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98화 (398/1,000)
  • 399화 참교육 (1)

    4주의 시간이 흘렀다.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 게이머들의 전장에 또다시 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오늘은 2위 결정전이 열리는 날.

    팀 ‘바스터즈’와 팀 ‘엘리트즈’의 순위 결정전이 있는 날이다.

    여기서 이기는 쪽은 배그옵 경기에서 1위를 한 ‘닳고닳은 뉴비’와 붙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진정한 대한민국의 넘버원이 가려지리라.

    경기 구조는 바스터즈의 5명과 엘리트즈의 5명이 서로 1:1로 붙으며 도중에 얼마든지 멤버교체가 가능한 태그매치 방식.

    배그옵 경기 때보다는 적은 인파가 몰렸지만 그래도 그 열기는 충분히 뜨거웠다.

    얼추 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스터즈와 엘리트즈의 경기를 보러 왔다.

    공중파 지상파 가리지 않고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들어 오늘의 경기를 중계한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스트리머들 역시 각자 자신의 개인방송 채널을 켜 현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각종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 역시 소란스럽다.

    -뭐야? 오늘 무슨 날임?

    ↳오늘 바스터즈랑 엘리트즈랑 순위결정전함

    ↳뭐야 그럼 오늘은 마동왕 안나오는거지? 휴ㅅㅂ 오늘 출장있는데 마동왕 못보는줄알았네

    -듣보끼리 붙네

    ↳바스터즈랑 엘리트즈가 듣보는 아님;;;

    ↳바스터즈에는 마동섭이랑 이연호 있잖어

    ↳엘리트즈에는 류요원, 이준호, 금은동 있음ㅋㅋ

    ↳마동왕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번 경기도 역대급 엔트리여;;

    -어휴 ㅂㅅ 겜알못 새끼들...그저 마동왕만 좋다고 빠는 수준;;;물론 나도 마동왕만 빨음 쪽쪽 형 사랑해♥

    ↳마동왕 안나와서 오늘 경기는 거른다

    -팩트간다. 엘리트즈 류요원 이준호 금은동, 바스터즈 마동섭 이연호 오승훈. 이 선수들은 한국 최강 인프라다. 마동왕에 가려져서 그렇지ㅋㅋ

    ↳진짜 겜잘알들은 이런 선수들을 주목함

    ↳근데 겜잘알이라고 해서 이 선수들을 마동왕보다 높게치는건 당연히 아님ㅋㅋ

    -마동왕 클라스는 국내에 없지. 그 누구와도 비교불가다;;;

    ↳그러니까 마동왕이 진짜 대단한거지. 호불호가 안갈리잖아. 실력으로 다 입닥치게 하니까~

    ↳...하지만 고인물이 출동하면 어떨까?

    ↳고!

    ↳인!

    ↳물!

    .

    .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쏠려 있는 가운데 또다시 전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닳고닳은 뉴비 구단이 임시로 차지하고 있는 왕좌에 손을 뻗는 두 도전자!

    ‘바스터즈(Basterds)’

    VS

    ‘엘리트즈(Elites)’

    망나니들과 모범생들.

    썩 잘 어울리는 대결 구도이다.

    …….

    …그리고.

    지금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이 날로부터 정확히 24시간 전에 있었던 일들이다.

    *       *       *

    대회 하루 전.

    팀 ‘엘리트즈’의 멤버들은 서울역에서 집합했다.

    “아따, 공기 드럽다. 마.”

    쌍칼 이준호. 그는 서울역의 복잡한 전경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옆에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든 천지패황 류요원이 서 있었다.

    “사투리 쓰지 마라. 촌스럽다.”

    “머꼬 이 문디는. 내도 사투리 안 쓸라믄 안 쓴다.”

    “안 써 봐, 그럼.”

    “방금 안 쓴 건데?”

    “…….”

    이준호와 류요원이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야, 바보들아. 여기로 와.”

    저 멀리 편의점 앞에서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이은비였다.

    그녀의 옆에는 언니인 이금비와 동생인 이동비가 가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풍선껌을 불고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국K-1과 서울 대표팀 자리를 놓고 최후까지 경합을 벌이던 구단.

    팀 ‘엘리트즈’, 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마찬가지로 사라진 구단 ‘천지패황’과 ‘스타파이브’의 에이스였던 류요원과 이준호는 금은동 자매와 손을 잡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팀 ‘엘리트즈’의 감독인 김태경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난민이 된 선수들을 스카우트한 결과였다.

    천지패황 류요원은 아이돌 e스포츠 대회 당시 MS엔터 측에서 코치 직을 제의받았을 정도로 훌륭한 인재, 거기에 쌍칼 이준호 역시 해외리그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는 뛰어난 랭커이다.

    여기에 팀워크 하나만으로 한때 국K-1을 궤멸 직전까지 몰고 갔던 금은동 자매까지 더해졌다.

    팀 ‘엘리트즈’는 확실히 우승후보 물망에 오를 정도로 대단한 전력을 가진 구단이 된 것이다.

    “어휴, 왜 우리까지 마중을 나와야 하는 거야.”

    “그러게. 대회 하루 전에는 푹 쉬어 줘야 하는데.”

    “팀은 하나니까 다 같이 움직여야지. 어차피 우리 집도 서울 외곽이라서 멀잖아. 호텔에서 자면 좋지 뭐.”

