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01화 (401/1,000)
  • 402화 쌍마(雙魔) (1)

    2위 결정전 당일, 오후 2시.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 5만 명이 넘는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팀 ‘엘리트즈’와 팀 ‘바스터즈’의 대격돌!

    대대로 서울의 강팀이었던 엘리트즈는 대격변 이후에도 여전한 강세를 자랑한다.

    1. 쌍검 메타를 사용하는 오크 전사 이금비.

    2. 화염 마법사 메타를 사용하는 인간 마법사 이은비.

    3. 궁수 메타를 사용하는 리자드맨 궁수 이동비.

    4. 탱커 포지션을 맡고 있는 오크 전사 류요원.

    5. 딜러 포지션을 맡고 있는 리자드맨 전사 이준호.

    신생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저력을 뿜어내고 있는 바스터즈가 이에 맞선다.

    1. 식물 마법사 메타를 사용하는 인간 마법사 신지예.

    2. 힐러 메타를 사용하는 오크 마법사 김굴단.

    3. 전격 마법사 메타를 사용하는 인간 마법사 이연호.

    4. 변칙 메타를 사용하는 리자드맨 마법사 오승훈.

    5. 딜러와 탱커 역할을 하는 오크 전사 마동섭.

    사실 마동왕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나게 쟁쟁한 라인업이다.

    과연 5만 관중들을 현장으로 불러낼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엔트리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쟁쟁한 프로게이머들은 서로 1:1로 PVP를 뜨게 되고 먼저 전멸하는 쪽이 패배하게 된다.

    중간에 선수교체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경기도중 회복 아이템을 사용한다거나 아이템 메타를 바꾸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모든 방송국에서 취재진들이 파견되었다.

    그들은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 흥분한 표정으로 줄 서 있는 관중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땄다.

    질문은 대부분 간단했다.

    Q. ‘이번 승부에서 어떤 팀이 이길 것이라고 보십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들은 전부 천태만상이다.

    “저는 엘리트즈가 압승할 것이라고 봅니다. 금은동 자매의 합격술은 장난이 아니거든요.”

    “제 생각엔 바스터즈가 이길 것 같아요. 천재 이연호가 있잖아요!”

    “당연히 엘리트즈죠. 대격변 전 랭킹 5위권 안의 강자들 둘에 서울대표 경합에서 준우승했던 강자들 셋인데.”

    “팽팽할 것 같은데, 그래도 바스터즈가 우세할 것 같아요. 전 1위팀에 있던 이연호에 결승까지 진출했던 오승훈이 있고, 나머지 세 명의 실력도 비범하니까…….”

    “글쎄요? 동점? 둘 다 비슷비슷 할 것 같은데.”

    여기서 이기는 쪽이 ‘닳고닳은 뉴비’ 팀과 붙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관중들의 기대감은 폭발적이었다.

    이 경기가 끝나면 진정한 대한민국 넘버원이 누군지 조금 더 명확해지게 되리라.

    *       *       *

    한편.

    경기장 안 관계자실 안에서는 캐스터들이 오늘의 중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용진 캐스터를 비롯한 모든 캐스터들이 모여서 흥분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눈다.

    “세상에. 그날 마동왕 경기를 모두가 봤어야 하는데.”

    “엥? 우리 다 같이 봤잖아요?”

    “우리 말고요! 다른 세상 사람들 모두요!”

    “크크크 동감합니다. 저만 보기 아까운 명경기였죠.”

    “진짜… 저번 경기 안 본 눈 있으면 사고 싶어요. 한 번 더 보고 그 감동과 전율을 느껴 보게.”

    이번 경기에 대한 얘기보다는 저번 경기에 대한 얘기로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바로 그때.

    쾅!

    회의실 문이 박살나듯 열렸다.

    “……!”

    캐스터들은 모두 자리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났다.

    차규엽. 그가 붉어진 얼굴로 직접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자네들은 누군가?”

    차규엽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의 얼굴을 알아본 전용진 캐스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들은 오늘 중계를 맡은…….”

    “됐고. 여기 안내실 어디야.”

    선수들에게 일정을 전달하고 고지하는 부서를 찾는 듯하다.

    전용진 캐스터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층 더 위로 올라가셔야 하는데…….”

    “으음.”

    차규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홱 뒤돌아섰다.

