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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03화 (403/1,000)
  • 404화 쌍마(雙魔) (3)

    엘리트즈 vs 바스터즈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은비. 은색 로브를 걸친 마법사가 뾰족한 바위 아래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종족은 인간. 아이템 효과가 중요한 마법사 클래스답게 아이템의 힘을 가장 잘 이끌어 낼 수 있는 종족인 인간으로 남았다.

    당연히 이은비가 있으면 이금비와 이동비 또한 있기 마련이다.

    이은비의 뒤에서 오크가 된 이금비와 리자드맨이 된 이동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개의 거대한 양손대검을 각각 한손무기처럼 휘두르는 오크 전사 이금비.

    날렵한 움직임으로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강력한 저격을 날리는 리자드맨 궁수 이동비.

    인간, 오크, 리자드맨. 마법사, 검사, 궁수.

    종족도 직업도 다양한 바리에이션이다.

    그 뒤 각자 딜러와 탱커 포지션에서 정점에 올라 있는 이준호와 류요원이 버티고 섰다.

    그리고 그 반대쪽 바위 위에서 바스터즈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시커먼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는 다섯 명의 선수들.

    엘리트즈 측에서 제일 먼저 나온 선수는 인간 마법사 이은비였다.

    바스터즈 측에서 제일 먼저 나온 선수는 마찬가지로 인간 마법사인 신지예다.

    드넓은 황무지 중앙에서 만난 두 명의 마법사.

    신지예는 필드에 나오자마자 장기인 식물 마법을 펼쳤다.

    “씨1발아!”

    신지예가 손을 휘젓자 메마른 대지에 녹푸른 식물들이 돋아났다.

    이 식물들은 흡혈식물들로 일단 밟기만 하면 체력을 빼앗는다.

    더욱 기분 나쁜 것은, 밟으면 밟을수록 빼앗기는 HP의 양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씨앗을 밟으면 최대 HP의 0.001%를 빼앗긴다.

    2개째에는 0.002%, 3개째에는 0.003%…… 그렇게 HP를 빼앗아 성장한 식물은 심지어 날카로운 이빨로 플레이어를 공격하기까지 한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생장하는 식물들, 그것들은 마치 거대한 뱀 군락처럼 돋아나 이은비를 가두려 들었다.

    하지만.

    “염계 마법사를 상대로 식물 메타를 쓴다고? 너희들 나에 대해 연구 하나도 안 했구나? 심지어 이건 내가 옛날에 자주 쓰던 마법인데.”

    이은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을 뿐이다.

    쿠르르르륵!

    초광역마법.

    그녀는 손을 뻗어 강력한 화염을 뿜어냈고 전방의 식물들을 모조리 태워 버렸다.

    “교, 교체!”

    신지예는 자기가 만든 식물들이 불탈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탈 줄은 몰랐다는 눈치였다.

    그녀는 재빨리 본진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태그를 할 시간도 없이 이은비가 쏘아 보낸 화염구에 피격 당했다.

    콰쾅!

    신지예는 새카맣게 변한 채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원래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선수는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상성이 너무 안 좋았다.

    뒤를 이어 나온 것은 오크 주술사 김굴단이었다.

    굴단 킴. 한국계 미국인이자 해외용병 출신인 그는 용감하게도 이은비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네 영혼은 내 것이다!”

    그는 나오자마자 어둠의 마나를 일으켜 주변에 가득한 재를 끌어 모았다.

    쿠구구국…

    까만 재로 만들어진 골렘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떨어라 나약한 자여!”

    재투성이 골렘들은 굴단의 명령에 의해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화염 저항력이 극도로 높은 애쉬 골렘이다.

    이미 다 불타 있는 몸이라서 이은비의 화염에 새삼 더 탈 것도 없었다.

    “태그할게, 언니.”

    이은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뒤로 빠졌다.

    그러자 바로 언니인 이금비가 쌍검을 든 채 튀어나왔다.

    오크 전사 이금비.

    그녀는 강력한 물리공격력을 이용해 내구도가 허약한 재 골렘들을 부숴 버렸다.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돌진해 오크 주술사 굴단에게로 달려갔다.

