랑하며 순식간에 이동비의 도주로를 봉쇄, 거대한 바위도 일격에 쪼개 버리는 붕권을 날려 이동비를 리타이어시켰다.
선수교체를 할 틈도 없이 사망한 이동비의 복수를 위해 이금비가 나섰다.
두 오크 전사의 싸움.
하지만 이금비의 쌍검은 마동섭의 건틀릿에 계속 가로막혔다.
[퍼억! 우지직!]
마동섭은 몸을 틀어 등에 매고 있던 방패로 이금비의 공격을 흘려버렸고 그 상태에서 몸의 회전을 이용한 손등과 팔꿈치 연속 공격으로 이금비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 리타이어 시켜 버렸다.
공격력만으로 따지면 이금비가 앞섰으나 단단한 방어력과 높은 체력을 갖춘 마동섭의 공방일체 피지컬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음으로 나온 이는 쌍칼 이준호였다.
리자드맨이 된 그는 열 개의 손톱을 이용해 마동섭의 벽을 뚫으려 했지만 이금비와 같은 요인으로 인해 실패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태그로 나온 류요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마동섭은 이준호의 공격력과 류요원의 방어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초 밸런스형 타입.
이준호와 류요원 두 명이 함께 덤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태그매치 시스템 때문에 번갈아가며 필드에 나올 수밖에 없는 둘로서는 마동섭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마동섭의 HP가 아슬아슬하게 바닥을 드러낸 시점에서 류요원은 사망 리타이어, 이준호는 기권을 해 버렸다.
“…어디 보자.”
나는 내 나름대로 상황을 분석해 보았다.
이연호가 이은비를 잡은 것을 제외하면 거의 마동섭의 역올킬에 가까운 상황.
한편 이 경기를 직관한 이들의 평가는 꽤나 엇갈리고 있었다.
-뭐야;; 이연호가 다해놓은거 마동섭이 날먹한 거 아니냐?
↳이연호가 이은비 하나 잡은것밖에 더있냐?ㅂㅅ
↳미안한데 이은비가 금은동 합격술 메인센터라서 이은비 하나 잡은것만으로도 50%는 먹고들어가거든?
↳어그로 끌지 마라 마동섭 존나 잘했으니까
-근데 마동섭이 이연호랑 왜 태그 안해준거임?
↳ㅇㅇ그니까. 이연호가 저리 허무하게 죽을 선수는 절대 아닌데...
↳이연호 거품 빠진거지 뭐ㅋㅋ
↳ㅈㄹ말고;; 마동섭이 교체 안해주니까 황당해서 얼타다가 죽은거아녀;;
↳이거가지고 이연호 거품이니 뭐니 하는 놈들은 걍 자살해라~
-캬, 마동섭 클라스 오진다 진짜;;;위기의 순간 역올킬로 팀 멱살캐리하시는 클라스
↳엄밀히 말하면 역올킬은 아니지
↳그래도 대격변 전에 마동왕 생각난다. ‘리틀 마동왕’ 답네ㅋㅋ
↳간만에 프로판에서도 마동왕에 비빌 수 있는 인재 하나 나온 듯?
-진짜 바스터즈랑 닳고닳은 뉴비 대전 ㅈㄴ 기대된다
↳ㅇㅈ
↳마동섭VS마동왕 누가이길까? 도키도키
↳나는 왠지 마동섭이 이길것같잖어ㅋㅋㅋ어제 임펙트가 너무 쩔어주셔서~~
↳마동섭 인성 개ㅂㅅ인데. 어제 경기는 잘한 것 맞지만 팀웍이나 평소인성 너무 논란이 많아서 난 별로~
↳어제 경기 못봤는데...마동섭이 마동왕에 비빌급이냐? ㅎㄷㄷ..보러가야지~
.
.
대체로 마동섭의 팀웍이 나쁘다는 비난과 그것과는 별개로 역올킬에 가까운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인상 깊었다는 반응.
하지만 마동섭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 자체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어 보인다.
심지어 마동섭의 기량이 나에 필적할 정도라는 분석글들 또한 심심찮게 리젠되고 있을 정도이니 대중들의 반응은 꽤나 호의적인 것으로 봐도 되겠다.
“…그래 뭐. 이런 반응까지는 예상했지.”
나는 댓글창을 닫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유창이 테이블 위에 산처럼 쌓인 현금 다발을 세고 있었다.
입을 딱 벌린 채로 말이다.
“기가 막힙니다, 형님. 어떻게 바스터즈가 이길 것에다가 선수 간 스코어까지 정확하게 예측하셨습니까?”
나는 금은동 자매가 바스터즈의 세 선수를 연달아 잡을 것과 이연호가 이은비를 잡는 것, 그리고 이동비가 이연호를 잡은 이후 마동섭이 나머지 넷을 잡는 것을 정확히 예측했다.
‘…미래 지식이 없어도 이쯤 되면 눈에 보이지.’