    그의 불같은 성질을 아는 캐스터들로서는 잠시나마 긴장할 수밖에 없던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정, 재계뿐만 아니라 협회에 직접 입김을 미치는 인물이니만큼 밉보여서 좋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관계자 대기실을 나가려던 차규엽이 잠깐 멈칫했다.

    그러더니 뒤로 돌아 전용진 캐스터를 비롯한 모두를 쭉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캐스터들이라고 했지? 이따가 중계석에 서나?”

    “예에 어르신. 그렇습니다.”

    전용진 캐스터가 어색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자 차규엽은 마침 잘됐다는 듯 손짓을 한다.

    “그래. 어차피 전달할 것도 있었는데 잘 됐네.”

    “예? 무엇을…….”

    그러자 차규엽은 씩 웃으며 물었다.

    “이따가 그 ‘닳고닳은 뉴비’ 구단도 참관하러 오지?”

    “네? 예.”

    “그럼 구단 소개도 하겠네?”

    “예, 아무래도 그렇죠.”

    “그거 소개 순서가 어떻게 되나?”

    차규엽의 물음에 전용진 캐스터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어떤 것 때문에 물으시는지요, 어르신?”

    “빨리 대답이나 해.”

    차규엽의 강압적인 태도에 전용진 캐스터는 입을 반쯤 벌렸다.

    하지만 별 수 없는 일이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기에 전용진 캐스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선 바스터즈 소개가 먼저고 그 다음에 엘리트즈가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닳고닳은 뉴비 구단 소개입니다.”

    그러자 차규엽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순서 바꿔.”

    “…예?”

    “소개 순서 바꾸라고.”

    차규엽은 인상을 쓴 채 말했다.

    “내가 위에도 말해 놓을 것이지만. 원래 소개를 마지막에 해야 주목도가 큰 거 아니겠나?”

    “…예에, 뭐 그렇긴 한데.”

    전용진 캐스터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팀을 소개할 때는 제일 강한 팀을 맨 뒤에, 그 다음으로 강한 팀을 맨 앞에 놓는 것이 관례다.

    관객들이 두 번째로 주목할 만한 존재를 맨 앞에 두어야 일단 관심을 끌 수 있고 관객들이 가장 주목할 만한 존재를 맨 뒤에 두어야 그 관심을 끝까지 유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규엽의 요구는 그야말로 생떼에 가까웠다.

    ‘닳고닳은 뉴비’, ‘엘리트즈’, ‘바스터즈’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구단은 닳고닳은 뉴비였고 나머지 둘은 비슷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규엽의 매서운 눈빛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캐스터들은 없었다.

    어쩌겠나? 그들은 그저 힘없는 중계진일 뿐인 것을.

    그렇게 해서 구단 소개 순서는 바뀌었다.

    1. 바스터즈.

    2. 엘리트즈.

    3. 닳고닳은 뉴비.

    에서.

    1. 엘리트즈.

    2. 닳고닳은 뉴비.

    3. 바스터즈.

    가 된 것이다.

    바스터즈가 마지막에 하이라이트를 받게 하려는 차규엽의 꼼꼼한 부정개입이었다.

    *          *          *

    이윽고 선수들이 경기장 안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곳곳에서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때 서울 랭킹 2위로 챌린저 자격까지 노렸던 명문구단 ‘엘리트즈’답게 수많은 팬덤이 그들을 응원한다.

    뒤이어 바스터즈 역시 엘리트즈의 맞은편에서 입장했다.

    전용진 캐스터는 경기 시작 전 이번 전장에 참여할 전사들의 프로필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네! 지금 팀 엘리트즈의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리더인 이금비 선수가 맨 처음으로 들어오는군요! 강력한 쌍검을 휘두르는 오크 여전사의 매력에 흠뻑 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폭딜러 하면 또 우리 이금비 선수죠!]

    [그 다음은 이은비 선수네요! 차갑게 보이는 외모와 달리 뜨거운 화염을 다루는 이 선수의 기량은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참고로 배그옵에서 이은비 선수에게 잡혀 리타이어된 선수들 보면 하나같이 다 쟁쟁하거든요!]

    [다음은 세자매 중 막내인 이동비 선수입니다! 이동비 선수는 실제로 양궁선수로도 잠깐 활약한 적이 있었죠? 심지어 행정고시 1차 시험까지 붙었던, 그야말로 문무겸비 초엘리트입니다! 잠깐 한눈팔았다간 이동비 선수의 화살에 맞아 순식간에 로그아웃될 겁니다!]