    굴단은 무언가를 해 보려 했지만 방금 만들어 낸 재투성이 골렘들 때문에 스킬 쿨타임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마나가 부족하군.”

    짧은 중얼거림을 끝으로, 오크 주술사 굴단은 이금비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네 승리는… 이번뿐이다.”

    다소 허무하게 쓰러진 굴단.

    이로서 바스터즈의 두 명이 순식간에 격파 당했다.

    “은비야. 태그할게.”

    이금비는 다시 이은비와 선수교체를 했다.

    바스터즈에서 다음 타자로 나온 이는 오승훈이었다.

    “쉬익!”

    쇳소리를 내는 것으로 봐선 리자드맨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검은 망토로 전신을 가리고 있어 당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선수 프로필에도 그는 변칙 메타라고 알려져 있으니.

    “그럴 때는 그냥 냅다 부숴 버리는 게 최고지.”

    이은비는 오승훈이 필드에 나오자마자 대단위 광역 공격마법을 펼쳤다.

    한때 매드독에서 변칙 메타로 흥했던 마법사이니만큼 어떤 기괴한 수를 써올지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후둑… 후두둑… 후두두둑…!

    불의 소나기가 내려 오승훈을 덮쳐 가기 시작했다.

    “…….”

    오승훈은 귀찮다는 듯 불의 소나기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스슥- 스스스슥-

    그의 기동력은 상당한 수준이었기에 느릿느릿 떨어지는 불벼락들을 손쉽게 피해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승훈의 실책이었다.

    “태그!”

    그때쯤 해서, 이은비는 동생인 이동비와 선수교체를 선언했던 것이다.

    불의 소나기가 그치고 오승훈이 막 반격을 시도하려 했지만 이미 이은비와는 거리가 많이 벌어져 있는 상태.

    그리고 이은비가 이동비와 교체 선언을 했기에 이제 상대는 궁수인 이동비이다.

    …퍼펑! …펑! 퍼퍽! 퍽! 푹!

    이동비는 필드에 나오자마자 작정을 한 듯 화살을 연사했다.

    직사, 곡사로 이어지는 수많은 화살들이 놀라운 속도와 명중력으로 오승훈을 노린다.

    오승훈은 화살을 막거나 피하며 전속력으로 달려와 이동비에게 접근했지만.

    “큰언니, 태그.”

    그때쯤 해서 다시 이금비가 쌍칼을 들고 튀어나와 오승훈에게 근접 폭딜을 먹였다.

    “…….”

    오승훈은 별다른 반응 없이 그대로 리타이어 되었다.

    우와아아아아아!!!

    관객석은 흥분의 도가니이다.

    금은동 자매가 놀라운 합격술로 바스터즈의 세 강호들을 연달아 리타이어 시킨 것이 대한 극찬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오! 이금비, 이은비, 이동비 선수의 합격술을 이렇게 큰 리그에서 보는 건 처음입니다!]

    [예전에 국K-1와 엘리트즈의 대결은 정말 명승부였죠!]

    [역사에 만약이라는 건 없다지만… 그래도 만약 그때 마동왕 선수가 아니었더라면 엘리트즈가 프로리그를 지배했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캐스터들마저 잔뜩 흥분해 있는 가운데, 바스터즈의 4번째 선수가 필드로 나왔다.

    이연호.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전격 마법사 메타를 고수하고 있는 선수.

    ‘천재’라는 별명답게 그의 실력과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듯 고고하다.

    그런 이연호를 상대하는 이는 이은비였다.

    “안녕? 오랜만이네.”

    “…….”

    이은비의 인사를 받은 이연호는 인상을 대놓고 찌푸렸다.

    과거, 서울의 챌린저를 선발하기 위한 경기에서 이연호는 이은비와의 1:1 마법 대결에서 패해 무릎을 꿇은 적이 있었다.

    이은비에 비해 마법 속성의 바리에이션이 적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이후로 준비는 많이 했지만…….’

    이연호는 고심했다.

    지금 이은비는 최선을 다해 싸워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강적.

    하지만 있는 힘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전투를 망설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경기 시작 전에 감독에게 들었던 말이다.