따라서 나는 승패와 스코어까지 예측한 토토 배팅이 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국민체육진흥법 제 30조의 규정에 따라 해당 경기의 대상이 되는 선수, 감독, 코치, 심판, 경기단체의 임직원은 합법 토토조차 할 수 없었기에 유창과 유다희를 통해 배팅을 한 것이 전부다.
뭐, 엄밀히 말하자면 바스터즈 VS 엘리트즈의 경기는 나와 상관이 없는 경기이기에 내가 직접 배팅을 해도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나는 돈다발에 기대고 앉아 벽면의 동영상을 계속 감상했다.
“마동섭이야 뭐 원래 바스터즈에서 미는 선수였으니 그렇다고 쳐도. 오승훈, 이 녀석이 좀 걸리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리자드맨.
한때 나는 매드독에서 분신 메타 마법사로 활약하던 오승훈을 공략하기 위해 와두두 둥지를 털어서 버프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쥬딜로페와 인연이 생기게 되었고 말이야.’
대격변 이전 인간 시절, 변칙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분신 메타를 사용했던 마법사가 리자드맨이 된 이후로는 대체 어떤 변칙 메타를 구사하게 되었을지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미래 지식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럴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오승훈이 오히려 마동섭보다 더 골치 아픈 상대지.’
나는 대격변 이후 오승훈이 어떤 메타로 변화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승부조작에 가담했기 때문에 쉽게 져 준 것이라는 사실 역시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놈이 진짜 실력을 드러내게 될 마지막 경기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그럴 줄 알고 미리 대비는 해 놨지만 말이야.”
말을 마친 나는 대기실 밖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룸 안으로 불러들였다.
끼긱-
문이 열림과 동시에 빔 프로젝터가 재생되고 있는 벽 위로 두 개의 그림자가 늘어진다.
마태강, 그리고 유세희. 이 둘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어, 막내 왔냐.”
“…오빠에요?”
돈을 세던 유창이 손을 흔들어 보이자 유세희가 유창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찌릿-
유창과 마태강의 시선이 한순간 부딪쳤다.
마태강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고 유창의 이마에는 실핏줄이 선다.
상황이 조금 정리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았기에 나는 박수를 쳐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자, 친구들. 내일이 드디어 마지막 결전이야. 알지?”
“…네.”
“네에~”
마태강과 유세희가 대답했다.
내일 아시아 12개국이 참가하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 그 영광스러운 전장에 출전할 자격을 가진 대한민국 국가대표 5인이 최종 결정된다.
“…어디, 우선 너희들이 그동안 준비한 것 좀 보자.”
나는 유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선은 세희! 저번에 준 선물 두 개는 잘 받았지?”
“네! 이제 둘 다 완벽하게 쓸 수 있어요! 태강 오빠로 이것저것 많이 실험해 봤거든요!”
그러자 마태강이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휴우… 덕분에 몸이 완전히 엉망진창입니다.”
유세희에 의해 엉망진창으로 실험 당해 버린 마태강.
그 말을 들은 유창이 멍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일어난다.
“너, 너희… 뭐, 뭐, 뭐, 뭘 한 거야? 누가 누구한테 뭘 했길래 그런 말을…….”
“자자. 진정하고.”
“미성년자끼리! 미성년자끼리!”
“진정해. 게임 얘기잖아.”
나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유창을 다시 자리에 앉히고는 마태강에게 물었다.
“태강이 너도 형이 준 선물 잘 받았지?”
“…예. 감사합니다.”
“좀 익숙해졌어?”
“아직은 미숙합니다. 세희가 연습 상대가 되어 많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아직 컨트롤이 조금 힘드네요. 하지만 D데이까지는 반드시 완성시켜 보이겠습니다!”
결의를 다지듯 두 주먹을 꽉 움켜쥐는 마태강이다.
뜨거운 동경이 담겨 있는 그 눈빛이 향하는 곳은 바로 내 얼굴이었다.
나는 약간 부담스러워져서 마태강의 시선을 피했다.
내 눈이 향한 곳은 벽면의 정지화면, 마동섭의 모습이 있는 방향이다.
회귀 전 세상의 마동왕.
한국 프로리그를 암흑기로 몰아넣은 승부조작 브로커.
하지만 한때나마 쌍마(雙馬)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E스포츠의 초부흥기에 활약했던 영웅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시간축에서 다시 한번 그 쌍마의 준동이 예상되고 있었다.
물론, 투신 마태강이 본좌 마동왕을 밟고 그 위의 경지로 올라가게 되는 계기가 될 뿐이지만 말이다.
“어디 두고 보자고 차규엽 씨. 한국 E스포츠 시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준비된’ 마스터피스들을 바라보았다.
최종결전의 주역이 될 이들.
마태강, 유세희.
나는 내일 여기 단 두 장의 카드로만 바스터즈를 발라 버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