    [오오! 전 한국 랭킹 3위였던 쌍칼 이준호 선수입니다! 리자드맨으로 진화한 이상 그의 칼이 더욱 매서워졌을 것이 분명한데, 이거 오늘 경기 아주 기대가 됩니다.]

    [드디어 입장하는군요! 전 천지패황 구단의 리더였던 류요원 선수입니다! 개인적으로 임요셉 선수와 함께 한국 탱커 라인의 쌍벽이라고 볼 수 있는 선수죠. 대격변 이후 오크 종족으로 진화하여 원래 가지고 있던 장점이 더욱더 부각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어요!]

    엘리트즈의 출전멤버 다섯 명에 대한 소개를 마친 전용진 캐스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내, 그는 관중들의 눈치를 보며 입술을 뗐다.

    [자, 다음은 오늘 경기를 참관하러 온 ‘닳고닳은 뉴비’ 구단의 멤버들을 소개해 드리려 하는데……]

    그 순간, 관계자석에 앉아 있던 차규엽이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소개 순서를 바꿔 이런 식으로라도 기싸움을 걸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차규엽의 예상은 또 빗나가고 말았다.

    […네? 안 왔다고요?]

    전용진 캐스터는 급하게 달려온 직원을 통해 귓속말을 전해 듣고는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이내,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네. 닳고닳은 뉴비 구단은 굳이 선수석에 앉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반 관중들처럼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겠다고 하네요. ‘이 자리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했답니다. 오늘 경기의 주인공이 아니니 소개도 따로 필요 없다는군요. 하핫!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조금 멋있다고 봅니다.]

    그러자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쿨하다’, ‘멋지다’ 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차규엽은 또 예상이 빗나간 것에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협회 사람들은 차규엽의 속도 모르고 떠들기 바쁘다.

    “거 말 잘했네. 그 마동왕인가 하는 친구 때문에 관중들이 다 그쪽만 바라볼까 걱정했는데.”

    “재영이가 아주 배려심이 있어.”

    “그럼 엘리트즈와 바스터즈 중에 먼저 소개받은 쪽만 이득이구만. 허허허.”

    소개를 기껏 맨 뒤로 빼놨더니 중간이 쏙 빠지는 바람에 오히려 손해만 봤다.

    후보가 둘 뿐이면 그냥 맨 처음으로 소개해 달라고 하는 것이 더 이득이었을 텐데.

    마치 차규엽이 소개 순서를 바꿀 걸 알기라도 한 것 같은 대응.

    사소한 일이었지만 차규엽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기에는 충분한 상황이었다.

    …빠득!

    차규엽이 이를 가는 동안 바스터즈의 선수 소개가 뒤늦게 이루어졌다.

    [엘리트즈가 멤버 간의 합을 중요시한다면 바스터즈는 개인 간의 기량을 더 중요시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식물 마법사 메타를 사용하는 인간 마법사! 신지예 선수입니다!]

    [다음은 힐러 메타를 사용하는 오크 마법사! 김굴단! 사실 비주얼만 놓고 보면 힐러나 마법사라기보다는 주술사나 부두술사에 가깝지만 말이죠! 하핫!]

    [전 1위 팀 국K-1을 기억 못 하시는 분들은 없으시죠!? 그곳에서도 에이스 자리에 있었던 천재의 등장입니다! 인간 마법사 이연호! 오늘 그가 바스터즈의 새 멤버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다음은 변칙 메타를 사용하는 리자드맨 마법사 오승훈입니다! 예전에 강원 대표팀 매드독 소속의 에이스였죠! 지금 프로필에 변칙 메타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저희들도 아직 이 선수의 실력에 대해서는 입수한 정보가 없습니다! 부디 이번 경기에서 훌륭한 활약 선보이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이윽고. 바스터즈의 멤버 4인에 대한 소개가 끝났다.

    끝으로, 전용진 캐스터는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마지막입니다! 사실 오늘 저는 이 선수를 가장 주목하고 있는데요!]

    동시에 무대 위로 드라이아이스가 뿜어져 나오며 검은 후드를 입은 한 명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용진 캐스터는 땀이 흐르는 손바닥을 들어 마이크를 더욱 가깝게 잡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현 시점에서 가장 ‘마동왕’과 가깝다고 평가되는 선수! 한국 오크 랭킹 1위! 마동섭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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