    ‘…너까지는 져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승부조작에 가담하라는 윗선으로부터의 명령이었다.

    ‘너까지 져야 딱 그림이 좋아. 이번 경기는 마동왕에 필적할 만한 대항마 아이콘을 만들기 위한 밑작업이니까. 동섭이는 이길 방안이 다 마련되어 있으니 걱정말고.’

    마동섭.

    그가 마지막에 엘리트즈 멤버들 5명을 연달아 잡는 ‘역올킬’ 연출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밑그림이었다.

    이번 판의 주인공은 마동섭, 그의 이미지와 인지도를 격상시켜 마동왕에 필적할 만한 영웅을 만들기 위한 레드문의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연호는 그 명령에 따를 생각이 없었다.

    쩌저저적!

    그는 전신에 번개를 두르고 이은비에게 달려들었다.

    “헤에. 구사하는 마법의 종류가 전보다 더 다양해졌네?”

    “…연구 많이 했지.”

    이은비는 전신에 화염을 두른 채 이연호의 번개 같은 다이브를 맞상대했다.

    …콰쾅!

    결과는 이은비의 패배였다.

    저번 판에 신지예와 오승훈을 몰아갈 때 사용했던 불 소나기로 인한 피로감이 중첩되어 있던 탓이다.

    “미안해, 언니야, 동생아. 저번 판에 마나를 너무 많이 썼다.”

    이은비는 이금비, 이동비를 향해 미안한 듯 웃어 보이고는 그대로 로그아웃되었다.

    이은비가 죽자마자 바로 튀어나온 이는 이금비였다.

    쾅! 콰콰쾅!

    동생의 복수를 위해 가차없이 참격을 뿜어내는 이금비.

    이연호가 단거리 순간이동으로 거리를 벌리는 순간.

    “태그.”

    이금비와 교체된 이동비가 활에 화살을 먹인 채 튀어나왔다.

    “…큭!”

    이연호는 이를 악물었다.

    단신으로 금은동 자매의 연속 태그를 상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예전 국K-1과 엘리트즈의 서울 경합 당시에도 금은동 자매의 합격술에 국K-1의 모든 이들이 무릎 꿇지 않았던가!

    결국 천하의 이연호 역시도 태그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태그!”

    자존심을 무릅쓰고 외친 교체선언!

    하지만.

    “……?”

    이연호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사실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후후후.”

    마동섭.

    그가 교체를 거부한 것이다.

    “…무슨?”

    이연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뒤를 돌아본 채 입을 반쯤 벌렸다.

    하지만 마동섭의 의도는 명확했다.

    이연호를 도와 선수교체를 해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핑-

    멍한 표정의 이연호를 향해 이동비의 화살촉이 빛난다.

    퍽!

    헤드샷(Head shot).

    이연호는 황당한 표정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상위 랭커의 최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이없고 허무한 패배였다.

    캐스터들 역시도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아아, 뭐죠? 이러면 안 되죠! 방금 이연호 선수가 노골적으로 교체 신호를 보냈는데!]

    […종족이 달라서 언어가 안 통했기에 벌어진 일일까요?]

    [네, 뭐. 신생 구단이니만큼 아직 선수들 간의 합이 안 맞을 수 있어요.]

    [아무튼 태그매치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어이없는 실수가 발생한 것은 맞습니다.]

    한편.

    바스터즈 구단 측에서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차규엽이 분한 표정으로 캡슐에서 일어나는 이연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제멋대로 태그 외친 놈. 저놈 방출시켜.”

    “예? 아, 아직 계약이 한참 남은 에이스인데…….”

    “어떻게든 짤라. 말 안 듣는 개를 왜 키워?”

    차규엽은 감독에게 핍박을 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엘리트즈의 이은비가 이연호에게 사망함으로서 역올킬이라는 그림은 그릴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바스터즈에게는 이 판도를 뒤엎을 비장의 무기가 남아있다.

    예전에 마동왕이 이룩한 역올킬 신화를 그대로 되짚어 가는 카피의 움직임.

    마동섭!

    드디어 그가 필드로 나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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