    리더인 이금비가 동생인 이은비와 이동비를 달래며 이준호, 류요원과 최종 합류했다.

    “헤헤 예뿌당.”

    “성격 더러운 여자들 같은데.”

    이준호는 금은동 자매의 미모를 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류요원은 그런 이준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윽고 김태경 감독이 다섯 명의 선수단을 인솔하여 택시를 잡았다.

    “소라게 호텔로 가 주십쇼.”

    택시기사에게 행선지를 밝히고 난 뒤, 엘리트즈 멤버들 전원은 오늘 숙박을 예약한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일어났다.

    “아앗, 이거 대단히 죄송하게 됐습니다. 전산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방이 하나도 없는데 어쩌죠?”

    프론트 직원이 송구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다.

    김태경 감독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거의 2주 전부터 예약을 해 놨는데 지금 이러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100% 환불해드리겠습니다. 내일부터는 방이 비는데…….”

    “아니 오늘이 중요하죠! 내일이 경기인데!”

    “그럼 내일 방을 한 등급 업그레이드 해 드리겠습니다.”

    “장난하는 겁니까? 아무리 좋은 방이라고 해도 내일이면 의미가 없다구요!”

    김태경 감독과 다른 구단 실무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계속 호텔 측에 항의했다.

    하지만 호텔 측은 빈 방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감독님. 그냥 다른 데로 가죠.”

    이은비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예민한 성격이라서 경기 전 반나절 정도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마법 영창이 더 잘 된다나?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올라온 이준호와 류요원 역시 먼 길을 오느라 꽤나 지친 기색이었다.

    김태경 감독은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실랑이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쉬는 편이 선수들 컨디션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그들의 수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네, 베베꼬인 호텔입니다. 빈 방이요? 아뇨, 오늘은 이용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빈 방이 없네요.”

    “공교롭게도 오늘은 예약이 꽉 차 있어서요.”

    근방에 있는 모든 호텔들이 투숙을 거부하고 있었다.

    조금 먼 곳에 있는 호텔도 로비에 덩치 큰 남자들이 우글우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심지어 아직 방이 다 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약만으로도 모든 방이 나간 경우도 많았다.

    별 수 없이 엘리트즈 멤버들은 서울 근교를 빙글빙글 돌아야만 했다.

    2군 멤버들 중 지방에 사는 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탈진해버렸다.

    “으, 멀미 난다.”

    “차를 너무 오래 탔어.”

    “…힝, 좀 눕고 싶어.”

    선수들 사이에서 불평이 새어나온다.

    결국 김태경 감독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선수들을 모텔에 묵게 한 것이다.

    1군 멤버들은 각자 방을 잡았고 2군 멤버들은 둘이서 방을 잡았다.

    감독과 코치를 비롯한 실무진들은 여럿이서 한 방을 썼다.

    그러나 엘리트즈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펑! …퍼펑!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뜬금없이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꺄르륵! …와르륵! …쿵쿵쿵♫♪♬

    옆 건물의 파티룸에서는 음악 소리와 함께 고성방가 소리가 우렁차다.

    [미더덕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바다 생태계를 살리자!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모텔 옆에 있는 도로에서는 ‘미더덕 생존권 연대’라는 수상한 단체가 확성기를 들고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미더덕은 동물계 척삭동물문 해초강 측성해초목 미더덕과 미더덕속의 동물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생김새를 가진 인간의 친구…!]

    [오만둥이와 미더덕을 구별하라! 구별하라! 구별하…!]

    모텔 창밖으로 시위대를 바라본 이은비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시위대 사람들… 처음 갔었던 호텔 로비에 있었던 사람들 같은데?”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었다.

    김태경 감독에게 계속해서 문자가 오고 있었다.

    경기에 필요한 서류들 중 몇 가지 항목이 누락되었으니 다시 떼어 오라는 내용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경기 하루 전날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마치 세상 전체가 ‘엘리트즈’를 꺾으려 드는 것처럼 보일 정도.

    1, 2군 선수진들뿐만 아니라 감독과 코치도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분명 뭔가 수작질이 가해진 것 같은데?”

    “국제대회 때 해외 선수들을 이런 식으로 방해해서 시차 적응을 못하게 하는 악질들이 있다고 들었어.”

    “와, 근데 우리는 국내인데도 이렇게 심하네.”

    그 와중에 창밖으로 들려오는 미더덕 생존권연대의 구호 소리가 한층 더 가열차졌다.

    알아보니 정식 허가를 받은 집회여서 클레임을 걸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선수들의 스트레스가 그렇게 극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

    똑똑똑-

    엘리트즈의 감독 김태경이 있는 모텔 방문을 두드리는 손 하나가 있었다.

    “……?”

    모텔 방문을 연 김태경 감독은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험상궂게 생긴 큰 키의 사내 하나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시위를 벌이는 문신 덩치들보다도 더 사납게 생긴 얼굴.

    …하지만 그는 의외의 상냥함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심까. 저는 닳고닳은 뉴비 구단의 매니저 ‘유창’임다. 엘리트즈의 감독님 되심까?”

    김태경 감독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유창은 한번 씩 웃어 주었다.

    “저희 구단주님께서 모든 것이 완벽한 투숙 환경을 다음날 오전까지 무료로 제공해드리고 싶으시다는데, ……혹 관심 있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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